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대충 자고 일어났더니 점심이었기 때문에, 무척이가 식사를 차려 주었다.
“이것이 쌀밥! 세계인이 극찬하는 딜리셔스 건강 푸드! 좋군요우!”
이 새끼는 대체 어디서 뭘 보고 있던 거야? 그러고 보면…… 성좌들도 갓튜브는 볼 수 있는데, 거기서 국뽕 영상만 본 건 아니겠지?
갓튜브 알고리즘 한번 튀면 계속 그것만 추천하던데 혹시 그쪽으로 튄 건가.
“형. 이 사람 괜찮은 거 맞아?”
“실력은 확실하더라고.”
무척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고.
사실 나도 어이없다.
그 대단하신 성좌라는 놈이 나사가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 빠진 듯한 모습이니, 원…….
그래도. 일단 합을 맞춰 보기는 해야겠지.
“무척아. 마력은?”
“다 찼어. 형은?”
“나도 준비 완료 상태지.”
“왜. 던전 둘이서만 가자고?”
“아니. 리블까지 해서 셋이 같이 가려고.”
“제 이야기군요.”
입술 위에 밥풀 하나를 붙인 리블이 헤벌쭉 웃는다.
“예. 어제는 잠깐 힘만 봤지만, 합을 한번 맞춰 봐야죠. 정확히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하니까.”
“좋아요! 던전이라면 더 확실하게 보여드릴 수 있죠~ 기대해도 좋답니다?”
[오늘은 방송할 수 없겠군요.]
아마도. 일단 촬영은 해놓고, 수위 봐서 편집해서 올릴 수 있으면 올리자.
[예. 주군.]
* * *
던전을 수배하고, 보조원들을 부르고.
그리고 던전에 들어간다.
여기까지 처리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고장 난 기계장치의 무덤]
3성 던전. 공략 권장 레벨 60. 참여 인원은 10명.
적어도 3명의 힐러가 포함되어야 입장할 수 있다는 규정이 존재한다.
예외 규정으로 레벨이 80대 이상이라면 참여 인원 3명에 힐러가 1명이라도 상관없다고.
던전을 관리하는 정부에서 만든 규정이지만, 거대 기업들의 보증이 있으면 예외적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기도 하다.
우리도 그렇게 들어온 거고.
사실 이게 인기 던전이었으면, 대기 인원이 많아서 바로 들어올 수도 없었을 테지만.
이 던전의 가장 큰 특징.
적은 전부 다 무기물이다.
이른바 골렘이라고 부르는 종류의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인 것.
던전 내부도 스팀펑크 같은 느낌의 공장처럼 생겼다.
다만. 여기도 비인기 던전이다.
남산 타워의 던전이 정신공격 때문에 비인기라면, 여기는 순수하게 저 골렘들이 너무 강해서 문제다.
순수 물리 공격이 지독하게 강한 게 문제라면 문제.
때문에 힐러 곡소리 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힐러의 몸값은 헌터들 중에서도 톱클래스를 차지한다.
얘들이 괜히 귀족 소리 듣는 게 아니라서, 그런 이들이 3명이나 포진되면 채산성이 안 맞는다.
‘세계 멸망을 경험해놓고 그런 소리 하는 것도 좀 웃기지만.’
그렇다고 레벨 80대가 오기에도 수지타산이 안 맞았다.
그네들은 여기 말고 다른 데서 더 수익이 잘 나오니까.
거기에 하나 더. 여기서 나오는 뭔가 특별한 특산 물품 같은 것도 없다. 그러니 비인기 던전이 될 수밖에.
예전에 갔던 ‘바위가 걸어 다니는 대지’ 같은 계열의 던전이 죄다 인기가 없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지.
‘하지만 이런 던전이야말로, 우리가 오기 적합한 던전인 셈.’
지금 우리 목적은 돈이 아니니까.
그리고 리블의 실력을 테스트한다는 부분에서도 적합하지.
네크로맨서에게 가장 짜증 나는 적이 누구냐……고 하면, 이런 무기물 형태의 적이다.
영혼도 없고, 생명도 없으니까.
네크로맨서의 손발을 묶고 싸우라고 던져 보는 셈.
[주군도 한성격 하시는군요.]
척량아.
하지만 이런 곳이어야 진짜 실력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숨기는 게 한둘이 아닌 놈이니까.
[판단 자체는 무서울 정도로 정확합니다. 쉬운 던전을 가 봐야 결국 큰 정보를 얻기는 어려우니까요.]
