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9화
“후, 거미 님. 이쯤에서 타협하죠. 돈 드릴 테니까 알아서 물러나시면 안 됩니까?”
키아아아악!
놈이 뱉은 독액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바닥이 부글부글 거품을 내며 푹 꺼지는 걸 보니.
“으음, 역시 돈으로 매수는 안 되는 모양이군요.”
일부러 상큼하게 미소를 짓는다.
속으로는 좀 쫄았다.
하지만 겉으로 봤을 때는 여유 있는 것처럼 보일 거다.
‘나중에 그림 좀 잘 나오면 좋겠는데?’
[노오오옴! 내가 두렵지도 않은 게냐아아아!]
음, 보스 거미도 속았군.
그러고는 염혼염동에 모든 힘을 불어넣어, 녀석을 압박해 나갔다.
그러나.
변신 와중에도 녀석은 염동력을 계속 유지 중이다.
아니, 점점 강해지며 나를 밀어내고 있다!
이런 미친!
드득.
내 몸이 밀린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척량이와 저 기사단 같은 이들도 마찬가지.
내 마력&내공 수치는 S인데 그걸 밀어내!?
좋아. 그러면 따봉을 써서…….
[끼아아아아아아악!]
섬뜩한 비명. 동시에 거미 괴물과 나의 염력이 동시에 폭발하며 해제되었다.
쾅!
폭발에 기사들이 뒤로 날아가 처박힌다.
나는 내공을 사용해 천근추의 수법으로 바닥에 발을 고정했다.
그나저나. 대체 그 비명은 뭐였…….
“염력은 원한으로 상쇄가 된다는 거. 혹시 아시나 모르겠군요?”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리블의 목소리가 귀에 생생히 들려온다.
‘이것도 스킬인가?’ 하고 바라보니, 이미 시체 넷이 그의 옆에 서 있었다.
이 아수라장을 틈타서 죽어 있던 놈, 직접 죽인 놈 모두 오순도순 부하로 만들어서 복속시킨 모양.
“사념(思念)이라는 것은 결국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 그것은 망자들의 사념에 중화가 되죠~ 물론 쉬운 건 아닙니다만. 저는 할 수 있거든요!”
내 궁금증을 알아차린 건지, 묻지도 않았는데 떠벌리며 과장스러운 몸짓을 한다.
와, 그러니까 생각만으로 내 염력을 쳐 낼 수 있다는 거구나.
“그거 일반 헌터는 못 하잖습니까!”
“그거야 스킬에 전적으로 의존하니까요? 스킬 외의 다른 세상도 봐야 합니다. 엄지 군은 이미 느꼈잖아요.”
아니, 그게 뭔데요? 젠장할.
[네크로맨서! 감히 내 형제들을 모욕하느냐!]
아무튼 내 앞의 보스 거미는 자기 형제들로 언데드를 만든 리블이 겁나게 미우신 모양이다.
“요즘은 언데드도 DIY 시대인데 왜 이러십니까? Do it yourself 모르십니까? 연필 공짜로 주는 스웨덴 가구 회사가 가장 잘하는 말이라고요!”
‘그 E케아도 요즘은 조립 서비스 있어!’
위우웅!
놈이 염력을 사용하는 것이 느껴진다.
목표는 리블! 그러자, 시체 중 하나가 박살 나서 덜렁거리는 입을 벌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끼아아아아아아악!]
염동력이 그대로 소멸.
아니, 저런 게 된단 말이야!?
리블이 말했다.
“의지가 충만하지 않다고요? 노오력이 힘들다고요? 그렇다면 이게 답입니다. 시체를 DIY해서 터뜨리세요!”
너는……. 너어는 편집이다.
이 대사는 못 쓴다.
아무튼 이 미친 상황 속에서 내 몸은 질주하고 있다.
거미 괴물을 향해 그대로 돌진!
염혼염동이 안 통한다면, 검기로 썰어 버리겠어!
[그렇다면 더러운 그 몸을 찢어발겨 제물로 바치겠노라!]
그런데 거미 괴물은 분노에 눈이 돌아가 버렸는지, 나를 내버려 두고 저 반대편의 리블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대로 뒤에 붙어서 리블과 협공할까?
-형! 옥새부터 챙겨!
[주군. 옥새가 먼저입니다! 적이 가장 싫어할 행동을 하소서!]
옥새!
무척이와 척량이의 말을 듣고 바로 진로를 수정.
옥새런을 실시했다.
