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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149화 (149/305)

제149화

손가락이 꺾이고. 그러나 나는 ‘희망’을 놓지 않은 채 ‘불굴’을 발동해 일어나 다시 싸운다.

하지만 그 많던 포션도 점차 사라져 간다.

인간은 마모되며 유한하다.

영원히 싸울 수 없다.

“내가 이대로 뒤질 것 같냐! 씨발 새끼들아아아악!”

생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희망은 결코 고고하지 않았다.

진흙탕 속에서 두 팔을 내젓는 게 희망이었다.

이 꼴사나운 행동으로 인간은 늪 밖으로 나가기 위해 애를 쓴다.

그리고 마침내.

“……싸…워……. 끄어어어억!”

[작은 절망이 몸을 일으킵니다.]

단 한 명.

드디어 내 이 미친 짓에 동참할 절망 하나.

콰아아앙!

일어나는 순간 촉수가 작은 절망을 붙잡아 와구와구 먹었다.

“끅……. 끄아아아악!”

먹히는 내내 비명이 울린다.

[포식자는 작은 절망의 영혼을 흡수합니다. 영원히 포식자의 위장 속에 귀속됩니다.]

죽어도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는 게 아니었다.

그저 아득하게 초월적인 ‘무언가’의 위장 속에서 계속 녹아내릴 뿐.

천국도 지옥도 환생도 튜토리얼 이후의 세계에서는 사치일 뿐이었나.

그 모습에 다른 절망들이 몸을 움츠린다.

그것은 내가 줄 수 있는 안온한 죽음이 아닌, 강자에게 산 채로 포식되는 가장 잔혹한 죽음.

대체 튜토리얼 이후에 오는 놈들이 뭐하는 놈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영혼조차도 양식 삼아 영원히 고통을 주는 무언가인 모양이었다.

그 시스템 메시지를 나만 들은 게 아닌 모양이다.

인간의 형상을 잃은 모든 ‘작은 절망’들이 몸을 떤다.

[작은 절망은…….]

[작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촉수를 향해 소리 지른다.

“씹새끼야! 내가 이대로 갈 것 같냐!!!!!!!!”

갓튜버의 예쁜 미소도, 멋진 방송 멘트 같은 것도 없다.

눈물과 분노가 얼룩진 표정 속에 발악밖에 남은 게 없었다. 그 끝.

우드득!

팔이 완전히 뜯겨 나갔다.

“와하하하, 내 참 어이없네. 상대가 너무 강하면 웃음이 나오는구나?”

오른팔이 없다면 왼팔이 있다.

이 뒤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발악을 안 하기에는 너무 억울해서, 너무 속상해서.

빠아아악!

몸이 날아간다.

바닥을 구르고, 구르고, 피를 다시 게워내고.

오염된 흙바닥 맛이 참 더럽다.

아스팔트, 보도블록. 한때 인류가 당연히 문명의 상징이라 일컬었던 보잘 것 없는 돌멩이들이 장난감 블록처럼 흩어져 있다.

문득 시선을 느꼈다.

누군가가, 아니 수없이 많은 ‘작은 절망’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너희들을 죽여줄 거 같냐? 왜, 그 몸뚱이로 자살은 안 되나 보지? 크크큭.”

핏물이 목을 가글했다.

아파, 아프다. 고통으로 정신이 마비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일부러 악다귀처럼 웃었다.

수많은 한 쌍, 두 쌍, 세 쌍, 어떤 것은 아예 눈조차 없는 몸뚱이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오염되고 기괴하게 뒤틀려 있는데 죽음조차 쉽지 않다.

그야말로 ‘작은 절망’이다.

[작은 절망이 ‘씨발’이라고 말합니다.]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데도 무시하고 촉수한테 마력이나 퍼붓는 못난 히어로.

[작은 절망이 ‘아니, 씨발’이라고 말합니다.]

바뀌지 못할 현실.

[작은 절망이 ‘좆같…… 씨발’이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너무 화가 나서, 이대로는 너무 억울해서.

드디어 군중들 사이에 작은 파도가 생긴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그들은 촉수를 향해 움직였다.

[작은 절망이 이 새끼는 죽이고 가겠다고 합니다.]

지독한 고통 속에서 인간은 움직였다.

사랑? 희생? 자애?

그런 것도 가진 게 있어야 가능했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저주받은 몸뚱이를 비척거리며.

[작은 절망이 못 죽여도 뭐 하나 패고는 가겠다고 합니다.]

[작은 절망이…….]

[작은 절…….]

그 순간, 거대한 촉수가 날아온다.

모두를 향해서. 모두를 개미처럼 짓뭉개기 위해서

하지만 내 팔은 날아간 지 오래고, 오른쪽 다리도 거꾸로 뒤틀려 있었다.

검을 휘두르는 것도 불가능했다.

망가진 장난감조차 비웃을 이 몸뚱이.

