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0화
“그럼에도 저에게 와서 이런 사업적 제안을 하신다는 게 놀랍네요.”
“사업은 사업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희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면, 곤란을 겪으실 겁니다.”
“곤란이요?”
“미국에서의 사업은 접으셔야 한다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오호……? 이득을 논하고, 이번에는 협박을 한다 이거로구나. 이거 참 재밌네.
“협박이군요?”
“그렇습니다. 협박입니다.”
우와……. 당당하다. 진짜 당당해.
“당당하시군요, 정말. 그래서 그런 겁니까?”
“밑도 끝도 없는 말씀이시라 이해가 안 갑니다만. 뭐가 그런 거라는 것이죠?”
“그래서 성좌 숭배자가 되었냐는 겁니다.”
번개처럼 손을 뻗어낸다. 혼원건곤신공의 금나수법!
금나수법이란 상대를 붙잡아서 관절을 꺾거나 부러트리는 무공 초식이다.
혼원건곤진기를 실었기에, 이 손에 잡히면 강철도 가루가 된다!
훅!
내 손이 녀석에게 가 닿기 직전.
녀석의 몸이 마치 액체처럼 흔들거리며 모양이 변한다. 내 손아귀에 잡혀야 했을 녀석의 손목이 물처럼 흘러내려 공격을 피한다.
그 상태로 나를 향해 다리를 찔러 온다.
다리 역시 액체처럼 변한 상태였는데, 뾰족하게 바뀌며 내 몸에 구멍을 뚫으려고 했다.
캉!
그러나.
강대한 내가진기를 통해 진화하고, 대성에 이른 외공의 효과로 강인해진 내 육체는 그 정도 공격에는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는다.
녀석의 액체화되어 날카롭게 변한 발끝은 순식간에 단단해져 내 목을 찔렀으나 그대로 튕겨져 나갈 뿐.
그사이 나는 염혼염동을 발동했다.
콰직.
녀석의 주변 공간 전체가 염동력으로 가득 찬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으로 완전히 밀폐된 공간을 만든 것이다.
녀석은 액체 금속 같은 것인지, 그 상태로 몸 전체에서 가시를 만들어 사방을 뚫으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심지어는 몸 전체로 마력을 쓰기도 했으며, 스킬로 보이는 번쩍이는 뭔가를 쓰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만든 염동력 구체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조금씩 압착해 간다.
이윽고, 완전히 둥근 금속의 구체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대로는 대화를 나눌 수 없겠지?
염동력 구체에서 염동력 상자로 바꿨다. 여유 공간도 좀 주고.
그러자 녀석이 인간의 형태로 되돌아왔다.
“엄지척!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무사하고말고. 어차피 너. 피라미잖아?”
골든 호라이즌이라는 곳의 지부장이라고 하지만 어차피 최고 수뇌부는 아니다. 그러니까 나한테 와서 영업하고 있는 거지.
“이 새끼…….”
“한국어 잘하네. 그나저나 남의 집에 왔으면 이 정도는 생각했어야지. 내가 나를 공격한 놈들과 손잡을 것 같아? 그것도 성좌 숭배자 같은 놈하고.”
내가 성좌가 되었기 때문에, 다른 성좌의 힘을 더 민감하고 예민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나는 성배 숭배자도 알아볼 수 있다.
거기다가 이게 있지.
통찰의 눈.
심지어 지금은 랭크가 S가 되어 있는데, 성좌가 된 이후에 사용했기 때문인지 여러 정보가 보인다.
[제임스 킴]
나이 : 45
성별 : 남성
레벨 : 121
종족 : 인간
직업 : 변신술사 / 놀드락의 챔피언
성좌 [녹아내리는 세계]의 챔피언.
성좌 [녹아내리는 세계]의 진명은 놀드락이며 그 이름을 부르면, 그와 접촉할 수 있다.
전에도 이걸로 상대가 성좌 숭배자인 것을 알아챘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상세해졌다.
어쨌든.
[녹아내리는 세계-놀드락]의 챔피언이다 이거잖아. 직업은 변신술사고. 변신해서 싸우는 녀석인 것 같은데, 레벨은 높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상대가 되는 건 아니다.
사실 심검을 쓰면 죽이는 건 더 쉽다.
어디까지나 잡아서 정보를 캐내려고 이러고 있는 것뿐이니까.
