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4화
은과 신성력에 약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것에 피해를 입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은과 신성력에 비하면 피해가 덜하긴 하지만, 각종 마법에도 피해를 입는다.
특히 이 안개화 상태에서는 어지간한 것은 통하지 않지만 화염과 냉기는 통한다.
안개로 변했다지만, 하나하나가 다 그의 몸의 조각.
그 조각을 태우거나 얼려 버리면 당연히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촤아아악!
안개가 일순 하나로 합쳐졌다. 그리고 그의 전신에 핏빛의 기운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도망자 도밍고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약한 건 아니었다.
약했다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마피아 두목 노릇은 때려치워야 하니까.
그리고 진즉 무덤에 들어갔을 것.
하지만 그는 몰랐다.
“얼어붙어라.”
어떤 목소리와 함께, 그의 주변에 절대영도의 냉기가 자리했다.
그가 혈력이라는 뱀파이어 특유의 힘으로 저항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사방에서 여러 가지 공격이 쏟아져 내리자, 그는 당황이 가득한 눈으로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길이 2미터가 넘는 강철로 된 화살 같은 게 수십 개 날아든다.
번개가 먼저 날아와 그의 몸을 강타한다.
땅에서부터 나타난 식물의 줄기가 뻗어 온다.
동시에 사방에서 조그마한 철 구슬들이 회전하며 날아왔다.
수십 개의 단검이 어느샌가 생겨나 사방에서 그를 찌른다.
녹색의 액체로 된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든다.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는 공격들.
그는 눈뜬 채로 혈력으로 몸을 보호하고 그 공격을 전부 맞을 수밖에 없었다.
콰쾅! 콰드득! 푸우욱!
순식간에 일어난 대폭발.
그 굉음 사이로 여러 가지 소리가 뒤섞였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식물 줄기와 거대한 금속 화살 그리고 철 구슬과 단검에 꿰뚫린 채인 도밍고가 있었다.
“크아아악!”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질러보지만 변한 건 없었다.
기괴하게도, 그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는 보이지 않는 막에 의해서 허공에 그대로 고일 뿐!
“개자식들! 누구냐! 누가 나를…….”
“홀홀홀. 누구겠나.”
어둠 속에서 노인이 걸어 나왔다.
몸 전체에 이제 인간의 육신은 조금도 남지 않은, 식물로 된 인간 형태의 노인.
백탄의 마카우였다.
“마카우! 너희들이 어떻게… 너희는…… 모두 소속이 다르잖아…….”
“그거야 몇 년 전의 일이라네. 던전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한 분을 섬기기로 했거든.”
“뭣……?! 그게 무슨…….”
“그분께서 원하시고 계시네. 이 땅에 정의가 꽃피기를. 그러니 정의롭지 않은 자네 같은 쓰레기는 치워 버려야지.”
“네… 네놈에 대해서 다들 속고 있었구나. 네가…… 성자라고 칭송받던 네가…….”
“홀홀홀. 그러면. 잘 가시게.”
마카우가 손가락을 까닥한다. 그러자.
우드드득.
“끄아아아악!”
도밍고의 피부를 뚫고 식물이 튀어나와 자라난다.
그리고 그의 피를 모조리 빨아먹기 시작했다.
이내.
그의 시체는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홀홀홀. 자자. 어서 움직이세나. 성좌께서 정의를 원하고 계시네.”
* * *
[고레벨의 헌터가 82명. 거기에, 그들은 몬스터로 변이하면서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들이라면 필리핀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국가 하나 쿠테타 일으켜서 지배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구나…….
[필리핀의 경제 구조가 취약하고, 부정과 부패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뿐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반역 같은 수단까지 동원할 필요도 없죠.]
범죄 조직을 죄다 쓸어버리면 되니까?
[그렇습니다. 범죄 조직을 일소, 그들과 결탁하고 있던 이들까지 암살. 그러고 난 이후에 대통령 및 정치인들을 회유 및 협박해 포섭하면 국가를 정상화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단순히 82명이 아닙니다.]
알아. 각기 세력들과 연결되어 있지.
