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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162화 (162/305)
  • 제162화

    “정지 군이군요~ 뭐어, 나쁘진 않았습니다. 제가 원하는 걸 이루어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극찬이군. 네 녀석이 인간에게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신기하단 말이죠. 저렇게 선하고 강하며, 인과율도 많은 인간이 왜 여태 다른 성좌들에게 안 먹힌 거죠?”

    -네가 알 필요는 없다.

    툭-

    전화가 끊겼다.

    “아이고오, 이 양반 까칠하기는~”

    다시 전화를 걸자 받기는 한다.

    -끊는…….

    “자, 잠깐, 잠깐! 더는 안 묻겠습니다.”

    -그래.

    “아무튼 엄지 군을 가르칠 겁니다. 엣헴.”

    -……이미 알고 있다. 의외군. 성좌가 직접 인간을 가르치겠다고? 정말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야.

    “어라라?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안 겁니까?”

    -엄지척 씨가 메시지를 보냈다. 갑자기 연락 없으면 네놈부터 족치라고.

    그 말에 리블이 살짝 이마를 찌푸린다.

    “아니, 이렇게 잘해 주는 성좌가 어디 있다고 이렇게 호박씨를 깝니까~? 거참!”

    -정확하게 봤지.

    뚝-

    전화가 끊겼다. 다시 전화를 거니 받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차단한 모양.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이하게도 리블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창밖의 달을 바라보았다.

    “얼마 안 남긴 했군요. 이 풍경도. 아직은 밤하늘이 검은색이야~”

    멸망 전의 세계는 참 순진하다며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것은 인간이 아닌 심연이 보는 관점이었다.

    그는 멋대로 코코아를 타서 마셨다.

    “피 두 방울만 넣으면 취향인데.”

    냉장고에 범죄자 피랑 살점을 좀 저장해두면 안될까.

    그랬다가는 엄무척이 형 대신 배때기에 바람구멍을 뚫겠지?

    ‘하, 아쉽다.’

    * * *

    던전에 가지 않는 내 일과는 대충 이렇게 돌아간다.

    오전 6시 기상.

    일어나자마자 [무신의 수련 공간]으로 이동.

    48시간을 알차게 무공 수련에 매진한다.

    내공 수련도 하지만, 무공 초식의 수련을 우선시하고 있다.

    지금은 혼원건곤신공 안에 포함되어 있는 건곤검법을 죽어라고 익히고 있는 중.

    이게 스킬로 익혔다고 해서 다 익힌 게 아니라는 건, 무신에게 직접 수련받고 나서 알겠더라고.

    거기다가 수련을 할수록 점점 더 능숙해지고, 무언가를 깨달아가는 걸 느낄 수가 있어서 좋았다.

    과연 천무지체!

    이다음은 한 번도 이긴 적 없는 촉수 괴물을 소환해서 몇 번 죽어본다.

    “와, 미치게 강하네!”

    콰과과광!

    일격에 머리통이 터지는 경험은 여기서밖에 못 할 거다.

    이렇게 강해졌는데도 여전히 놈은 강하다.

    웃긴 건 이런 촉수 괴물은 내가 봤던 그 풍경 속에서 흔하디흔한 존재라는 것.

    촉수 괴물이 소 치고, 밭 갈고 있는데 나는 그런 놈들 중의 하나도 못 이겨.

    이게 무슨 미친 짓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죽다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 있기도 하고.’

    음, 어쩔 수 없나.

    어떤 절망은 흔적을 남긴다.

    내게 있어 [절망의 시련]은 그런 거다.

    덕분에 아직도 산낙지는 못 먹고 있다. 촉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생리적 거부감이 드니까.

    ‘그래도 이놈과 싸우다 보면 언젠가 넘어설 방법을 알게 될지도 모르지. 크헤헤헤!’

    이런 미친 수련을 하는 놈은 나밖에 없을 거다.

    그렇게 48시간이 종료!

    죽어라고 수련하고 나와도 현실 시간은 흐르지 않기 때문에, 이때부터가 진짜 하루의 시작이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주군.]

    “척량이도 좋은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척량과 인사를 나눈다.

    척량은 요새 공부를 잔뜩 하는 중이다.

    나를 보좌하려고 사업, 부동산 등의 지식을 닥치는 대로 배우고 있는 듯하다.

    공부 중인 척량이를 내버려 두고서 밖으로 나간다.

    재빠르게 샤워 및 꽃단장을 해 주시고……. 집 안에 있는 촬영방으로 간다. 그리고 아침 방송을 시작한다.

    이때가 오전 7시.

    “안녕하세요! 엄지검지 엄지척입니다.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네요~ 일기예보에서도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기온이 떨어진다고 하니 모두 옷을 잘 챙겨 입으세요. 시청자분들 모두 건강이 제일입니다!”

    별거 아닌 짧은 방송이지만, 이런 것도 따봉을 쏠쏠하게 준다.

