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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153화 (153/305)

제153화

나는 내가진기를 눈으로 흘려보낸다.

전조등을 껐지만 그래도 달이 밝은 터라 강화된 시야가 어둠 속을 뚫고 마경 사이로 난 길을 보았다.

기이하다. 어찌 이런 마경 사이로 길이 있는 걸까?

“마경 안으로 주기적으로 토벌대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저 마경 안쪽의 던전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아서, 주기적으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죠. 이런 건 언론에서 잘 다루지 않는 내용이죠.”

독심술 하십니까? 아니면 이것도 미래 예지의 능력!?

[역시…. 이자는 위협적인 자입니다.]

그러게요. 이 인간 뭔가 꿍쳐놓은 게 참 많아.

등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말이지.

“지척 씨는 조금 더 자신의 반응을 숨기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근육의 움직임을 보면, 파악이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나중에는 그런 것만으로도 생사가 갈릴 겁니다.”

이 사내는 대체 어떤 지옥을 거쳐 온 걸까.

나로서는 짐작이 되지 않았다.

마경의 안쪽, 어둠과 기이한 공기와 기괴한 울음소리가 울리는 곳을 내달리면서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정지한 대표 이사님은 예…….”

그가 말을 끊었다.

“……다 왔습니다. 대화는 그곳에서 하시죠.”

그의 말대로, 우리 눈앞에는 마경이 끝나고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그건 내가 봐도 대단히 기괴한 건축물이었다.

흡사 건물 전체를 꼬아서 만든 듯한 기묘한 형상.

4층 높이의 건물은 두 마리의 뱀이 엉킨 것을 그린 벽화와 날개를 형상화한 문양까지 죄다 음각되어 있었다.

이국적을 넘어서, 이계적인 그런 건물이었다.

“보통 사람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미치기 십상인데 역시 정신력이 강하시군요.”

“……뭐하는 곳입니까?”

그런 곳에 사람을 데려오다니. 이놈도 제정신이 아닌 놈이다.

[묘하게 사람을 시험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 예전이었으면 내가 그만큼 대단한 루키니까 잘해주는 거고, 투자를 많이 했으니 시험하는 거라고 단순히 생각했지.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다.

나는 기괴한 이 건물을 찬찬히 뜯어봤다.

이렇게 이상한 건물이지만 주변 나무들은 이 건물보다 더 거대했기에, 이 건축물을 하늘에서 관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Ερμής의 신전입니다. 지금은 배교되고, 버려졌기에 Ερμής가 간섭하지 못하지만요.”

Ερμής?

그거 꼭 한국어로 발음하면 헤르메스처럼 들리는데?

정지한이 내 뒤에서 내렸다.

나 역시 모노 바이크G를 소환 해제하고 그의 옆에 섰다.

“들어가시죠.”

그가 먼저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신전 내부는 아주 어두워서 내공으로 시력을 강화한 내 눈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수는 없겠지.

나는 그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날개 달린 뱀의 석상이 보인다.

눈 안에서 희미하게 빛이 나오는 게 보였는데 한쪽에서는 흰빛이, 다른 한쪽에서는 검은빛이 나온다.

양쪽 눈이 정반대의 색이었다.

[사람이 만든 건축물은 아닌 것 같군요.]

그래.

그 어떤 현대의 건축 기술로도 이런 건물을 지을 수 없다.

신전 안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마치 심해 속에 잠기는 것만 같았다.

뚜벅, 뚜벅-

정지한의 발소리만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는 지표였다.

그는 뒤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이 어둠 속에서도 마치 눈이 달려서 걸어갈 수 있는 것만 같았다.

이 또한 그가 가진 ‘예지’의 힘인가.

이윽고.

어둠 속. 그 안쪽에 빛이 일어나는 공간이 보였다.

그곳에서 정지한은 가만히 서서 나를 기다린다.

그의 앞까지 걸어가자.

그가 어둠 속으로 들어가더니 의자를 두 개 들고 나왔다.

빛은 천장의 한 점에서 뻗어 나와 스포트라이트처럼 그가 선 부분만 비추고 있다.

“여기는 어디죠?”

“일단 앉으시죠.”

그가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나를 본다.

한일자로 다물어진 입.

내가 의자에 앉지 않으면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나.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자, 그가 말했다.

“이곳은 몇 가지 특별한 의식과 주술을 걸어 두었기에 신들의 시선에서 안전합니다. 신들은 그들이 원할 때 언제든지 저희를 볼 수 있으니까요.”

음, 첫마디치고는 벌써부터 묵직한데?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마치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작업 중이었습니다만……. 지척 씨의 일이 더 중요해 보였기에 이곳으로 모셨습니다.”

“여기… 비밀로 하시는 장소 맞죠?”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저한테 보여 주시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엄지척 씨라면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는 무표정하게 그렇게 말한다.

이 괴기한 장소에서 그런 얼굴로 말하고 있으니, 섬뜩한 기분도 들었다.

“최근 제가 몇 가지 징후를 포착했기 때문에 이곳에 모신 것이기도 합니다. 엄지척 씨는 최근에 무언가 중대한 사실을 알았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인간 귀신이네.

[역시. 예지 능력자가 확실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척량. 일단 정확히 어떤 능력자인지 몰라도 미래를 확인하는 건 확실해.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눈치 좋을 리가 없지.

“좋아요. 좋아. 역시 예지 능력자답네요. 아주 잘 아시는군요.”

“…예지 능력자……. 좋습니다. 그래서 알게 되신 건 어떤 겁니까?”

“[튜토리얼]이 끝난 후의 세계에 대해 어디까지 아십니까?”

끌려다니는 건 질색이라 질문에는 질문으로 답했다.

“…….”

