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4화
쿠우웅! 쿠우웅!
사이클롭스가 계속해서 던전에서 빠져나온다.
게다가 그것들은 딱히 파괴 활동을 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도망가며 난리를 부렸으나, 이 외눈 거인들은 어째 심드렁한 것이, 인간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다.
이윽고.
던전에서 로브를 입고, 지팡이를 든 사이클롭스들이 하나둘 빠져나온다.
하반신만 겨우 가린 사이클로스가 서른이 넘고, 로브를 입은 것들이 다섯이 넘었을 때.
다른 사이클롭스보다 50%는 더 거대한 사이클롭스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을 시작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언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통역 스킬을 가진 자들은 알아들었다.
-신관들은 성지화를 시작하라. 전사는 방벽을 쌓고, 방어에 들어간다.
언어를 가진 몬스터가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렇게 대중에 생중계된 적은 처음이다.
그것의 말이 끝나자 사이클롭스들은 주변의 건물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수십 층 높이의 빌딩을 파괴하고, 그것들을 주변에 벽처럼 쌓기 시작한다.
그 파괴에 휘말려 사람들이 죽어 간다.
빌딩의 잔해로 만든 장벽의 중심에서, 로브를 입은 사이클롭스들이 수상쩍은 의식을 시작한다.
그들의 지팡이에서부터 시작된 빛이 던전으로 향해 던전과 공명을 시작했던 것이다.
일찍이 인류가 본 적도 없던 행위.
그때.
헬기 수십 대가 날아와 미사일을 쏴대기 시작했다.
인류가 만들어낸 화기는 그리 통하지 않지만, 그래도 마정석을 넣은 것들은 던전 밖에서도 충분히 효과적이다.
허나, 상대가 좋지 않았다.
사이클롭스들의 눈에서부터 쏘아진 광선이 미사일을 모조리 격추, 그리고 헬기까지 덮쳤던 것이다.
콰쾅!
폭음과 함께 헬기들이 추락한다.
헬기에 타고 있던 헌터들이 그제야 뛰어내리며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번개. 폭풍. 칼날 바람. 화염.
서로 상쇄되지 않고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공격들이 사이클롭스들에게 쏟아진다. 그러나 그것들은 외눈 거인들의 육체에 상처를 조금 입혔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외눈 거인들의 광선 공격에, 헌터들 대다수가 학살당하고 만다.
그 장소에 있다가 갓튜브로 이런 전투 영상을 송출한 사람의 수만 해도 수천여 명이 넘었기에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엄지척 역시 거의 실시간으로 그 영상을 지켜보았다.
재앙이 미국에 강림한 것이다.
* * *
“시작됐군.”
정지한은 투박하게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의 내부에 쌓인 무수히 많은 시체 위에 서 있었다.
군사 시설의 벙커.
그것도 차량이나 전차 같은 종류를 세워 놓은 격납고 같은 곳 여기저기에는 시체들이 늘어진 채로 피가 작은 강을 만들고 있다.
그런 시체들 위에서.
그는 갓튜브 영상을 불러내 보고 있다.
북한이 사라진 마경 지역은 인간이 살아가기에 너무 열악한 환경이기 때문에 비밀결사들의 좋은 은신처이다.
그간 그가 제법 많은 숫자를 제거해 왔지만. 아직도 몇몇은 남아 있다.
지금 그가 올라서 있는 시체들도 그런 것들 중 하나였다.
내버려 뒀다면 중국과 러시아에 영향을 미치고, 한국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하게 만드는 테러를 저지르는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을 처리한 그는 갓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영상.
그것은 그가 이미 수를 세기 어려울 만큼 보아왔던 광경이었다.
외눈거인의 출현.
정지한은 저 일을 단 한 번도 막아낸 적이 없다.
막으려 시도한 적이 많았으나 전부 실패로 끝났고, 차라리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린 지가 오래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사이클롭스라는 존재들은 하나하나가 수십 명의 고레벨의 헌터가 덤벼들어야 하는 레이드 보스 몬스터였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이클롭스가 수십에다가, 상위 존재라고 할 만한 사이클롭스 신관과 마법사.
