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211화 (211/305)
  • 제211화

    “아직 미숙한가요?”

    “엄청나게 미숙하지. 강기를 쓰는 건 제법 봐줄 만하다만, 그것 외에는 영 별로다.”

    뼈아프네…….

    “그래도. 수련 시간이 짧은데도 이 정도로 해낸 것도… 사실이지. 훌륭해. 칭찬해 주마.”

    “감사합니다!”

    그래도 칭찬받았다. 저 무신에게 인정받았다!

    “그래서. 나에게 가르침을 청한 이유는?”

    “한 가지를 여쭈어 보고 싶고, 그것을 제가 배울 수 있을지 알고 싶습니다.”

    “흠, 지금의 네 상황을 알고 있으니 예측이 가는데……. 어디 한번 말해 보거라.”

    “던전에 귀속된 자들의 그 연결점을 끊어 낼 수 있습니까?”

    내 말에 그의 입술이 비틀린다.

    “크…크크크크. 예상한 바이긴 하지만……. 네 녀석. 정말 골 때리는 놈이구나. 그게 무엇인지는 알고서 묻는 거냐?”

    “상상으로는… 가능할 듯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무엇이든 베어 내는 검.

    시간과 공간을 베어 내는 검.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족쇄, 결계 같은 것도 절단할 수 있지 않을까?

    무신은 그 답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심검(心劍)이라는 게 있지. 마음의 검이라는 뜻으로, 실제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즉, 마음만으로도 상대를 베어낼 수 있는 것이지.”

    심검! 소설에 그런 게 나왔었다.

    하지만 헌터들 중에서 그런 걸 해낸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안다.

    “심검은 염동력과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달라. 원리와 결과에서도 전혀 다른 영역에 있거든. 왜 그런 것 같으냐?”

    염동력과 심검은 다르다? 다른 영역에 있다?

    그러고 보니…….

    염동력. 생각 그 자체가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는 것.

    내가 가진 염혼염동은 그런 염동력에다가, 엑토플라즘까지 만드는 스킬이다.

    엑토플라즘.

    염력이 물질화된 것으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확실한 물리적 실체를 가지고 있다.

    이것들 모두 염력. 즉, 생각하는 의지력에서 만들어지는 거다.

    이 염력이라는 것은 결국 뇌에서 나오는 것으로, 마력이나 내공처럼 에너지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영역의 능력이다.

    하지만 심검은 다르다고? 어째서? 다른 영역이라고?

    “후후후… 잘 모르겠지?”

    “예.”

    “심검은 마음이 이는 즉시 결과가 나와. 그게 완전히 다른 거지.”

    뭐?

    “그 말씀은 마치…… 생각하는 순간, 그렇게 되어 버린다. 같은 느낌이네요?”

    염동력은 결국 뇌에서 나오는 염력이 상대에게 다가가서, 물리력을 발휘하는 힘이다.

    즉, ‘뇌->나와 상대의 거리->상대에게 도달’이라는 진행 순서가 있다는 것.

    그런데.

    지금 무신의 말을 들어 보면… 심검은 그게 없다는 것 같은데. 진짜냐?

    “맞다. 일종의 법칙처럼 작용하는 거지. 중간의 과정이 없어.”

    “아니… 어떻게 그런……. 그건 마치 성좌들이 쓰는 권능 같은…….”

    “크큭. 눈치챘구나? 그래. 심검은 인간이 일으키는 기적 같은 것이다. 다만 무(武)라고 하는 것 한정의 권능이지. 아, 착각하지 마. 내가 내려주는 은총 같은 게 아니니까. 무술, 무공을 수련한 이들이 경지에 이르면 도달하게 되는 증표 같은 거니까.”

    “그리고 그 근원은…….”

    “바로 이 나다.”

    무신.

    그 단어가 어떤 것인지.

    갑자기 뼈저리게 느껴졌다. 모든 무(武)의 근원적인 존재!

    “무는 인간의 것만 있는 게 아니야. 아주 많은 종족들이 전부 무를 수련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더 이상은 육신의 무가 아닌 혼백의 무에 가 닿게 된다.”

    혼백의 무!

