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9화
사실… 나는 성좌가 되려고 한 건 아니다.
그저 던전의 핵을 전부 먹어치우면, 저들 타마 그룹의 사람들을 나에게 귀속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
도박은 성공했지만.
내가 성좌가 되면서 성공해 버렸다는 게 문제다.
이게 왜 문제냐면.
성좌라는 건.
신적 존재라는 건.
인간과 같지 않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감각부터가 달랐다.
나는 눈을 감아도, 나를 중심으로 천지사방을 전부 ‘볼 수’ 있다.
아니. 이건 ‘인지’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인 사람이 두 눈이 멀쩡한 것을 이해할 수 없듯이.
애초에 두 개의 눈, 하나의 코, 두 개의 귀에 입 하나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 공간 자체를 ‘인지’하는 신적 존재와 같을 수가 없다.
그런데 짜잔.
나는 성좌가 되었잖아?
그래서 골 빠개지게 적응 중이다, 이거야.
감각의 문제만이 아니라, 새롭게 알게 되거나 느껴지는 것들도 문제다.
예를 들어서 내가 가진 스킬들의 경우.
이게…….
어떻게 작용하는 건지 완전히 알게 되었다고 할까.
인간일 적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성좌라서 알 수 있게 된 거다.
“어휴. 그러면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엉, 침대보다 이게 더 나아.”
“그러면 뭐……. 어쩔 수 없지.”
무척이가 나를 다시 물 안에 넣어 주었다.
“밥은 먹을 거지?”
“어. 밥때 되면 불러. 그나저나 리블은 뭐하디?”
“없어졌어.”
“뭐?”
“관광한다더니. 사라졌어.”
“정지한이 그걸 냅뒀어?”
“어.”
아니. 이 미친 성좌를 그냥 내버려 두면 어떡하냐고!
일어나려다가 그냥 다시 물 위에 드러누웠다.
에라, 모르겠다.
나랑 계약한 것도 있으니 알아서 하겠지.
“밥때 되면 불러줘.”
“알았어, 형.”
무척이는 그 말을 끝으로 수상 보행으로 멀어져 갔다.
나는 다시 멍하니 하늘을 본다.
아니. 정확히는 내 안의 본질.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세계를 둘러싼 저 거대한 힘과, 내 안에 연결된 것.
사람들이 [시스템]이라고 불렀던, 레벨과 직업 같은 힘을 주는 것.
이게 무엇인지.
이제는 안다.
이건.
수를 세기 어려운 신들의 힘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신들이 창조한 ‘신’인 것이다.
신들은 분명 위대하고 강대한 존재임에 분명하다.
그런 신들이 서로의 힘을 합쳐서 만들어낸 신이라는 건 대체 어떤 것일까?
그냥 X나 강해. 나 같은 신참 성좌가 어디 비벼볼 만한 그런 게 아니라고 할까.
이제 와서는 성좌들 스스로도 [시스템]을 파괴하거나 살해하는 건 불가능할 정도.
그렇다고 [시스템]이 다른 성좌들을 죽이고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서도.
사실 그런 것은 크게 문제가 아니다.
[튜토리얼]이 끝나면 왜 세계가 끝장나게 되는지 더 정확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게 문제지.
고오오오오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
그것은 균열이다.
혹은 ‘금이 갔다.’고 표현할 것들이기도 했다.
하늘 전체에 생겨 있는 검은 실금들.
성좌가 되었기에 보이게 된 그것들은 [차원에 일어난 균열]이다.
그러니까…… 저게 지금 뭘 뜻하는 거냐면.
내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이 세계의 차원이 사실 옛날에 박살 나서 너덜너덜거리고 있었다는 거다.
누가 박살 낸 게 아니고 그냥 세계가 원래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라는 거지.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어요, 이거.
그냥 촛불이 다 타들어 간 거랑 같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차원이라는 수명이 다한 거니까.
그렇다고 세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요.
우리 인류를 비롯한 몇몇 생명체들만 그냥 엿 된 거죠.
나중에 다른 종족들이 알아서 치고받고 하면서 번성하겠지.
바퀴는 그래도 살아남을 것도 같다.
인류는 다 뒤지고.
그래서… 언제 우리 세계가 이렇게 끝장이 난 거냐 하면.