거기에 다른 사이클롭스를 내려다볼 정도로 강대한 존재가 있다.
사이클롭스 전쟁 사령관.
사이클롭스 종족의 지배 계급.
저들 수십이 본격적으로 날뛰면 미국이라고 해도 끔직한 피해를 입고 말겠지.
그런데, 그런 것들이 공격조차 하지 않고 수성에 전념하니 절대로 뚫리지 않는 요새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외눈거인이 한 자리에만 있는 것을 보고 미국 행정부는 오판을 하게 되며 시간을 끌게 된다.”
그가 몇 번이고 본 미래였다.
이번에도 그것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내가 본 미래가 이제 시작된다…….”
영상 속에서 의식이 시작되고 있다. 던전의 입구가 점점 크게 변해 간다.
삼 일 안에.
저것은 더욱 커질 터였다.
그리고 사 일째 되는 날.
“수천의 외눈거인의 군대가 진군하며 뉴저지를 불태우고, 그들의 세계에서 가져온 것들을 심어 그들만의 세계를 자라나게 하리라. 이윽고 외눈거인들의 신전이 완성되는 날 뉴욕마저 불타 재가 되리.”
정지한은 영상을 지켜본다.
그리고 과거 했던 것처럼. 시체들을 모조리 빛의 입자로 만들어 빨아들이고 그 자리를 떠났다.
* * *
척량.
스킬을 찾아.
[직접 저 모습을 관측할 수 있는 스킬이 필요하신 거군요.]
그래. 혹은, 내가 저쪽으로 단번에 이동할 수 있는 스킬.
[여기 있습니다, 주군.]
[헤르메스의 발걸음 – 20,000,000따봉]
등급 : 레전드 (비성장형 S)
죽은 자의 세계와 산 자의 세계 어디든지 다닐 수 있었던 자의 발걸음을 권능화하여 만들어진 스킬.
목격한 장소라면 공간을 뛰어넘어 도달할 수 있으나, 거리가 멀수록 더 많은 마력을 소모한다.
[아르고스의 시선 – 20,000,000따봉]
등급 : 레전드 (비성장형 S)
백 개의 눈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꿰뚫어 볼 수 있었다고 전해지는 거인 아르고스의 능력을 권능화하여 만들어진 스킬.
헤르메스에게 죽임당했으나, 신이란 본디 불멸하는 자들이기에 그는 다시금 부활했다.
본인이 보고 싶은 현재 상황을 볼 수 있으나, 거리가 멀수록 더 많은 마력을 소모한다.
둘 다 따봉은 2천만. 지금의 나로서는 솔직히 싸다고 생각되는 능력들이다.
당연히 전부 구입하고, 갓튜브를 껐다.
그리고 두 눈을 감았다.
아르고스의 시선.
스킬을 사용하자, 나는 분명 두 눈을 감고 있음에도 눈을 뜨고 있는 것처럼 전면이 보였다.
하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시선.
그리고 지금 내가 보는 것은 외눈거인 사이클롭스들이 하고 있는 행동이었다.
저들은 의식을 치르면서 던전의 입구를 키우고 있다. 저기서 쏟아지는 마력이 오싹했다.
[주군. 저들을 내버려 둔다면 던전 브레이크 이상의 사태가 벌어질 겁니다.]
내가 봐도 그래. 저걸 아무 이유 없이 키우고 있지는 않을 거 아냐.
아마도… 강제로 뚫고 나오려고 하는 거겠지.
[맞습니다. 그리고 미국 뉴저지는 끔찍한 피해를 입고, 또한 차원벽에도 큰 상처를 남길 것입니다.]
거인들은 인간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에 있는 기물들에서 마정석을 뜯어내고 있었다.
소량의 마정석을 이용한 전기배터리는 전기공학으로 만들어낸 배터리보다 충전량이 월등히 높아서 요새는 어디서나 쓴다.
그것들을 뜯어내 의식을 행하는 로브를 입은 거인들 근처에 던지고 있다.
