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165화 (165/305)
  • 제165화

    이윽고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복도 밖에는 불이 꺼져 있다.

    아무리 봐도 행사를 하는 곳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걸어왔다.

    “여긴 준비 중입니다.”

    나는 미리 정지한한테 들은 말을 내뱉었다.

    “음, ‘낙타’는 어디서 팔죠?”

    “아아, ‘낙타’를 사러 오셨군요. 알겠습니다.”

    그는 무전을 하더니 한 발자국 옆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 또 다른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이미 올라올 만큼 더 올라왔는데 서울에 이렇게 높은 건물이 있었나?

    일단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들어간다. 그가 말했다.

    “별말씀을. 부디 좋은 ‘낙타’를 구하시길.”

    문이 닫혔다.

    다시 엘리베이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리블이 말했다.

    “결계 술식이 제법이군요. 이건 상업의 신과 미궁의 신이 함께 가호를 내린 모양입니다.”

    “제가 지금 몇 층까지 올라가는지 모르겠네요.”

    “뭐… 그런 건 굳이 중요치 않습니다. 아마 여기는 제 생각이 맞다면…….”

    띵동-

    다시 문이 열렸다.

    그곳에는 우리와 똑같이 가면을 쓴 자들이 샴페인 잔을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동양인부터 외국인, 아예 인간이 맞나 싶은 자들까지 걸어 다닌다.

    모두가 비슷한 드레스 코드를 입고 다니지만 하나같이 강한 기세가 느껴졌다.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리블은 검지로 입술을 가리며 말했다.

    눈앞에는 기묘한 세계가 펼쳐졌다.

    * * *

    “와인에 이상한 건 안 들어 있는 것 같아. 형.”

    동생이 먼저 마셔 보고 말했다.

    “너 독도 해독하니?”

    “보통 사람보다는 잘.”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처럼 와인잔을 들고 같이 걸어갔다.

    연회장의 벽면 쪽으로 투명한 유리 케이스가 놓여 있고, 그 안에는 가지각색의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감정서, 그리고 예상 낙찰가도 써져 있었는데.

    여기로 오기 전에 받아 본 카탈로그에 있던 것들이었다.

    “근데.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 건데 원래 VIP경매라는 게 이렇게 하는 건가?”

    나는 연회장의 각 벽면에 놓인 전시품들을 들여다보면서 이야기했다.

    [염마족의 오른쪽 눈]

    등급 : B

    분류 : 장신구

    화염에 특화된 염마족의 오른쪽 눈이 썩지 않게 보존 처리한 것.

    화염계 능력을 증폭시켜 주며, 화염계 공격에 내성을 가지게 해 준다.

    그러나 솜씨 없는 자가 조악한 실력으로 가공하여 그 힘은 그리 강력하지 않다.

    기능 : 화염계 공격력 3% 상승.

    기능 : 화염 내성 3% 상승.

    이런 게 B등급이냐.

    낙찰 가격은 어디… 15억이나 한다고?

    아니. 너무했다, 진짜.

    “진짜 거물들은 룸에 앉아서 화면 보고 있을 거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리인이거나, 혹은 이런 거 재밌어서 오는 사람이거나 할걸?”

    “어, 그래?”

    무척이 이 녀석은 그걸 또 어떻게 안대?

    “예전에 자주 점심 먹었던 선배가 재벌집 아들이었거든. 그 사람한테 들었어. 가볍게 식사나 술 한잔하면서 경매 보는 거지. 여기서 사교 모임 비슷하게 돌기도 하고.”

    “아는 사람끼리 이야기한다, 뭐 그런 거?”

    “가면을 써도 피차 척하면 척이니까.”

    폰으로 ‘석상 왼쪽 독수리 가면이 저예요.’라고 쓰면 알아보기야 하겠다.

    그런데 그럴 거면 굳이 여기까지 와서 사교 생활을 해야 하나? 불편하지 않나?

    “인간들은 여러모로 복잡하게 노는 걸 좋아하잖습니까~”

    “그래요. 인간 아니라서 인간 관찰하는 게 좋으신가 보네요.”

    “좋죠~ 재미있잖아요? 특히나 마음에 드는 뼈들이 많아요.”

    ‘……사람 구경하러 온 거야, 수족관에 횟감 보러 온 거야.’

    아무튼. 여기 오기 전 카탈로그에서 가장 비싼 게 무려 1,800억짜리였다.