척량이 나 대신 거미 괴물의 뒤를 쫓아가고, 무척이는 뒤에서 고요히 힘을 모으는 게 느껴진다.
휙!
[감히 그분께 바칠 물건에 손을 대느냐!]
리블에게 달려가던 거미 괴물이 나를 본다. 그리고 그 두 눈에서 보랏빛의 빛이 번쩍인다 싶은 순간, 어느샌가 날아온 희망의 수호자가 나와 거미 괴물 사이를 가렸다.
파지지지직!
녀석이 쏟아낸 종류를 알 수 없는 힘이 희망의 수호자에 의해서 가로막혔다.
파괴되지 않는 절대의 방패!
[희망! 너절한 신의 성물 따위가 감히!]
“오우, 그 대사 보통 엑스트라가 쓰는 대사인데. 플래그를 꽂았군요.”
리블의 도발기에 거미 괴물은 그야말로 격노했다.
[이……. 무슨!? 이 더러운 시체 놀이꾼이!]
‘콰쾅!’ 하고 방패 너머로 큰 폭음이 인다.
방패로 시야가 가린 탓에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보이지는 않지만, 리블 저놈이 이 일격으로 죽었을 것 같진 않다.
그사이 나는 부서진 연단에 도착해 전국옥새를 향해 그림자를 뻗었다.
스륵.
“이건 이제 제 겁니다.”
이 멘트, 꼭 해 보고 싶었다.
콰우!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보니, 무척이가 두 개의 권총을 하나로 합쳐서 길쭉한 총신의 저격총을 들고 있었다.
이미 한 발 쐈는지 총구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난다.
저게 총이냐? 소구경 대포냐?
그 결과물을 확인하니 거미 괴물의 다리 두 개가 사라져 있는 게 보였다.
“우와, 일격에 다리 두 개를 날렸어?”
기가 막히는 파괴력.
그사이, 거미 괴물 몸체에 시체가 달라붙어 엉겨 붙었다.
전부 거미 언데드다.
[주군, 이것으로 보스 몬스터를 제외한 테러리스트 모두를 사살했습니다.]
그렇게 습격자 전부가 리블의 권속이 된 것.
‘이게 네크로맨서의 무서운 점인가?’
리블은 그렇게 시체들을 DIY하며 본인은 벌써 새 샴페인 잔을 흔들고 있다.
악 성향 성좌이기 때문일까.
연미복을 입은 모습이 어찌 보면 어릴 적 동화에 나오는 마왕과도 같았다.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 그 자체를 자극했으니까.
“크헤헤헤헤아헤헤헤헤헹헹헹헹!”
저 방정맞은 웃음을 제외한다면 말이지.
어찌 되었건.
시체들은 리블의 마력에 힘입어 강화되었는지, 거미에게 달라붙어 공격했다.
갑각을 박살 내고, 몸통에 상처를 낸다.
그 와중에 시신들도 하나둘 산산조각 나고 있지만, 언데드들의 공격은 확실히 대미지를 주고 있었다.
그때였다.
“광휘여, 우리에게 깃들라! 나의 군대여, 진격하라!”
카리스마 넘치는 이름 모를 여성 헌터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소환수인 기사들의 전신에서 광채가 솟구치고, 그 뒤로 마법사들과 신관들의 스킬이 쏟아진다.
저 마법사와 신관도 소환수겠지? 대체 무슨 직업이 저렇게 먼치킨이냐?
촤아아악!
척량은 그 주변을 돌며 염혼염동의 엑토플라즘을 이용. 사슬을 만들어 거미 괴물을 묶어 억누르고 있다.
저기에 끼어드는 게 옳은 일일까? 아니면…….
“형.”
무척이가 내 옆으로 뛰어내렸다.
탁-
거구의 몸이나 그 소리는 흡사 고양이의 착지처럼 조용하다.
“이게 다 무슨 일이냐. 진짜…….”
나는 녀석에게 마력 포션을 건넸다.
무척이는 빠르게 마력 포션을 삼키며 다음 스킬을 쓸 마력을 억지로 다시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 저격을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른바 쿨 타임 상태.
리블의 언데드.
그리고 소환수인 기사들과 마법사들까지 뒤엉켜 싸우고 있다.
특히 소환체인 기사와 마법사들은 어차피 주인의 명을 받드는 인형과도 같은 존재들.
자신의 목숨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싸워 대기 시작했다.
