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166화 (166/305)

제166화

그것은 흑녹색의 피리였다.

고풍스럽고 낡은 피리. 그러나 그 마력이 너무 강렬해서 누구도 가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했다.

만파식적이라… 한국인이라면 거의 대다수는 한 번쯤 들어본 전설 속의 물건.

그게 실존했다고!?

“통찰의 눈.”

[만파식적(전)]

등급 : A+

분류 : 악기

신라 신문왕의 아버지인 문무왕이 동해 용왕이 된 이후 신라의 왕가에 내린 비보.

피리를 불면 병이 낫고, 가뭄과 홍수가 해결되며, 적군이 물러간다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은 반으로 부러져 그 힘이 약화되어 있다.

기능 : 월 1회 소속 세력 전체 ‘완전 회복’.

기능 : 월 1회 소속 세력 지배 지역 전체 ‘자연 재해 해제’.

진품이네!? 다만 반쪽짜리……. 그래도 대단히 훌륭하다.

(전)이라고 써져 있는 것을 보면 (후)도 있는 건가?

뒷부분을 찾아내서 원래의 모습으로 수복하면 엄청난 물건이 될 것 같았다.

[아마도. 하나가 되면 희망의 수호자급이 될 듯합니다.]

저대로도 이미 희망의 수호자급은 되는 거 같은데?

소속 세력 지배 지역 전체의 자연 재해가 해제된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데?

[완전 회복도 아주 강력합니다.]

“자. 그러면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시작 가격은 200억! 네. 300억 나왔습니다. 400억. 450억. 470억 나왔습니다.”

아니… 꼴랑 320억 가진 나로서는 엄두도 못 내겠는걸? 전반부에 했던 경매라면 그래도 비벼볼 여지가 있었지만.

여기서는 무리였다.

“정지한은 왜 여기 오라고 한 걸까, 형? 우리들이 이 정도 금액은 없다는 걸 그치도 알 텐데.”

“글쎄다…. 차라리 전반부 때 물건을 살 걸 그랬나? 그래도 마력의 충전 반지는 살 만했는데.”

마력의 충전 반지.

지나간 경매품인데 200억에 팔렸다.

평상시에 마력을 충전해 놨다가 유사시 쓰게 해 준다는 물건.

헌터는 되도록 마력이 다 차면 던전에 바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이게 쉽게 되는 게 아니지.

동료들 마력도 다 채워져야 하고, 목표로 한 던전의 진입도 예약해야 하니까.

그렇게 잉여 시간에 회복되는 잉여 마력을 저장했다가 쓰면 아주 굿이지.

문제는 마력 충전 반지 자체가 물량이 적다는 것.

던전에서 얻는 숫자는 아주 적고, 제작계 헌터는 아직 저걸 제대로 만들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비싸지.

어쨌든 만파식적은 우리가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지켜만 봤다.

“9,800억! 9,800억 더 없습니까! 낙찰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무려 9,800억에 팔렸다.

어마어마하네…….

그렇게 생각하는데 다음 물건이 나온다.

이것도 어메이징한 물건이었다.

“신라의 자랑! 신라삼보의 하나인 천사옥대입니다! 이 물건은 신라 진평왕 시절에, 옥황상제가 나라를 잘 다스리라는 의미로 선녀를 통해 하사했다고 하는데요. 사실 진품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그 마력은 진짜입니다!”

신라삼보(新羅三寶)중 하나인 천사옥대(天賜玉帶)라?

어렸을 적에 학교 다니면서 들은 적이 있다.

신라의 세 가지 국보로, 허리띠인 천사옥대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건축물이다.

황룡사 9층 목탑(皇龍寺九層木塔) 하고 황룡사 장륙삼존불상(皇龍寺丈六三尊佛像)이 아마 나머지 두 개의 신라삼보였었지?

그나저나 저런 게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나는 즉시 통찰의 눈을 써 보았다.

[천사옥대]

등급 : A+

분류 : 허리띠

신라 진평왕 시절에 옥황상제가 하사한 허리띠.

전설의 신수 용의 힘이 서려 있는 이 허리띠는 착용자의 안전을 지키는 권능을 가졌다.

기능 : 1일 절대 방어 3회.

기능 : 1일 완전 회복 3회.

기능 : 마력 충전식 방어막 상시 가동.