    “그러면 아침 스트레칭 시작할게요. 오늘은 엄토리해씨먹어 님이 요청하신 척추 기립근을 단련하는 자세. 하나, 둘. 숨 깊게 쉬시고… 둘의 반의반, 둘의 반의반의 반, 둘의 반반반반…… 왜 안 부르냐고요? 에이, 곧 불러요. 좀 더. 좀 더……. 셋!”

    이렇게 일상에 도움되는 스트레칭도 매일 아침 찍어서 올리고 있다.

    매번 새로운 자세를 하진 않는다.

    그냥 그날그날 신청을 받아서 아침에 스트레칭을 하는 방식.

    “왜요. 왜 같이 안 하고 저 하는 것만 구경하는 겁니까? 진짜 너무하네~ 같이 해요. 늙어서도 우리 같이 건강해야지.”

    그렇게 눈웃음을 치며 가볍게 아침 라이브를 끝내고, 녹화본도 업데이트.

    그렇게 일 하나를 해치우고 주방으로 가면 무척이가 요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식탁 옆에는 만화 캐릭터처럼 포크와 젓가락을 각각의 손에 쥔 채로 앉아 있는 리블이 보였다.

    새롭게 추가된 루틴.

    옛날부터 내가 밖에서 일하고 돌아오면 뭘 할 기력이 없었는데, 그때는 무척이가 요리를 해 주었었다.

    형제 둘의 식사 시간.

    그때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더라.

    그런데 어째 자연스럽게 그 풍경에 리블이 끼어들었다.

    “형 아침 일과 잘 끝냈어?”

    “어, 다 했지. 리블은 뭡니까? 완전 먹자 모드군요.”

    “엣헴, 귀중한 지식을 가르치는 스승으로서, 제자에게 부양해 달라고 요구하는 건 정당한 일이랍니다아~”

    “아니, 이 무슨 돌아 버린 소리야?”

    어느 스승이 제자에게 부양해 달라고 떼를 써?

    “흐으으음? 로마 시대 때만 해도, 도제가 스승을 부양하고 사는 건 꽤 흔한 일이었다고요?”

    “언제 적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대체?”

    이 악마가 기원전 이야기를 꺼내고 있어.

    그렇게 투닥이는데 리블이 갑자기 폰을 들었다.

    “계좌번호로 방금 전송했습니다!”

    “뭐? 내 계좌번호는 어떻게 아는 겁니까?”

    내 질문에 그가 푸헤헤 웃었다.

    “폰 비밀번호가…….”

    그는 주변의 눈치를 한번 보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10…20…30이더군요.”

    “그것만으로 대체…… 잠깐만요, 뱅킹은 안면인식이 되어야 할 텐데요?”

    “주무시는 얼굴이 잘생기셨더군요.”

    ……이 새끼 이제 당당하게 도둑질을 하네?

    철컥.

    그 순간, 동생이 참지 못하고 스팸 계란구이를 테이블에 내동댕이치다시피 하고 리블의 입에 총구를 박아 넣는다.

    “형. 내가 이놈 이럴 줄 알았어. 이제 죽이는 데 이견 없는 거지?”

    “아악! 죽이지 마. 죽이지 마!”

    “왜?”

    “방금 내 통장에 10억을 넣었어. 이 미친놈이! 심지어 밥값이라고 써놨다고!”

    “대체 왜 악마 새끼가 돈이 이렇게 많아!?”

    밥값으로 10억을 받았다.

    동생은 결국 총을 집어넣고는 리블 앞에 밥공기를 쾅 소리 나게 내려놓는다.

    “처먹어라. 버러지.”

    “왜 이렇게 저를 미워하는 겁니까아. 나는 스승이라고요.”

    그러게 말이다.

    동생은 그래도 주변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게 구는 편이다.

    이렇게 인성 대방출하면서 사는 건 본 적이 없다.

    척량이 말했다.

    [음, 아무래도. 기억 공유를 했기 때문 아닐까요?]

    아아, 그 과정에서 약간…… 미쳐버릴 뻔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정체불명의 악신인데 꿍꿍이가 있어 보이니 더 경계하는 것 같긴 해.

    척량이 답했다.

    [어떤 이유든 군식구 주제에 폰 훔쳐다가 인터넷 뱅킹을 켠 건 선 넘긴 했습니다. 비밀번호는 어떻게 해킹……. 아니 그냥 눌러 봐서 됐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해킹한 것도 선이 넘었죠.]

    ……102030은 좀 심했나.

    좀 어려운 비밀번호를 했어야 했나.

    아무튼.

    우리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내 폰을 훔쳐 따고 인터넷 뱅킹까지 열어 버린 것은 엄연히 대가리 반토막 낼 일이었기에 동생을 그냥 두기로 했다.