최초의 던전 게이트 사태 때 이미 끝이 난 거였다.
그리고 그때 [시스템]이 지구에 보호막을 쳐 줬는데.
그게 바로 [튜토리얼].
그리고 세계 전체의 마력 농도가 높아지면…… [튜토리얼]은 종료된다.
보호막이 걷히고, 박살 난 차원 벽의 균열을 통해 여기저기에서 던전과 함께 이계의 몬스터들이 건너오겠지.
“하아…. 갈 길이 멀구먼…….”
성좌가 되고 보니까, 이노무 세상에 유통기한이 얼마 남았는지도 알겠더라고.
대충…… 1년 안 남았다.
1년이면 [튜토리얼] 보호막이 벗겨지고, 다른 차원의 적들이 아주 그냥 폭포수처럼 들이부어질 거다.
저 씹어 먹을 성좌 놈들은 그걸 팝콘 뜯으며 즐기다가, 쓸 만한 인간이 보이면 데려갈 거고.
그나마 좋은 소식이라면.
이 지구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거 같다는 점?
문제는 그게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이고.
예지 능력자인 정지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으니 뛰어다니고 있던 거겠지.
어떻게 생각해, 척량?
내 마음속 질문에, 척량은 코코넛 밀크를 쪽쪽 빨다가 답했다.
[정지한은 미래를 확정적으로 알고 있는 거겠죠. 다만, 주군께서 생각하시는 것과는 다른 지점을 보고 있을 겁니다.]
그 인간이 본 미래에서도 내가 성좌가 되었을까?
[주군 동료들의 반응으로 보아 그도 이런 미래는 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즉, 지금의 내 상황이 이례적인 일이다, 이거지.
그러면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
세계를 구하기 위한 플랜을 두 개나 생각해 두었으니까.
[마력 연소와 차원 방벽의 건설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렇다.
[튜토리얼]이 치워지는 원인은 세계에 퍼진 마력의 양이 증가하기 때문.
[시스템]은 세계의 마력량이 증가하면, 더 이상 보호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로 간주한다.
보호막이 사라지고 [튜토리얼]이 끝나는 것도 그런 이유.
그러니 마력을 아예 태워서 없애면 어떨까?
그렇게 해서 세계 전체의 마력량을 줄이면?
[튜토리얼]이 유지되겠지? 세계는 더 안전해지겠지?
이건 한번 리블하고 상담해 봐야 할 듯.
두 번째 방법인 차원 방벽의 건설이란… 개박살 나서 금이 쩍쩍 가 있는 저놈의 하늘을 내가 직접 고쳐 놓는 것을 뜻한다.
방법은 찾아봐야 하지만.
저걸 고친다면 사실 [튜토리얼]을 유예하는 것보다는 더 확실하게 세계를 구하는 것이 되겠지.
[하지만 어느 쪽이든 어렵긴 합니다. 저들 성좌들이 그걸 내버려 둘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래.
내가 성좌가 되어 보니까 알겠더라고.
성좌 놈들은 구경 좀 하고, 쓸 만한 녀석이 있다면 권속으로 삼아서 챙겨 가려는 이유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거야.
예전에 [죽음을 거부하는 자]가 나한테 와서 사도가 되라고 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으니까.
[가야 할 길이 멀군요…….]
그래도 어찌저찌 가능할 것 같긴 해.
안 그래? 너도 성장했잖아.
[예. 주군께서 성좌가 되셨기에, 주군의 신공정령인 저 역시 업그레이드되었으니까요.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 앞으로도 잘 부탁해.
[신명을 다해서 주군의 대업을 이루겠나이다!]
그렇게 나는 물에 둥둥 떠 있다가, 밥 먹으라는 무척이의 목소리에 물에서 기어 나왔다.
* * *
“성좌라는 건 저렇게도 될 수 있는 거였나?”
“물론이죠. 성좌는 언제든지 될 수 있답니다? 초월자가 되는 건 의외로 쉽거든요~”
정지한. 그리고 리블.
그림 같은 외모를 가진 두 명의 남자는 필리핀의 길을 걷고 있다.
아스팔트로 포장조차 되어 있지 않고, 가로등도 없는 도로를 걷고 있는 둘의 뒤로는 시체 몇 개가 쓰러져 있었다.