이것도 무시무시한 물건이네…….

사는 건 애초에 포기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저거 우리나라 국보 아냐?

만파식적도 그렇고.

저런 걸 사적으로 이렇게 사고팔고 해도 되는 거야?

그런 허탈감과 함께 여기 와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감이 왔거든.

세계의 최정상급과 나의 격차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알 것 같단 말이지.

그들은 저런 물건을 손에 넣어 몸에 두르고 다닌다.

결국 국가 단위로 움직이는 자들이고.

이제 와서는 헌터가 국방 전력인 상황이니까.

만파식적, 천사옥대, 독룡의 어금니 반지 같은 것은 천문학적인 돈을 써가며 구매해 쓰는 거다.

혹은 스스로 목숨을 걸고 고레벨의 던전에 들어가서 몬스터를 처리하고서 저런 물건을 얻어낼 거고.

갓튜브 랭킹 1위의 ‘그 헌터’도 그런 인간일 것이다.

정지한은 나에게 이걸 보여 주려고 부른 거겠지.

어차피 지금 내가 가진 돈으로는 이 물건들을 살 수도 없으니까.

그렇다고 뭐 습격해서 빼앗는 것도 불가능하잖아?

결국. 이 경매를 보는 것 자체가 정지한의 의도일 거다.

“6,500억! 6,500억입니다. 더 없으십니까? 낙찰되었습니다!”

천사옥대는 만파식적에 비해서는 낮은 가격에 팔려나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마어마한 가격이다.

물건이 다시 내려가고, 다음 물건이 나온다.

“이번 물건은 오늘 경매의 꽃이자 열매. 오늘을 빛내줄 하이라이트! 전국옥새(傳國玉璽)입니다!”

그것은 옥으로 만든 커다란 도장이었다.

영롱한 빛과 마력에 눈이 멀 것 같다. 근데 저거…….

“전국옥새다. 소문이 사실이었어.”

“길드장님. 나왔습니다. 전국옥새입니다.”

“무조건 매입하는 것으로. 예. 예. 자금은… 예.”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림이 심해졌다.

“저게 나오네…….”

무척이가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게. 저거 그거지? 진시황이 만들었다는 거.”

“맞을걸?”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을 이룩한 진시황.

그가 조나라에 있었다는 화씨지벽이라는 아주 큰 옥으로 만든 황제 전용의 도장이 바로 전국옥새다.

역사에 그게 실존했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소실되어서 지금에 와서는 진품을 찾을 수 없었다고.

그나저나 참…. 어이가 없다. 천사옥대도 우리나라 국보지만, 전국옥새는 중국 쪽 국보 아닌가? 이런 게 버젓이 거래가 되다니… 실화냐?

게다가.

다들 저게 나온다는 것을 알고 왔다. 정지한도 알고 있었겠지.

“통찰의 눈.”

잽싸게 통찰의 눈을 써 봤다.

[전국옥새]

등급 : S-

분류 : 도장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 황제인 진시황이 제작을 지시한 황제의 인장.

화씨지벽으로 만든 이 보물은 제국의 상징이 되어 후세에도 여러 왕국과 제국에 이어져 내려왔다.

기능 : 월 1회 ‘절대 명령’ 사용 가능.

기능 : 소속 세력 전체 ‘풍요’.

기능 : 소속 세력 전체 ‘강건’.

기능 : 매력 +500

기능에 딸린 능력에 정신을 집중하면, 그 능력들의 효과도 알 수 있었는데, 그 내용은 이랬다.

절대 명령 : 소환수 및 이계의 존재에게 강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풍요 : 던전에서의 보상이 크게 상승한다.

강건 : 방어력, 체력, 근력 등의 신체 능력이 상승한다.

‘와, 최상위권 길드들은 이런 걸 쓰는구나.’

던전에서의 보상이 크게 상승한다는 것도 엄청나지만, 기본으로 강력한 버프를 상시 걸어준다는 점도 강력했다.

그뿐이 아니다.

소환수 및 이계의 존재에게 강제 명령을 내린다……?

이거 크지. 레이드 보스에게도 써먹을 수 있는 스킬 아닌가?

제한이 안 적혀 있는데?

나는 그 내용을 무척이와 리블에게 텔레파시로 보내 주었다.

리블은 히죽 웃었고, 무척이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 된다.

