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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173화 (173/305)
  • 제173화

    쿠궁!

    생각을 이어가는 사이.

    물컹거리던 땅이 진동했다. 그리고 저 멀리 하늘에서 보랏빛을 내 뿜는 거대한 기둥이 내려오고, 바닥에서도 거대한 기둥 같은 것이 솟구쳤다.

    아니. 저건… 기둥이 아니야! 이빨이잖아!

    콰–아앙!

    무시무시한 폭음. 높이가 거의 수 킬로미터는 되어 보이는 이빨이 충돌하며 난 소리다.

    이빨이 서로 맞물렸다.

    그 이빨에 헌터 하나가 찔려서 사망했다.

    피와 뇌수가 터지자 모두가 비명을 지른다.

    그 헌터는 방금 전까지 ‘인신공양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며 외쳤던 헌터였다.

    [하찮은 것들아. 너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느니라. 머뭇거린다면, 너희 모두 내 한 끼 간식이 될 것이니. 나의 신상에 제물과 공물을 바쳐라!]

    대놓고 협박이네.

    본보기로 하나 죽인 것도 그런 걸 거고.

    “입 안이야! 여기는 성좌의 입 안이었어!”

    “저…… 저걸 박살 내면 되잖아!”

    헌터들 중 일부가, 스킬을 사용했다.

    저마다 다양한 원거리 스킬들을 쏟아내며 신상을 후려패기 시작했다.

    굉음이 울린다.

    “좋아, 더 퍼부어!”

    사력을 다해 신상을 부수기를 얼마 후, 흙먼지 속에서 누군가 말했다.

    “훗, 물리쳤나?”

    “…….”

    그 순간…… 여러 헌터들이 ‘해서는 안 되는 말’을 읊은 자를 노려보았다.

    흙먼지가 가라앉고 신상은 멀쩡하다. 그렇겠지. 파괴 불가가 걸려 있는데 파괴될 리가 있나.

    “다 비켜! 내가 박살 내겠어!”

    어떤 헌터가 칼을 들고 신상을 향해 돌격했다.

    와우? 저 미친 새끼가!

    저 석상에는 ‘파쇄력’이 걸려 있다. 즉.

    *파쇄력 : 일정 반경 안에 들어가면, 힘이 작용하여 대상을 파쇄한다.

    일정 반경이 정확하게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다가가서 칼로 후려 팼다가는 죽는 건 확실하지.

    “끄아아악!”

    염혼염동!

    돌진하는 헌터 새끼의 속도가 빨라서, 재빠르게 구해낼 수가 없었다. 녀석의 손이 으스러지기 직전에 겨우 염혼염동으로 잡아채서 뒤로 던졌다.

    녀석의 칼은 그야말로 산산조각.

    [이걸로 얼마나 접근했을 때 파쇄력이 발동하는지는 알게 되었군요.]

    대략 반경 5미터 정도려나?

    아무튼 침착하게 있는 내가 희한한지 다들 기묘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윽고 서로를 한 번 쓱 노려보며 내게 말했다.

    “엄지척 헌터. 우리와 함께합시다!”

    “미스터 엄. 우리 쪽이 더 강하다.”

    “사례금을 원합니까?! 가격을 부르기만 해주십시오!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한 무리당 실제로 싸울 수 있는 헌터는 세네 명 정도.

    나머지는 부상이 다 회복된 게 아니었다.

    그나마 부상자를 제물로 바치자는 소리는 안 하는 걸 보니 아직은… 그래도 인간으로서 최후의 양심이 남아 있는 상태인가?

    “길테온. 여기서는 손을 잡자. 어떤가? 너희나 우리 쪽 직원들까지 살리려면 그게 현명할 텐데.”

    “좋아. 일단 신주란부터 처리할까.”

    그리고 순식간에 신주란을 제외한 파벌 넷이 하나로 뭉쳐졌다.

    신주란은 투구를 벗은 상태로 이를 아득 깨문다.

    “이 새끼들이 지금 내가 호구로 보이냐?”

    그녀가 대검을 부웅 휘두르더니 어깨에 척 걸친다.

    “신성 그룹의 따님께서 그렇게까지 유감 가질 필요 있나? 부상자는 그쪽이 더 많은 데다가 그쪽 부모님한테 진 옛 빚도 갚을 수 있고 말이지.”

    “빚이라니?”

    “우리 패밀리를 죽였지 않나. 신성 그룹이……. 아아, 따님은 모르겠군그래.”

