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화
‘게다가. 성광은 벌써 공양을 시작했다. 이것 역시 그간 회차에서보다 몇 배는 빠르다.’
성광.
신들 중에서도 강력한 신으로 유명한 존재의 신관.
그러나 그런 그도 이후에는 교황이자 사도가 되어 강대한 신성력을 휘두른다.
심지어는 세계에서도 몇 사용하지 못하는 ‘부활’의 신성법을 사용하며.
인류 최후의 식량 공급원이 되어주는 희망이 된다.
‘역시. 엄지척 당신과 관계하면 계속해서 미래가 바뀌게 된다.’
그리고 최후로 정지한은 엄지척을 보았다. 그리고 그 동생인 엄무척을 보았다.
엄무척은 거의 대부분 엄지척이 헌터가 되기 전에 죽고는 한다.
엄지척이 헌터가 된 이후에는 본인도 헌터가 되고 뛰어난 활약을 벌이게 되는 인간이다.
그러나 정비가와 손을 잡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정지한은 속으로 말을 삼킨다.
“역시~. 엄지 군이 이레귤러인 거죠? 맞나요?”
저 멀리서 기뻐하는 일행들과 다르게, 정지한의 옆에서 역시 손 놓고 있던 존재가 말을 걸어왔다.
‘리블. 이 성좌가 아군이 된 것도 최초…….’
정지한은 이 리블이라는 존재의 정체를 아직도 알지 못한다.
아는 것은 성좌이며, 스스로를 깎아 인간의 형상으로 강림했다는 것뿐.
몇 번이나 충돌했고, 몇 번은 직접 처리해서 지구에서 추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끝을 가늠하기가 어려운 존재.
“어, 이 풀 먹을 수 있는 건가요~? 헷갈리네~ 그러면 이 벌레도?”
벌써 이상한 걸 혼자 집어먹어 보고 있다.
“즐기고 있다니 다행이군. 대가는 알고 있겠지?”
“오! 물론이죠. 당신들이 죽으면, 저도 심심해지거든요. 죽지 않게. 아주 조심히 다루어야죠.”
“꼭 무슨 장난감… 하, 됐다. 악속성 성좌한테 뭘 기대하는 건지.”
정지한은 그리 말하고 팀원들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이 던전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 * *
“아니 이게 진짜예요?”
“진짜죠.”
“우와, 엄지척 씨 진짜 대단해…….”
2성 이하의 던전들은 사실 거의 대다수가 당일치기다.
길어 봤자 이틀 정도?
그러나 3성부터는 난이도가 급변한다.
물론 3성 던전임에도 하루 만에 클리어 가능한 던전도 다수 있지만, 심심치 않게 장기간 머물러야 하는 던전들도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온 곳은 4성 던전 중에서도 최상위급 난이도를 가진 던전. 그러니 이 안에서 야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퀘스트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니까.
[뒤틀린 성좌의 숲]
난이도 : 던전 4성 – 최상급
조각나 죽음을 맞이한 성좌의 조각이 도달한 장소.
성좌의 조각은 뒤틀리며 이 숲을 만들었습니다.
성좌의 조각이 만들어낸 마물을 처단하세요.
보상 : 레전드 스킬 교환권 2개.
‘퀘스트 창은 존댓말했다가 반말했다가 하네.’
원래 시스템 창 자체가 전 세계 언어로 번역이 되다 보니 이런 부분에서 약하다고 듣긴 했다.
내용 자체는 꽤 심플하네.
하지만 이것만 봐도 여기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알 수 있다.
브리핑 때에도, 여기서 적어도 20일간은 사냥을 해야 한다고 정지한은 설명했었다.
괜히 그 당시 내 [그림자 주머니]에 대해서 이야기한 게 아니었다.
3성 이상부터 나타나는 [광범위한 넓이를 가진 던전]들에서 나 같은 존재는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
그래서 [아공간]이나 내 [그림자 주머니] 같은 능력을 가진 헌터라면 전투 능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적극적으로 영입해서 키워낸다.
최소한 몬스터의 공격에 스치고서는 ‘억!’ 하고 죽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 내는 거지.
하지만 내가 있으니까!
일전에도 [그림자 주머니]의 근간이 되는 [그림자] 스킬 랭크를 올려 두었지만, 이번에 따봉을 팍팍 써서 심지어 랭크를 S까지 올려 두었다.
꿈의 S랭크를 내가 획득하게 될 줄이야…….
