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201화 (201/305)

제201화

“사람?”

“먹이.”

“헌터?”

“이빨.”

그것은 멀리서 보면 지네 혹은 뱀처럼 생겼다.

똬리를 틀고 있어서, 정확한 길이나 몸통의 두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결코 뱀이나 지네는 아니라는 것.

그건 무수히 많은 생명체가 짜깁기되어 있는 끔찍한 형상이었으니까.

몸 전체에 사람의 팔과 다리부터 포유류와 양서류, 거기에 곤충의 것까지 다양한 팔다리가 붙어 있다.

비늘이 있는 곳도 있고, 털이 난 부분도 있다. 온갖 생명체를 뭉쳐서 뱀 같은 길이로 만들어 놓은 흉측한 것.

뱀의 머리 부분에는 사람의 얼굴 여덟 개가 매달려 있고.

그것들이 서로 다른 말을 내뱉고 있다.

-형용하기 어려운 혐오스러운 것을 보아 정식적인 타격을 받았습니다.

-부정한 정신 공격!

-정신 저항 스킬로 차단합니다.

성광의 축복.

거기에 내가 꺼내 놓은 방패의 힘으로, 정신적인 타격은 무효화. 그러나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지극히 불쾌하여 시선을 돌리고 싶어진다.

이야… 저게… 저렇게…….

하지만 이 광경 속에서 멀쩡한 놈이 있다.

“우와아아. 조잡한 키메라군요! 자. 그러면 저 먼저 공격합니다?”

딱!

리블의 손가락이 튕겨지는 소리가 나고. 동시에 어보미네이션들이 뛰어 들어간다.

그리고 보스 [융합된 변이체]를 향해 무자비하게 돌진한다.

그러자 보스 몬스터가 그 몸을 완전히 폈다.

길이는 대략 15미터. 몸통의 굵기는 2미터 정도로 굵다.

“배고파. 먹이.”

“시체? 상했어?”

“익힌다. 굽는다.”

몸에 붙어 있는 여러 개의 입이 동시에 많은 스킬을 쏟아냈다.

“염왕의 분노.” “태양빛 소환.” “염계의 화염.” “불의 정령.” “화염폭발.” “화염 방패.” “작열하는 손길.” “폭염 망치.”

역시나 한 번에 여러 스킬이 날아오니 정신이 없네.

거기다 이놈은 동굴 안의 다른 변이체와 다르게 지성이 존재한다.

화염 계열 스킬을 무려 8개나 사용한 것!

언데드에게 효과적인 게 신성력과 화염이니, 적절한 선택이지만.

어보미네이션은 [강건]의 버프와 무척이가 따로 걸어준 [경화]의 버프에 내 [실프의 축복]까지 받은 상태다.

실프의 축복이야 별거 아니지만 [강건]과 [경화]는 강력하다!

콰쾅!

스무 마리가 넘는 어보미네이션에게 화염계 스킬이 쏟아져 내렸지만, 시체 덩치들은 살갗이 조금 타버리기만 하고서 달라붙는 데 성공했다.

“그아아!”

그리고 그대로 붙잡으며 물어뜯는다.

덩치 큰 어보미네이션이 21기나 달라붙으니 보스 몬스터도 몸을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다.

이런 효과가!?

“엄지척 헌터.”

“네입!”

쌍검을 빼들고, 기운을 들이붓고.

마침내 그것은 점점 압축되어 찬란한 빛으로 변했다.

강기!

검에 서렸으니. 검강!

내 힘을 느꼈음인가? 보스가 나를 본다.

“위협적. 위험.”

“공격. 저거. 위험.”

“공포. 안 돼. 저거.”

“나를 봐라아아아!”

그때다. 탱커 정지벽이 달리면서 소리쳤다.

보스의 여덟 머리가 정지벽을 본다.

동시에 녀석의 머리 근처에서 빛이 번쩍인다.

스킬을 사용하려는 것!

그 찰나. 성광의 버프를 받은 별하나와 무척이가 스킬을 쏟아냈다.

“별빛 화살!”

“마탄 연사.”

무시무시한 타격이 녀석의 머리통을 두드린다.

그러나 체액이 흐를지언정 뼈가 부러지거나, 살점이 떨어지지 않는다.