    ……여기에 옛 원한까지 까꿍하시고요.

    그래. 뭐 그럴 것 같긴 하지?

    일촉즉발의 상황.

    “그만두시죠.”

    나는 그들 사이로 들어갔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무척이가 무기를 겨누고 있는 게 느껴지고, 리블은 히죽거리며 내 등 뒤에 서 있는 것도 느껴졌다.

    “성좌의 입 안이다. 여기가 어떤 공간인지 모르겠지만, 제물을 바치는 것 외에 탈출 방법은 없어 보인다. 비켜라, 엄지척. 네가 손을 더럽히기 싫다면, 그냥 방관하고 있으면 된다.”

    내가 끼면 동생도 낀다. 그리고 리블도 끼게 된다.

    현재 마지막까지 싸운 사람은 우리 셋.

    당연히 적으로 두고 싶지는 않을 터였다.

    그럼에도 내가 막아선다면… 어찌 될까?

    하와와와, 이거 참 궁금한 것이에요.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흐음, 이 자리에는 헌터만 있는 게 아니잖아?’

    그랬다.

    애초에 헌터들을 보좌하기 위해 온, 또는 그 헌터 대신 대리인 자격으로 경매에 참가한 일반인들.

    그리고 아래층 호텔에서 일하던 직원들도 이 자리에 있으니까.

    그들 대다수는 부상자들이고, 부상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현재 자신이 속한 헌터들에게 보호를 구걸해야 하는 상황.

    ‘이런 건 언제나 약자부터 다치지.’

    심청이가 괜히 인당수에 몸을 던진 게 아니다.

    이런 제물은 언제나 그 사회의 하층민이 맡게 되는 법.

    “좋아. 좋아. 역시 같은 한국인이라고 신주란과 커넥션이 있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우선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 것도 안 하고 손가락만 빤 호텔 직원부터 제물로 바치는 것이 어떤가?”

    그 말에 호텔 직원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시만요. 저희는 그냥 월급쟁이들이고……!”

    그 순간,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직원 옆에 두툼한 대도가 떨어졌다.

    “히이익!”

    소변까지 지리며 엉덩이 걸음으로 물러난다.

    뒤에서 나직하게 흐느끼는 소리가 울렸다.

    “저는 그냥 계약직일 뿐이고요. 정직원은…….”

    “알 게 뭐야?”

    “흐끅.”

    “X발! 내가 알 게 뭐냐고? 나도 이러기는 엿 같은데. 너도 너희 회장님이나 탓해.”

    역시 저놈들의 머릿속은 저런 거네.

    나>소속 조직원>타인(강자)>타인(약자)

    사실 뭐, 호텔 직원이니 너희들이 책임지라는 건 어디까지나 그럴듯한 명분일 거고. 약하니까 할 수 있는 거지.

    이 호텔 직원들이 전부 각성자들이고 무기 하나씩 꼬나 쥐고 있으면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위선적이군요. 주군.]

    그러는 사이에 누군가가 직원의 머리채를 붙잡아 끌어 올린다.

    “끄아아악! 살려,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오오오!”

    직원의 애원을 무시한 채로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엄지척 헌터도 알 텐데. 던전에서 희생이 불가피하다면, 이후의 전력 보존을 위해서 약자가 먼저 도태되어야 한다. 그게 던전 돌파의 규칙이야. 아니면. 모두 같이 죽자는 건가?”

    “위선은 집어치우셨군요. 분명 처음에는 호텔에서 생긴 일이니 호텔 직원이 책임져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 말에 그가 차갑게 웃었다.

    “아, 그랬지. 그런데 별로 안 먹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남의 말에 감화되는 성격은 아니잖아? 당신.”

    정확하게 알고 있네.

    “이름이?”

    “길테온이다. 뭐, 달리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다는 것도 네 녀석이라면 알겠지? 그만큼 지옥을 굴러온 헌터 스트리머라면.”

    “제가 좀 유명한가요?”

    “이쪽 바닥에서는 유명하지. 레벨 제한 없이 던전에 들어갈 수 있으며, 들어가는 족족 자살인가 싶은 난이도. 거기서 웃으면서 구독&좋아요 구걸을 하고 있는 놈이 흔하나?”

    “그렇군요.”

    “네 녀석에게 침 바른 놈들이 많아. 여기에 제약업까지 손을 댔으니. 적도 많고.”

    그렇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쪽 헌터 세계에서도 제법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나.

    그래서 이렇게 따봉 숫자가 늘기 시작한 거였군.