그것들은 빛이 되어, 의식의 가운데에 있는 마법진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중.
그것뿐만이 아니다.
외눈거인들이 빌딩을 박살 낸 다음 차곡차곡 레고처럼 쌓은 방벽에도, 청광이 번쩍이면서 단순한 잔해가 아님을 눈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상으로 진입하려면 저 방벽부터 파괴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보통 수단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미국의 주요 길드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뭐?
깜짝 놀라서, 스킬 사용을 취소하고 말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보시죠.]
척량은 어떤 영상을 내 앞에 보여 주었다.
-미쳤어? 빌. 너도 사이클롭스 하나 잡으려면 우리 팀 전원이 매달려야 한다는 거 알잖아! 그런 놈들이 수십 마리야! 게다가 처음 보는 지휘관 개체가 있는데 들어가라고?
-차라리 계약을 파기하고 위약금을 내고 말지! 게다가 우리 계약서의 조항을 보면 이런 때에는 거부권이 있다는 거 알잖아?
제법 익숙한 얼굴이 화면에 나왔다.
키가 2미터가 넘는 데다가, 근육질의 거한인 백인계 남자가 거기에 있었다.
타이탄맨.
미국의 최정상 헌터들 중 하나이며 미국 최대의 헌터 세력인 GOF의 간판스타인 헌터다.
스킬 ‘불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진짜 강함은 ‘티탄의 자손’이라는 스킬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거인신족 티탄의 혈통이 스킬을 통해 그에게 주어진 것으로, 무시무시한 근력과 체력, 거기에 육체의 강인함을 가진 것이다.
하늘을 날거나 빛의 속도로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그의 강함은 그야말로 진짜다.
그런데 그런 그가.
소리치고 있다.
[미국의 헌터들은 전부 자본가이기도 합니다. 기업이 절대적인 갑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강제할 수 없습니다. 사실 최정상 레벨의 헌터들은 국가에서 강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아…….”
나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 쥐고 말았다. 아니, 알지. 알아.
우리나라도 뭐… 저런 일 생기면 도망갈 놈들 천지인 거 나도 알아.
그런데 저렇게 매스컴에 탁 까고 말할 줄은 몰랐지.
군대는?
그래. 믿을 건 천조국의 군대뿐이다.
군대는 어떻게 됐냐?
[움직이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미사일 폭격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설마. 핵미사일은 아니지?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들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주기 위해서 개발한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192발이 준비 중에 있습니다. 곧 발사할 예정입니다.]
그게 먹히기를 기대……해 보고 싶지만. 안 되겠지?
[정보가 너무 없어서 알 수 없습니다.]
젠장. 저것들을 어떻게든 해야…….
“흐음. 집중하시는데 미안하지만, 저도 조금 신경 써 주시겠어요?”
그때.
내 귀로 리블의 목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흠칫했다.
외눈거인들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리블을 까먹고 있었으니까.
“죄송합니다. 너무 충격적이라서…….”
“뭐어. 인류를 지키고 싶은 엄지 군의 마음이야 잘 아니까요. 괜찮아요. 괜찮아.”
리블은 그렇게 말하며 웃고 있다.
그 발밑의 끔찍한 악령 군체만 아니었다면 제법 사람 좋아 보였을 미소다.
“하지만 말이죠. 미국 쪽에서 재미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알겠지만, 어차피 엄지 군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구요? 끙끙거린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다는 걸 아셔야죠.”
“그렇지 않습니다.”
“흠?”
“제가 뭔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고민하는 거라고요.”
나에게는 따봉이 있다. 이걸 이용하면 뭔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놈들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명확하게는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이 문제니까 이렇게 끙끙거리는 거다.
“물론 알죠~ 엄지 군은 다른 성좌들의 권능을 마구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저도 이미 알아요.”
“…….”
“미국으로 공간을 넘어 이동한다거나, 그곳을 관측한다거나, 그곳에 대파괴를 일으키는 능력 같은 것을…… 바로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도. 하지만 저것들은 엄지 군이 감당하기에는 아직 벅차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