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물론이죠. 저는 정지 군처럼 그런 쪽으로는 제약이 걸려 있지 않으니 말이죠. 하지만 우리 엄지 군에게 이런 귀중한 정보를 알려줘도 되려나 모르겠네?”
“공짜는 아니다. 이거군요.”
그는 능청스럽게 씨익 웃었다.
“악마는 공짜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 말에 나는 답했다.
“계약 위반 아닌가요?”
그 순간 리블의 몸에서 스파크가 튄다.
고급진 자동차의 시트가 얇게 타버렸다.
그가 입고 있는 옷까지 새카맣게 그을리며 검게 타올랐다.
와, 저거. 비싼 옷인데…….
악마가 아프건 말건 내 상관할 바가 아닌데, 저 옷은 비싸게 산 옷이거든.
그런 생각을 잠깐 하는 사이. 리블의 몸에서 스파크가 멈추었다.
“아차차차…! 아프잖아요. 이거 참. 이래서 포괄적인 계약은 하면 안 되는 건데~.”
“방금 건 뭐죠?”
“계약의 반동. 제가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는다면 발동하는 것뿐이랍니다. 왜 계약이 절대적이겠어요? 계약을 강제하는 힘이 있으니 절대적인 거 아닐까요?”
그랬구나.
“그러면 리블. 튜토리얼이 언제 끝나는지 가르쳐 줄 수 있나?”
무척이가 끼어든다. 동생은 리블에게 아예 말을 놨다.
사람 새끼 취급을 안 하겠다는 뜻.
‘이놈이 사람은 아니니 틀린 건 아닌가……?’
그런데 전직 성좌를 저렇게 막 대해도 되나?
그런데 리블도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이거 참. 고오급 정보지만 바로 말해야겠군요. 일단 정확하게는 나도 몰라요.”
정확하게는 모른다?
그 순간,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리블의 관자놀이에 권총의 총구가 닿았다.
“형, 이거 쓸모없는데? 속 모를 위험한 새끼인데 쓸모도 없어.”
“야. 잠깐잠깐. 죽이지 마. 죽이지 마!”
그때 급하게 리블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야기하도록 하죠. 일단 튜토리얼이 끝나는 때는 사실 정해진 게 아니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어야 끝나는 거죠?”
“민물고기는 바다에서 살지 못한다는 거 알아요?”
“어…… 알죠.”
“그거랑 비슷해요. 지구는 다른 차원의 생명체들이 살기에는 환경이 좀 안 맞거든요. 가장 큰 것이 바로 마력.”
“설마…….”
무척이가 뭔가를 알아차린 듯 소리를 낸다.
“왜 그러는데?”
“바닷물고기를 키우려면, 해수로 된 수조가 있어야 하잖아.”
“그렇지?”
“그러면 마력이 많은 데서 살던 녀석들이 마력이 별로 없는 데로 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형? 바닷물고기가 민물에서 제대로 살 수 있겠어? 물론 바다와 민물을 오가는 종도 몇 개 있지. 하지만 대다수는 살고 있는 영역을 벗어나면 죽어.”
알 것 같았다.
“지구의 마력 농도가 충분히 높아지는 때… 그때가 튜토리얼이 끝나는 때로구나.”
“하하하, 세상에. 이 정도 정보만으로 답을 맞히다니! 딩동댕상 드리겠습니다. 상은 세계 멸망의 순간에 드리도록 하죠.”
“그러면… 막을 수 없는 건가?”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자니, 리블이 빙글거리며 말했다.
“방법은 있죠! 불가능에 가까워서 그렇지.”
“어떤 방법이죠?”
“마력을 없애 버리는 거예요. 세계의 모든 인간들이 마력 사용을 줄이는 거죠.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때나 몬스터를 사냥할 때만 조금씩 쓰고, 그 외에는 전부 금지! 마력으로 돌아가는 발전소 같은 것도 멈추고. 마력을 이용한 물건 제작 및 사용도 멈추는 거예요. 참 쉽죠?”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 문제인데?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의, 그리고 인류의 욕망이 통제될 리가 없다…….
아니. 애초에 지금의 세계는 1차 쇼크 때 수십억이 죽은 이후 마력에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다.
그걸 되돌린다는 것조차…….
“우습지 않나요? 마력의 사용이 곧 인류 전체의 목을 조를 텐데…….”
