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4화
이야……. 쩔어 주는데? 역시 정지한이야.
[확실히 대단한 능력이긴 합니다. 시간 가속의 주문은 마법에도 있습니다만, 저 정도 위력은 아니니까요.]
척량도 정지한의 능력에는 감탄하고 있다.
[사실 주군의 팀원들 전원이 다들 대단한 능력자들입니다. 별하나의 화살 공격, 거기에 엄무척의 마탄은 원거리 딜러로서 세계 전체를 뒤져도 찾기 어려울 정도의 공격력을 가졌으니까요.]
확실히 그건 그래.
내가 운이 좋긴 한가 봐.
이런 사람들하고 같이 사냥을 다 하고 말이야.
그나저나 남은 잔당들은 어떻게 하지?
저것들 내버려 둬봤자 백해무익한데 사방으로 흩어지는걸.
저걸 다 잡기가 곤란……. 아. 리블이 나서네.
“그어어어.”
리블이 죽은 [뒤틀리고 변이된 지성체]들을 언데드로 만든다.
제법 힘을 썼는지, 몸 전체에서 사기가 흘러넘치는 구울이 되었다.
그것들은 우리를 본체만체하더니 사방으로 흩어지며 도주하는 [식인귀] 그룹의 뒤를 쫓았다.
[언데드를 조종하는 건 아니고… 아군을 공격하지 않게 하는 정도의 조치를 한 듯합니다. 던전에서라면 아주 효과적인 스킬이군요.]
어차피 다 적이니까?
[예.]
그렇긴 하지.
어차피 스스로 인간을 버리고 사람을 잡아먹는 이상, 결국 몬스터.
이제 와서 자비심이 들진 않는다.
그들에게 잡아먹힌 희생자들이 더 불쌍할 뿐.
그러면 언데드 좀 만들어서 풀어 놓고 서로 죽여라! 이래도 상관없는 상황인가.
네크로맨시도 전술적으로 보면 좋은걸?
[그렇다 해도 주군에 비할 바가 아니지 않습니까? 원하신다면 저 스킬도 구입할 수 있으시니…….]
그거야 그렇지만. 저 정도 수준의 네크로맨시를 익히려면 따봉 많이 드니까 패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더 낫지.
동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동료들이 할 수 있게 하는 쪽이 좋아.
[그러면 주군.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으니 집중하시지요.]
음. 맞아. 아직 광신도 쪽은 남았지?
[예. 식인귀 쪽은 전부 도주 중이지만, 아직 반대쪽 능선에서는 전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가 볼까.
“모노 바이크G 소환!”
번쩍.
빛과 함께 바이크가 튀어나온다.
그 위로 재빠르게 올라타고, [유대의 연결 고리]를 통한 텔레파시로 팀원들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반대쪽을 공격하고 있겠습니다!
-잠깐~ 같이 가죠~
‘휙!’ 하고 재빠르게 리블이 와서는 바이크 뒷좌석에 앉는다.
“대규모 전투에서는 제가 필요하잖아요? 자, 가죠!”
음. 이 미친놈이라면 확실히 도움이 되겠지.
-좋습니다. 먼저 공격하고 계십시오.
정지한의 의지가 들려온다. 곧바로 바이크의 액셀을 밟고 다른 스킬을 썼다.
“염혼염동.”
엑토플라즘으로 하늘에 길이 만들어지고, 바이크가 고속으로 질주했다. 남들이 보면 하늘을 질주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엄연히 도로 주행 중!
“히야아아! 속도감 끝내주네요오오오!”
미친놈아! 소리 지르지 마!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고속으로 이동.
저 멀리, 산을 기어 올라가는 이들이 보였다.
식인귀가 공격하는 곳에서도 그랬지만, 타마 클랜 쪽에서는 산봉우리에서 철저하게 원거리 공격만 해대고 있다.
근접 탱커들이 그 공격을 버티며 기어 올라가고, 원거리 딜리와 힐러들은 산 아래에서 타마 클랜의 공격을 막아내거나 근접 전투 담당을 지원하고 있는 게 보였다.
게다가.
이미 시체도 여럿 있다.
“자. 그러면 다시금 솜씨를 부려 볼까요?”
리블이 마법을 쓴다.
우리들 헌터처럼 ‘스킬’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성좌로서의 힘을 다루는 것!
내 등 뒤에서 사악한 힘의 파장이 번져 나간다. 그러자, 시체들이 벌떡 일어나 주변의 살아 있는 생명체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서 더 악랄한 짓이 일어났다.
“자. 펑!”
콰쾅! 콰콰콰쾅!
엉겨 붙던 언데드가 그대로 대폭발.
그 폭발력은 정말로 심상치 않은 수준이었다.