감회가 새로웠다.
게다가 주력으로 쓰던 [혼원건곤신공]이 아닌 [그림자 주머니]를 쓰기 위해서 구입한 스킬에 불과한데 말이지.
다만 [그림자]는 S랭크가 끝으로, 더 이상의 랭크 상승은 없다고 한다.
게다가 [그림자] 스킬은 [혼원건곤신공]에 비해서 따봉 값이 몹시 저렴해서, S랭크까지 올리는 데 들어간 따봉이 500만 따봉이다.
그뿐이 아니다.
[그림자]가 S랭크가 되면서, [그림자 주머니]의 용량과 넓이도 더 커졌다.
[그림자 주머니]의 용적과 용량이라는 건, 메인 스킬인 [그림자]와 곱하기로 늘어나는 구조라서 그렇다.
물론 [그림자 주머니]도 S랭크로 올렸는데, 여기에 들어간 따봉은 100만 따봉.
즉. 들어오기 전 1,000만 따봉에 달하던 따봉 중 600만을 소모한 것. 그리고 나머지 400만은 몽땅 마력 증가 스킬에 때려 박았다.
[마력 혈액], [마력체], [용의 신장], [마력 소화의 위장], [위대한 자의 그릇], [풍부함의 근원].
전부 마력의 용량 자체를 늘려주는 스킬들!
마력 랭크가 상승하면 마력의 양과 위력이 둘 다 증가한다.
하지만 마력 기반 스킬들의 위력을 증가시키는 아이템이나 스킬이 있듯이, 마력의 양 자체를 늘려주는 스킬이나 아이템도 당연히 존재하지.
그런 스킬을 따봉으로 산 것이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
스킬 [진인]의 효과로 신체에 적용되는 스킬 효과가 증대되었다는 것.
때문에 저 스킬들을 구입한 것만으로도 내가 가진 마력량이 2.5배 증가했다.
스킬의 랭크도 고루고루 올린 덕에 현재 내 마력량은 본래의 4배까지 증가한 상태이다.
그래서 지금 이런 짓도 가능한 거지. 엣헴.
안락한 침대. 따뜻한 전기난로와 전기장판.
대용량 배터리. 대용량 냉장고. 인덕션 조리대. 싱크대. 그리고 대형 생수통. 기타 등등…….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가재도구들이 전부 있다.
누가 보면 이게 던전 안인지, 캠핑장 내부인지 모를 정도!
“우와, 던전 안에 온 게 아니라 무슨 놀러온 것 같네요.”
성광이 싱글벙글하며 웃었다.
“엄지척 씨는 스킬 구매에 제한이 없어서 그게 가능한 것 같아요. 어떻게 이게 되는 거지?”
우리가 위치한 장소는 인공 동굴.
[뒤틀린 성좌의 숲] 한쪽에 있는 커다란 바위산을 별하나가 찾아냈고, 그쪽으로 이동해서 정지벽이 스킬을 이용해 벽을 파내서 동굴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쪽에 이런 캠프장을 차린 거다.
물건은 전부 내 [그림자 주머니]에서 꺼냈고요.
이것들도 놀라운 것들이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동굴 한가운데 있는 이 녀석이죠.
바로 커다란 나무용 화분에 심어진 작고 어린 나무 말입니다.
[미약하고 불완전한 어린 세계수]
등급 : ?
분류 : 나무.
미약하고 어린 세계수.
이제 막 싹을 틔운 어리디어린 세계수.
주변을 정화하며, 순도 높은 마력을 생성한다.
기능 : 100미터 범위를 ‘성지(聖地)’로 지정한다.
기능 : 성지 내에서 마나 회복력이 150% 증가.
기능 : 성지 내에서 하급 저주를 상시 해제.
기능 : 성지 내에서 던전 출현이 금지된다.
그렇다.
나는 지금 잘 자라고 있는 세계수의 가지를 하나 꺾고, 그것에 다시 영양제를 주어서 이렇게 세계수 묘목으로 만든 것이다!
이걸 성장시키려면 최하급 악마의 심장과 요정의 눈물이 또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까지는 구하지 못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던전 내부에서도 휴식하면서 마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그것도 나 혼자가 아니라 팀원들 전부!
게다가 세계수의 나뭇잎은 요긴한 연금술 재료잖아?
나중에 세계수 묘목 분양하는 것도 떼돈을 벌 수 있을 듯.
