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화
“SL 그룹의 인사팀장인 김선일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SL 그룹.
내가 첫 헌터 계약을 할 적에 SL에서도 스카우터가 오긴 했었지.
다만, 다른 스카우터들보다 조건이 낮아서 기억도 흐릿했던 게 문제.
김선일이라는 사람은 안경을 쓴 사십 대 사내였는데, 깔끔하게 생긴 엘리트 회사원의 표본 같은 이미지랄까.
나와 무척이는 그와 거실에 앉아서 일단 대화를 나누었다.
커피는 그냥 인스턴트커피로 타줬다.
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선뜻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마침 시간이 있어서 그런 것뿐이라서요.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나요?”
“엄지척 씨를 스카우트하고 싶습니다. 정진 컴퍼니 쪽에 내야 하는 위약금도 저희가 책임지지요.”
이 타이밍에 헤드헌팅을 시도한다라…….
[주군께서 만드시고 계신 포션 때문이겠군요.]
스카우터가 오자마자 앞발로 책을 덮고 방에서 쪼르르 달려온 척량은 지금 내 목을 휘감고 있다.
여우 목도리가 아주 뜨끈뜨끈하네.
“더 자세한 조건은 뭡니까?”
무척이가 째려보기 스킬을 시전했다.
“이걸 봐 주시지요.”
그가 서류를 내민다. 3장으로 된 서류였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이랬다.
1. 계약금으로 500억.
2. SL 화학의 주식 지분 3% 양도.
단출하다.
차라리 계약서에 [십만 구독자 + 천만 따봉]이라고 적어 놓지 그랬냐.
나는 지금 돈보다 그게 훨씬 급한데.
“거절하겠습니다.”
내 말에도 인사팀장이라는 사람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그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조건인지 우선 설명해 드리고 싶습니다만, 양해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예.”
“주식 지분 3%. 이는 대주주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사를 감사하거나, 주주총회를 열 수도 있죠. 그 권한은 아주 막강합니다. 사외이사 같은 직함도 얻을 수 있으며, 회사의 경영권에도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저거 진짜야?
-맞아, 형. 물론… 대주주라고 해도 오너 일가와 척지면 사외이사가 될 수야 없지만. 저거는 우리에게 파격적 대우를 해 주겠다. 그런 이야기니까. 확실히 미친 조건인 건 맞아.
텔레파시 주문을 이용해 무척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나저나 제정신이 아닌 조건을 투척하셨다 이거지.
[그만큼 주군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제법 안목이 훌륭하군요.]
하지만 암살자를 보낸 게 이놈들일 가능성이 높잖아?
그런 상황에서 조건만 보고 혹할 수는 없지.
그리고.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그렇긴 합니다.]
“일단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서류를 놓고서 나갔다.
시간 좀 지나서 거절해야지.
* * *
인사팀장인 김선일은 각성자다. 그러나 그 능력은 서포터에 가깝다.
다른 이들은 볼 수 없지만, 그는 상대의 감정을 파장으로 관측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그는 과거에 진즉 던전 사냥에서 빠져나와 SL 그룹에 투신했다.
그리고 이 능력을 이용해서 지금은 인사팀의 팀장 자리까지 올라와 있었다.
물론 파장으로 감정을 보는 능력인 만큼 자세하게 마음을 읽지는 못한다.
허나 그렇기에 더욱 탐지 스킬에 걸리지 않고 은밀하다.
그런 그가 본 엄지척의 마음은 이랬다.
거절의 적색.
그는 엄지척의 거처를 나서며 폰을 들어 올렸다.
“정 대리. 엄지척 측이 거절했어. 회유는 아예 안 된다고 판단되니까 위에다가 보고해. 그래.”
뚝.
그는 바로 보고를 하고서 움직였다.
오랫동안 SL에 다녔던 그이기 때문에, 저들이 이후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었다.
“후…….”
그는 한숨을 내쉬며 걷는다.
거대한 세상의 부품으로서, 그는 그저 그가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게 악(惡)이라고 할지라도.
“월급 받아야지. 카드값도 내야 하고.”
악이란 의외로 평범하다.
