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2화
“젠장. 차라리 창문으로 기어 내려… 뭐야!?”
“창문 밖이…… 이건 던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나서야 나도 눈치챘다.
창문 밖이 도시의 풍경이 아니다.
이질적인, 공간과 빛이 뒤틀린 형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연회장을 나가는 문이 열리지 않는다.
헌터들이 나서서 스킬을 쓰는데도 파괴되지 않고 있다.
“역시…….”
뭔가 문제가 생겼다. 우리 모두가 어느샌가 던전 안에 들어와 있던 모양!
젠장. 언제부터지?
“아하하하핫. 아까 그 녀석들. 죽으면서도 이렇게까지 한 모양이에요. 정말이지. 광신도라는 녀석들은 곤란하다니까요~”
“그런 게 가능해요?”
“강제 미궁 생성. 던전 메이크. 어느 쪽으로 불러도 상관은 없지만. 신적 존재가 던전을 만들어내는 현상이랍니다. 성좌들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대가만 맞춰지면 언제든지 가능한 일이잖아요?”
설마.
저 테러리스트 놈이 죽으면서…….
-던전이 생성되었습니다.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여덟 다리로 걷는 자]
난이도 : 던전 4성 – 중급
던전을 탈출하라.
보상 : 레전드 스킬 교환권
추가 보상 : ???
-신들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신들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신들이 당신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는 건 이런 때 쓰는 게 아닐까?
결계석이 완벽한 것이 아님은 알지만, 설마 강력한 안전시설을 갖춘 이 특별한 호텔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그만큼 그 물건이 몹시 중요하다는 것 아닐까요? 당신이 슬쩍 챙긴 그거 말이죠.
리블이 아직 활성화되어 있는 텔레파시로 말했다.
전국옥새.
이게 그렇게 중요한 거였나?
능력이 확실히 대단하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얻을 물건인가?
신이 직접 나설 만큼?
그러고 보니. 거미 괴물로 변했던 테러리스트의 리더 녀석이 이걸 가장 먼저 챙기려고 했었지…….
잠깐 사이. 주변 풍경이 점점 더 괴악하게 변하는 게 보였다.
천장이 갑자기 쑤욱 하고 올라가며 넓어지고, 주변의 연회장은 이미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모한다.
“리블. 이거 막거나 멈추는 방법은 없나요?”
“음~ 다른 성좌가 끼어들어서 힘을 행사하면 멈추거나 막을 수 있죠? 하지만. 다들 그러지는 않을걸요.”
“젠장…….”
그래. 우리 인간은 너희 높으신 것들의 장난감이다 이거지? 두고 봐라. 내 기필코…….
“호오… 좋은 눈빛이네요.”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죠?”
“일단 완전히 던전이 되면, 그 이후에나 나가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있을 거랍니다. 지금은 기다려야죠. 어차피 오래 걸리지도 않겠지만.”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벽이 흔들리며 무너지고, 천장은 아예 사라졌다. 그리고 축축하고 말캉거리는 바닥 위에 서 있었다.
하늘은 어둠으로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코를 치르는 악취가 흘러넘쳤다.
뭐야, 여기는?
그렇게 생각할 때다.
“컥! 커어컥컥!”
바닥에 눕혀 뒀던 부상자가 비명을 지르며 거품을 물고 부들거린다.
근처에 있던 이가 재빠르게 달려가 보니, 거품의 색이 이상했다.
“독이다! 이 악취…… 독이야!”
“What…….”
독이라고!!??
나는… 별문제 없는데?
[주군께서는 무공을 익히셨고, 이뮤니티 패시브가 있으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괜찮으신 겁니다.]
그런가. 무척이한테 독룡의 어금니 반지를 줬던 게 신의 한 수였구나. 다행이다.
“형! 괜찮아?”
녀석이 반지를 빼려고 한다.
“괜찮아. 빼지 마. 네가 하고 있어.”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어떻게?”
의문과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라서, 답을 해 주었다.
“무공 익히다 보면 독에 대한 내성도 생겨.”
사실 무공 외에 여러 가지 스킬이 중첩된 덕분이기도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내 말에 무척이가 ‘헐.’ 하고 감탄했다.
“무공 진짜 편리하네… 나도 좀 더 빡빡하게 수련해야겠는걸.”
“이런~ 섭섭하네요. 저는 걱정 안 해주십니까?”
무척이의 상태에 안심하는 사이. 리블이 느물거리며 너스레를 떤다.
