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4화
“저랑 형은 이런 규모의 던전은 처음입니다만……. 앞으로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브리핑에서 들은 거랑 같아요. 일단 잡몹을 철저하게 사냥해서 전멸시키고. 그다음에 심층으로 가는 거죠. 가면서 퀘스트가 나온다거나 숨겨진 비밀 같은 게 있으면 해결해서 추가 보상을 얻어내고요.”
별하나의 설명에 나와 무척이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게 정석이긴 하지.
“그나저나…… 이 던전의 조건은 확실히 까다롭긴 하네요.”
[뒤틀린 성좌의 숲]이라는 던전이 가진 조건.
그것은 [선택]이라고 했다.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뒤틀린 힘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죽을 것인지.
단순히 생각하면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나으니까 뒤틀린 힘을 받아들인다는 선택을 하게 된다.
[뒤틀리고 변이된 지성체]는 그렇게 탄생하는 거다.
그리고 이들은 살아생전의 지식을 다 가지고 있고, 스킬도 쓴다고 하니까 문제다.
“대인전을 생각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정지벽의 묵직한 발언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같은 사냥은 그냥 연습 게임.
진짜는 바로 그 [뒤틀리고 변이된 지성체]를 상대하는 일이 될 것이다.
* * *
정지한은 캠프를 보며 피식하고 미소 짓는다.
수없이 많은 회귀를 했지만, 이런 캠프를 만들어 낸 것은 진정 처음이었다.
따뜻한 코코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 그는 자신에 대해서 생각 했다.
정지한은 회귀를 한다.
그 회귀에는 여러 가지 많은 대가가 뒤따르지만, 세계가 파멸하는 순간에 회귀를 고르지 않을 수는 없었다.
회귀하지 않는다면, 결국 본인을 포함한 세계 전체가 멸망하니까.
회귀를 한 자에게는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만, 만능하거나 전능하지는 않았다.
그중의 하나로 미래에 벌어질 일을 ‘타인’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설명’한다면 그 대가로 죽음에 이르는 고통과 함께, 바로 다음 회귀가 시작한다.
회귀를 한 번 할 때마다, 페널티는 축적된다.
때문에 정지한은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이 [뒤틀린 성좌의 숲]도 마찬가지다.
그가 말한 것들은 필리핀의 정부에서 헌터들을 들이부어 알아낸 것들을 정리한 것이다.
사실 이곳은 더욱 끔직한 곳이었다.
[뒤틀리고 변이된 지성체]들은 그 본질이 인간.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 내는 지옥은 의외로 멀리 있지 않다.
특히나 이런 세계에서는.
그럼에도 이 장소를 몇 번이나 정리한 까닭은 이곳에서 얻어야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뒤틀린 성좌의 조각]을 얻는다.
미래를 위한 계획 중 하나.
그걸 위해서라면…….
쓰디쓴 입안을 달콤한 코코아로 적시며 그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 * *
사냥은 계속되었다.
고레벨의 던전이라 그런지, 확실히 레벨 업 속도가 아주 빨랐다.
일단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수십에서 수백 마리까지 튀어 나온다.
정지벽이 요새를 만들고, 별하나와 무척이가 원거리에서 초토화를 시킨다.
나는 [염계의 불길]과 [크투가의 걸음]을 이용해 불의 장벽을 쳤다.
다가오기 전에 어지간한 놈들은 그대로 녹아내리는 것이 당연.
성광의 아이디어로, 요새 가운데에 세계수도 꺼내 놓아서 사냥 효율은 더욱더 업그레이드되었다.
아! 사냥 중에도 마력이 회복된다고!
파티 사냥 중이라서, 다들 고루고루 경험치가 분배되는 중.
덕분에 사냥 4일 차.
다들 레벨이 10 이상은 올라가 있었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광렙이다!
“미쳤네.”
정지벽의 작은 바위산 위에서 쓸려나간 몬스터들을 보며 중얼거린다.
몬스터의 시체가 작은 언덕을 만들 정도로 쌓여 있으면 누구라도 나처럼 중얼거릴걸?
오늘도 활기차게 사냥 중!
그런데 튀어나오는 몬스터의 숫자가 좀 줄었다?