* * *
“SL 그룹이라는 곳에서 보낸 암살자가 맞아요. 암살자도 보내고, 영입 제안도 하고. 여러모로 대단한 행동을 하는 인간들이군요~”
헌터 전용 수련장.
벽이 뚫리지 않게 각종 마도공학의 장치로 도배된 공간이다.
헌터의 능력 자체가 중화기에 견주다 보니, 수련하기 위해서는 이런 공간이 꼭 필요하다.
내공의 수련이나, 마력의 운용 정도야 우리 집에서도 가능하지만.
대련이라든가, 스킬을 사용해야 하는 종류의 수련은 이런 데서 해야 하지.
아니면 인적 없는 야외 수련장에서 하거나.
보통은 사람이 없는 지역에 수련장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 편이 싸게 먹혀서 그렇다.
이런 실내 헌터 수련장은 건설비가 어마어마하니까.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리블은 아까 만났던 SL 그룹의 얘기를 꺼냈다.
아니. 이 타이밍에?
“아까 말하시지…….”
“음~ 방금 막 심문이 끝났거든요~ 영혼을 쥐어짜는 것도 시간이 걸린답니다?”
[죽은 사람들 영혼까지 가져다가 쥐어짜는 거였군요……. 예상은 했지만 적이 되면 무서운 자입니다.]
그렇지 뭐. 죽어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거니까.
[왜인지 주군께서는 태연하시군요.]
글쎄다.
무신의 수련장에서 수십 번 죽어 봐서 그런 걸까?
아니면, 절망을 한번 보고 뇌 한 곳이 망가져서 그런 건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촉수와 싸우며 죽음의 경험이 누적되면서 이런 공포에는 좀 익숙해졌다는 것.
아무튼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괜히 고민하면서 애쓸 필요는 없는 거지.
그가 말했다.
“심문한 영혼이 제법 튼실하던데. 이 정도면 써먹기 좋을 것 같군요.”
“일단 꺼낸 이야기부터 해 주지?”
“그게 다였는데요~? SL 그룹에서 키운 특작부대였고, 명령을 받아서 제거하러 온 것. 그것 외에는 이들도 모른답니다~? 이들의 개인사가 궁금한 건 아니겠죠?”
리블이 손가락을 까닥인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이 하나. SL 그룹이라는 인간들의 단체는 이제 명백한 적이에요. 잘 새겨 두시기를.”
즉. SL 그룹과 싸워야 한다… 이거겠지.
“참. 수련을 하기 전에 정지 군의 전언을 전하려고 합니다~”
리블의 새카만 머리카락이 촐싹이듯 흔들거렸다.
심지어 지금은 힘을 쓰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 눈동자도 머리카락만큼 까맣고.
옷은 펑크풍 블랙진에 어디 산 좋고 물 좋은 청정 자연 지대 스웨덴 악마 숭배 록그룹 셔츠까지 입고 있으니.
왜 본인 이름을 ‘리얼 블랙’이라고 지었는지 알 것 같다.
그가 말했다.
“오늘 밤. 특별한~ 경매장이 열린다고 하더군요. 그곳에 참여해서 필요한 물건을 사라고 하네요.”
특별한 경매?
“소수의 최상위 헌터들만 참여할 수 있는 경매일 거야. 석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열려. 그런데 우리가 거기 갈 레벨은 아닐 텐데…….”
일단 정지한은 예언자…는 아니어도 미래를 알고 있는 건 확실하다.
몇 가지 추측이 가는 건 있지만, 조금 스치는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사람 손가락이 터진 걸 본 후로는 이러한 억측도 조심하고 있지.
아무튼.
‘중요한 물건’이라. 미래에 있을 괜찮은 정보를 물어온 모양이야.
“그거야 정지 군이 처리했겠죠? 물론 싫으면 안 가도 그만이겠지만, 으음. 어쩌실래요?”
“뭘 그런 걸 물어봅니까. 가야죠.”
내 말에 리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엄지 군은 강해지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했으니까요.”
“자금도 여유 있고요.”
따봉은 자원이다.
천만 따봉을 모아야 하는 상황인 이상.
돈으로 살 수 있는 아이템은 무조건 돈으로 사는 게 좋다.