네놈이 이 정도로 쓰러질 리가 없잖아.
그나저나.
주변을 돌아보니, 부상자들 중 일부가 경기를 일으킨다.
아직 죽은 이는 없어 보이지만, 상황은 심각했다.
“해독 아이템 가진 사람 없어요!?”
“누가 여기 도와주세요!”
게다가.
다들 태도가 아까와는 완전히 달랐다.
테러리스트를 처리한 이후에는 그래도 서로 챙겼던 그런 것들이, 지금은 아예 사라졌다.
원래 일행이었던 이들끼리는 서로 뭉치고 있지만, 다른 이들을 선뜻 도우려고 하지 않고 있었다.
“원래 목숨의 위협 앞에서는 경계심이 올라가는 게 생명의 본능이죠.”
그랬다.
당장 포션이 앞으로 필요할지 모른다.
어쩌면 마력을 한계까지 써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도망쳐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단 한 방울의 체력과 마력이 모두의 생사를 가르게 될 터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하지만 이런 종류의 재난 영화를 보면 마지막에 꼭 서로 죽고 죽이더라고요.”
내 말에 리블이 말했다.
“보통 성좌들은 그런 영화를 좋아합니다. 마지막에는 죽고 죽이는 걸 특히 기대하지요.”
원하는 대로 해줄까 보냐.
‘따봉으로 안전지대를 만드는 스킬을 살까?’
[지금 따봉은 374만입니다.]
저번에 쓰고서 남은 따봉이 어느샌가 회복이 되어 있었다.
예전에 올려두었던 영상에서 무슨 연금처럼 따봉이 쌓이고 있다 보니 충전되고 있다.
그렇다면.
“형. 내가 할게.”
“뭐?”
“내가 할 수 있어.”
무척이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독 내성 버프 걸어드릴 테니! 부상자 모두 한곳으로 모아 주세요! 어서!”
“빨리 움직여!”
“저쪽으로!”
무척이의 외침에 그제야 사람들이 움직인다.
그사이 무척이는 가까운 부상자들에게로 다가가 한 명, 한 명에게 스킬을 사용한다.
기록사의 능력으로 독 내성이라는 글자를 쓰자, 부상자의 발작이 잦아들었다.
“효과가 있다!”
“오오…….”
다들 환호하는 가운데, 차례대로 무척이가 독 내성 스킬을 걸어 주었다.
생존자의 수는 이제 부상자 포함 52명.
그렇게 일단락을 내고.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닥이 물컹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주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이 스킬로 만든 빛의 구체 때문에 바닥이 보일 뿐이다.
기괴하게도.
바닥은 축축한 육질로 된 것이었다.
마치… 혀 같은…….
-이야~ 과감하네요. 아무리 이런 것, 저런 것, 전부 던전으로 만들 수 있다지만. 이건 조금 더 재미있군요.
-어딘지 알아요?
-던전에 들어올 때 본 퀘스트를 잘 떠올려 봐요.
[여덟 다리로 걷는 자]였……. 설마.
-여기…… 성좌의 입속인 겁니까?
-정답! 상으로 나중에 마력 수련 할 때 예뻐해 드리겠습니다아~
성좌의 입 안!
그 경악스러운 사실에 잠시 멍해졌다.
지금 그 변신 보스 거미가 섬기는 성좌의 입 안으로 끌려들어 왔다는 거잖아!
이게 던전이냐! 그냥 죽으라고 하지!
-이 던전의 본래 테마는 ‘잠입’이었습니다.
-잠입이요?
-예. 특수 던전들 중에 테마가 붙는 던전도 있다는 건 아시겠죠? 예전에 엄지척 씨가 경험한 비늘 악마의 던전도 그런 녀석이었습니다.
과거 정지한과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테마. 테마… 그렇다면 이곳에도 테마가 있을 거야. 그게 열쇠다.
4성 중급 난이도 던전.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고레벨이 가는 던전이지만……. 이게 ‘던전’이라면. 해결책이 있을 거다.
[들으라.]
웅웅웅웅웅.
공간 전체가 울리며 성별도 연령도 알 수 없는 괴이한 목소리가 들렸다.
인간의 성대로 나오는 소리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하찮은 것들이 내 계획을 방해하였구나. 그러나 여는 관대하니, 하찮은 너희에게 기회를 내리노라.]
이건. 성좌의 의지!
[여덟 다리로 걷는 자]의 목소리다!
