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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236화 (236/305)
  • 제236화

    둘의 만담인지 정보 교환인지 모를 대화를 지켜보던 정지한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엄지척 헌터. 튜토리얼 종료까지 10,830시간 남았습니다. 1년은 8,760시간이므로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남은 셈이지만, 미국 뉴저지의 외눈거인 사이클롭스들의 행위가 성공한다면 튜토리얼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약 7,000시간으로 줄어들 테죠.”

    갑작스러운 설명. 그러나 엄지척은 당황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니까.

    “정지한 대표님은 역시 정확하게 계측이 가능하셨군요?”

    “시간계 능력자이기 때문입니다.”

    “전에 말씀 못 하신 이유는 역시 제약 때문이죠?”

    “예. 그리고 제가 이걸 직접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제약이 풀렸다는 것이죠. 그건 다시 말해서…….”

    “세계가 실시간으로 개X같이 되고 있다~ 이거랍니다~ 아! 참고로 ‘개X같다’는 국어사전에도 나온 단어예요. 잘 알아두라고요?”

    리블의 상황에 맞지 않는 농담을 들으면서도 정지한의 표정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리블의 속된 표현처럼, 세계는 이미 한도를 넘고 있는 중이죠. 때문에 저에게 걸린 제약도 풀리고 있지만, 그것은 다른 것들에게 걸려 있는 제약 역시 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던전이 더 자주 출현한다는 건가요?”

    “단순히 그런 게 아닙니다. 4성 혹은 5성급의 던전 보스가 직접 나타난다는 것이죠. 저들 사이클롭스처럼.”

    정지한은 단언했다.

    리블의 이상한 행동이야 하루, 이틀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역시 정지한이다. 표정이 조금도 변하지를 않아.

    그런데 사이클롭스 저것들은 어느 정도 등급이지?

    [사이클롭스가 보스로 등장하는 던전은 4성급 던전입니다. 미국에 나타난 사이클롭스들은 그중에서도 더 강력한 개체들이니 5성급 혹은 그 너머에 있는 던전의 몬스터일 겁니다.]

    척량이 재빠르게 가르쳐 주었다.

    5성급. 아직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사실 4성급 던전도 저번이 처음이다.

    그랬다. [뒤틀린 성좌의 숲] 던전조차도 4성급 던전이다.

    영락하여 그 힘이 쇠락하였다고는 해도 성좌가 직접 강림한 그 던전이 4성급이라고!

    그런데.

    5성급이거나 그 너머 등급인 6성급 던전일지도 모르는 게 출현하면서 몬스터를 쏟아냈으니 저런 사달이 난 것이다.

    “저런 재앙이라고 부를 만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몬스터 브레이크는 그간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자주, 더 빈번하게 일어날 겁니다. 그리고 튜토리얼의 때를 더욱 당기겠죠.”

    역시 그런 거냐.

    참 게임 운영 개판으로 하네. X망겜이야, 이거.

    “문제는 저것들을 저지할 역량이 저희에게는 없다는 겁니다. 적어도 레벨 100의 헌터들이 일천여 명 이상 참여하거나 핵을 쓰지 않는 한 저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 미래를 보신 겁니까?”

    “예. 그것도 여러 번 보았죠.”

    여러 번이라…….

    “솔직히 말씀드리죠. 저는 여러 미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엄지척 헌터는 없었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

    “엄지척 헌터를 처음 본 것은 아닙니다만, 당신은 미래에서 늘 달랐습니다. 어떤 때는 여전히 아무런 능력을 각성하지 않았고, 어떤 미래에서는 환상술사 같은 특이한 능력을 가지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지금과 같은 강력한 힘을 가지신 미래는 처음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까지 생존하신 미래 역시 거의 없었습니다.”

    “헐…….”

    나도 모르게 헐 소리를 내고 말았다.

    뭐 이리 잘 죽었어?

    “튜토리얼이 끝나기도 전에 당신은 대부분의 미래에서 죽었으니까요.”

    “무척이는요?”

    반사적으로 물어보고 말았다.