[제가 파악한 바로는 주군의 권속이 된 82명은 각기 다른 12개의 세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 세력에서도 중추에 있던 인물들이니만큼 그 세력이 가진 힘까지 동원할 수 있죠. 또한 주군께서는 이 필리핀이라는 국가를 지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상적인 국가로 되돌려 국력을 신장시키고, 장차 미증유의 파멸적 위기에서 국가 스스로가 자립하여 국가를 지킬 수 있게 만들어 주려는 것일 뿐. 저들도 기쁜 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의명분의 힘이지요.]
이야… 무섭다. 무서워……. 그나저나.
저번에 구입한 스킬 [전뇌정령화]와 [신께서 내려주신 언어]가 도움이 되나 봐?
[예. 물론입니다. 프로그램 언어를 이해했으며, 이로써 인터넷을 통해 해킹까지 가능해졌으니까요. 미국 정부의 정보도 열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네가 더 무서워진 거 같아.
[아까의 이야기로 돌리겠습니다. 필리핀의 변화를 통해서, 인구 8천만의 경제 시장은 주군께 복속될 것입니다.]
엑? 어째서?
[정진 컴퍼니와 정하 그룹의 물건들을 유통시킬 테니까요. 사실 정하 그룹의 물건 품질은 세계적으로도 상위에 있습니다. 필리핀 정부의 입김이 들어가면, 순식간에 정하 그룹의 물건들이 빠르게 확산될 겁니다.]
정경유착이냐! 하지만… 필요한 일일지도.
[거기에 주군의 포션을 전량 유통하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겠죠. 정지한과의 연수는 아주 탁월한 선택이셨습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거창한 미래를 내다본 건 아니지만…….
어쨌든 좋은 일이네. 그러면 이다음 일은?
[가장 먼저 하실 일은 SL 그룹의 정리. 그들을 징벌하고, 한국을 발아래 두소서!]
발아래 둔다느니 하는 소리 하지 말라니까…….
그렇게 가볍게 혀를 차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저 아래로, 서울의 도심이 보인다.
이제 곧 있으면 공항에 착륙한다.
출장 한번 가서 죽을 뻔했네. 그렇다고 푹 쉴 수도 없지.
한국에서도 할 일이 많아.
* * *
응. 인정해야겠다.
내가 한국을 얕봤어.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알고 있었는데?
[물론 해킹입니다.]
그러냐. 해킹이냐. 무섭다, 해킹.
[정보화 시대이며, 인터넷이 세계 전체를 감싸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주군께 허락을 받은 이후 관련 스킬을 다수 확보해 두어서 더욱 수월합니다.]
그……. 그래. 진즉 스킬을 얻을 걸 그랬다.
[저의 불찰입니다.]
아니, 불찰까지야. 나도 생각 못 한 거니까. 그나저나 저 인간들은 어떻게 하지?
“엄지척 헌터!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지한 대표님! 필리핀 정부에게 어떤 대가를 약속받았는지…….”
“정하 그룹의 주식이 급등하고 있는 이유가…….”
이른바 언론사들이라고 부르는 곳의 기자들이 진을 치고 소리를 질러댄다.
플래시가 터지며 사진을 찍고, 카메라를 돌린다.
기자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어서 뭐라고 물어 보고 있었다.
단지 기자만 있는 거였으면 말을 안 한다.
“여러분~ 오늘도 뿌니뿌니! 뿌니 채널의 김뿌니에요! 지금 여기는 인천공항인데요~ 저기 엄지척 헌터가 나타났어요! 아시죠? 성좌를 거대한 검강으로 동강! 내버린 바로 그분!”
어떤 갓튜브 스트리머가 소리를 지른다.
그 근처에는 다른 갓튜브 스트리머도 아주 많았다.
“엄지척! 주가 조작 해명하라--!”
그 말에 척량이 대로해서 말했다.
[주군, 주가 조작이 아닙니다! 자기실현적 파생 상품이었지!]
그랬다.