그 뒤로 신관형 소환수들도 보조하고 있었는데 확실히 보통 헌터들의 전투법과는 차이가 컸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는 사제들은 상처 회복을 할 때 무의식적으로 통증을 염두에 두고 회복한다.
그러니까 사지를 움직일 때 아픈가, 아프지 않은가를 무의식적으로 고려한다.
허나 소환체인 사제가 같은 소환체인 기사와 마법사들을 회복할 때는 ‘사지의 기능이 온전한가’만 본다.
그렇기 때문에 뼈가 허옇게 드러날 정도의 상처도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치료만 하고 그 마력을 아껴 다른 소환체를 치료한다.
그런 회복을 받은 소환수들도 자아가 없기에 싸운다.
개중에는 자폭 공격을 감행하는 소환체도 있었다.
콰광!
그렇게 사라진 소환체는 푸른빛을 그리며 중갑 헌터에게 빨려 들어간다.
중갑 헌터는 자기 몸뚱이만 한 거대한 핼버드를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깨부수며 진격했다.
여전히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 옆에서 리블도 함께 싸웠다.
“오우, 32호 해골 제로투 댄스 하면서 폭발 실시!”
콰과과과광!
진짜로 해골이 제로투 댄스 스텝을 밟으며 달려가 폭발했는데 그 위력이 어마어마하다.
그걸 보며 척량이 화를 냈다.
[아니, 소환체는 어차피 소환 해제되어서 주인한테 돌아간다고 쳐도, 저 리블이라는 작자는 자신의 해골(?)을 막 굴리는군요!]
화내는 지점이 그거냐.
리블이 말했다.
“2사단 모두 해골 던지기! 갑니다요!”
그러자 언데드가 된 적들이 자기 머리를 뽑아서 투척했다.
콰과과과과과광!
척량아, 내가 이걸 편집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미친놈이 진지하게 안 싸우고 있다는 것보다 이 짓을 편집할 방법이 없다는 게 더 슬퍼진단다.
이 소환수+언데드 연합군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저항 속에서도 거미 보스는 강했다.
[이 버러지들!]
놈의 인간 상반신은 스킬을 사용하는 듯, 어느샌가 우악스럽게 생긴 두툼한 환도를 양손에 하나씩 꼬나 쥐고 휘두르는데 그 위력에 소환체들이 추풍낙엽처럼 개박살이 났다.
소환체들이 절명하며 외쳤다.
[공주마마! 옥체 보전하시옵소서!]
[왕국에 영광이 있으라!]
중갑 헌터가 답했다.
“오냐! 뒤는 나한테 맡겨라. 내 오늘 제대로 위스키 좀 빤 보람이 있네.”
콰과과광!
그녀의 핼버드가 거미 다리를 후드려 팬다.
하지만 위력에 비해 타격이 적다는 것을 깨닫자 그녀가 외쳤다.
“대검으로 바꿔!”
소환체가 소리쳤다.
[공주마마께서 무기를 교체한다 하셨다!]
그녀는 무기가 교체되는 동안 몸을 빠르게 굴려 거미 다리의 공격을 피해냈다.
[중갑옷인데도 엄청 빠르군요. 과연 공주! 적의 대가리쯤은 충분히 박살 낼 수 있는 근력입니다.]
그렇군. 감탄만 나온다.
거미 다리와 환도에는 불길해 보이는 마력 칼날이 타오르고 있는데, 스치기만 해도 기사들의 갑옷이 무슨 쿠킹 포일처럼 구겨진다.
그나마 오러 블레이드가 둘러진 검과 방패만이 견디며 충돌한다.
그 폭음이 무시무시했는데.
중갑 헌터는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적의 공격을 좌 구르기로 피해냈다.
나는, 그리고 척량이는 이 순간 염혼염동의 힘으로 저놈의 염동력을 억누르고 있는 상황.
만약 여기서 우리 둘의 힘이 약해진다면 거미 보스는 모두를 도륙할지도 모른다.
그녀가 소리 질렀다.
“전군! 가랏! 적의 수급을 내게 가져오라!”
스킬을 발동했는지.
우렁찬 외침과 함께 소환체들이 일제히 오러 블레이드를 쓰기 시작했다.
[공주님께서 적의 피를 원하신다! 강산을 피로 물들여라!]
와아아아아!
약간 이쪽 소환체들도 제정신은 아니긴 하군.
거미 괴물도 사기지만, 기사와 마법사, 신관을 소환수로 소환한 저 헌터도 장난이 아니었다.
평행선을 그리던 전투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