“호오… 여기로 온 거군요?”
우리는 던전 입구에 섰다.
이곳 던전 입구는 안전지대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도 한가하게 잡담을 할 수 있는 것.
“알아요?”
“어지간한 던전은 다 알죠. 열~심히 지켜봤으니까. 그나저나. 제 능력이 네크로맨서 관련이라서 여기로 온 거군요?”
리블은 주변을 둘러본다.
톱니바퀴와 증기로 가득한 세계.
인간은 없다.
무기물의 스팀펑크 세계 속에서 그가 물었다.
“맞습니다.”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다.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상하군요. 개미가 신을 시험하고자 하는데 왜 이리 화가 안 날까~ 그래. 그건 다른 개미도 아니고 당신이기 때문이겠죠. 혼돈의 조각.”
“대부분 봉인당했다면서요?”
“하하핫, 그런 건 어차피 차곡차곡 되찾으면 될 일. 그리고 음……. 그러네요.”
그가 한 걸음 앞으로 걷는다.
저벅.
“애초에 시스템에 의해 능력을 받아서 사용하는 필멸자와 그 시스템을 벗어난 불멸자의 차이를 가르쳐주는 것도 좋은 일일지도.”
그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채 바닥을 짚는다.
그러자 돌로 만들어진 던전 바닥이 들썩였다.
언데드들이 튀어나왔다.
기이하게도 하나가 아니었다.
둘, 셋, 넷……. 순식간에 수없이 많은 언데드들이 튀어나와 공간을 채운다.
무척이가 말했다.
“72… 총 72마리야.”
좀비 형태도 있지만 해골 형태의 스켈레톤들도 보였다.
리블이 말했다.
“다단계가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엄지 군. 폰 하나로 72명의 제물을 부를 수 있거든요.”
그때 그의 제단 근처에 쌓여 있던 시체가 전부가 아니었나?
이미 그는 그의 말대로 광범위한 현혹 마법을 걸 필요도 없이 폰 하나로 범죄자들을 개미지옥처럼 끌어모으고 있었다는 뜻.
대체 무슨 소리를 해서 국경도 없이 사는 놈들을 그 신전 밑바닥까지 유인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리고 하나같이…….
‘모두 사지 모두 멀쩡하게 죽여 놨군.’
처음부터 언데드로 부릴 생각으로 죽여 댔다는 거다.
스켈레톤이 섞여 있는 걸 보니 아마 그가 이 세계로 추락했을 때 가장 초창기에 죽였던 범죄자인가 보다.
[맞는 추론이십니다. 주군.]
리블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권속이라고 하기에는 보잘것없긴 하네요. 하급 던전에서도 자주 출몰하는 그냥 좀비와 스켈레톤뿐이니까? 하지만!”
그의 두 손에서 새카만 무언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법진이 형성되더니 흡사 촉수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언데드들의 몸에 검은 에너지가 닿은 그 순간.
끔찍한 변화가 일어나가 시작했다.
우드득, 우득.
언데드들이 서로 달라붙는다.
다섯에서 여섯 정도의 좀비가 서로 달라붙어 일그러지고, 뭉개지며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아, 본 적 있네. 저거!
“형이 지난번에 처리한 그 구울 거인이랑 비슷한데?”
“……네크로맨서의 능력인 것 같아.”
리블이 경쾌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짜잔! 즉석 어보미네이션입니다! 사실 언데드는 김장하는 것과 비슷해서 숙성을 자알해야 더 강해지지만, 급하면 급한 대로 이렇게 써도 제법 쓸 만하답니다? 겉절이도 잘만 하면 나름대로 맛있잖아요. 거기다가 마법을 살살 걸어 주면…….”
그의 손이 마법진을 몇 개 더 만든다.
그러자 다시금 변화가 일어났다.
어보미네이션끼리도 하나둘 합쳐지기 시작한 거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두 개의 언데드만 남았다.
둘 다 전신에 뼈로 이루어진 갑옷을 입었다. 그 갑옷이라는 건 뼈가 얽혀서 만들어진 것으로 투박하고 거칠다.
그래도 그 내부가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내부가 보였다면 멀쩡한 사람도 제정신 유지하기 힘들 테니까.
겉으로만 보았을 때는 4개의 팔을 가졌고, 각각의 팔에는 뼈로 만들어진 대검과 방패 그리고 철퇴와 창이 들려 있었다.