    “제 동생이요. 그 녀석은요?”

    “글쎄요. 그는 제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알 수 없군요. 하지만 튜토리얼이 끝난 이후의 미래에서 그를 본 적이 없으니 아마도 이름 없는 헌터가 되었든가 죽었든가 둘 중 하나겠죠.”

    그는 여상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런 이야기를 지금 이 시점에 하시는 거죠?”

    “그만두십시오.”

    갑작스러운 권고였다.

    “당신이 저에게 대화를 요청한 이유가 짐작 갑니다. 저들 사이클롭스를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 말에 말문이 막힌다.

    이윽고 정지한이 말을 이었다.

    “그러나 미국조차 저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크나큰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희생을 감수할 의지가 없죠. 결과적으로. 더 큰 재앙을 대가로 받게 될 겁니다.”

    “그걸… 그걸 내버려 두라고요? 예정된 재앙이 오는 걸 눈뜨고 지켜보라는 말입니까?”

    “그렇게 하십시오. 지금 시점에서는 저것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정지한은 단언하고 있다. 리블은 히죽 웃으며 나와 정지한을 번갈아 본다. 그리고 나로 말하자면…….

    속이 불편하다. 아주아주 불편해.

    “게다가, 저들의 희생은 필요합니다.”

    “뭐요?”

    “미국 뉴저지 전체의 인구는 게이트 사태가 있기 전에는 800만 명에 육박했으나, 지금은 400만 명 정도. 게이트 사태에도 제법 많은 이들이 살아가는 번화한 지역입니다.”

    “…….”

    “위로는 뉴욕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필라델피아가 있는 그곳은 항구 도시도 제법 많은 곳이죠. 그리고 그런 곳이 사이클롭스들에 의해서 초토화된다면, 그때야말로 엄지척 헌터가 생각하는 ‘차원 방벽’을 건설할 수 있을 겁니다.”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기분이 이상하다.

    필요한 희생이라니. 400만 명이라는 감도 안 잡히는 숫자.

    “엄지척 헌터. 모두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죠.”

    “그게. 뉴저지의 시민들이라는 말입니까?”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뉴저지 전체가 초토화되지 않는다면, 저들 세계 국가의 정상들이 과연 차원 방벽을 세우려는 의지를 가질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재앙을 마주하지 못한 자들은 재앙을 대비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네.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종족이니까요. 제가 본 바로는, 저들 사이클롭스들은 언제나 뉴저지를 초토화하고 그들의 영역으로 만들었습니다.”

    정지한은 눈을 감고 말을 잇는다.

    “그 후에 그 어떤 마경보다도 끔찍한 마경림이 출현하죠. 그제야 미국은 전력을 다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국제적인 공조를 부르짖지만 세계는 결국 찢어지게 됩니다.”

    그건 절망적인 예언처럼 들렸다.

    “그때, 차원 방벽이라는 희망의 횃불을 드십시오. 당신이 희망의 별이 된다면, 그때 세계 전체는 당신의 의지에 반응하여 당신을 지지할 겁니다.”

    “그것도 당신이 본 미래인가요?”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희망의 별 어쩌고는 예지가 아니란 말이야?

    “당신의 이후 미래는 이제 저도 알 수 없기에 방금 전 말한 것은 예지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만들 겁니다.”

    굉장히 박력이 넘친다. 대단히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사장님의 면모가 느껴졌다.

    리블이 말했다.

    “그냥 순순히 정지 군의 말을 듣는 게 훨씬 효율적일 겁니다~ 어차피 인류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 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요.”

    맞는 말이다. 알고 있다.

    다들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다.

    그도 그렇지 않나. 400만 명, 그중에는 어린아이와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노인분들도 있을 거고.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냥 타국 사람이니까.

    타국 사람 400만 명이 죽든 말든 내 알 게 뭔가. 오히려 그다음에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일어서는 게 훨씬 더 중요…….

    “그렇게는 못 하겠는데요.”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진심이십니까?”

    “예.”

    “불가능에 뛰어드는 것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만.”