    그 정도면 레벨 100 이상의 헌터들 중에서도 최상위 헌터들이 가지려고 드는 물건이겠지.

    “하지만 진짜는 카탈로그에 없을 거야.”

    “왜?”

    “진짜는 소문을 낸다고 했어. 그래야 더 경매가가 올라간다고 하더라.”

    “일종의 상술이려나.”

    “그럴걸.”

    “캬하하하~ 지구의 술은 맛나네요. 아주 좋아요. 이런 순수한 포도 맛~ 독도 없고~ 기생충도 없고~ 피도 안 들어 있고~”

    ‘이 새끼는 지옥에서 술 빨다 왔나.’

    아무튼 리블 이놈은 술만 축내면서, 어떤 아이템이 좋다 나쁘다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보물보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걸 더 좋아했다.

    “잠시만, 레이디. 실례지만 어깨끈이 내려갔군요.”

    상체는 곰이고 하체는 여성인 정체불명의 무언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버려두고 전시 물품을 둘러보는데, 쓸 만한 것도 있고 저 가격에는 도저히 못 사겠다 싶은 엉망인 것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염마족의 눈이 그렇지.’

    그중에는 확실히 1,800억 한다 싶은 것도 있었는데, 물건의 능력을 보니 심지어 A+ 급.

    [독룡의 어금니 반지]

    등급 : A+

    분류 : 장신구

    독룡의 어금니를 가공해 만든 반지.

    독에 면역이 된다.

    기능 : 독 면역.

    심플하지만 강력하다. 독에 면역. 독이 안 통하는 것.

    내 정신면역과 같은 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물건이 1,800억.

    이야… 내가 요새 돈을 잘 벌고 있긴 하지만, 저 정도는 아직 무리지.

    “그나저나 형. 영약도 제법 있는데?”

    “그러게. 근데 영약은 가성비가 안 맞아.”

    영약이라는 게 건강에 진짜로 효과가 있다 보니, 부자들도 앞다투어 사 먹으려고 든다.

    내공을 증가시키겠다고 영약을 먹기보다, 그 영약 살 돈으로 아이템이나 무공 스킬을 몇 개 더 사는 게 몇 배나 더 이익일 정도.

    지금 보이는 이것만 해도 그랬다.

    [자소단]

    등급 : C

    분류 : 비약/영약

    화산파가 비전의 연단법으로 만들었다고 알려진 단약.

    섭취 후 운기조식을 잘할 경우 내공이 일 갑자의 10분의 1만큼 상승한다.

    이게 낙찰가가 무려 100억.

    1갑자가 60년을 뜻하는데, 내공의 양을 볼 적에 1갑자의 내공이 있느냐 없느냐로 고수를 나눈다는 풍조가 있을 정도다.

    스테이터스의 등급으로 치면 대략 B등급이라고 보면 된다.

    그 일 갑자의 10분의 1이면 6년 치 내공!

    그런데 꼴랑 그 정도 상승하는 데 100억이면 넘나 비싸잖아.

    게다가 ‘잘할 경우’라는 조건까지 붙어 있다.

    계산상 이런 거 10개를 먹어야 1갑자의 내공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

    그 100억으로 그럴싸한 장비 들고 던전 들어가면 내공 6년 치 얻은 것보다 훨씬 더 잘 싸울 수 있을 텐데?

    [정지한이 가져온 영약이 그만큼 귀한 거였죠.]

    맞아. 그랬었지.

    그놈은 이상하게 좋은 것들을 들고 와서 계속해서 나를 서포트하니까 말이지.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물건들이 많았다.

    재료, 스킬 북, 무기, 방어구, 소모품, 지도, 열쇠, 봉인구 기타 등등…….

    아니 어떤 미친놈이 악마가 봉인된 조각상을 내놓은 거야, 대체?

    [설명을 읽어 보니 성좌급 악마는 아닌 모양입니다.]

    문득 리블을 찾아보니 의자에 잠자코 앉아 있었다.

    그 순간.

    “참가해주신 귀빈 여러분 이제부터 경매를 시작하오니, 자리에 착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경매가 시작한다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리에 앉자 진행자가 올라와 온갖 미사여구로 말을 했다.

    그리고 경매가 시작됐다.