제약 회사가 사람을 고용해서 내 공장에 테러를 일으켰던 그날 이후, 아주 그냥 싹을 뽑아 버리려고 나도 대량생산으로 밀어버렸지.
기왕 밀어버리는 김에 경쟁 회사 풋도 사서 달달하게 꿀 좀 빨았다.
복수란 게 꼭 자기파멸적으로 해야 하는 게 아니에요.
이렇게 미래 가치 창출과 긍정으로 좀 빨았을 수도 있지.
[꼬우면 용병 고용한 너희 제약회사 회장한테나 이야기하든가!]
척량이 욕을 했지만 여우라서 그런지 캐갱, 캥, 캥하는 소리밖에 안 들린다.
나는 이미 긍정적, 미래지향적 복수로 이런 외침은 응, 안 들려~
“한국 주식의 수호자 엄지척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코스닥 치킨 채널에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려요!”
그랬다.
파란 종목이 있다면 빨간 종목도 있는 법.
나로 인해 오른 종목들도 많았다.
그들에게 있어 나는 신이 되었다.
“엄지척! 다음 사업은 뭘로 하실 겁니까!”
“이미 천문학적인 재산이 쌓이기 시작했는데 갓튜브 BJ는 계속 할 건가요?”
그렇게 이런저런 기자, 갓튜브 스트리머들이 뒤섞여서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나를 포함한 일행은 열 명도 안 되는데, 모여든 이들의 수가 수백여 명이 넘어가는 진풍경은 성좌를 처치한 나에게도 충격적이었다.
“형. 아주 인긴데?”
동생이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따봉에 도움이 되니까 좋긴 한데…….”
“형제님. 어서 이동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여기 서 있으면 다른 분들께도 민폐인데…….”
무척이와 성광이의 말을 들으며 일단 움직이기로 했지만, 기자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이내 기자들을 헤치며 정하 그룹에서 온 사람들과 공항의 경비대들이 나타났다.
“비켜 주십시오!”
“밀지 마! 나 기자야!”
아우성치면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른다.
“2시간 후에 기자 회견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마련해 놓은 장소가 있으니, 그쪽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정지한이 나서서 말했고, 우리는 기자들과 갓튜버들을 지나쳐 이동할 수 있었다.
일단 거대한 리무진 버스에 올라탔다.
안에 침대까지 깔려 있는 거대한 버스의 내부는 아주 호화로웠다. 짐을 대충 넣고 다들 앉아서 서로 얼굴을 본다.
“이야……. 이거 인기 절정이네요. 필리핀에서 있었던 일이 이렇게 이슈가 될 일인가?”
“형이 영상을 올려서 그럴 겁니다.”
별하나의 말에 무척이가 답해 주었다.
“그 성좌 잡는 영상이죠? 조회 수가 얼마나 돼요, 그거?”
[현재 조회 수 12억 회가 넘었습니다.]
“12억 넘었다네요.”
“아! 진짜요?”
대한민국 공통 감탄사 나왔군.
“아직 멀었어요. 갓튜브 최고 조회 수가 80억이라는데요, 뭘.”
“욕심이 어마어마하시네……. 하긴, 슈퍼스타이시니까 그 정도는 하는 게 좋겠죠?”
“그럼요. 성좌인데. 보통 사람보다 조회 수가 떨어지면 안 되죠.”
그렇다.
나는 그냥 성좌가 아니라, 스트리머 성좌 아니냐?
그런데 필멸자인 다른 인간보다 조회 수가 떨어지다니!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
갓튜버 구독자 수 1위!
그리고 갓튜버 조회수 1위와 따봉 1위를 차지해야 한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쉬고, 인터뷰를 하러 가죠. 인터뷰하고 싶지 않으신 분은 미리 말씀하십시오.”
“저는 빠지겠습니다.”
“저도요~”
무척이와 리블이 기권을 선언.
“저도 안 갈래요!”
“저도 빠질래요.”
별하나와 성광도 기권.
어라라.
뭐야.
다 빠지네.
“그럼. 저와 엄지척 헌터 그리고 정지벽 셋이서만 다녀오겠습니다.”
정지한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더니 침대에 드러누워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