“아하하핫. 이거 참… 유쾌해라. 언데드는 어디까지나 원거리에서 처리할 것. 이 정도는 상식인데 말이죠.”
“어느 세계의 상식이야, 그건?”
“어라라. 지구에서도 상식일 텐데요? 네크로맨서 중에서 시체 폭발의 스킬을 가진 사람이 있지 않던가… 음~ 모르겠네요.”
내 등 뒤에서 귀여운 척 말을 꺼내는 성좌의 모습에 등골이 절로 오싹해진다.
“설사 저게 흔하다고 해도, 너처럼 위력적인 사람은 없겠지. 일단 본 적이 없어. 들은 적도 없고.”
갓튜브 시대다.
어지간한 정보는 갓튜브와 인터넷을 통해서 들어온다.
유명 헌터들의 진짜 실력까지야 알려지지 않지만, 대략적인 것 정도는 알려지기 마련.
그러나 저런 대폭발을 일으키는 시체 폭발 스킬 사용자에 대한 소식은 들은 바가 없다.
그리고…….
“그보다, 저렇게 쓸 수 있었으면 왜 그간 안 썼지?”
“쓸 만한 장소가 아니었잖습니까? 동굴 안에서 썼다가는 다 무너진단 말이죠~ 저 폭발은 아군도 휘말리니까. 그리고 정성스레 키운 아이들을 폭사시키면 아깝잖아요. 어보미네이션들은 제법 ‘성장’했거든요. 나중에도 써야죠~ 시체 폭발은 저렇게 싸구려 시체를 가지고 터트리는 게 더 유용하답니다~”
역시 이 새끼는 제정신이 아니다.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게 다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 위험한 녀석이 필요하니까.
“일단 꽉 붙잡아.”
“오오… 돌입하실 건가요?”
“그래.”
부아아아앙!
속도를 높인다.
순식간에 지상을 향해 내달리며 쌍검을 뽑아들었다.
여러 개의 시체가 대폭발을 일으켜 혼란스러운 적진 사이로 나는 뛰어들었다.
* * *
베르나데 이트.
최상위 드루이드 랭커였던 그녀는 드루이드로서의 한계를 느꼈다.
대자연의 힘은 위대하지만, 대자연 역시 결국 [섭리]에 의해서 조율된다.
[섭리]란 무엇인가?
저들, 위대하고 존귀한 [성좌]들이 만들어낸 세계를 움직이는 법칙이자 규칙.
때문에 그녀는 놀랍도록 어려운 퀘스트를 완료하여 [전직]에 성공했다.
그렇게 얻은 능력이 바로 드루이드 위저드.
대자연을 따르는 [드루이드]이자 세계의 규칙을 뒤틀어 힘을 사용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단순한 스킬 사용자가 아니었다. 스스로… 마법 그 자체를 이해한 마법사.
진짜 마법사인 것.
때문에 이 던전의 존재를 알았을 때 마법사로서의 호기심 때문에 이곳에 발을 디뎠고, 지금은 이 꼴이 되었다.
백탄(白炭)의 마카우와 뜻을 같이하여 온전한 죽음을 기다리는 타마에 속한 것도 그녀의 의지가 강고하기 때문.
그렇다고는 하지만. 지금 그녀가 바라보는 것은 그녀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그녀의 마법 혹은 다른 동료들의 스킬에 의해서 바위산을 오르는 적들 중 일부는 사망해서 시체가 되었다.
그 숫자는 정확히 26.
적의 숫자는 삼백여 명에 달하기에,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
그런데 그 시체가 단번에 대폭발을 일으킨다.
그 폭발 하나하나가 엄청난 파괴력을 가졌다.
시체 하나의 폭발을 구현하려면 그녀조차도 제법 긴 마법어를 영창해서 힘겹게 완성해야 할 정도.
그 정도 위력을 단번에 만들어낸 것.
폭심지는 순식간에 소멸.
반경 십여 미터가 폭발에 휘말려 초토화가 되어 버린다.
그 때문에 발생한 사상자가 다시금 수십.
단번에 백여 명 이상이 죽거나 전투 불능이 되어 버렸다.
저들 하나하나가 모두 고레벨의 헌터들이었으며, 지금은 변이되어 과거보다 더욱 강력해진 자들이었음에도 폭발력을 견디지 못했다.
저런 위력은 그녀도 할 수 없는 일.
게다가 그렇게 폭발이 일어난 직후의 혼돈 속으로 오토바이를 탄자가 떨어져 내렸다.
마치 21세기의 기사라도 된 것처럼 고속으로 질주하며 빛의 검으로 패닉에 빠진 적들을 갈라 나간다.
광신도 그룹의 사분의 일 정도가 단번에 전투 불능이 되는 기적 같은 모습에 그녀는 잠시 넋이 나갔다.