여기가 고레벨의 던전이기 때문. 하지만 사용하려던 스킬은 중단되고, 녀석의 시선이 이번에는 무척이와 별하나에게로 향했다.

그사이.

나는 그저 묵묵히 서서 강기를 키워 나갔다. 더욱 키워 나갔다.

더욱더 크게!

화아아악!

붉은색의 강기와 파란색의 강기.

그 길이가 둘 다 5미터가 넘었을 때.

정지한이 말했다.

“다녀오시죠.”

그의 손이 번쩍인다.

동시에, 그를 포함한 모두가 아주아주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지한이 나에게 걸어준 버프.

초월적 시간 가속.

마지 시간이 정지된 세계에서 나만이 움직이는 것 같은 상태.

그 상태로 나는 달렸다.

한 번에 수 미터를 뛰어넘고, 순식간에 [융합된 변이체]의 머리까지 뛰어오른다. 그리고 두 개의 쌍검을 거침없이 내리쳤다.

일검의 양기가 극대화된 강기.

이것은 극염강기라고 부르면 좋겠다.

월검의 음기가 극대화된 강기.

이것은 극음강기라고 부르면 되겠다.

극염강기의 검날이 보스 몬스터의 신체에 닿자, 마치 레이저로 태워 탄화시키는 것처럼 상대의 육체가 소각되며 사라져 갔다.

검날은 부드럽게 놈의 몸을 가르고 내려가 그대로 반으로 자른다.

극음강기는 조금 달랐다.

잘리는 부위를 기점으로 그 주변이 단번에 얼어붙으며 육신이 조각나 버리며 깨져 나갔다.

다른 이들은 거의 정지된 것이나 다름없는 시간 속에서, 나는 소리보다 빠르기에 그 육체가 부서져 가는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쌍검의 일격으로 보스의 상체가 정확히 세 조각이 나 버렸다.

그리고 그런 녀석의 몸을 붙들고 있던 어보미네이션 몇 개도 같이 조각이 난다.

그리고.

다시금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쿠우웅!

보스의 시체가 그대로 조각나 쓰러진다.

그렇게 거대한 녀석이었는데, 더 이상의 생명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미니 던전 클리어!

-기여도에 따라 정산을 시작합니다.

-1위 엄지척. 52,467포인트.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퀘스트 보상을 정산합니다.

내가 원킬해서 그런가. 이번에도 1등이다.

“이야, 엄지척 씨는 못 이기겠네요.”

탱커 정지벽은 2위.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위우우웅.

보스 몬스터의 잘려진 몸에서 빛나는 조각이 하나 떠오른다.

그것은 보석의 파편 같았고, 크기는 우리들의 머리통만 했다.

-퀘스트 보상으로 [성좌의 조각]을 획득했습니다.

[성좌의 조각]

등급 : ???

분류 : ???

녹음과 유혈의 생명을 관장하는 성좌의 조각.

다른 성좌와의 분쟁 끝에 파괴되어 파편화된 성자의 정수 중 하나.

가지고 있으면, 끊임없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기능 : 스킬 [섭식] 사용 가능.

[섭식]

등급 : 인피니티

그 어떤 것이든 먹음으로써, 그 힘을 일부 얻을 수 있다.

아아주, 괴상하다. 이거 먹는다는 게… 대체 어떤 의미야?

섭식 회복과는 좀 다르긴 한데… 아마도 이게 원조인 것 같긴 해.

심지어 스킬 등급이 인피니티.

‘인피니티……?’

처음 보는 거지만 알고 있다. 레전드 다음 등급.

그야말로 미친 등급 그 자체!!

이런 게 나오다니… 우와아아아아!

[대단하군요, 주군. 이건……. 정말 무궁무진하게 써먹을 수 있겠습니다.]

이를 테면?

[주군께서는 세계수를 키우고 계시니, 그 과실을 이 스킬을 이용해 드신다면 필시 강력한 능력을 손에 넣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외에도 용처는 무궁무진합니다.]

하기사.

스킬 효과에 ‘그 어떤 것이든’이라고 적혀 있으니까.

미친 건가. 미니 던전에서 이런 게 나와?

아니지. 반대로 생각해야겠지.

던전은 깨라고 만든 거니까. 반대로 생각하면…….

