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152화 (152/305)

제152화

예전에.

세계는 한번 아포칼립스처럼 된 적 있었다.

몬스터 웨이브, 게이트 웨이브, 던전 웨이브. 명칭은 다양하다.

어찌 되었건 많은 이들이 사망했는데, 과거 히어로 영화처럼 인구의 절반이 손가락 딱 하고 죽어서 끝나는 게 아니더라.

일단 기반 시설이 무너지고, 원자력 발전소도 폭발하고.

그만큼 기술도 발전해서 방사능을 정화하는 장치도 생기고 어쩌고 하고 있지만 인류가 절반 이상의 인구를 잃고, 절반 이상의 땅을 잃었으니까.

이제야 세계가 겨우 안정적이 된 상태라고는 하지만 결코 과거 평화로웠던 당시처럼 될 수는 없었다.

몇몇 국가만 해도 그냥 지도에서 사라지지 않았던가.

때문에.

일단 범죄율이 제법 높아졌다. 치안이 안 좋아진 탓이다.

거기에 더해서 서울과 부산과 같은 대도시와 그 주변 위성 도시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몬스터도 간간히 나타날 정도가 되었다.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필사적으로 대도시를 지키려고 애쓴다. 결계석을 덕지덕지 발라가면서 던전이 나오지 못하게 막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농업?

드론 농업과 스마트 팜으로 대체된 지가 제법 되었다.

정비가의 회사가 그쪽에도 깊게 관여하고 있고.

경운기 털털거리며 할머니가 담배 하나 따악 피시면서 운전하던 건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지.

때문에, 이 새벽에 임진강으로 향하는 건 썩 좋은 생각은 아니다.

고속도로야 그래도 가로등이 빛을 비추고 있지만 그 외곽은 껌껌하거든.

살인나려면 이때가 가장 좋지.

‘그래서 척량이 걱정하는 거고.’

그나마 대한민국은 총기 허가가 안 되어서 좀 다행이긴 하다.

총기 허가된 국가들은 감자 한 주머니를 위해 총알 한 발을 ‘등가 교환’하니까.

그걸 총알의 연금술사라고 어느 양놈이 풍자 짤방 만들어서 뿌렸어요.

짤이 그렇게 유명해졌는데 그 나라 정부는 끝까지 총기 규제를 안 하더라.

[대한민국도 밀수로 구할 놈들은 다 구하더군요.]

바다에 몬스터가 떠다니는데 해경이 뭘 순찰할 수 있겠나.

연안에서 조금 순찰하는 수준이다 보니까 밀수를 막아내는 건 무리다.

그래서 제3국에서 능력자 용병 하나 태우고 포세이돈, 용왕님, 다곤, 하백, 아무튼 각 문화의 수신(水神)에게 제를 지내고 통통배 몰고 출발한다.

눈먼 몬스터한테 뒤지는 것도 지 인생이고, 살면 그게 돈이고.

걔들이 이제 한국 서해안에 도착해서 칠레산 유기농 마약부터 총기까지 바리바리 팔아먹어요. 아주.

[그래도 가장 많이 돈이 되는 건 킹크랩 밀수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군.]

한국인의 마약이다.

대마보다 킹크랩이지.

양식 대게는 자연산 킹크랩보다 맛도 떨어지고 살코기도 적다 보니 자연산 킹크랩값이 더욱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과거의 굴라그 감옥이 지금은 킹크랩 채굴지로 바뀌었다.

독제에 저항한 정치범과 사상범들이 채굴해낸 얼음 바다 킹크랩이 이제는 킬로당 50~60만 원 정도에 팔린다.

미친 가격이지만 한국인에게 있어 이건 대마보다 합리적이다.

이 돈으로 둘 중의 하나를 사야 한다면 역시 킹크랩이다.

살은 쪄먹고 내장은 김가루에 참기름 넣어서 날치알이랑 비벼먹고.

남은 건 라면에 넣어 매운탕 해먹는다.

먹는 틈틈이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려 친척 놈들 배 좀 긁어주면.

대마 따위와 비교할 수 없지.

러시아 마피아가 꽉 잡고 있다.

참고로 틈틈이 총도 좀 팔고 있다.

그쪽은 육로로 북한이었던 지역을 경유해서 온다고 한다.

[주군! 너무 빠른 거 아닙니까?]

“러시아산 총알 맛 보기는 싫거든.”

