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5화
이윽고.
신상은 완전히 사라지고, 정원에 심는 나무만큼 자란 세계수가 내 앞에 있었다.
[자라나기 시작한 세계수]
등급 : ?
분류 : 나무
조금 자란 세계수.
이제 유아기를 지나 자라나기 시작한 세계수.
주변을 정화하며, 순도 높은 마력을 생성한다.
성지가 강화된다.
기능 : 1km 범위가 ‘성지(聖地)’로 지정된다.
기능 : 성지 내에서 체력 회복력 200% 증가.
기능 : 성지 내에서 마나 회복력 300% 증가.
기능 : 성지 내에서 상시 중급 저주 해제.
기능 : 성지 내에서 던전 출현이 절대적으로 금지된다.
기능 : 성지 내에서 부정한 힘이 빠르게 소멸한다.
기능 : 성지 내에서 정령력이 강하게 증가한다.
기능 : 정령이 성지 내부에 출현하여 세계수를 보호한다.
기능 : 성지 내에서 정원사는 ‘절대 안전’의 가호 아래 보호된다.
무시무시한 변화가 일어났다.
따봉을 모조리 쏟아부어 성장시키고, 거기에 저 리블의 성혈과 거미 성좌의 신상까지 잡아먹은 세계수는 어느덧 ‘미약하고 어린’이라는 수식어가 사라져 있었다.
돌 지난 애가 갑자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걸 본 기분이랄까?
능력치도 무시무시한 게.
이게 뭔가 싶어서 한참 눈을 비비고 다시 봤을 정도.
동시에.
주변 풍경이 기괴하게 변했다.
마치 그래픽 카드가 깨진 컴퓨터 같은 느낌으로, 조각났다.
처음 보는 풍경.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단번에 깨져 나간다.
콰칭!
세계가 사라진다.
부서진 차원의 단편이 유리 조각처럼 흩어지다가, 녹아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는 난장판인 호텔의 연회장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이게… 대체…….
-던전 클리어!
-기여도에 따라 정산을 시작합니다.
-1위 엄지척. 491,234,521포인트.
-던전을 클리어하였습니다.
-던전 클리어 보상을 정산합니다.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히든 퀘스트 보상을 정산합니다.
-던전을 소멸시켰습니다.
-던전 소멸 보상을 정산합니다.
그리고 나는, 믿을 수 없는 메시지 창을 보게 됐다.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메시지야 흔하다. 하지만 그 아래.
‘던전을… 소멸시켰다고!?’
고개를 돌리자, 뿌리를 허공에 내놓고 있는 세계수가 보인다.
뿌리 위쪽만 보면 높이가 이제 3미터쯤 되어 있다.
그림자 주머니에 아직은 넣을 수 있겠지만…….
저게 던전을 소멸시킨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가운데, 척량이 다가왔다.
척량이 그림자로 쏙 들어가더니, 만파식적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척량이 만파식적의 스킬을 썼다.
완전 치료의 권능이 발현. 상처가 전부 낫는다.
옆을 보니, 리블도 상처가 다 낫는다. 아군으로 인식되긴 하는 모양이다.
-형. 세계수 넣어.
아. 그래야지. 참참.
그런데 이거… 들어갈…… 수 있나?
[아…. 아슬아슬하지만 아직 3미터는 아니니까요?]
못 넣으면 엿 되는 거다.
그림자 주머니에 세계수를 다시 넣었다.
다행히…… 척량의 예상대로 간신히 들어간다.
척량이 혼란을 틈타 만파식적과 천사옥대와 전국옥새를 슬쩍 넣었다.
과연 여우.
다른 때라면 불가능했지.
하지만, 바로 지금! 지금 이 어수선한 상황이라면 가능하다.
……나중에 반품하라고 할 때까지 이건 제 겁니다.
[뒷일은 정지한을 부려 먹죠. 주군.]
……과연 내 참모다.
[본디 군주란 무치(無恥)인 법. 써먹을 때까지 써먹다가 도저히 뱉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왔을 때 뱉으소서--!!]
척량은 네 발로 읍소했다.
그사이에 새로운 메시지도 계속해서 생겨났다.
-타이틀 [여덟 다리의 혐오자]를 얻었습니다!
-타이틀 [신상 파괴자]를 얻었습니다!
-타이틀 [던전 해결사]를 얻었습니다!
-타이틀 [천신(千神)이 주시하는 자]를 얻었습니다!
타이틀이 벌써 4개. 전부 심상치가 않았다. 하지만, 그걸 제대로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으니까.