    “지구식으로 표현하자면 반선(半仙)이라는 거지. 이때부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을 수련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심검이 대표적이고. 문제는 네가 원하는 게 바로 그 심검 다음 단계에서나 가능하다는 거다.”

    심검의 다음 단계!?

    “마음의 검으로 벤다. 하지만… 네가 알지도 보지도 못하는 것을 어떻게 베어낼 생각이지? 게다가, 설사 네가 인지하지 못하던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고 해도. 그걸 잘라낼 능력은 있나? 심검이 만능이 아님을 알 텐데?”

    “아…….”

    “심검의 다음을 그래서 심원검계(心源劍界)라고 칭하고 있지. 마음의 근원으로 검의 경계를 잰다는 의미다. 이 경지에 이르면 네가 원하는 것이 가능해. 하지만 이게 가능해지려면 아주 큰 장벽이 있지.”

    “어떤 장벽인가요?”

    “네가 신격. 즉 성좌가 되어야 한다는 거다. 심원검계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성좌도 베어 죽일 수가 있다. 성좌를 베어 죽이는 존재가 필멸자일 리가 없잖나.”

    그게 무슨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같은 문제야?

    성좌를 죽이려면 심원검계를 쓸 수 있어야 하는데.

    심원검계를 쓸 능력을 가지려면 성좌가 되어야 한다고?

    아니. 뭐 그런 모순에 가까운 이야기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문제는 내가 저걸 당장 쓸 수 없다는 거겠지.

    “심원검계를 쓸 수 있게 된다면, 무형의 것도 베어낼 수 있다. 운명이나 혹은 계약 같은 것도 잘라내지. 하지만 네가 심원검계를 쓸 수 있게 되는 것은 당장은 불가능해. 시스템의 도움으로 네 녀석이 진인에 천무지체까지 되었으니 언젠가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만…….”

    언젠가 내가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은 확실히 고무적이긴 한데…….

    “자. 그러면 이야기는 여기까지. 네가 심원검계에 이를 수 있는 기초를 다져 주마.”

    “부탁드리겠습니다.”

    수련을 시작했다.

    * * *

    “형은 왜 그러고 있는 거야?”

    동료들이 아지트로 돌아왔다.

    나? 나는 오징어처럼 흐느적거리며 침대에 누워 있는 중이다.

    “어… 왔어?”

    “왜 그러고 있냐니까?”

    “무신의 수련 공간. 여기서도 써지더라. 그래서 갔다 왔지.”

    “미쳤네. 아니. 던전 나와서 수련하는 인간이 어딨어?”

    “수련하려고 간 게 아니고, 뭣 좀 확인하려고 했었거든. 그러다 이렇게 됐어.”

    심검. 그다음 단계인 심원검계.

    우선 심검의 경지부터 도달해야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가르침을 얻었다. 그게 제법 가혹하다고 해야 할까…….

    뇌에 과부하가 걸린다고 해야 할까.

    심검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뇌가 발달해야 한다고 무신은 말했다.

    ‘뇌는 인간의 정신이 담긴 그릇이며, 가장 고도로 발달한 기관이다. 영혼의 격을 배양하는 장소이고, 동시에 의념을 강화시켜 주는 장치이기도 하지.’

    그러면서 몇 가지 수련법을 전수해 주었고, 그걸 강제로 쓰게 만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24시간 빠듯하게 가르침과 수련을 받은 끝에.

    놀랍게도 나는 심검의 바로 앞 단계인 무형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천무지체! 거기에 진인 효과까지. 좋네!’

    무신은 그렇게 외치고는 잘해 보라면서 껄껄 웃고는 사라졌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지쳤다.

    이게 운기조식으로 피로 회복을 해도 안 없어지더라고.

    그래서 내공만 전부 채우고 늘어져 있는 중이다.

    “괜찮은 거야?”

    “괜찮아. 걱정하지 마. 웃챠.”

    일단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무척이를 본다.

    먼지와 피가 잔뜩 묻어 있다.

    “청소.”

    마법으로 깨끗하게 만들어 줬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보니, 일행들이 토굴 입구 근처에서 앉아 있다.

    침대에서 일어나서 동료들에게 다가갔다.

    “다들 무사히 다녀오신 것 같네요.”

    “무사하긴요. 지벽이 팔이 잘렸었다고요?”