그리고 동료들은 이 어린 세계수를 보면서 감탄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마력이 회복되네…….”
“이런 광범위한 던전에서는 야영이 필수잖습니까. 어차피 쉬어야 한다면 안전하게 쉬고, 마력도 회복하면 일석이죠.”
“그런 걸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아니. 세계수를 가지고 있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가지고 다닐 줄은 몰랐다구요?”
“뭐어…. 파주 쪽에 심은 녀석이 본체죠. 이거는 나뭇가지 하나 잘라다가 새로 키운 겁니다. 이렇게 들고 다니려고요. 쓸 만하죠?”
“쓸 만한 정도가 아니잖아요! 게다가 성지 효과만 해도 놀라워요. 몬스터가 접근을 꺼리게 해 준다니.”
“확실히 별하나 형제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성지화 신성법은 저도 가지고 있고, 많은 신관들이 가지고 있지만……. 이 정도 범위에 회복 효과까지는 없으니까요.”
신관 직업을 가진 사람들 대다수가 성지화 스킬은 가지고 있다.
이유는 별게 아니다. 던전에서 휴식을 취할 때 필수 스킬이니까.
그런데 성광의 말을 들어 보면 회복 효과는 없는 모양이네. 안타깝구먼…….
“엄지척 씨, 제발 죽을 때까지 저희랑 파티 해주세요.”
정지벽이 두 손 모아 공손히 말했다.
성광도 마찬가지.
“엄지척 형제님. 형제님밖에 없어요. 이 퀄리티의 노숙을 한번 하면 평생 못 잊을 거 같아요.”
별하나가 물었다.
“요, 요리라도 해드릴까요?”
“아닙니다. 저랑 무척이가 할게요. 설거지나 부탁해요.”
그러자 파티원들 모두가 감동하는 게 아닌가.
-10 따봉이 올랐습니다!
아니, 던전에서 밥 잘 먹고 잘 자는 게 이렇게까지 감동할 일이야?
“그나저나 걱정입니다. 아직은 초입이니까 별거 아니지만, 분명 ‘그것’들이 나타날 텐데. 스킬이 먹힐지…….”
탱커 정지벽이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중얼거린다.
그녀의 걱정은 타당했다.
이 던전에는 여러 가지 몬스터가 나타나지만…….
그중 가장 위협적인 것은 우리가 ‘그것’이라고 미묘하게 부르는 사람들이다.
그래.
사람.
이 [뒤틀린 성좌의 숲]에서 죽은 사람은 던전에 붙들려 몬스터가 된다고 했다.
살아 있을 적의 기억을 가졌고, 이성도 가지고 있는 그런 존재.
반은 몬스터고, 반은 인간이라고 해야 할까.
별하나가 유성 폭격으로 공격해 끌어모은 그 수백 마리나 되는 몬스터들은 이 던전의 최하위 계층에 불과한 것들로, [뒤틀린 변이체]라는 명칭을 가진 것들이다.
브리핑의 정보에 의하면 이빨과 손톱에 독이 묻어 있고 기본적으로 마력을 담은 공격을 하는 백병전을 해대는 몬스터들.
그 많은 숫자 자체가 하나의 폭력이 되어 강하다.
사실 우리 전력이면 그런 놈들은 그리 어렵지 않지.
정지벽이 방벽(그걸 방벽이라고 불러야 할지 의문이지만)을 세우고, 그 위에서 별하나와 무척이, 그리고 나까지 공격을 퍼부으면 다가오기 전에 전부 쓸어버리는 게 당연한 일.
실제로 그렇게 싹 쓸어버렸고.
그러나.
인간에서 몬스터가 된 자들…….
브리핑에 의하면 [뒤틀리고 변이된 지성체]라고 명명된 자들은 어떨까?
일종의 좀비이긴 하지만, 단순 좀비로 취급하기에는 너무 강하니까.
어그로 스킬은 먹히나?
만약 통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위험도는 급증한단 말이지…….
“그뿐이 아니죠. 그것들은 이미 사람이 아니니까 약점이 인간과 같다고 볼 수 없지 않습니까. 머리통 날린다고 죽지 않을지도 모르죠.”
내가 타준 코코아를 한 모금 후룩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브리핑의 정보로는 이곳에 있는 놈들은 전부 식물이면서 동물이라고 했으니 전신을 불태우거나 산산조각을 내야 할지도 모르죠.”
무척이의 말에 다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내 동생이지만 이 녀석도 똑똑해요,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