메시지 확인하고, 보상 받은 다음에 언박싱 영상도 찍는 게 평소 수순이겠지만…….
지금은 사람이 많이 죽었다.
그런 걸 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애써 힘을 내서 일어섰다.
정리는 나중에 한다.
아직 쇼 타임이 끝나지 않았다.
* * *
-엄지척 헌터가 저의 생명을 구했어요. 네……. 안 계셨다면 제물로 바쳐졌겠죠. 네네… 모르는 외국인 헌터가 죽이려고 했어요.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하던 학생이 눈물을 흘리며 오열한다.
엄지척의 행동을 찬양하고, 외국인 헌터를 마구 욕했다.
다만 외국인 헌터의 이름까지 말을 하지 않은 건 기자의 앞선 요청 때문.
신주란도 한마디 더했다.
-네. 저도 버티는 사람이 있어서 움직인 거죠. 엄지척 헌터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많이 되었을 거예요.
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도 살고 싶었어.’
신주란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차마 방송에는 말을 하지 못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녀도 흔들렸다.
뭐라고 욕을 하든 상관없었다. 죽고 싶진 않았으니까.
살 수만 있다면 손에 피를 묻힐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뭐, 그런 거지……. 이건 댁의 공로가 맞아.’
결과적으로는 엄지척 덕에 인간성을 지킬 수 있었다.
그녀 나름의 답례라고나 할까?
‘언론에 금칠 좀 많이 해 줘야겠다~’
단순히 팬심이 아니다. 이건 답례.
살인자가 될 뻔한 자신을 지켜준 보답이었다.
같은 시간.
아무것도 없는, 거대하고 텅 빈 폐쇄된 창고 안에서 정지한은 위성통신이 연결되어 있는 핸드폰으로 영상을 지켜보고 있다.
-엄지척 헌터!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상에 직접 몸을 던지셨다는데 사실입니까!
-엄지척 헌터! 사람을 구하기 위해…….
기자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고 있다. 정지한은 폰을 끄고, 품에 집어넣었다.
“역시. 이번 회차는 더욱 각별하군…. ‘저것’을 막은 것은 처음인데.”
무수히 많은 과거 속에서, 저 호텔은 언제나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켰다.
하늘에서 성좌 [여덟 다리로 걷는 자]의 둥지가 열리고, 무수히 많은 거미 형태의 지성체가 튀어나오게 된다.
단순한 몬스터가 아니다.
신의 사도가 자신을 희생하고, 제물로 바쳐 만들어낸 던전은 성좌의 가장 총애받는 권속들을 지상에 강림할 수 있게 만들었다.
때문에 거미 형태의 지성체인 것이다.
그것들은 그들의 기괴한 마법과 기술로 순식간에 호텔을 그들의 둥지이자 요새로 만들었다.
서울 한복판의 고층 호텔이 그 모양이 되자, 한국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져들고 경제는 나락으로 처박힌다.
여의도 던전에 이어서 또 다른 타격.
대한민국은 점차 나락에 떨어지게 된다.
유무형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고, 한국의 방위력이 약화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사건 중 하나.
그게 사라졌다.
적어도 수십만이 죽었을 일을 막아낸 것.
“수십만의 죽음과 수백만의 죽음이라…….”
정지한은 텅 빈 창고를 본다.
그가 막은 이 창고의 ‘의식’을 막지 않았다면, 적어도 수백만이 죽어나가는 재앙이 밀어닥친다.
회귀자는 언제나 두 개의 선택지를 강요당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까 싶어 엄지척을 믿어 보았다.
엄지척이 해내 주기를 바라면서.
그렇다고 해서 그가 죽기를 바란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리블’을 엄지척의 옆에 두었다.
적어도 엄지척이 죽지 않게 할 능력이, 그 존재에게는 있었다.
‘후, 그렇다고 하더라도 리블이 얼마나 도울지는 미지수이고. 결국 턱없이 강한 존재를 상대로 승리한 건가. 대단하군.’
어쩌면 이번 회차의 엄지척이라면 ‘하늘’을 뛰어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 * *
-엄지가 참인성인 이유 : 외국 용병이랑 싸우고, 거미 보스랑 싸우고, 사람들 캐리하더니, 저녁에 붉닭라면 먹고 잠.
↳ 맛잘알 인성잘알이네.
-엄지 염동력 왜케 강함?
↳원래 염동력 상급으로 분류됨.
-으아아아! 왜 혼자서 뛰어드는 거냐아아아! 길테온 저 개저씨야아아아!