    별하나가 투덜거렸다. 그녀의 옷도 엄청 더럽혀져 있었다.

    깨끗하게 만들어 주려다가 그 말에 멈칫했다.

    “진짜요? 괜찮으세요?”

    절로 정지벽에게 시선이 간다. 이분도 역시 더럽다.

    피와 살점 같은 게 말라서 붙어 있고 진흙도 잔뜩이다.

    사실 이게 정상이긴 하다. 싸우다 보면 흙먼지 뒤집어쓰는 거야 기본이고, 피와 오물이 묻는 것도 다반사다.

    “성광 헌터의 치료 덕분에 끄떡없습니다.”

    탱커 정지벽이 팔을 들어 불끈해 보인다.

    아니. 팔 잘렸던 사람이 저래도 되는 거야?

    “일단 씻겨 드릴게요.”

    청소 마법. 이게 사람의 겉면도 청소해 버린다는 점이 아주 좋다.

    휘리릭.

    일행 전부가 깨끗하게 씻겼다.

    “지척 씨~ 목욕물도 해 주면 안 될까요? 느긋하게 목욕 좀 하고 싶어서…….”

    “하나야, 그러다가 버릇 들면 큰일 난다. 너 나중에 어쩌려고 그러냐?”

    “내가 나중에 사비로 아공간 주머니 하나 사서 가지고 다니지 뭐.”

    별하나와 정지벽의 만담을 보면서 순순히 욕조도 꺼내고, 가림막도 치고, 물도 채워 주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미니 던전의 보스가 어떻고, 뭐를 얻었고 하는 이야기들을.

    들어 보니, 확실히 강했던 모양이다.

    [뒤틀린 성좌의 대신관]이라는 던전 보스가 나타났다는데, 그놈은 나타나자마자 인간 형태의 식물 몬스터를 잔득 소환했다고 한다.

    엔트나 드라이어드 같은 종류의 몬스터들인데 레벨이 전부 100대에 도달할 정도로 강했다고.

    보스 자신은 뒤로 물러나서 원거리에서 저주 같은 디버프와 공격 마법만 쏴대는 놈이었다고 한다.

    정지벽의 탱킹 능력을 뚫고 팔이 잘릴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고.

    하지만 성광이 잘린 팔을 붙들고 다시 붙여 주는 등 대활약을 했다고 한다.

    다들 강해지고 있구나. 새삼스럽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다들 목욕도 하고, 식사는 간편식을 꺼내서 대충 먹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나와 리블이 말을 할 차례.

    광신도 그룹을 어떻게 처리했고, 리블이 얼마나 활약했는지 이야기를 하니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인다.

    이미 익히 알고는 있는 능력이지만 그 응용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까.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네크로맨서가 이렇게까지 강한 건 또 처음이네요.”

    “원래는 비인기 직업이니까요.”

    그리고 이야기가 거의 끝났을 때.

    정지한이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이 던전의 위협 요소는 전부 사라진 거군요. 좋은 일입니다.”

    “그런 셈이죠. 던전 내부 필드의 몬스터는 거진 잡았으니까요.”

    “그렇다면. 던전 소멸의 준비가 끝난 셈입니다.”

    그의 선언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미니 던전 2개를 더 처리하면, 최종 던전이 열립니다. 그곳을 처리하고 나면 던전의 핵을 찾을 수 있죠. 그걸 처리하면 저희 임무는 종료입니다. 하지만 엄지척 헌터는 그것만을 원하시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지금도 방법을 모색 중이다.

    “그러나 기다려 드릴 수 없습니다. 저희에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시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는 것.

    정지한의 말은 세계 멸망까지의 시간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을 지켜내고 나면, 다른 지역에도 가야 합니다. 그러니 저는 저의 계획대로 움직일 겁니다. 엄지척 헌터는 엄지척 헌터가 하려는 일을 해 주십시오.”

    “그 말씀은…….”

    “계속 2팀으로 나눈다는 이야기입니다. 최종 던전이 열리기 전까지. 그 전까지 방법을 찾아 주십시오.”

    리밋이 걸리는군. 하기사… 여기서 천년만년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오늘은 이제 휴식하겠습니다. 내일 다시 움직이죠.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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