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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223화 (223/305)
  • 제223화

    척량이 계산한 바에 따르면.

    각종 스킬을 떡칠해서 세계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한편 방송을 통해 따봉까지 벌어들이는 일거양득의 계책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이 정지한의 조력이 필수.

    왜냐면 세계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 이 남자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내가 아무리 잘났어도 거대 기업의 인프라와 인력을 고작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 낼 수가 없다.

    그건 불가능하지.

    시간이 얼마 없으니, 정지한이 가진 기업을 이용해야 했다.

    정진 컴퍼니. 그리고 그 뒷배인 정하 그룹.

    “근거가 있으시겠죠?”

    “물론이죠.”

    척량이 계산한 것을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심사숙고하는 표정이 된다.

    “이런 미래는 본 적이 없습니다만……. 좋습니다. 한번 당신의 의견대로 해 보죠.”

    좋았어! 정지한의 조력을 얻어 냈다.

    이거면… 할 수 있어!

    [예. 주군. 우선은…….]

    그래. 이렇게 된 거 서울부터 부산까지 전국을 정복…….

    “하지만 계획은 조금 수정이 필요할 것 같군요. 한국보다 이곳 필리핀을 먼저 정리합시다.”

    ……하지 말고. 필리핀을 정복하자.

    [주군. 태세 전환이 빠르시군요. 훌륭하십니다!]

    시끄러.

    * * *

    “어서 오십시오, 성좌시여.”

    정지한과 나는 다시 호텔을 나섰다.

    모노 바이크G를 소환해서 어둠 속의 하늘을 내달려, 필리핀의 세부 거리를 지나 제법 큰 공연장 같은 번듯한 건물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내 권속이 되어 버린 타마 그룹의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지한이 출발 전에나 연락했을 텐데, 벌써 다 모이다니. 놀랍군.

    총원 82명.

    전원이 레벨이 100을 돌파한 고레벨의 헌터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대표.

    식물 줄기로 인간의 형상만 간신히 취하고 있는 백탄의 마카우가 나를 반긴다.

    “말 높이시지 않아도 된다니까요…….”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이 늙은이는 이제 성좌의 충실한 신하이자 권속이니, 예의를 다해야지요.”

    “그건 어디까지나 명목일 뿐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다들 자유롭게 살아가시면 됩니다.”

    타마 그룹.

    이들을 던전에서 해방하기 위해서 내 권속으로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들에게 간섭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각자 알아서 자유로운 삶을 살라고 말해 두었다.

    그럼에도 왜 이들은 여기에 다 모여 있는 걸까?

    “엄지척 헌터. 권속은 단순히 주인과 노예 같은 관계가 아닙니다. 당신은 그들의 신이 된 것. 그냥 끊는다고 쉽게 끊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으음. 대충 부모자식으로 치면 되는 건가?

    정지한에게 물어보니 대충 그런 느낌이란다.

    아무래도 서로 쿨하게 인사하고 헤어지는 관계는 아닌 모양이야.

    “홀홀홀. 성좌께서는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이 늙은이가 다른 이들과 함께 잘 지낼 터이니까요. 그런데 저희를 청한 까닭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필리핀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런 말 하면 뭐하지만 현재 필리핀의 치안은 몹시 좋지 않다.

    게이트 사태 이후로 수많은 농경지와 공업지가 박살 나고, 정치적인 문제도 더해져서 마피아와 갱이 범람하는 곳이 바로 필리핀.

    경찰에서 공무원까지 부패하지 않은 이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맛이 가 버린 상태.

    게이트 사태 전에도 그리 치안이 좋지 않은 나라였는데, 게이트 사태 이후에는 더욱더 상태가 맛이 갔다.

    필리핀 사람들이 딱히 무능하다거나, 나쁘다거나 한 건 아니지.

    그냥 이건 자연재해니까. 그리고 하필 전 세계가 같은 처지다 보니 다른 곳에 구호물자를 보낼 형편도 안 됐고.

    당장 우리나라만 봐도 극한 피라미드 속에서 허덕허덕 숨만 쉬고 있는 판이니까.