“녹아내리는 세계의 챔피언씩이나 되시면서 나를 공격한 SL화학의 대리인으로 왔는데 내가 참을 수가 있어야지…….”
내 말에 녀석이 흠칫한다.
“그걸 어떻게…….”
톡톡.
눈을 살짝 두드리며 말해 주었다.
“내 눈은 특별하거든. 일전에 거미 교단 놈들과 싸우면서 깨달은 게 있지. 너 같은 놈들이 세계를 망하게 만들려고 한다는 거야. 그래서 보이는 족족 없애 버리고 싶었거든.”
내 말에 녀석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나를 노려만 보았다.
“엄지척.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냐?”
“세계가 멸망한 다음에 성좌에게 매달려서 살아남으려고 개짓거리하고 있는 놈들이 있다는 것 정도.”
“거기까지 알고 있다면 네놈이 원하는 게 뭐지?”
“세계 구원.”
내 말에 녀석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HA-HA! 크하하하하! 컥. 커억. 헉헉.”
너무 웃다가 사레까지 들렸다.
“진짜……. 미쳤구나. 네 녀석은 이 세계가 어떻게 파멸하는지조차 모르고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다. 끝없이 던전이 열리고, 지구의 능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 튀어나온다. 인류 전체가 먹이가 되고, 노리개가 되며 영겁토록 지옥이 도래함을 모르는가!”
“알아.”
“뭣이!?”
“절망이 나에게 보여 줬거든. 모르나? 남산 타워 앞의 던전을 클리어하면, 절망의 은총으로 미래를 체험할 수 있다고?”
절망. 그가 보여준 미래는 아주 대단했지. 암. 그렇고말고.
“그래서 결심했거든. 세계를 구원하겠다고. 그럴싸한 계획도 이미 있지.”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다. 하지만…….”
“그래. 알아. 한 대 처맞기 전까지만 괜찮다는 거. 그래서 여기서 처맞는 건 누굴까? 나? 아니면 너희 골든 호라이즌?”
내 말에 녀석이 여전히 나를 노려보았다.
“자. 그러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나 할게.”
“무슨 제안이지?”
“골든 호라이즌에 대한 정보를 전부 말해 주면 좋겠어. 그러면 살려 주지.”
“거절한다.”
“오……. 거절이라?”
“네놈을 죽이고 여기서 탈출하면 그만이다! 녹아내리는 세계시여! 당신의 대전사가 당신께 간청하오니 힘을 내려 주소서!”
변신하는 것을 중간에 막고, 죽일 수도 있지만 내버려 두었다.
레벨 121의 사실상 전 세계 최고의 랭커가 성좌의 힘을 받을 경우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고 싶으니까.
하지만.
내 집 안에서 싸우면 집이 개박살 날 테니까…….
휘익!
녀석을 가둔 염동력 장을 잡아당겼다.
철컹!
창문을 열고, 그대로 녀석을 창문 밖으로 초고속으로 던져 버렸다. 순식간에 수백 미터를 날아가는 게 보인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나서며 쌍검을 꺼내어 든다.
콰쾅!
허공에서 염동력 장을 박살 내며 녀석이 튀어 나왔다.
놈은 인간의 형체가 아닌 황금빛 광채를 내뿜는 슬라임 같은 것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액체를 촉수처럼 여러 개 내뻗는데, 그것들이 서로 다른 눈으로 변한다.
촉수 끝에 눈만 달린 것 같은 모습.
[주군! 마안(魔眼)입니다!]
위웅! 피이이잇!
눈의 수는 일곱 개. 각각의 눈에서 서로 다른 광선이 쏘아져 나왔다.
기민하게 그 공격을 회피했지만, 그중 두 개는 내 어깨와 다리에 와 닿았다.
콰드드득!
화악!
어깨 쪽의 슈트가 돌로 변하며 부스러져 나간다.
다리에는 불길이 일어나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
석화 광선과 발화 광선인가?
제법이다만…….
화아아악!
호신강기가 일어나며 전신을 감싼다.
불길은 잦아들고 석화의 힘도 흩어져 간다. 어지간한 힘은 호신강기를 뚫지 못하지.
거기에.
상태 이상 같은 것도 걸 수 없고.
강력한 기의 집합체인 호신강기는 공방일체의 무공!
펑!