내 말에 그는 잠시 침묵한다. 아주 조금. 3초 정도의 침묵.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우선 정정을 해 드리죠. 저는 예지 능력자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미래에 대해 어떻게 아는 걸까?

“아, 그러십니까? 알겠습니다…라고 답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잖습니까. 대표님.”

내 말에 정지한은 고민에 잠긴다.

“우선 저는 이런 장소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대표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돈을 뿌린다고 알 수 있는 장소가 아니란 것 정도는 알겠고요.”

신들의 시선을 가리는 장소라니?

애초에 신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지 않던가.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 이런 물건을 찾아내고 대비했다는 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정지한은 눈을 감는다.

창백한 옆얼굴 위로 머리카락이 쏟아진다.

여전히 표정은 알기 어려웠다.

이윽고 그가 답했다.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미래의 정보를 제약적으로 알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예지 때문은 아닙니다.”

어떻게 생각해, 척량?

[근육이나 마력의 움직임도 전혀 없습니다.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 수가 없군요.]

그야말로 포커페이스네.

확실한 건 이 인간은 거짓말도 연습했다는 거고. 그걸 보통의 능력으로는 알 수 없다는 거겠지.

이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술과 여자를 탐닉하던 재벌가 망나니 막내아들이라고?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온다.

“의문을 가지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몇 년 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일 정도일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은, 당신만은 믿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말로만 믿어 달라고 하면……. 잠깐만요.”

그러고 보니. 이럴 때 쓸 수 있는 좋은 스킬이 하나 있지.

사소한 직감.

이 인간의 말은 신뢰할 수 있어? 없어?

놀랍게도.

믿을 수 있다는 강렬한 감각이 들었다.

이거 진짜냐? 와… 황당하네.

[놀랍군요. 스킬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이 수상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좋아요. 믿죠. 믿어도 될 것 같으니까.”

그는 여전히 나를 조용히 본다.

“좋습니다. 만족스럽군요. 그러면 이제 제대로 된 대화를 시작하시죠. 저를 보자고 한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아니. 이 인간은… 이걸 이 타이밍에 물어봐?

“아까 그거죠. [튜토리얼]이 끝난 이후의 세계. 그 이후에는 세계가 멸망한다는 거 이미 알고 계시죠? 사실 세계 멸망에 대한 정보는 예전에 얻었는데……. 최근에 그 ‘멸망’이 뭔지 뼈저리게 느낄 일이 있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남산 타워의 던전에 다녀오셨었죠. ‘절망’을 만나셨습니까?”

이 새끼는 본인이 예지 능력자가 아니라면서 대체 그걸 어떻게 아는 걸까.

[그의 곁에서 감시하고 알려주는 신이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 성좌와 계약해도 그 정도 긴밀한 대화는 어렵지 않아?

[그렇긴 합니다만…….]

잠깐 온갖 상상을 한 후.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후. 진정하자. 진정해.

“예. 잘 아시네요.”

“추측이 들어맞았군요. 그곳의 던전을 ‘절망’이 만들어 놓은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추측이요?”

내 말에 그가 답했다.

“네. 근거가 있다면 추론도 가능합니다. 다만 가설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한 확인 작업이 귀찮을 뿐이죠.”

‘귀찮다?’

왜일까.

방금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 두 개가 묘하게 거슬렸다.

어쩌면 그게 ‘정지한’이라는 사내를 구성하는 일부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알 수는 없다.

허나 왜인지 지금 나누고 있는 이 대화가 앞으로의 행방을 좌우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던전을… 신이 만들어요?”

“그렇습니다. 몇몇 특별한 던전은 신들이 직접 만들어 냅니다. 혹은 인간을 후원하여 만들어 내기도 하죠. 대부분의 던전은 자연 발생하게 되지만요.”

“……그렇군요. 그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이것도 신과의 거래 때문인가?

이윽고 그가 답한 말은 나로서는 예상도 못 한 대답이었다.

“직접 본 적 있으니까요.”

뭐?

어떤 경험인지 물어보자 그는 다시 입을 다문다.

“…….”

가자미눈으로 노려보니 그가 답했다.

“죄송합니다. 다 말을 하고 싶으나 제게도 제약이 걸려 있거든요.”

[계약서라도 쓴 모양이군요.]

음, 그러게 말이야.

정지한이 물었다.

“그래서 ‘절망’을 만나셨던 일 때문에 저에게 할 이야기가 있으셨던 거군요. 어떤 이야기인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이미 다 알고 있다면, 질문하실 필요가 있나요?”

일부러 살짝 긁어 줬는데도 그는 전혀 신경 쓰는 얼굴이 아니었다.

“아까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제약이 있습니다. 미래를 모두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먼저 말씀해 주시죠.”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사실 엄지척 씨가 저를 이 정도 신뢰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과분한 신뢰인 셈이지요.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놀랍게도, 사소한 직감이 이번에도 맞다고 하고 있다.

골치 아프군.

“세계 멸망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튜토리얼이 끝나는 때가 언제인지 논의를 하고 싶어서 온 거죠. 우리 모두의 일이잖아요.”

그 개판이 된 세계를 안 보려면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정지한. 이 끝을 짐작하기 어려운 작자랑 힘을 합해서 세계를 구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니까.

결과적으로 [사소한 직감] 덕분에 이 인간을 믿어도 된다는 결론을 얻어냈지만…….

아직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단 말이지.

“결국 여기까지 도달하셨군요. 예상보다 빠르네요.”

그는 시계를 한번 보았다.

내 눈에는 평범한 손목시계로 보이지만 그의 눈에는 뭔가 다른 게 보이는 걸까.

이윽고 그가 말했다.

“하긴, 그런 의외성이 당신답죠. 한 번도 제 예상대로 가는 법이 없으시니까요.”

“그래서 대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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