    이 판국에 해외에 구호물자를 보내겠다는 정치가가 있으면 걔는 내년에 낙선 확정이다.

    각박한 세상이 된 거지.

    그러나 그건 그거, 이건 이거.

    당연하지만.

    이래서는 다가오는 인류 파멸의 순간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아니. 오히려 이계에서 침공해 오는 놈들에게 먹이가 될 뿐.

    “우리나라를 정상화시킨다라……. 솔깃한 말씀이시군요.”

    “그것이 가능한 건가? 성좌.”

    베르나데 이트.

    그녀가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 보니 이분은 던전에서도 마카우 옆에 있었지?

    2인자 같은 거려나.

    “불가능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 불가능할 것은 없다.

    우리에게는 82명이나 되는 고레벨의 랭커 헌터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 힘이 어디까지인지 모를 정지한과 미치광이 성좌 리블도 있다.

    나도 있고.

    사실 필리핀에 대해서는 그 어떤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정지한의 말을 들어 보니 차원 방벽 세우려는 일보다는 더 쉽더라.

    그러면 해야지.

    “우선은 여러분들에게 이것을 드리죠.”

    그림자가 늘어난다. 그 안에서 안경이 튀어나왔다.

    정확히 164개.

    82명에게 2개씩 나누어 준 것이다.

    “홀홀. 성좌께서 하사하신 물건이라니… 감사합니다, 성좌시여.”

    “능력을 알기도 전에 인사부터 하지 마시고요.”

    이 할아버지 참 곤란하신 분이라니까.

    “그 안경은 악의 죄업을 측정할 수 있는 안경입니다. 여분을 생각해 2개씩 지급해 드렸습니다.”

    정지한이 앞으로 나서 설명했다.

    다들 안경을 쓰고 서로를 본다. 그리고 신기한 것을 본 듯 놀라며 웅성거렸다.

    [죄업의 측량안]

    등급 : A-

    죄업의 깊이를 측량하는 사신(死神)의 도구.

    악행(惡行)을 일삼은 자의 죄업은 깊고 끈적하다.

    “물건은 하나 더 있습니다.”

    정지한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림자 주머니를 움직여 이번에도 164개의 물건을 꺼내 사람들에게 쥐여 주었다.

    [진실의 저울]

    등급 : A-

    진실을 측정하는 저울.

    진실되지 않은 자는 저울추보다 무거워지리라.

    “상대가 악인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물건입니다. 그리고 저울은 상대가 진심을 이야기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아티팩트죠.”

    물론, 따봉 상점에서 샀다.

    “그걸 이용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필리핀 내부의 썩은 부분을 전부 도려내 주시면 됩니다.”

    “허허헛. 내 제법 오래 살았으나, 이것은 처음 보는 물건들이구려.”

    “엄지척 헌터가 아니면 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물건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역시 성좌이십니다. 모두들. 어떤가?”

    “성좌의 뜻을 이행하겠습니다!”

    “성좌시여. 저희의 모습을 지켜봐 주소서!”

    아니, 이 사람들 왜 이래. 광신도같이… 아, 맞아.

    권속이 돼서 부모자식 같은 상태가 되었다고 했지?

    이거 참…. 약간 광신도 느낌도 나고 그런…….

    척량이 말했다.

    [부모자식 같은 상태가 아니어도 그 상황에서 빠져나가게 도와준 유일한 사람이 주군입니다. 당연한 일이죠.]

    으음, 그렇게 되나.

    [저라도 그리할 겁니다. 주군께서는 너무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깊은 신뢰를 담아 말했다.

    “홀홀홀. 믿고 맡겨 주셔서 영광입니다. 이 나라를 정상으로 되돌리고, 성좌께 바치겠나이다.”

    “아니. 안 바쳐도 됩니다.”

    내가 직접 나서서 말했다.

    “여러분들에게도 던전을 나오기 전에 제가 말했을 거예요.”

    내 말에 모두가 나를 보며 귀를 기울였다.