↳길테온 제발 어디서 객사해 뒤져라.
↳2222
↳3333
-세계수 가지고 다니는 거 실화임? 근데 세계수가 뭐가 대단한 거임?
↳세계수의 잎이 일종의 만병통치약이랬음. 나도 잘 모름.
↳그걸 엄지가 그림자 주머니에 가지고 다닌다고???
-던전 클리어 없이 완전 소멸시켰다는 거 세계 최최최초 아냐??? 진짜로?
↳단발형 던전이야 원래 소멸하는 거긴 한데……. 재생성형 던전은 소멸 안 하잖아.
-아니 클리어도 안 했는데 어떻게 던전을 소멸시켜?? 가능?
집에 와서 나와 무척이는 쓰러지듯이 잠들었다.
피로가 너무 높아서, 어떻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 게, 자기 전에 포션 생산기를 다시 가동시킨 것뿐.
그거 가동 안 시키면 내일 판매할 포션이 없거든.
그렇게 하고서 자고 일어났더니, 척량이 편집해서 업로드한 영상이 아주 난리가 나 있었다.
조회 수가 하룻밤 만에 5천만이 넘었다.
이 하나의 영상에 달린 따봉이 이미 400만이 넘어 있었다.
이게….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주군! 기침하셨습니까. 반응이 아주 엄청 납니다!]
어……. 그런 거 같아. 지금 단독 영상으로는 역대 최고로 많이 따봉을 받은 거지?
[그렇습니다, 주군. 누적 따봉도 확인해 보시지요.]
누적 따봉?
스테이터스 창을 불러내고, 따봉을 확인했다.
“헉!?”
누적 따봉의 수가 무려 821만 따봉이나 되었다. 뭐야. 나 어제 따봉 다 썼잖아. 그런데 하루 만에 이 정도 수치가 쌓인 거라고!?
이건… 진짜… 어떻게?
[신들의 따봉이 거의 300만 따봉에 가깝습니다.]
아. 타이틀 새로 얻었지? 천신이 주시하는 자였던가?
[그리고 마지막에 따봉을 요청했던 멘트가 대박이 났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앞으로 자주 해야겠다.
신들은 사람 천 명, 이천 명급의 따봉을 붓는다.
어찌 보면 당연한가?
신은 신앙이 필요하고, 그 신앙이 모이려면 사람이 수만 명은 되어야 하니까.
그렇지 않나. 사이비 종교도 요즘 좀 잘나가는 건 백만 명이 넘더구만.
그래서인지 그들이 믿는 신들이 주는 따봉은 필멸자의 숫자를 아득히 넘어선다.
‘그나저나. 일단 따봉이 많은 것도 좋지만, 성과도 확인해 봐야지.’
어제 치웠던 메시지를 다시 불러냈다.
-타이틀 [여덟 다리의 혐오자]를 얻었습니다!
-타이틀 [신상 파괴자]를 얻었습니다!
-타이틀 [던전 해결사]를 얻었습니다!
-타이틀 [천신千神이 주시하는 자]를 얻었습니다!
-던전 클리어 보상을 정산합니다.
-히든 퀘스트 보상을 정산합니다.
-던전 소멸 보상을 정산합니다.
메시지가 주르륵 뜬다.
그중 일단은 타이틀부터 정리해 보기로 결정.
[여덟 다리의 혐오자] - 거미형 몬스터가 최대한의 적의를 가진다.
[신상 파괴자] - 신물에 타격을 주어 파괴가 가능해진다.
[던전 해결사] - 던전 소멸 시 일정 확률로 세계의 정수를 획득한다.
[천신千神이 주시하는 자] - 따봉 획득량 20% 상승.
뭐랄까…….
타이틀이 엄청나.
거미 몬스터에게는 자동 도발이네.
어찌 보면 최고의 탱커가 된 건가? 나만 죽이려고 달려들 테니, 어그로 끄는 건 문제가 없을 거 같다.
[그걸…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실 줄은 몰랐습니다. 주군.]
칭찬 고마워. 척량.
거기다가 신상의 파괴자도 쩐다.
신물이라 함은 성좌가 직접 내린 물건인데, 당연히 신적 힘이 들어가 있어서 파괴 불가 옵션이 걸려 있다.
그런 걸 부술 수 있게 해 주는 능력!
거기에 [던전 해결사]는 아까 얻은 정수를 주기적으로 얻을 수 있게 해 준다는 거다.
미쳤네!
오히려 천신이 주시하는 자가 소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물론 따봉 추가 20% 획득도 달달~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