그럼에도 나는 모노 바이크G를 몰아, 폭주에 가까운 속도로 내달리고 있었다.

어차피, 일반적인 범죄자들이 나를 어떻게 하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강해져 버렸으니까.

시속 300km가 넘는 속도와 자동차 한 대 안 보이는 적막한 도로는 초인적인 감각을 가지게 된 나에게는 아주 재빠른 이동 수단이었다.

이 어둠 속에서 이 속도를 상대로 저격이 가능하면 걔는 인정해 줘야지.

사실 건곤금강공 덕분에 어지간한 공격은 이제 맨몸으로도 버티고, 거기에 [불굴]까지 있으니 저격탄 한 방 정도는 그냥 몸으로 때우고 뚝배기 깨러 달려가야겠지만.

그렇게 내달리기를 한참.

저 멀리로 임진각의 요새가 보였다.

예전에는 임진강을 건너는 다리와 함께 관광 장소로 쓰이던 곳이지만, 지금은 다리는 막혀 있고, 거기에 두터운 방벽과 요새도 건설해 놨다.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군부대가 쳐 놓은 바리케이드와 위병소 그리고 군인이 나를 막았다.

“정지하십시오.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군기가 꽈악 잡혀 있다.

하기사 이 야밤에, 이런 데 오는 인간이라면 경계해야지.

“이쪽에 ㈜정진 컴퍼니의 정지한 대표…….”

“여깁니다. 지척 씨.”

어 씨, 깜짝이야!

나만 놀란 게 아니다.

위병소의 군인들도 모두 심장마비 걸릴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 총을 견착하고 급히 정지한을 겨눈다.

위병소 옆쪽 어둠 속에서 정지한이 밝은 곳으로 느릿하게 걸어온다.

언제부터 거기 있던 걸까?

아니면 이제 도착한 걸까?

알 수는 없었다.

확실한 건 위병소의 사람들도, 심지어 나조차도 그가 거기 있는지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

롱 코트에 스리피스 정장.

검은 무광 구두.

셔츠는 여전히 구김 없이 뻣뻣해서 갓 출근한 것 같은 단정한 차림새다.

누가 봐도 임진강보다는 증권가 CEO의 첫 출근처럼 보일 정도.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이 그는 그렇게 서 있다.

안경에 헤드라이트가 반사되어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 출입증입니다.”

그는 총구를 댄 군인들을 상대로 가볍게 저벅저벅 걸어가 출입증을 보였다.

[마력이 느껴집니다. 주군.]

그 말에 출입증을 유심히 보았지만. 어쩐지 제대로 인식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생긴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데? 척량도 그래?

[네. 마찬가지입니다. 무언가 걸어놓은 것 같군요. 보고도 인지가 안 되다니.]

“충성!”

그리고, 군인은 아무런 반론 없이 바리케이드를 치웠다.

저거… 괜찮은 건가?

“뒤에 타겠습니다.”

“예?”

정지한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 모노 바이크G의 뒷좌석에 앉는다.

그러고는 내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뒷좌석의 고정대에 발을 대고 철컥거리며 자리를 잡는다.

이 인간.

역시 예지 능력자인가? 되게 잘 알잖아?

“출발하시죠.”

“어……. 예. 그런데 어디로 가요?”

“다리를 건널 겁니다.”

“예?”

다리를 건너? 무슨 소리야.

다리 너머는 마경이 된 지 오래잖아!

뒤를 돌아보니, 정지한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안경 아래로 대체 무슨 표정일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주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척량의 질문에 골이 아파 왔다.

그래. 어떻게 해야 할…… 아니. 가 보자고.

이 인간이 대체 뭘 알고 있는지 알아야 할 것 같으니까.

“필요한 일입니다.”

필요한… 일이라.

좋아. 그렇다면.

가 주겠어.

“까짓것 가죠.”

“좋군요.”

우우웅-

군인들 사이를 지나서, 도로를 달린다.

임진각은 텅 비어 있어서 어둡다.

가로등도 거의 없고, 바이크 헤드라이트에 닿는 반사광이나, 내공으로 강화된 시야.

그리고 유난히 밝은 달빛 덕분에 길을 따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강을 건너자마자 보이는 건 이미 파괴되어 잔해만 남은 도로와 박살이 나 있는 건물들의 폐허.

문명이 끝나는 지점이다.

