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6화
바위산 요새의 사람들은 우리가 머물 수 있는 천막을 내어주었다. 저번에도 한번 썼던 그 천막이다.
거기에 머무르며 우리는 잠시 쉬었다. 포션도 마시고, 장비도 씻고 하면서 정비를 잠깐 한 것.
그때 별하나가 우리를 불렀다. 그녀가 가진 스킬 ‘별의 인도’가 가진 능력 중 하나라고 말하면서 어떤 영상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으…….”
성광이 인상을 찌푸린다.
무척이도 혐오감을 감추지 못하고, 정지벽은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파티원들 표정은 모두 일그러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정상인이라면 눈뜨고 보기 어려운 것을 마주했기 때문.
광신도 무리가, 식인귀 무리를 쓰러트리고 잡아먹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겉으로 보면 몬스터들끼리 잡아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것들의 본질은 ‘인간’이다.
본능적으로 혐오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고, 다들 표정을 구기고서 그걸 보고 있었다.
“광신도 새끼들이라고 해서 늘 인신 공양만 하는 게 아니네. 저렇게 자기들도 섭식 회복을 할 거면 식인귀 그룹하고 다른 게 뭐야, 대체?”
“끔찍하군요.”
무척이의 투덜거림과 탱커 정지벽의 안타까움과 분노가 섞인 말.
“하핫. 저 인간들이 하는 인신 공양이 효과가 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죠~ 보세요. 신성법도 쓰잖아요? 신관 클래스를 하나 더 가지고 있는 셈이라구요?”
리블의 설명.
“이거……. 계속 봐야 해요?”
불편한 표정인 성광의 질문까지. 다들 반응이 다양했다.
“의외로 지척 씨는 멀쩡하시네요?”
별하나의 말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냥 몬스터라고 생각하려고요.”
할아버지가 그랬다.
사람은 생긴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결국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이미 행동도, 마음도, 사고도 사람이라기보다는 몬스터의 것이 되어 있었다.
그런 자들에게 일일이 동정심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더 불쌍해. 이놈들아.’
별하나가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이다음으로 넘어갈게요.”
그녀의 말에 다들 불편한 얼굴로 영상을 본다. 그리고 그녀가 영상을 보라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광신도 그룹의 육체가 변하고 있다.
몸에서 무언가가 새롭게 자라나며 몸체 자체가 커지고 있다.
그 변화는 전부 제각각으로 달랐지만, 확실한 것은 변화하면서 강해지고 있다는 점.
어떤 녀석은 복부에 입이 생겨나고 어떤 놈은 눈이 여러 개 생겼다.
어떤 녀석은 뿔이 여러 개 달렸고 또 다른 녀석은 손이 집게발처럼 변하기도 한다.
기괴하고 끔찍하게 변하고 있지만, 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은 확 난다.
“봤죠? 저놈들, 저렇게 강해지더라고요. 레벨 업 하는 것과는 별개로 힘이 증가하고 있는 거죠. 우리 팀원들 모두 봐야 할 것 같아서 다들 모이시라고 했어요.”
그녀는 어제부터 별의 인도 스킬을 계속 유지시키고 있었다.
저들의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이렇게 된 것.
단순히 끔찍하기만 한 거였다면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다.
“저게 [섭식 회복]의 효과 중 하나입니다. 다른 강력한 존재를 먹으면, 그 힘을 일부 받아서 ‘변이’와 ‘성장’을 하게 되죠. 그 와중에 정신에도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치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성좌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영상이 사라지자, 정지한이 입을 연다.
그 얼굴은 무표정해서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예?”
그런데 표정은 둘째 치고, 저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마침 잘됐군요. 여기서는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정지한이 우리를 본다. 그리고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 모두 깨달았다.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
“던전은 자연 발생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몇몇 던전은 성좌가 직접 만든다는 것은 알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어떤 던전은 죽음을 맞이한 성좌가 부활을 하고자 만든 것이기도 합니다.”
“그게 바로 여기군요.”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곳입니다. 다만… 이곳은 하나의 성좌가 아닌 두 성좌가 동시에 죽음을 맞이한 장소라는 점이 특이한 점이죠.”