    “세계는 곧 파멸을 앞두고 있으니, 우리 모두 힘을 합쳐야 합니다. 필리핀의 정상화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초석 중 하나. 때문에 바친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마세요. 당신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움직여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 땅에 정의를 꽃피워 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오… 어찌 이리 고귀하신 말씀을……. 이 늙은이가 생명을 걸고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저 역시 성좌의 명령에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오오, 자비로우셔라!”

    아, 놔…. 이 사람들 증세가 심각하다.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 마무리를 하긴 해야지.

    “절대로 무리하지 마시고. 자신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그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홀홀홀. 맡겨 주십시오. 성좌시여.”

    마카우 할아버지의 눈이 뭔가 위험한 느낌으로 빛났다.

    [충신의 자질이 보이는군요. 나중에 저자와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겠습니다.]

    척량아, 너까지 왜 그래?

    * * *

    도밍고.

    도망자 도밍고.

    도망자라는 별명을 가진 이 오십 대 사내는, 필리핀에서도 알아주는 마피아의 두목이다.

    호화로운 집안의 침대에 누운 채로 그는 비싸디비싼 쿠바산 시가를 입에 물고 있었다.

    한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져 있고, 그대로 무어라 대화를 나눈다.

    “마카우 그 늙은이가 이제 와서 뭘 할 수 있다고. 계획대로 해. 한 달 후에 바로 죽여 버리자고. 아, 군 쪽하고는 이야기 끝났어. 그쪽에서도 그 노친네를 껄끄러워하는 이들이 많아. 그러니까 신경 쓰지……. 응? 이봐. 이봐!”

    뚝. 뚜. 뚜. 뚜.

    전화가 끊어졌다. 그는 인상을 쓰며 폰을 본다.

    화면에는 통화권 이탈 표시가 떠 있었다.

    “갑자기 이게…….”

    쩌적!

    그때다. 바닥에서부터, 식물의 줄기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땅이 조금씩 갈라지며 그 틈에서부터 자라난 식물이 사방을 뒤덮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바닥에서만 자라는 게 아니었다.

    천장에 금이 가며 덩굴이 자라나 밑으로 내려왔고, 벽면에서도 이파리와 꽃이 자라났다.

    “빌어먹을!”

    짧게 욕설을 내뱉은 순간. 그의 몸이 연기처럼 변하며 재빠르게 건물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도망자 도밍고라는 별명을 그에게 안겨준 그의 스킬 [안개 변화]!

    그의 직업은 놀랍게도 [진조의 흡혈귀]이다.

    종족이 인간에서 뱀파이어로 바뀌는 직업!

    게다가.

    태양빛에도 끄떡없고, 마늘 같은 건 통하지도 않는다.

    유일한 약점이라면 은이나 신성력이 담긴 무기지만.

    애초에 일반인도 칼에 찔리면 죽는 건 매한가지고, 헌터라고 해도 탱커가 아닌 이상 창에 찔리면 피 흘리고 죽어 버리니 그에 비하면 어드밴티지만 가득한 직업인 셈이다.

    그럼에도 그에게 도망자 도밍고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진조의 흡혈귀] 같은 직업을 가졌다 해도 세상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괴물들이 잔뜩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암흑계.

    마피아들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

    범죄 조직은 언제나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필리핀 내부에서 탄생하기도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이나 유럽 대륙에서 건너온 자에 의해서 마피아 세력의 판도가 바뀌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니 언제나 생존하는 도밍고는 어찌 보면 지금껏 생존하며 마피아 두목 노릇을 계속해 온 대단한 인물인 셈이다.

    ‘호위하는 병력을 내가 눈치채기도 전에 제거하다니 대체 어디 놈들이지? 미국? 아니면 프랑스나 영국? 제길. 한동안 잠수를 타…….’

    안개로 변하며 재빠르게 저택을 빠져나가던 그는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화들짝 놀라야 했다.

    ‘크아아악!’

    고통이 이는 곳을 보니, 안개 일부가 얼어붙어 동결되어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안개로 변한 그의 주변에 온통 차가운 얼음의 결정들이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내 약점을 아는 놈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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