“그래도 다리를 내버려 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군부대의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세금만으로 군대를 운용하기에는 제법 빡빡하기 때문이죠. 다리를 건너려는 자잘한 몬스터를 잡고, 그걸 돈으로 바꿔서 군의 예비금으로 사용합니다.”

일반 총알은 안 박히지만, 그래도 특수 총알은 박힌다.

그래 봤자 능력자 칼질에 비해 부족하나 내가 썼던 헌터 보조원용 총보다야 성능이 좋다.

“어. 그 이야기 저도 알아요.”

제법 유명한 이야기다.

북한이 사라진 데다가 몬스터 상대로 총알도 박히지 않는 지금의 한국에서, 직업 군인은 헌터 보조원과 야악간 비슷한 포지션이다.

위험하고 더럽지만 돈은 많이 벌리는 직업.

물론 연봉이 짭짤하다고는 해도, 사실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하려고 들지 않는 게 정상이지만…….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몬스터를 사살하다 보면 각성을 하기도 한다는 이론이 있긴 하다.

정식으로 채택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상(?) 20대 이후에 각성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군인 출신이 많다.

때문에 인생역전을 노리는 이들이 제법 군대에 자원 입대를 한다.

-몬스터 많이 잡다 보면 각성을 많이 한다는 건 국방부의 언론 조작입니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그럴 뇌가 없습니다! 뇌가 있었으면 굳건이부터 리뉴얼했습니다!

-굳건이는 안 쓰인 지 오래인데 왜 그러십니까! 공식적으로 국방부 마스코트는 힘 센 호랑이, 힘찬이입니다!

-굳건이 인형 탈 쓰고 행사하는 게 하루 이틀 찍힌 것도 아니고! 힘찬이면 힘찬이 인형탈로 교체하든가!

원시 고대 마스코트 굳건이는 여전히 국방부의 상징이다.

힘찬이는 어쩐지 호돌이랑 헷갈리는 애들이 좀 있다.

나만 해도 호랑이 탈을 쓰고 나가면 얘가 힘찬인지 호돌인지 알 게 뭔가 싶다.

어쨌거나 이제 전역한 줄 알았던 굳건이는 왜인지 행사마다 인형 탈이 등장하고.

밈은 여전히 계속되고.

군대 생리상 딱히 언론에서 방송하지 않는 이상 전역한 굳건이는 계속 군 행사마다 끌려나오지 않을까?

아무튼 각성자가 되기 위해 목숨 걸고 마지막 20대를 불사르는 자들이 있다.

파괴된 폐허 사이를 지나는 사이, 정지한이 다시 말했다.

“과거에는 이곳에도 사람이 살았습니다. 지금은 보다시피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만…….”

멀리 흐릿하게 펜션의 윤곽이 보인다.

이제는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면 되죠?”

내 질문에 내 앞으로 빛나는 화살표가 생겨났다.

“화살표 방향대로 가시면 됩니다.”

이 인간… 이런 건 또 어떻게 익힌 거래.

이것도 마법이나 스킬 종류이긴 하겠지만.

그렇게 화살표의 인도를 받아 나는 그를 태우고서 내달렸다.

비포장 도로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덜컹거렸지만, 사실 나와 정지한의 탑승감에는 문제가 없었다.

왜냐면 내 모노 바이크G는 쇼크 업쇼버가 아주 끝내주거든요!

애초에 온로드가 아니라 오프로드를 상정해두고 만든 거라 비포장 도로 덜컹거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던전 안에 아스팔트 깔 것도 아니까.

그렇게 폐허까지 지나, 아예 숲이 되어 버린 지역에 도착했다.

이 지구의 나무가 아니라, 이계에서 넘어온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마경.

던전 안의 몬스터들이 지상을 활보하며 서식지를 만들 때 그들과 함께 넘어온 것들이다.

높이는 작은 빌딩만 하고, 잎은 너무 무성해서 그 내부가 어둡다.

이 새벽에는 더욱더 어두웠다.

“빛은 쓰지 마십시오. 빛에 민감한 것들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길은 있으니까 걱정 마시기를.”

“이 빛은요? 그리고 이거 바이크 소리는 어쩌고요?”

화살표를 가리키며 묻자. 그가 답한다.

“당신에게만 보이는 겁니다. 그리고 소리는 이렇게 해결하죠.”

그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그건 나선으로 뒤틀린 손바닥만 한 조각상이었는데, 우리 주변을 마력이 한차례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제 소리도 차단되었습니다.”

그렇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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