    “물론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어떻게든 해내야죠. 말 그대로. 어떻게든. 그리고 방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나는 내면을 들여다본다.

    따봉이 그곳에 있다.

    경외심.

    사람들이 나에게 보내준 순수한 마음.

    그것은 신성력이 되어 내 안에서 타오른다.

    따봉.

    총 3억 7천만 포인트.

    성좌들이 주는 포인트에다가, 사람들이 과거 영상들을 보면서 누르는 따봉들이 계속해서 나에게 따봉을 보충해 준다.

    그중에는 당연히 뉴저지의 사람들도 있었다.

    -엄지 영상 잘 보고 있음 :)

    -엄지 미국 원정 오면 좋겠다 ;->

    -이번 코믹콘에서 우리 부스는 엄지 코스프레 할 거임.

    -아일이랑 같이 코스프레 부스 내는 곳도 있던데?

    -둘이 왜 안 만나는 거임? 텍스트는 주고받는 거 같은데:-C

    -엄지 한 번만 미국 와 줘라!!!!!!!

    차원 방벽을 만들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급한 불을 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걸 쓴다.

    지금부터 나는 아주 바쁠 예정이다.

    3억 7천만 따봉을 전부 태우더라도.

    저 빌어먹을 외눈깔 거인 놈들을 전부 제거할 거거든.

    “진심이신 모양이군요.”

    “저야 늘 진심이죠.”

    “왜 그렇게까지 하시려는 겁니까? 저들의 희생이 지구를 구원하는 데 더 효과적일 텐데요.”

    진지한 얼굴을 한 그에게 나는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한다. 누구도 돕지 않는 사람들을 돕는다.”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래야 따봉이 많이 들어오잖아요. 안 그래요?”

    그리고 공간을 넘었다.

    무슨 짓이든 해 주마.

    너희 외눈깔 놈들아, 거기 딱 기다리고 있어라.

    내가 척량을 몰고 가서 대가리를 날려 주마!

    * * *

    [정지한에게 작전 개요를 메일로 송신했습니다. 바로 확인하는군요.]

    좋아. 답장 오면 가르쳐 주고. 저기를 어떻게 뚫고 들어갈까?

    [굳이 뚫고 들어가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연락을 하면 결계를 열어줄 텐데요.]

    그러려나?

    고오오오오.

    뉴욕.

    미국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도시이며, 악명 높은 금융가인 월 스트리트가 이곳에 있다.

    게이트 사태 이전에도 800만이 넘는 인구를 자랑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1,200만까지 늘어나 있다고 한다.

    금권주의의 상징이며, 그 때문에 안전에 있어서는 미국 그 어디보다도 확실한 보호를 받을 수 있기에 인구가 더욱 급증한 지역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뉴욕시의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아담 브라운이 사는 집이자 그의 회사를 내려다보는 중이고.

    일단, 스킬부터 사자.

    [준비했습니다.]

    [진실의 힘]

    등급 : 레전드 (비성장형)

    진실의 신이 그들의 사도에게 내리는 힘.

    진실은 그것만으로도 강력하다.

    기능 : 진실을 말하는 한, 상대는 무조건 신뢰하게 된다.

    기능 : 거짓을 한 번이라도 입에 담을 경우 이 힘은 사라진다.

    [기억의 영상화]

    등급 : 레어 (비성장형)

    기억을 꺼내어 영상화하는 스킬.

    방송 관련 스킬과 연계할 수 있으며, 갓튜브와도 연계할 수 있다.

    [진실의 저울]

    등급 : A-

    진실의 신이 만든 성물.

    이 저울을 들고 진실을 말하면 저울은 수평을 유지한다.

    그러나 거짓을 말한다면 저울은 기울게 된다.

    따봉 상점에서는 아이템도 살 수 있다.

    아이템의 경우에는 그다지 사지 않는데, 스킬에 비해서 별로 효율이 좋지 않아서다.

    하지만 이번에는 특별한 경우라서 이걸 샀다. 내가 말하는 것에 대해서 상대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이 정도 준비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설득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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