“어차피 인류가 멸망할 거라면 왜 튜토리얼이라고 부르는 거죠!! 무슨 의미가 있는 겁니까!? 대체.”
“형. 진정해.”
울컥해서 소리를 지르는데, 무척이가 내 어깨를 잡는다.
리블은 여전히 기묘하게 웃으며 나를 보고, 무척이는 진지한 얼굴로 나를 잡고 있었다.
“미안.”
“아냐. 나도 빡치는 이야기니까.”
“두 분이 화내시는 건 당연한 것일지도요. 아무것도 모르니까. 후후후후후. 사실 이 지구는 말이죠? ■■을 ■■해 두었기 때문에, 음……. 이건 막혔군요. 단어 필터가 되었어요. 아쉬워라.”
그의 목소리 일부가 아예 들리지 않았다.
망할 제약!
“어쨌든. 마력 농도가 높아지면 튜토리얼은 끝! 그리고 던전은 끝도 없이 늘어날 거랍니다~ 그때는 결계석도 안 들어먹을 거고요. 아. 물론 그런다고 인류가 망하는 건 아니에요. 충분히 준비되고, 단합되어 있다면 생존하겠죠?”
“그렇지 못한다면?”
“멸망하는 거죠.”
그가 손바닥을 들어 그대로 겹친다. 저 사이에 껴서 죽는 게 인류라는 의미이리라.
“그나저나~ 엄지 군.”
“예.”
“오늘 저를 평가하셨으니 알겠지만. 강하죠?”
“……그건 이견의 여지가 없네요.”
레벨 80 이상의 강자를 그대로 압살하는 언데드를 만들고, 부린다. 그뿐이 아니다. 라이프 드레인 스킬도 놀라운 위력이었다.
거기다가 이번에 나를 죽이러 온 놈들은 죽어서 이제 그의 수족이 되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요. 성좌로서 당신을 평가해 봤답니다.”
인간이 인간을 바라보는 눈이 아니라 성좌가 사람을 보는 눈인가.
[확실히 진귀한 조언이 될 것 같습니다. 주군.]
그래.
리블이 말을 이었다.
“두 분 모두 재능 하나는 충만하죠. 사실, 차원을 통틀어 지구 별 인간이 가장 약한 건 사실이고. 다른 성좌들도 지구가 가장 먼저 멸망할 거라는 거에 배팅하고 있고요.”
[성좌도 도박을 하는군요.]
아, 그러시구나. 듣는 강원랜드는 좀 기분이 더럽다 이거예요.
남의 죽음이 도박판이냐?
“이쪽은 과학 기반 행성인 데에 반해 그렇게 기술력이 발달한 게 아니니 어떨 수 없죠. 타고난 신체도 약하고 수명도 100년 살기가 쉽지 않고. 무엇보다 30대에 들어서면 슬슬 몸이 고장 나기 시작하는 게 단점입니다. 그 이후에는 그냥 늙어 갈 뿐이거든요.”
[타고난 육체가 그러니 어쩔 수 없지요. 엘프나 드워프, 하이오크 같은 종족들과는 비교할 문제가 아니니까요.]
새삼 억울하지도 않다.
조물주가 원래부터 이렇게 만든 건지, 아니면 진화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답이 있나.
리블이 말을 이어 나갔다.
“두 분이 고작 그 정도 기간 안에 강해졌다는 게 신기하군요. 하지만 경험적으로는 미숙하고 제대로 체계적인 지식을 가르쳐 준 이가 없다는 건 알겠습니다. 시스템이 내린 힘에 의지해서 균형을 잡아가고 있는 셈이죠.”
“다른 행성은 스승이 있나 보군요. 마법이나 무술 같은 것들.”
“당장 무공이 기반인 행성만 하더라도 강호인이라면 산을 밀고, 강을 증발시키죠. 중간에 정사대전 이벤트가 있었지만 무사히 튜토리얼을 끝냈습니다. 마법이 기반인 행성은 여러 마탑들을 필두로 난제를 해결했죠. 두 행성 모두 인간 종족이긴 하지만 행성 환경 자체가 마력과 기가 풍부한 행성. 뭐, 결국 본질은 같으니 그냥 마력으로 통합해서 말할게요.”
“어쨌든 우리보다 튜토리얼 기간이 짧았겠네요.”