“저런 게 막 굴러다녀도 되나?”

“그러게나 말이다. 말세는 말세인 거 같다. 국보가 굴러다녀. 그래서 하는 이야기인데 이 경매장 안전은 괜찮으려나. 아까 만파식적이 9,800억이었잖아? 저거는 거의 조 단위로 갈 거 같은데…….”

……아무리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고는 해도, 이건 상상이 안 간다. 이게 현실적인 금액인가?

‘이쯤 되면 국가 예산이 오가는 거구나.’

척량이 답했다.

[아마 여러 정부 인사들이 붙어 있을 겁니다. 주군. 이제 더 이상 탱크도 제트기도 필요치 않은 시대가 왔으니까요.]

그래. 인간과 인간이 싸우던 시대에서 이제 인간과 던전이 싸우게 되었다.

핵폭탄보다 저런 아이템이 더 값어치가 있는 세계가 온 것.

그러니까 탱크 살 돈, 제트기 살 돈, 미사일 살 돈을 던전 아이템에 붓고 있다는 거지.

그래도 현실감이 없다.

“그나저나, 카탈로그에 없는 물건인데도 다들 알고 올 정도면 소문이 제법 났다는 건데. 괜찮나?”

“괜찮을 거예요~”

리블이 말을 받는다.

“괜찮다고요?”

“그럼요. 이 호텔 전체에 강력한 방어 마법들이 줄줄이 걸려 있거든요~ 게다가 이 호텔 최상층에 사용된 방어 아이템들도 엄청난 수준이구요. 적어도…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세웠을걸요?”

천문학적인 가격의 건축물은 얼마나 비싼 거지?

[주군. 정보를 검색해 보니, 5성급 호텔을 짓는 데 대략 2,000억에서 3,000억 사이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비술이나 마법이 들어간다면 더욱 값이 오를 테니. 거기에 몇 배는 되겠지요.]

미쳤군.

나는 이미 떼부자라고 춤추고 있었는데 무슨 재벌 히어로 느낌이야.

그때 리블이 말했다.

“돈 아끼지 말고 써두는 게 좋습니다~ 어차피 ‘돈’도 튜토리얼이 끝나면 그저 종이에 잉크를 찍은 기념품이 될 테니까요.”

“……?”

내가 뭐라고 반문하려던 순간.

콰쾅!

폭발음이 들렸다.

* * *

“별 너머에 광기가 숨어 있으니. 듣거라. 사악하고 오래된 신을 추종하는 광신도 무리가 이르매 ‘이는 때가 임박했다’ 하노라.”

저벅저벅-

누군가의 핏물 위를 걸어갔다.

“하늘이 열려 별자리들이 눈을 뜨니 그 수가 모래알과 같더라. 별들이 보내는 사도가 세계를 혼란케 할지니. 그중에서도 가장 극성스러운 자들이 대지를 찢으리라.”

시체. 시체. 그리고 시체.

거대한 폐쇄된 창고.

그 안에 있는, 거의 수백은 될 법한 사람들의 시체들 사이에서, 오래된 예언을 내용을 낭송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정지한.

그는 또다시. 비밀스러운 일을 하고 있었다.

“한 번에 두 개의 일을 처리하는 건 불가능하기에 경매장 쪽의 사건은 늘 제쳐 두었었다. 하지만.”

그는 엄지척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옆의 리블을 생각했다.

그가 손목에 찬 시계를 본다.

“시간이 됐군. 이번에는 두 사건 모두를 막을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정지한의 등 뒤로 톱니바퀴의 환영이 떠오른다.

그것이 회전하면서, 주변의 시체들이 모조리 빛의 입자로 변해서 그에게 빨려 들어갔다.

이윽고 주변에는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것은 가면이다.

하늘에 홀로 떠올라 불길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 가면. 그 모양새는 웃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절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기괴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것은 이 세계의 물건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가면의 입이 움직인다.

[하찮은 필멸자가 내 계획을 방해하는구나.]

“네 하찮은 계획 따위는 애초에 실패하게 되어 있었다.”

[히. 하하. 히. 하이호. 우습구나. 네가 감히 나 비웃는 ■■■를 비웃는가?]

“안 될 게 어디 있지? 비웃는 델록.”

[히햐아아아아! 나의 진명(眞明)을 부르다니! 내 너를 징죄하리……. 아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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