[이게 없다면 이 던전을 클리어할 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겠지.

툭. 누군가 내 어깨를 쳤다.

“형.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어?”

“어? 어. 미안. 저거 보고 생각 좀 하고 있었어.”

성좌의 조각을 가리키자 무척이도 시선을 돌려 둥실 떠올라 있는 성좌의 조각을 바라본다.

“나는 감정 스킬이 없어서… 저게 왜?”

“스킬이 미쳤거든.”

“엄지척 헌터.”

“아. 예.”

“회수해서 그림자 주머니 안에 넣어 두시고, 이 보스 몬스터 사체도 일단은 그림자 주머니에 넣어 주세요. 오늘은 여기서 하루 휴식 후 내일 바위산 요새의 [타마tama]에게로 되돌아가겠습니다.”

“넵.”

나는 군말 없이 순순히 그의 말에 따라서 보스 몬스터의 사체와 성좌의 조각을 그림자 주머니 안에 넣어 버렸다.

보스 자체는 쉽게 처리하긴 했는데…….

어째. 마음이 무겁다 무거워.

* * *

사냥을 끝내고, 우리는 푸욱 쉬었다.

심지어는 술도 한잔했다.

던전에서 술 먹방이라니. 이거야말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인간이 아니면 할 짓이 아니겠지만 여기는 괜찮다.

보스 룸이니까.

애초에 보스 룸은 보스를 잡고 나서도 안전지대나 마찬가지.

실제로 광범위 던전을 돌 때, 미니 던전의 보스 룸에서 야영하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쉬는 김에 푹 쉬었다.

그림자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온 튜브 수영장을 꺼내고, 그 안에 마법으로 물을 채운 후 역시 마법으로 물도 뜨끈하게 데웠다.

이것이 바로 던전 목욕!

남자와 여자로 나누기 위해서 튜브 수영장도 두 개 가져왔고, 가림막도 설치.

그렇게 목욕까지 늘어져라 하며 푹 쉬고 나서 우리는 던전을 나왔다.

그러고서 바로 던전을 되돌아 나와 바위산 요새의 [타마Tama]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쾅! 쾅!

멀리서도 들릴 정도의 폭음. 그리고 짙은 연기가 보였다.

바위산 요새가 공격당하고 있었다.

* * *

‘역시. 이번에도 전혀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정지한은 엄지척에게 시선을 던졌다가 떼어내며 생각했다.

저 멀리 바위산 요새가 공격받고 있는 것도 그런 상황.

타마는 공격은 하지 않아도 방어는 단단하기 때문에, 다른 두 세력은 거의 공격하지 않는다.

공격하더라도 시간이 제법 지난 이후의 일.

지금 같은 시점에 공격당하는 일은 겪은 적이 없다.

‘미래가 점점 틀어지고 있다. 물론 모두에게 좋은 일이지만…….’

정지한은 저 멀리 바위산을 본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아주 강력하고 다양하다.

그만큼 많은 자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

‘두 개의 세력이 동시에 공격하는 건가. 이것도 그간 없었던 일이다.’

3개 세력. 그 전부가 저 장소에 있음이 느껴진다.

정지한은 눈을 살짝 찌푸렸다.

‘백탄(白炭)의 마카우가 가진 강대한 결계 능력과 지리적 이점은 강력하다. 두 세력이 연합했다고 해도 그 피해는 아주 클 터. 그럼에도 공격했다. 왜지?’

정지한은 자신이 아는 정보들을 머릿속에서 조각조각 맞춘다.

그러나 그래 봐도 알 수가 없는 것은.

작은 변수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이 바뀌는 ‘특이점’의 특성 때문.

신들이 말하길 엄지척 같은 이는 성좌들도 통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빨리 죽는 거라고.

하지만 오래 살려 두고 있는 이 상황에서 운명은 더욱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부터는 최초의 행동을 할 수밖에. 우선은…….’

정지한의 시선은 다시 엄지척을 향했다.

‘[타마tama] 쪽을 구출해야겠군.’

“마력의 파동으로 보아, 수백 명이 전투 중이군요. 바위산 요새가 위험할 수 있으니 지금부터 전력으로 가겠습니다.”

그의 등 뒤로 톱니바퀴의 환영이 나타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