“자. 그러면. 우선은 수련부터 하고…… 저녁에는 경매에 참가하도록 하죠~”
“네입!”
“괜찮은 생각인 것 같네.”
우리 모두 동의했다.
이 안건은 이것으로 종료.
리블이 언데드를 꺼낸다.
일전에 그가 직접 만든 언데드 거인 전사가 아니라, 그때 우리를 습격했던 암살자들로 만든 언데드였다.
다만 숫자는 딱 둘이었고, 몸을 뼈로 된 갑옷이 휘감고 있었다.
때문에 그 내부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고레벨의 2명만 언데드로 만든 건가?
“음~ 몸을 싹 태워서 스켈레톤 형태로 만드는 것도 좋지만. 이런 좋은 시체는 살점이 붙은 채로 쓰는 게 더 낫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뼈 갑옷을 입혔죠! 짜잔! 어떠십니까아~?”
2기의 언데드가 최근 핫하다는 코카인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뼈다귀로 웨이브를 타는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기묘…… 아니. 그러니까 그런 거 하지 말라고, 이 악마야!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이런~ 이 재미를 몰라주시다니. 너무 슬프네요.”
일부러 엉엉 우는 척하는 리블. 그러자 언데드 2기도 같이 우는 척한다.
아아, 현기증 날 거 같아.
“농담은 그만하고. 그래서 뭘 가르친다는 거지?”
동생의 말에 리블이 답했다.
“마력을 다루는 기본기! 그것부터 하죠. 사실 제가 보기에 여러분들은 지식도 없이 재능 하나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그러면서 팔짱을 끼고 혀를 찬다.
“우선. 마력이란 무엇인가? 그것부터가 시작이죠. 자. 거기 앉으세요. 설명이 길지는 않지만, 서서 들을 필요는 없잖아요?”
땅에서 불쑥, 뼈로 된 의자가 나타났다. 이 악마는 언제 이런 시체를 수집한 걸까? 뼈로 된 의자는 그로테스크한 예술품 같았다.
새하얀 색이었기에 어떤 면에서는 몹시 청결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와 무척이는 앉지 않았다.
“이런~ 그러면 서서 들으시든가요. 하여간 고집쟁이 형제네.”
그리 말하더니 뼈다귀로 평상을 만들어 자기는 눕는다.
내가 빤히 바라보고 있자 그가 답했다.
“앉을 수 있으면 앉는 거고, 누울 수 있으면 눕는 게 제일입니다. 원래 인생 그런 거예요. 배의 지방을 소중히 아껴 주라고요.”
그래. 그런 셈 치자.
동생은 슬슬 지루해졌는지 권총을 꺼내들고는 슬라이드를 탁 당겼다.
“아아악, 그만, 그만! 바로 본론 가겠습니다.”
“이제야 알아듣는군.”
아무래도 동생은 리블을 다루는 법을 배운 것 같다.
리블이 말했다.
“우선 마력이란 무엇인가? 세계를 이루는 근원의 힘이랍니다.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고, 어떤 것이든 만들어 낼 수 있죠.”
마력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것이었나?
“그 마력을 변형하면 제가 사용하는 사령 마력 같은 게 되거나, 엄지 군이 사용하는 혼원건곤진기 같은 특별한 성향을 가진 힘으로 바뀌기도 해요. 당연하죠! 마력은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까. 다만. 여기서 알아둬야 하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는 거예요.”
“시간. 당연한 거긴 한데…….”
무척이가 중얼거린다.
“마력이 단번에 사령 마력으로 바뀌는 건 아니랍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10의 마력이 10의 사령 마력으로 변하려면 적어도 10분의 시간은 필요해요. 엄지 군의 내공이 팍팍 늘지 않는 것도 그래서랍니다. 마력이 내공으로 변화하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저는 내공으로 마법 스킬도 쓰는데요?”
“그건 시스템이 해 주는 거잖아요? 시스템이라는 건 다수의 신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것. 사실상 최상위의 대신격이나 다름없거든요. 노 딜레이로 바로 변환하는 것 따위 어렵지 않죠.”
그렇군. 하지만 인간인 나는 그렇게 못 한다는 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