하도 잡아 대서 그런 거려나?
게다가 오늘은 내가 모노 바이크G를 꺼내서 불을 지르지도 않았단 말씀.
무척이랑 별하나가 손발이 맞기 시작해서, 아예 화망을 뚫고 오는 몬스터가 없어져 버렸다.
이야…. 강하다.
“우리가 그만큼 오버 스펙인 것도 있을걸요?”
“저희 팀의 상성이 저들과 비교해서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별하나와 정지벽의 의견.
하긴. 아예 적들이 다가오지를 못하는 상황인데. 이런 식으로 싸울 수 있는 헌터들이 얼마나 있겠어?
정지한과 리블은 나서지도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
“그렇다고는 해도…… 거기 리블 씨라고 했죠?”
“네에~ 정리블이랍니다!”
“능력에 대해서는 들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잖아요.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별하나가 톡하고 쏘아붙였다.
사실. 맞는 말이다.
내가 가져온 세계수 덕분에 던전 안에서도 포션을 쓰지 않고 마력을 회복하고 있어서 망정이지, 옛날 같았으면 욕을 바가지로 처먹고 있을걸?
“제가 나설 틈도 없었는걸요~ 하지만 별하나 양께서는 단지 제가 놀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꺼낸 건 아니시겠죠?”
“딱 까놓고 말해서, 실력을 못 봤으니까요. 실제로 우리 팀에 필요한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잖아요.”
“후후후후. 옳으신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실력을 발휘해 볼까요?”
딱!
그가 손가락을 딱하고 튕긴다.
그러자 그의 머리 위로 지름이 3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마법진이 생겨났다.
“무영창 스킬 사용!?”
“마법 [망자들의 기상]이라는 마법이죠, 이 마법진이 만들어지면, 주변의 시체는 전부 언데드가 됩니다! 마력이 추가로 들지 않는 간편함이 특징!”
“그어어어어.”
리블의 말대로다.
요새 아래에 깔린 시체들이 일어섰다.
토막 나거나, 신체 결손이 심각한 몬스터의 사체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럭저럭 움직일 만하던 것들은 전부 일어섰는데, 생전과 같은 운동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저 그런 좀비가 아니다.
적어도 구울은 되어 보인다.
그리고 그것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저건 왜 흩어지는 겁니까?”
무척이의 날카로운 질문.
“마력 소모가 아주 적은 효율적인 마법이지만, 단점도 있거든요.”
“그게 뭔데요?”
내 질문에 그가 히죽 웃는다.
“저건 제가 통제 못 해요. 정확히는 통제하는 데 들어가는 마력이 별도로 필요하다……. 그 말씀이죠!”
“엑!? 그러면 우리도 공격한다는 겁니까?”
정지벽의 어이없다는 목소리.
“바로 그거죠. 하지만 여기는 지금 이 세계수 때문에 성지가 되었잖아요? 고로, 저 녀석들은 여기를 넘어오지는 못합니다. 대신 다른 살아 있는 것들을 사냥하려고 달려가고 있는 거죠~ 어차피 이 안의 몬스터들은 전부 죽여야 하는데. 이게 바로 꿩도 먹고 알도 먹는 일석이조!”
어이가 없다.
아니.
물론 던전의 몬스터를 다 죽여서 올 클리어를 하는 게 정석이긴 한데.
이런 식으로 몬스터를 없앤다고?
내 심정처럼, 다른 이들도 어이가 없는 표정이다.
침착한 건 무척이와 정지한뿐이다.
정지한은 그렇다 쳐도, 무척이 저 녀석은 왜 저렇게 태연해?
얘가 헌터 되더니 이상해졌어.
“아! 그리고 좋은 능력이 하나 더 있죠!”
“골치 아플 것 같은 기분인데요…….”
“나도 그래.”
별하나와 정지벽의 말을 흘리며 리블이 웃으며 말했다.
“저것들에게 죽으면, 역시 저것들과 같은 언데드가 된답니다~ 좋죠? 우리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적들을 전멸시킬 수 있다구요~ 마치 역병처럼.”
히죽거리며 웃는 리블의 표정이 섬뜩했다.
저거… 증식하는 종류의 언데드였어?