필리핀의 도심지는 여느 국가처럼 잘 정비되어 있지만, 도심을 벗어난 지역은 상당히 낙후되어 있다.
치안은 빈말로도 좋다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
방금 전에도 몇 명의 강도가 덤벼들었다가 죽임당해 쓰러졌다.
그리고 이 둘은 그런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화를 나누며 걷는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상당히 어려울 거예요. 지금이 몇 번째죠, 정지 군?”
“알아챘나.”
“아하하하학! 이렇게 가까이서 관측하고 있는데 모를 리가요! 당신이 ‘회귀자’라는 것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다구요? 걱정 말아요. 우리의 대화는 누구도 엿듣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멀리서 보는 놈들은 정지 군의 정체를 알지 못하죠. 크……. 재미있죠?”
정지한의 싸늘한 눈이 리블에게 꽂힌다.
“네 녀석과는 몇 번 정도 손을 잡아 볼까 고민이야 했었지. 결과적으로 그렇게는 하지 않았지만.”
“흐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란 녀석, 쉽지 않은 남자니까.”
“지금까지도 네가 이렇듯 고분고분한 것이 믿기지 않아.”
“하지만~ 엄지 군은 아주 재미있거든요! 게다가, 엄지 군과 한 계약은 아주 강력한 거라서요. 딴짓하기가 쪼금 어렵달까? 자. 그래서, 진짜 궁금한 건 뭐죠?”
“너희 성좌라는 것은 대체 뭐지?”
“아하!”
리블이 능글맞게 웃는다.
“그게 궁금했던 거군요? 흐음……. 확실히 그럴 만해요.”
여전히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는다.
“성좌(星座)란 하나의 어떤 영역에 가 닿은 존재예요. 죽음이라는 영역에 가 닿아서 그걸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그러면 죽음의 신. 죽음의 성좌가 되는 거죠! 아. 이때 중요한 게 있답니다.”
“뭐지?”
“전임자가 없어야 해요. 시간의 신이 열 명일 수는 없잖아요?”
“죽음과 관련된 성좌는 숫자가 많다만?”
“죽음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보고 있으니까요. 때문에, 죽음에 관련된 성좌들은 서로를 먹이로 본답니다. 언젠가 서로를 잡아먹고 진정한 죽음 하나만 남기를 원하는 거죠!”
쾌활한 말에 정지한은 잠시 생각했다.
“다른 관점에서 격에 가 닿으면 새로운 성좌가 될 수 있다는 건가. 같은 관점에서 격에 닿는다면 본래 존재하는 신을 쓰러트리거나 소멸시켜야 하고. 맞나?”
“혹은 잡아먹거나요.”
리블이 손을 입의 모양으로 만들어 뭔가를 잡아먹는 흉내를 낸다.
정지한은 그 모습을 보며 뒤틀린 성좌의 숲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안에서 두 성좌의 조각이 서로를 먹으려고 하면서 던전화되었으니까.
“생각해 볼 일이로군.”
“하지만 정지 군. 성좌 한둘 정도로는 이 지구를 예전의 모습으로 돌리지 못한다구요. 알고 있었잖아요?”
“무엇을 말하는 거지?”
“이 세계는 이미 옛날 옛적에 파멸해 있었고, 지금은 그저 [시스템]이 그걸 유예해 준 것뿐이라는 걸요~”
그것은 차가운 선언이었다.
“이런. 잡담은 끝났네요. 우리를 마중 나왔나 봐요.”
리블이 앞을 가리킨다.
어둠 속에 스킬로 만들어 냈음이 분명한 불덩어리가 흔들거린다.
그 아래에는 타마 그룹의 지도자였던 자.
식물과 나무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전혀 인간 같지 않은 존재가 서 있다.
백탄의 마카우.
그가 이 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와 주셔서 고맙네. 성좌의 화신체께도 여기까지 걸음하신 것에 감사를 표하오.”
“마카우. 당신과 함께하는 이들은 모여 있습니까.”
“물론이네. 이 나라를 청소하기 위해서. 모두가 기다리고 있지.”
“좋습니다. 들어가죠.”
엄지척은 모르는 비밀스러운 회담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