“식인귀 놈들이 물러갔더군.”
“마카우 님.”
이제는 인간이라기보다는 나무 정령 같은 형상을 한 주술사 마카우가 다가와 말했다.
“저들이 그쪽의 뒤를 쳐서 물리쳤다네. 빌리가 죽었네.”
“빌리 갤리거를…….”
빌리 갤리거.
그를 상대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안다.
“자. 저들도 몰아내 보세나.”
“예. 끝내야죠.”
그녀가 지팡이를 들어 올린다.
대자연의 힘을 마법으로 변환하고, 그것은 곧 이적을 만든다.
그녀는 노래하듯 주문을 외웠다.
그사이 그녀의 옆에서 마카우의 모습이 변해 갔다.
두 다리는 뿌리로 변해 대지를 파고들고, 그의 몸이 점점 자라나 나무가 된다.
주변으로 다른 이들이 모여들어 마카우의 몸에 마력을 불어넣고, 마카우의 가지는 위대한 드루이드 위저드의 몸을 감싼다.
힘과 힘이 모이고 모여 그녀에게 깃들었을 때.
“신록(新綠)의 분노.”
그녀가 주문을 완성했다.
* * *
“이야…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에 딱 어울릴 정도로 강해졌군요~ 유쾌해요!”
뒷좌석에 앉은 리블이 나불거린다.
이 녀석의 목소리가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귀에 확실히 들어오는 건 아무래도 뭔가 능력을 쓴 거겠지.
“일어서라! 산 자를 공격하라! 아하하핫!”
녀석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죽은 이들이 일어선다.
하급의 좀비도 아니고, 바로 구울이 되는 것으로 보아 리블의 강력함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기괴하고 끔찍한 일도 동시에 일어난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에에에에!”
구울을 본 이들 중 몇 명은 정신이 나가 버린 듯 소리 지르며 발광하고, 주변을 향해 스킬을 난사해 댔다.
구울 같은 언데드 계열 몬스터에 붙어 있는 정신 공격의 힘이 적들의 일부를 미쳐버리게 만든 모양.
거기에 구울이 덤벼들고, 그 덤벼든 구울은 시기적절하게 다시금 폭발했다.
콰쾅!
“젠장! 저 미친 괴물들부터 죽여!”
아비규환이 된 난장판에서, 우리를 죽이려고 시도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그것도 이내 실패하고 만다.
콰드드득! 우직. 우드득!
바위산 여기저기가 갈라지더니, 거대하고 튼튼한 식물의 뿌리 혹은 줄기가 튀어나온 것이다.
그것들은 녹음의 마력을 두르고 있다.
촉수처럼 움직이면서 리블과 나는 내버려 두고, 적들을 향해 빠르게 다가가 그대로 휘감아 으스러트렸다.
스킬로 불러낸 불길과 번개가 강타했지만, 식물들의 수가 더 많을 정도.
문제는 나를 공격 안 한다고 해도, 진로에 방해라는 점!
부아아앙!
그래서 염혼염동으로 만들어낸 엑토플라즘으로 다시금 길을 만들어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호오… 융합 스킬을 어떻게 해냈나 보군요. 타마라는 자들도 제법 하는걸요?”
킬로미터 단위의 지역이 완전히 뒤집혀 있다.
그 넓은 범위에서 튀어나온 식물의 뿌리와 줄기가 가차 없이 적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휘감아 으스러트리고, 독이 담긴 수액을 뿜어낸다.
거기에 마력적인 힘을 발산하는 가시를 만들어 찔러 죽이기까지.
실로 흉악한 숲이 자라나고 있었다.
나무가 가지를 뻗어 올리고, 꽃이 피어난다. 어느샌가 바위산은 작은 숲이 되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들이 다른 세계에서부터 건너와 힘을 풀어내기까지 한다.
물의 정령, 흙의 정령, 초목의 정령이 나타나 정령의 힘을 사용하며 공격하고 있다.
무시무시한 광경에 나와 척량 둘 다 입이 떠억 벌어졌다.
저게 뭐야?
[주군. 저건 대자연의 부름이라고 하는 융합 스킬입니다.]
방금 리블이 말한 거?
[예. 융합 스킬은 다수의 헌터가 자신들의 스킬을 하나로 합하는 것. 포션 공장의 기계들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지 않습니까?]
아아, 혹시?
[네. 그 방식과 비슷합니다. 저들의 스킬과 마력을 하나로 합친 것이겠지요. 하지만 리스크는 커 보입니다. 보시지요. 바위산 요새의 결계가 사라져 있지 않습니까?]
슬쩍 보니 바위산 봉우리의 결계가 사라져 있다.
그런가. 그 에너지까지 끌어다 쓰는 궁극 스킬인가 보네.
확실히 대단한 위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