    “자. 그러면 이번 경매의 첫 번째 물건을 보시겠습니다. 이것은 유서 깊은 유물이 마력에 반응해 아티팩트가 된 것으로서, 한국의 국보인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과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또 다른 불상입니다!”

    아까 전시대에서 봤던 물건이다.

    국보와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국보 지정을 피한 국보급 보물.

    게이트 사태가 터진 이후, 아티팩트화 된 유물이 아주 많다.

    국보는 거의 다 아티팩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이거 때문에 프랑스랑 영국이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었지.

    전 세계 식민지의 국보를 자기네들이 다 처먹었거든.

    아무튼 이런 국보급 아티팩트들 중에는 좋은 것도 있고 사연에 따라 저주가 걸린 나쁜 것도 있는데 저건 ‘좋은 쪽’이었다.

    [청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등급 : B+

    분류 : 장식품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청동상.

    미륵보살께서 우리를 굽어보시기를.

    기능 : 반경 10미터 하급 이하 저주 해제.

    기능 : 반경 10미터 마력 회복력 15% 상승.

    세계수에 한참 못 미치는 능력이지만 저것만 해도 귀한 보물이지.

    사실 세계수가 규격 외의 물건이었으니까.

    그렇게 경매가 진행되었다. 문제는…… 내가 살 만한 건 그다지 없다는 것?

    “그러고 보니 정지한은 우리한테 어떤 물건을 사라고 여기 보낸 거야?”

    “그런 지시는 딱히 없었어요~ 살 물건이 정해진 건 아닙니다~.”

    “그러면 왜 여기에 와 보라고 한 거지?”

    “글쎄요~. 아마도. 정지 군만의 이유가 있겠죠?”

    정지한은 무슨 이유로 여기에 우리를 보낸 걸까?

    그런 의문을 가지고 경매를 지켜보는 가운데 1,800억짜리는 유찰됐다.

    독 면역이라고는 해도, 너무 비싼 듯.

    하기사…….

    최신 마법과 스킬의 힘이 들어간 전투기가 8,000억쯤 하는 가격이라는데, 독 면역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1,800억은 좀 오버겠지.

    그렇게 경매들이 진행되는 동안에 우리 세 명은 그냥 음식이나 집어 먹으면서 구경했다.

    “너는 뭐 살 거 없었어?”

    “좋은 거 많긴 한데… 스타일이 안 맞아.”

    “하긴 나도 그래.”

    “형은 연금술이나 제작 기술로 좀 바꿔서 사용할 수 있지 않아? 저 염마족의 눈 같은 거.”

    “제작 경험이 적어서, 딱 이렇게 할 수 있다 싶은 건 없거든.”

    “그러면 무리하지 마. 그나저나 형. 우리 총알이 얼마인지는 알고 있는 거지?”

    “지금 320억은 쓸 수 있어. 너는?”

    포션도 팔고, 던전 전리품도 팔고, 갓튜브 정산금도 있고.

    이래저래 해서 번 돈이 무려 320억.

    옛날이었으면 ‘으아아아~ 나는 이제 부자다! 지폐 다발 쌓아놓고 수영해 보겠다!’ 싶겠지만.

    지금은 감흥이 없다.

    “나는 60억쯤 있긴 해.”

    무척이도 헌터 생활 하면서 번 돈이 저 정도다.

    무척이는 그렇게까지 장비에 투자하진 않았기 때문에 그냥 적당히 계속 돈이 쌓이는 모양.

    나야 장비에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던전을 더 많이 돌았고, 포션도 만들고 했으니 더 번 것이고.

    하지만 더 빨리, 더 많이 벌어야지…….

    “자. 그러면 오래 동안 입찰에 참여하지 않으신 귀빈 여러분. 이제부터 저희 천매매(天買賣) 비장의 물품들을 보시겠습니다.”

    ㈜천매매. 경매 회사.

    아시아 최대 규모를 가진 업체라고 했다.

    그가 손짓하자 그가 선 연단 옆의 바닥이 갈라지며 하나의 물건이 올라왔다.

    그 물건이 등장하자, 어마어마하고 소름끼치는 마력이 느껴졌다.

    [이런 마력이라니… 정교한 봉인으로 숨겨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게. 도난 방지는 확실하다는 건가 보네.

    “이 물품으로 말씀드리자면, 동해의 바다에서 찾아낸 것. 그동안 존재하리라 여겨지며 소문만 무성했으나 드디어 찾아져 여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만파식적(萬波息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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