선택의 신. 그리고 녹음의 신.
“그래서 이런 상태가 된 겁니다. 녹음의 신은 식물계 생명체들의 신으로, 본래라면 인간을 신도로 받아들일 일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선택의 신이 같이 죽고, 그들의 본질이 뒤섞이면서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겁니다. 때문에 저런 게 가능해졌습니다.”
이곳에서 죽은 자들은 삶과 죽음 둘 중의 하나를 택한다.
식물이자 동물.
거기에 다른 존재를 잡아먹고 강해지며 진화한다.
“두 신은 이제 뒤섞이고 뒤틀렸기에 하나가 된 셈입니다.”
정지한은 백탄의 마카우가 강림시킨 정령신이 해 준 이야기도 같이 말했다.
“아니,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누가 알아들어요!”
별하나의 말에 정지한이 답했다.
“신탁이라는 게 본래 그렇습니다. 사실 저는 저 정도로 자세하게 말한 게 더 놀랍군요.”
그런 팀원들에게 정지한이 다시 말했다.
“그렇게 하나가 부서진 조각이 융합되어서 탄생한 ‘그것’은 이 던전에서 죽은 인간을 던전에 속하게 만들고 신으로서의 명령을 내리죠. 신앙을 바쳐라.”
그거 완전 세뇌 전파 아니야?
“각성한 헌터들은 성좌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정신적으로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다. 각성자 시스템이 정신을 어느 정도 보호하기 때문이죠.”
“어……. 그래도 여러 종교 단체가 생기잖아요? 얘도 그렇고.”
별하나가 성광을 가리켰다.
“실존하는 신을 신앙하려는 이들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어떤 힘이 작용한 결과물은 아니죠.”
정론이다.
“하지만 던전에 속한 존재에게는 그런 시스템의 정신 보호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들은 회색 지대에 있는 겁니다. 목소리의 영향력은 강력한 ‘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정신적으로 세뇌당하거나 혹은 광신적인 상태가 됩니다.”
“식인귀 쪽은요?”
“어느 세상이든 반골은 있지 않습니까?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기 타마 그룹이 그렇듯이.”
그런 거였구먼…….
“그래서 이곳에 온 것입니다.”
“예?”
“내버려 두면 끔찍한 성좌가 이곳에서 부활하고,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그 성좌가 직접적으로 우리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진짜예요!?”
“신이시여…….”
별하나와 성광의 반응과 별개로 나머지 팀원들은 조용했다.
무척이는 무표정하게 정지한을 바라보는데 내 동생이라 저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것 같았다.
저거 분명 속으로 ‘네가 그럴 줄 알았다.’라고 하고 있을 거야.
정지벽은 담담한 표정인 것을 보니 정지한을 신뢰하는 모양.
리블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히죽 웃는다.
“그 결과 동남아시아에 속한 국가들은 전부 파멸합니다. 싱가포르가 어느 정도 저항을 하지만 결과적으로 3년 안에 이 지역 전체가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죠.”
갑작스러운 말.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히 폭탄 발언을 터트렸다.
잠깐. 잠깐만.
동남아시아 지역 전체가…… 파멸한다고!?
“어… 잠깐만요.”
별하나가 어질어질한 표정이 된다.
탱커 정지벽은 뭔가 결심한 얼굴이다. 탱커로서의 사명을 되새기는 거겠지.
그러나 성광과 나는 표정 관리가 안 된다.
리블이야 뭐 여전히 히죽거리고 있다만,
무척이 놈은 어째 담담하네?
저놈은 왜 저리 담담해?
“갑…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시면 어떡해요, 대표님! 깜박이는 켜고 들어오셔야죠! 갑자기 뭐예요. 우리 세계를 구하는 용사 같은 거였어요!?”
별하나가 비명을 지른다. 그럴 만도 하다. 나도 놀랐으니까.
[그래도 주군과 저는 세계 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알고 있으니 그리 놀랄 만한 것은 아닙니다. 정지한 저자가 미래를 알고 있기에, 이곳에 왔을 것이라고 짐작은 하셨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랬지.