[전국옥새라는 하찮은 부족장의 물건과 너희의 절반을 제물로 바쳐라. 그렇다면 살아 나갈 수 있으리라.]
그 말이 끝남과 동시.
우리들 앞으로 거의 3미터는 되어 보이는 검은색의 수정이 나타났다. 수정은 뒤틀려 있었지만, 마치 거미처럼 생겼다.
여기에 제물을 바치라는 거겠지?
[여덟 다리로 걷는 자]
난이도 : 던전 4성 – 중급
던전을 탈출하라.
탈출 조건 1 : 전국옥새. 던전 내 참가자 절반의 인신 공양.
보상 : 레전드 스킬 교환권
추가 보상 : ???
퀘스트가 갱신된다.
“미쳤어…….”
“인신공양!? 악신아! 우리가 너에게 굴복할 것 같으냐!”
“저쪽을 제물로 바치고 우리가 살아남자고. 어때?”
반응이 가지각색으로 나뉘었다.
순식간에 서로 친분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끼리 뭉쳤는데, 그렇게 자연스럽게 5개 그룹으로 나뉘었다.
그중에서 알아볼 수 있는 건 신주란이 속한 그룹뿐.
“형은 어떻게 할 거야?”
“어느 그룹도 가담하지 않을 거야. 그보다는… 찾아야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걸 우선으로…….”
[과연 주군이십니다.]
“너는?”
내 말에 무척이가 자연스럽게 권총 홀더를 쓸었다.
“형이 가는 곳이 내가 가는 곳이지. 순순히 죽어줄 생각은 없어.”
“그래.”
이 세상에 공략할 수 없는 던전은 없다.
아주아주아주, 어려울 수는 있지만.
그건 시스템이 약속한 법칙과도 같았고. 나는 그것을 믿기로 했다.
“여러분! 인신 공양이라니요! 제정신입니까?”
“신을 어떻게 이깁니까? 그것 외에 나갈 방법 있어요? 시간을 끌수록 더욱 성좌를 자극하는 꼴 아닙니까?”
“아아아아악! 내보내줘. 여기서 내보내 달라고! 집에 애들이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당연한 이야기지만 헌터도 사람이다.
하나둘씩 패닉이 전염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내 일을 해나갈 뿐.
“통찰의 눈.”
[여덟 다리로 걷는 자의 신상]
등급 : ?
분류 : 성물
아주 우연하게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어떤 신의 형상을 닮은 검은 수정.
이 수정을 발견한 이가 신에게 이를 바쳐 성물이자 신상이 되었다.
지금은 던전의 핵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기능 : 파괴 불가
기능 : 던전의 핵
기능 : 파쇄력 발산
*파쇄력 : 일정 반경 안에 들어가면, 힘이 작용하여 대상을 파쇄한다.
[하찮구나. 너, 작은 필멸자야. 네가 그것의 본질을 본다 하여, 달라질 것은 없느니라. 전국옥새를 바쳐라. 그리하면 너를 더 높고 고귀하게 만들어 주겠노라.]
“무척아, 방금 목소리 들었어?”
“음?”
“아니야. 나한테만 들리는 모양이네.”
척량이 말했다.
[주군만이 진영을 택하지 않아서 성좌가 유혹을 하는 것 같습니다.]
척량도 들은 모양이네?
[네. 저는 주군께 속해 있는 자이다 보니.]
그때 리블이 말했다.
“호오. 재미있는 제안을 하는군요?”
정정해야겠다. 이 미친 악마는 이걸 또 어떻게 엿들었나 보다. 능력이 아주 많네, 진짜.
“제안?”
소리를 못 들은 무척이가 리블에게 묻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성좌가 나에게 직접 제안했어. 조용히 해.
-뭐? 무슨 제안?
-사도가 되란다. 들을 가치가 없는 헛소리지.
무척이의 침묵을 뒤로하고, 신상을 보며 생각을 계속했다.
‘어찌 되었건 저게 던전의 핵으로서 기능한다면……. 저걸 파괴하면 된다 이거지.’
그런데 파괴 불가라는 옵션이 붙어 있다. 시스템은 절대적인 것이라서, 파괴 불가라고 하면 파괴 불가다.
저걸 파괴하려면 시스템적으로 ‘절대적인 파괴’ 같은 것이 필요할 거다.
마치 초등학생의 반사>무지개반사>지구반사>우주반사… 같은 서열놀이인 거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