그 상태로 염혼염동을 전력 발휘. 동시에 목을 감고 있던 척량이 뛰어오르며 거대화했다.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황금 슬라임이 된 제임스 킴을 향해 돌진했다.
‘역시! 한계가 있구나!’
눈동자는 일곱 개에서 늘어나지 않는다.
본체인 황금 슬라임까지 포함하면 변신할 수 있는 것은 여덟 개가 한계인 것.
사실 액체화된 육체라면 촉수를 수백 개도 만들 수 있고, 그것이 각각 마안의 힘을 가진 몬스터의 눈이 되었다면 제법 곤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숫자가 더 늘어나지 않고 있다!
[주군! 제가 염혼염동을 사용하겠습니다!]
좋아. 맡긴다!
염혼염동의 통제권을 척량에게 돌리고, 쌍검을 교차하며 강기를 일으켰다.
삐이이이!
기괴한 소리와 함께 새파란 광선이 날아오는 것을 강기로 감쇄시키며 그대로 근접.
혼원건곤검법의 초식을 쏟아냈다.
서걱!
끼이이이이이이!
기괴한 울음소리가 난다. 강기에 잘려나간 슬라임의 몸체는 그대로 소멸하며 흩어진다.
강기의 위력까지 버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촤악!
녀석이 몸을 분열시켰다. 도주하려는 것!
그러나.
척량이 시기적절하게 염혼염동에 힘을 부여하여 더욱 강력한 힘으로 주변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벽을 쳤다.
사방으로 분열돼서 도주하려던 녀석이 벽에 가로막혀 철푸덕거린다.
조각난 놈의 몸을 향해 칼을 들이밀려고 하는데, 놀라운 걸 보게 되어 멈칫했다.
즈으으으응.
염동력의 벽이 녹아내린다!
헐. 저게 돼?
[녹아내리는 세계의 권능 같습니다!]
자기 이름 같은 권능인데? 쓸 만하긴 한 것 같아.
하지만.
느려.
“후…….”
한 호흡을 내뱉고, 칼을 내뻗는다. 강기를 흩어내고, 검기로 대체한다.
그리고 한 번에 수십 번의 참격을 날렸다.
츠파파팟!
녀석의 몸뚱이가 수천 조각으로 갈라진다. 강기는 아니기에 소멸까지는 안 했지만, 분명 검기에 타격을 입은 것이 확실하다.
부르르 떨던 황금 슬라임의 조각들이 한곳으로 모여들어 형체를 이룬다.
그리고 그곳에는 다리 한 짝이 사라진 제임스 킴이 헉헉거리며 주저앉아 있었다.
“네놈. 네놈도 성좌를 모시고 있으면서…….”
갑자기 웬 성좌?
[주군의 강력함을 성좌를 숭배함으로써 얻은 힘으로 보고 있는 것 같군요.]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성좌 숭배 안 하거든?”
그나마 내가 가장 따르는 성좌가 무신이긴 하다.
다른 성좌들에게는 직접적으로 가르침까지는 안 받았으니까.
“수면의 시간.”
예전에 나를 습격한 놈을 잡았을 적에 사용한 스킬.
그걸 사용하자, 제임스 킴의 눈이 감기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좋았으. 중요한 정보원 포획이다제!
* * *
정지한에게 연락했더니, 리블이 나타나서 좋아라 하면서 제임스 킴을 데리고 가 버렸다.
아니.
이 성좌 놈은 요새 뭐 하고 다니다가 나타나서는 가져가는 거야?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일단 순순히 넘겨주었다.
정보 캐내는 데는 리블이 더 뛰어나다고 하니까.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나 넘겼지만, 마치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회사에 출근했다.
최근.
회사에 매일 출근 중이다.
베타 팀과 새롭게 조직된 감마 팀. 그리고 이 두 팀을 관리감독하기 위해서 고용된 헌터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트레이닝 전문 헌터라고 하는데, 육성 관련 스킬을 가지고 있는 서포터형 헌터들이다.
스스로가 강해지기는 어렵지만 타인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헌터들!
이분들도 몸값이 높다.
그리고 이분들에게도 무공을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대스승 오셨습니다아아!”
“그러니까 그 대스승 소리 좀 그만하라고요.”
“그럴 수야 없죠. 엄지척 헌터는 저희들의 아이돌인걸요.”
“누가 아이돌에게 대스승이라고 불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