그렇다고 벌써부터 세계 멸망을 막기 위한 최전선에 올 줄은 몰랐으니까 놀란 거야.
생각보다 빠르잖아. 너무 빨라.
“어? 뭐예요? 리블 씨는 왜 그렇게 웃……. 알고 있었구나?”
존댓말과 반말을 섞는 별하나. 그만큼 흥분했다는 것이다.
“그럼요~ 알다마다요. 후후후. 이런 재미난 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제가 여기에 있는 거니까요.”
즐겁다는 듯이 웃는 리블.
그 모습에 별하나가 두 눈을 깜빡이며 멍하니 리블을 본다. 그러다가 무척이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무척 씨도 알고 있었어요?”
“저 인간이 뭔가 이유가 있어서 이곳에 왔을 거라고 짐작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유 없이 올 만한 인간은 아니잖습니까.”
어깨를 으쓱하는 무척.
“헐…….”
별하나는 충격 먹은 표정이다.
성광은 잠시 미칠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만 이내 침착해졌다. 그리고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내가 무공 전수를 해 줘서 그런가. 얘가 마음 정리가 빠르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지한이 이어서 담담하게 말한다.
“던전을 안전하게 소멸시킬 방법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별하나가 입을 떠억 벌렸다.
“후후후. 우리 정지 군에게는 다 계획이 있다니까요?”
“우리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는 방법입니다. 어렵지 않죠.”
“잠깐만요.”
내가 그의 말을 중단시켰다.
“우리에게만 아무 피해가 없는 거죠, 그거.”
“예.”
그가 담담히 긍정한다.
“바위산 요새의 [타마tama] 그룹도 같이 사라지게 될 겁니다.”
다른 이들 모두가 침묵했다.
* * *
바위산 요새는 안전하지만, 안락하지는 않았다.
특히 마력의 회복의 경우 세계수를 꺼내 놓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바위산을 내려가서 휴식하기로 했다.
게다가 적들은 완전히 와해된 상태.
그들도 수습을 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안전이 확보된 상태다.
그래서 우리는 바위산을 내려가 적당한 곳에 굴을 파고 지하에 캠프를 차렸다.
모두 능력자라서, 땅굴을 파고 지하 휴식처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아지트를 만들고 나서.
목욕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세계수도 꺼내서 피톤치드 향도 좀 맡고 하면서 푹 쉬었다.
그리고 지금은 전부 누워서 잠을 자려는 중.
그림자 주머니에 챙겨 온 침대가 아주 푹신해서 몸이 녹아내릴 것 같다.
동료 중 몇 명은 이미 잠들기까지 한 상황.
나도 누워서 아까 낮에 있었던 대화를 다시 생각 중이다.
‘처음부터 저분들이 원하던 것 자체가 사람으로서의 죽음이었으니까요.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구원에 찬성했던 성광.
‘하아… 그렇긴 한데, 구할 방법이 없는 걸까요? 왠지 찜찜한데…….’
‘저는 대표님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저어는 엄지 군의 의견을 따르죠!’
‘나는 형이 하자는 대로 할 거야.’
그리고 중립을 선언한 다른 네 명.
별하나는 이도 저도 못 하겠다는 입장이고, 정지벽과 무척이 그리고 리블은 그냥 남에게 결정을 맡겨 버렸다.
그리고 나로 말하자면…….
‘뭐라도 하는 쪽이 더 방송 분량이 나올 것 같은데.’
온전한 죽음이라? 그것이 구원이라고 저들은 말하고 있지만.
결국 죽는 거잖아. 그래서는 방송 분량이 안 뽑히지 않을까?
신파도 조회 수 뽑기야 좋지만 반전이 더 따봉 벌기는 좋단 말이지.
[이곳은 두 성좌가 서로 싸우다 소멸하며 남은 조각이 뒤얽힌 곳. 선택(選擇)의 신과 녹음(綠陰)의 신이 하나 되어 잠들어 있느니라. 뒤섞여 잠든 것을 찾아낸다면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역시 초월자이자 성좌인가 보다.
정령신이 해 준 조언이라는 게 바로 지금을 위한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