좀비 영화에 나오는 그것들처럼?
“하프 구울 따위에게 죽을 정도로 이 던전의 몬스터가 만만하지는 않으니 걱정이나 기대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때. 정지한이 끼어들었다.
하긴, 이 던전은 이미 헌터들을 무수히 많이 잡아먹은 던전이다.
저 언데드들이 제법 강력하고 숫자가 많다지만, 이 던전에서 그게 통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나저나 하프 구울이라? 반쪽짜리 구울이라는 건가?
하긴. 좀비보다 세 보이긴 했다.
“우선 별하나 헌터.”
“예.”
“스킬 [별의 인도]를 사용해서 이 던전 전체를 위에서 내려다봐 주시죠.”
“라저 댓!”
그녀가 내 말투를 따라하면서 장난스럽게 거수경례를 해 보이고는 두 눈을 감는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은은하게 후광이 일어났다.
“여기. 섬이었네요.”
별하나는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손을 들었다.
팟!
그 손에서 빛이 나고, 우리 앞에는 홀로그램 같은 게 나타난다.
별하나 씨는 이런 스킬도 있나 보네.
지형만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에, 몬스터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면적은… 제주도 절반 정도 하네요. 그리고 도시가 3개 있어요. 바위산 꼭대기에 하나. 작은 호수 같은 데 하나. 그리고 숲 안쪽에 하나. 대표님, 저 도시들에 대한 정보는 없나……? 적이에요! 지벽아, 방어!”
별하나의 다급한 외침과 동시에, 내 감각에도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마력이 느껴졌다.
휙!
고개를 돌려 보니, 화염 구체가 열 개나 날아오고 있는 게 보인다.
그리고 내 시선은 저 아래쪽에 서 있는 무리들을 발견했다.
[뒤틀리고 변이된 지성체]!
대화도 없이 다짜고짜 공격하는 거냐!?
“벽이여!”
내가 적을 확인하고 놀라는 사이.
정지벽이 주먹을 모아 쥐고 우리가 딛고 선 작은 바위산을 내리친다.
쿠구구구!
동시에 우리 앞으로 솟구치는 암석 방벽!
파르스름한 마력을 띤 기묘한 빛을 낸다.
그만큼 든든해 보인다.
그리고 그 방벽 너머로 아까의 그 불덩어리들이 날아와 충돌했다.
콰콰쾅!
암석 방벽이 우르르 흔들린다. 그러나 정지벽의 방벽은 대단히 튼튼해서, 금도 가지 않고 공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
동시에, 별하나가 하늘을 향해 활을 치켜들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활시위를 당겨 화살을 쏟아대기 시작한다.
하나하나가 강력한 마력과 스킬을 머금은 게 보인다.
그것들이 정지벽의 방벽 너머로 날아가 떨어져 내린다.
그야말로 물 흐르는 듯한 연계다.
다들 대단하시네! 나라고 질 수는 없지.
“모노 바이크G 소환.”
스팟!
빛과 함께 내 앞에 모노 바이크G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무척이가 나를 부르며 달려온다.
“형! 나도!”
내 뒤에 녀석이 탑승.
그대로 뒷좌석 발받침대가 녀석의 부츠를 콱하고 붙잡아 고정했다.
무척이가 내 뒤에 타러 온 것은 총기로는 별하나처럼 ‘곡사’ 공격을 할 수 없기 때문.
“살로써 우리를 먹여 살리는 돼지시여! 우리에게 보호의 축복을 내려 주소서!”
그런 우리 둘에게 성광의 보호막이 작렬.
그야말로 물 흐르듯이 순식간에 이루어진 행동이었다.
“이곳의 주민들이 마중 나온 것 같네요. 그렇다면 저도 지휘를 해 볼까요?”
바이크를 타고 작은 바위산을 내려가는 내 귀로 리블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새끼 뭔가 저지를 모양인가 본데? 하지만 그게 뭔지 기다릴 시간이 없단 말이죠.
그래서 리블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다이빙했다.
부아아아앙!
벽면보행!
그것으로 벽을 타고 내려가 순식간에 지상에 다다른다.
그리고 그대로 내달리며 정면을 주시하자, 그곳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자들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