“짜잔! 언데드 거인 전사 완성입니다! 박수우우!”
짝짝짝!
텅 빈 던전에서 이 미친놈은 홀로 박수를 쳤다.
마치 모래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엣헴. 설명을 드리자면, 몸체는 좀비가 뭉쳐져서 만들어졌고, 외장갑과 무기는 스켈레톤을 재료로 만든 거랍니다. 합쳐지는 와중에 언데드 특유의 사령 마력이 들어차서 더욱 강화된 형태죠. 이거면 이런 던전의 장난감 정도는 단번에 쓸어버린다구요.”
‘고작 하급 언데드들로 이런 묘기가 가능하다고?’
척량도 놀라서 말했다.
[이런 스킬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네크로맨서 스킬은 보통 강한 몬스터를 잡아 죽여 그 시체를 살려서 종으로 부리는 게 기본인데. 언데드끼리 융합시켜서 강제로 강화시키다니…….]
확실히.
이건 인류에게는 없는 지식이었다.
특히 나는 무공과 마법, 둘 다 익혔기에 방금 전에 들어간 마력이 상당히 적다는 것을 감각을 통해 곧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랬다.
저 2기의 언데드를 만드는 데 들어간 마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적다.
내가 검기로 칼질 네 번 할 정도의 수준이었으니까.
“어떻게 한 겁니까?”
그런데 무척이가 질문을 던진다.
“으음~? 어떤 부분이 궁금하신가요?”
“위력에 비해 마력 소모가 극히 적었는데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냐 이겁니다.”
무척이도 파악했나?
이 녀석 요즘 너무 빨리 강해지는 게 약간 형으로서 불안한데.
내가 가장 세야 하는데 말이지.
‘이놈이 자는 사이에 수련해서 더 격차를 벌려야겠어.’
형으로서의 체면 문제다.
리블이 말했다.
“아항. 그게 궁금하신 거구나? 아항항항항!”
기괴하게 웃더니 그가 답했다.
“원혼과 원령이라는 단어. 어떻게 생각해요?”
원령? 원혼? 원한을 가진 혼과 영이라는 뜻 아닌가?
“생명체의 감정은 말이죠…. 마력의 대체품으로도 쓸 수 있답니다. 괜히 네크로맨서가 물량으로 승부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게 아니란 거죠. 언데드들을 제작하고, 조종하는 데 들어가는 마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건, 그 언데드들이 원혼을 품고 있어서 그런 거예요. 그 원한이 원동력이 되어서, 마력 소모를 줄여주는 거랄까요? 물론, 이 두 녀석은 조금 더 특별하지만요.”
특별하다?
[주군. 저건… 고독(蠱毒)입니다! 영혼으로 고독을 만든 것… 저런 게 가능하다니.]
잠깐. 척량아. 고독이면… 그거잖아.
항아리 안에 지네, 전갈, 독 두꺼비 같은 독을 가진 생물을 같이 넣고 서로 잡아먹게 만드는 거.
결국 최후의 한 마리가 최악의 독을 품… 잠깐. 그러면 저게.
[예. 주군. 언데드가 된 원혼들을 서로 잡아먹게 만든 겁니다. 그리고 하나가 된 거죠. 남산타워에서 본 악령 군체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그것들은 뭉쳐져 있던 거지, 서로 융합된 건 아니었으니까요.]
어느 쪽이 더 끔직한지 알 수 없는걸…….
그냥 산 사람 입장에서는 그거나 저거나 다 끔찍해.
“오오…. 우리 엄지 군은 알아챈 모양이네요? 앗? 동생분도 알아차리셨네? 그렇답니다! 이 녀석은 특제품이죠~ 이런 건 시스템으로 능력을 받는 인간들은 못 만든다고요~ 음~ 해당 관련 능력을 스킬로 받으면 가능하겠지만~ 아마도 등급이 레전드는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겠지.
영혼끼리 먹고 먹혀서 살아남는 영혼을 써먹는 방법.
미쳐버릴 것 같은 감정 속에서 나는 놈을 바라본다.
물론 나는 착한 놈이 아니다.
범죄자의 영혼까지 동정하는 성격도 아니고.
보통 휴전선 밖까지 나와서 지낼 정도의 범죄자면 당연히 밀수와 살인은 기본으로 해먹는 놈들이고.
뻑하면 사람을 인신매매해서 타국에 팔아먹거나 아니면 장기 밀매를 하는 놈들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저 광기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