“네. 하지만 파악이 빨랐죠.”
어쩔 수 없는가.
그는 손가락을 까딱이자 무척이가 혀를 쯧 차더니 물었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수업을 하죠.”
짜잔! 하고 그가 과장스럽게 말한다.
“교육해 드릴게요. 더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도록. 더 강해질 수 있도록. 시스템도 이렇게 노력으로 익히는 건 막지 않는다구요? 지금 엄지 군과 무척 군 둘 다 무공을 익혔듯이.”
무공을 익혔다는 이야기는 만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나야 갓튜브 조금만 검색하면 나오겠지만 무척이는 달랐다.
그럼에도 간파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보통 안목이 아니다.
“좋습니다.”
“형.”
무척이가 경계 섞인 눈으로 나를 보며 부른다.
하지만, 이건 받으면 무조건 이익.
내 모습에 리블이 웃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확실히 그 정도는 되어야 ‘혼돈의 조각’인가요?”
-1 따봉을 받았습니다.
이 녀석이 구체적으로 어떤 놈인지는 내 시스템에도 반영되지 않는다.
아마 그놈의 인과율에 의해 필터가 잔뜩 끼어 있는 거겠지.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나.
“신기하네요. 정체불명의 악신 계열 성좌인데도 왜 가르침을 받으려 하는지.”
그는 내게 호기심이 생겼는지 한참 바라본다. 붉은 눈이 마치 동공 안쪽까지 살피는 기분이 들었으나 잠자코 입을 다문다.
이자가 무엇을 바라고 모든 것을 버려 이 지구에 떨어졌는지는 모른다.
분명 그건 광기에 가까운 집착인 것이겠지.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곧 오는 종말을 무력하게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불이 뜨거운 줄 알면서도 손을 넣는다라. 이게 당신이란 인간의 재미있는 점이겠죠. 다른 이라면 도망치거나 경외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당신은 둘 다 아니니.”
그는 핑그르르 몸을 돌렸다.
“물론 그렇다고 이제 와서 사령술을 가르치려는 건 아닙니다~ 시스템 스킬 북을 사서 쓰는 게 아니면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걸리거든요. 저는 기본기만 가르쳐줄 겁니다. 나머지는 당신들 자유.”
“기본기?”
이번에는 무척이가 묻는다.
“네. 마력을 더 세밀하게 사용하는 방법, 전투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행동이나 기타 등등. 슬슬 직감만으로 헤쳐 나가기 벅차지지 않았나요?”
[정확하군요. 저자가 어떻게 그걸…….]
그랬다. 헌터 보조원으로서 지냈던 경험과 양자택일의 [사소한 직감] 스킬만으로는 슬슬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게 헌터 생활을 하는 게 목표였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겠지.’
허나, 더 강한 적을 상대하면서 슬슬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그가 말했다.
“스킬을 기반으로 하되. 그 스킬을 어떻게 쓰는지 배우기만 해도 훨씬 강해질 겁니다. 뭐, 형제분들은 모두 소질이 있으니까요.”
“…….”
“형. 어떻게 할 거야?”
무척이가 내 대답을 기다렸다.
* * *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지척과 엄무척은 곧바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사실 피곤할 만했다.
원래도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 자체가 지치는 일인데 암살자까지 들어왔으며.
심지어 그들과 싸운 후, 죽음을 지켜보았다.
해외 제약 회사들과 본격적으로 싸우게 된 이상 계속 이런 일은 일어날 거고, 살기 위해서는 독해져야 함을 안다.
허나, 쉽지는 않았다.
그나마 오랫동안 헌터들의 시신을 수습해 온 경험 덕에 버틸 수 있었던 거지.
리블은 거실에 앉아 혼잣말을 했다.
“어찌 보면 동생이 이상하긴 하군요.”
평범한 인간이다.
그것도 나름대로 대한민국 엘리트 코스를 준비했던 인간.
그런 자가 이렇게 쉽게 살인에 적응하는 게 이상하긴 했다.
어찌 보면 형보다도 태연했는데, 그걸 물어보니 ‘어차피 형을 죽이러 온 놈을 동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자연스럽게 반문하는 게 아닌가.
‘어쩌면 사람보다는 이쪽과 비슷할 수도…….’
그 순간…….
브브브브-
그의 주머니 속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폰을 꺼내서 받자 목소리가 들렸다.
-어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