    “어찌 되었건 네 녀석이 이미지 관리가 중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어차피 그것도 살아야 가능한 거 아니야? 거기다가 네 녀석 정도 인지도면 적당히 백만 달러쯤 풀어서 후원에 쓰면 사람들도 넘어갈 텐데.”

    “가난한 사람들한테요?”

    “아니. 언론에. 가난한 사람은 만 달러만 풀고, 구십구만 달러는 언론에 풀고~”

    나는 그 말에 웃음이 나와서 한참 웃었다.

    “그래서 어쩔 거냐. 너만 한 사내가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진 않겠지? 그러니.”

    “끄아아아악!”

    다시 길테온이 일반인의 머리채를 붙잡아 들어 올린다.

    그가 말했다.

    “신주란, 너도 동의하지? 다른 답은 없잖아.”

    “…….”

    신주란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차분히 주변 상황을 볼 뿐.

    섣불리 한쪽을 택할 수는 없는 상황 아닌가.

    거기다가 상대는 악신이다.

    이쪽은 평범한 필멸자들.

    악신을 상대로 싸워 이기는 법 같은 것은 존재치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하물며, 던전 생성 자체를 악신 본인이 한 상황임에야.

    “대답은?”

    “글쎄. 고민 중이야.”

    신주란은 그렇게만 말했다.

    와작-

    조용한 곳에서 무언가를 씹는 소리만이 울렸다.

    “오우,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원래 이 자세로 봐서.”

    리블은 팝콘을 어디서 구해 와서 구경하고 있다.

    -성좌일 때 이런 거 많이 보셨습니까?

    내 질문에 그가 답했다.

    -그렇죠. 지성체들의 생존 다툼은 늘 볼만하거든요. 통합 유기체를 제외하고는요.

    -통합 유기체라고 하면 개미나 꿀벌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종족을 뜻하는 건가요?

    -네. 그쪽은 개개인의 자아가 없으니까요. 반면 다크 엘프 같은 종족들은 이렇게 밀어 넣으면 꽤 재미있죠. 악신들의 취미긴 하지만, 의외로 선신 계열들도 자주 합니다.

    -어째서?

    -피조물을 시험에 들게 해 그 신앙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

    -왜요? 경멸스럽습니까?

    -아니, 그냥 이 세상에 너무 성좌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좋은 쪽도. 나쁜 쪽도.

    내 말이 뭐가 즐거운지 리블은 광소를 했다.

    텔레파시를 나누다가 광소를 하니 다른 사람들이 보면 뜬금없이 웃는 미친놈처럼 보일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그는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이윽고 길테온 일당들도 리블을 가리키고는 본인 관자놀이 옆에서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미친놈이라는 사인을 했다.

    공포에 미친 자는 원래 한둘이 아니지 않나.

    그러고는 신경을 껐다.

    -자,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어요. 엄지 군? 저 밉상인 길테온이라는 자를 치워버리겠어요? 저자와 저 일당을 제물로 바치면 깔끔하게 해결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되면 우리 쪽도 죽을 수 있겠지만요.

    악마는 악마다.

    그 말을 그대로 들었다가는 자칫 공멸할 수도 있으니까.

    리블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내 한시적 친구는 방심할 수 없군요. 그런 의미에서 무척 군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무척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생각할 뿐.

    그때다.

    쿠구구구구!

    다시금 혓바닥이 요동치고, 이빨이 생겨난다.

    모두가 이빨이 나지 않는 곳으로 엉금엉금 움직인다.

    디디고 있는 땅이 그만큼 줄어들기 시작했다.

    천장도. 아니 정확히는 거미의 입천장이 점점 좁아진다.

    누군가가 이빨에 스쳐서 크게 상처가 났다. 비명을 질렀지만 돌아보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설 자리도 없기 때문에.

    이 입이 닫히게 되면 어찌 될까.

    그거야 뻔하지.

    전원 사망.

    그게 이 던전의 법칙.

    그때, 누군가가 결심한 모양이다.

    “크아아악!”

    비명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길테온 쪽의 헌터가 사람의 심장에 칼을 찔러 넣고 있는 게 보였다.

    “이 개새끼가!!!”

    어느 헌터가 막으려고 달려간다.

    하지만 그 헌터도 찔러 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악!”

    “시간이 없어. 언제까지 위선 떨 거야! 이대로는 모두 다 죽을 거라고! 그 더러운 일을 내가 맡아 해주겠다는데 왜 그래?”

    순식간에 두 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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