    “어라? 통장 뭔가 이상한데? 이거 기록을 보니까 11만 원씩 빠져나가 있네? 11만 원씩 열 번 빠져나갔어.”

    그 말에 리블이 말했다.

    “30연이 그러거든요.”

    “……30연?”

    “모바일 가챠요. 픽업 기간이라 겸사겸사 통장도 좀 빌렸……. 꾸에에에엑!”

    “내 통장으로 110만 원이나 썼다고오오오?!”

    “그게 천장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요오오오!”

    “당신 돈 많잖아! 이 미친놈아!”

    110만 원을 써야 원하는 카드를 주다니.

    그게 무슨 놈의 사기 게임이야!

    “잘 들어 봐요. 난 아직 민번을 못 받았다고. 이 대한민국에서는 주민번호가 없으면 과금도 못 한다고요!”

    “십억은 대체 어떻게 전송한 거야아아아?! 본인 계좌 맞습니까아아아!”

    그랬다.

    어쩐지 이상하더라.

    이 악마 새끼가 남의 폰을 해킹해서 조용히 돌려줄 턱이 없는데 말이다.

    아무튼 한동안 멱살잡이를 하고.

    9글 플레이에 환불 신청을 하고.

    동생은 남의 돈에 한번 손댄 놈은 두 번도 손댄다며 다시 총알을 꽂으려고 했고.

    ‘두 번 다시 남의 폰과 통장으로 가챠를 하지 않겠습니다.’ 맹세를 나누었다.

    오늘 아침은 미역국이었다.

    참치가 두 캔이나 듬뿍 들어간 엄무척식 미역국.

    맛있었다.

    그렇게 아침을 먹은 후.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정진 컴퍼니가 소유한 헌터 전용 수련장을 쓰기 위해서.

    리블의 가르침이라는 걸 찍먹해 보기 위해서 가는 거다.

    하지만 가지 못했다.

    나가려고 준비 중인데 초인종이 울렸으니까.

    “음? 누구지?”

    그렇게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왔다.

    * * *

    박일성.

    박막기 회장의 장남으로, 이미 후계자 자리를 공고히 한 지 오래된 자.

    명실상부 국내 굴지의 제약 회사. SL 그룹이란 이름을 가진 제국의 황태자.

    원한다면 언론도, 정치도 주무르는 자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실패했다… 비싼 녀석을 쓰지 않았었나?”

    박일성.

    그는 우선 상대를 제거하려고 했다.

    포션 업계 최대 지분을 가진 SL 화학의 사장으로서, 자신의 제국을 지키기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그러한 냉혈한이 아니면 회장인 아버지가 자식들 중에서 자신을 후계로 고르지 않았을 터.

    그런 박일성에게 이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박일성의 측근이자, 보좌역인 전략기획실의 실장인 박성찬은 지금 좋지 않은 소식을 가져왔다.

    “백억짜리 암살자였습니다만……. 실패했습니다. 둘 다 레벨 80 이상. 한 번도 이런 일에서는 실패한 적이 없는 이들이었죠.”

    “우리가 따로 양성한 애들도 같이 갔다면서. 그래도 실패한 거야?”

    “예. 시체도 찾지 못했습니다. 선금만 받고 도망쳤을 가능성도 있지만 아마 아닐 것 같습니다.”

    “그건 조금 흥미로운걸.”

    시체를 찾지 못했다.

    그게 시사하는 점이 여러 가지가 있다.

    상대가 시체를 훼손, 혹은 은폐할 수 있는 능력과 그만큼 냉혹한 심성을 가졌다는 것.

    “엄지척이라는 놈은 평범한 놈이었다며? 그렇다면 이건 배후가 따로 있다고 봐야겠지?”

    “그렇습니다.”

    “흠… 그래서. 전략기획실 생각은?”

    “회유에 들어갔습니다.”

    “실행했나?”

    “지금 만나고 있을 겁니다.”

    “좋아. 그러면 성공하면 보고해. 만약 회유가 실패하면 어쩔 거지?”

    “사보타주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보타주. 다른 말로는 테러다.

    엄지척의 공장을 파괴하려는 것이다.

    “좋아. 그것까지 견뎌 내면… 그때는 더 과격한 수를 써야겠군. 그 이후의 계획도 만들어 와.”

    “예 사장님.”

    “나가 봐.”

    박일성의 말에 전략기획실 실장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 나갔다.

    감정적인 대응이나, 분노가 없는 깔끔한 일처리 방식.

    그게 박일성의 장점이기도 했다.

    “엄지척이라… 갓튜브 방송은 그냥 관종 스트리머 같았는데 한 수를 숨기고 있다 이거지…….”

    정식 방송인도 아니고 고작 스트리머라니.

    그런 피라미에게 휘둘리는 건 질색이다.

    그는 서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린다.

    “회유에 응하는 것이 네가 살길이라는 걸 알길 바란다.”

    그는 홀로 중얼거리며 서류를 집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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