이제 포션도 없다. 이 정도 체력으로 ‘불굴’은 발동하지 않는다.

죽음? 이게 무슨 ‘시험’이야. 깰 수가 없잖아?

이 개자식들아.

지긋지긋한 분노를 담아.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욕설을 내뱉듯 소리 지른다.

그것은 절규였고.

“씨발!! [희망의 수호자] 나오라고--------!!!!!!”

그 순간, 드디어 그동안 애타게 기다렸던 그 망할 문짝만 한 방패가 나타난다.

-스킬이 무사히 발동됩니다.

이윽고 시스템 메시지가 바뀌기 시작했다.

[작은 희망은 개 같은 세상, 지랄 같다고 합니다.]

-한 명의 ‘작은 절망’이 한 명의 ‘작은 희망’으로 변했습니다.

그랬다. 희망은 결코 밝은 미래를 바라며 타오르는 게 아니었다.

그 미래조차도 밝지 않을 때, 그런 좆같은 상황에서 외치는 단말마 같은 것.

그리고 그 단말마가 인간이 포식자 상대로 칼빵이나 한번 하게 해주는 기회였다.

그 순간, 메시지가 또 울렸다.

[작은 희망이 좆같다고 합니다.]

[작은 희망은 피를 원합니다.]

[작은 희망은 저 새끼를 보내고 나도 가겠다고 합니다.]

[작은 희망은…….]

사람은 나무를 장작 삼아 태우고, 신은 인간을 무엇 삼아 태우는가.

나무가 타는 불은 주황색이라면, 사람이 타는 불은 흰색이었다.

빨간 불이 800도, 노란 불이 1,000도라던가.

모든 것을 다 태우고 그 고통으로 1,300도를 넘긴 불이야말로 사람을 태우는 불이고, 그리고 그 고통의 빛이 바로 희망이었다.

“……이… 씨…… 씨발 새끼들아……. 씨발 개자식들아--!!”

-당신은 수많은 작은 절망들을 작은 희망으로 바꾸었습니다.

-연설과 세뇌 스킬 없이 어떻게 이렇게 바꾸었는지 ■■들이 의아해합니다.

신들은 인간을 모른다. 사람을 모른다.

희망은 가장 상황이 개좆같을 때 생기는 분노다.

높으신 분들은 인간을 태울 줄만 알았지, 인간의 진짜 성질을 몰랐다.

‘우리가 장작에 불을 붙이는 법만 알고 장작에 대해 모르듯이.’

인간은 백탄(白炭)이다.

절망 속에서 가장 순도 높은 불을 피워내는 백탄(白炭).

600도에서 구워내는 것이 우리가 아는 까만 숯, 흑탄(黑炭)이라 한다면.

백탄은 1,200도가 넘는 흰 불꽃 속에서만 마침내 희게 발화한다.

절망은 흑탄이나 희망은 백탄이다.

타고, 타서 더는 남을 게 없는 흰 숯이 절망보다 깊게 타오르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 발버둥을 비로소 희망이라 부른다.

희망은 흰빛이다.

그것은 고결해서가 아니라 그저 뜨겁게 타기 때문이었다.

절망 속에서 분노의 발화점을 넘은 인간은 횃불을 들고 생을 태웠다.

그 백탄(白炭)들이 만들어낸 희망 속.

그 순간 세상이 멈춘다.

-시험 통과.

흑백의 세계. 시간과 시간의 틈 속에서 나는 이제 메시지를 기다린다.

까마득한 높은 곳에서 개미를 바라보는 불멸자들의 메시지들을.

-절망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희망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하, 하하하…….”

웃음이 나온다. 동시에 눈물이 나왔다.

이 미친 미래 속에서.

또다시 빌어먹을 내 [사소한 직감]은 이게 허상이 아닐 거라고 답했기에.

파칭.

세계가 깨지기 시작했다.

잔금이 점점 커져가며 순식간에 모든 게 부서지기 시작했다.

빛이 나타났다 부서지고, 시공을 잠시 초월하며 인간의 땅으로.

현재로.

눈을 뜨니 다시 던전으로 돌아왔다.

-절망은 당신을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퀘스트 완료.

[절망이 지켜보는 필멸자]

등급 : 유니크

절망의 신이 필멸자를 지켜보고 있을 때 부여되는 칭호.

사람은 절망을 마주하면 무너져 내린다.

*일정 수준 이하의 적대적인 존재는 상태이상 [절망]에 영향을 받는다.

멈추었던 세상이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엄지 괜찮아?

-엄지 막판에 세뇌 걸렸나 보네ㅋㅋㅋㅋㅋㅋㅋㅋ

채팅창이 올라간다.

나는 빠르게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척량만이 내가 이러는 이유가 방금의 시험 때문이라는 것을 알 뿐.

‘별거 아니야. 척량. 이 새끼가 그렇게 사람을 가지고 놀고서는 고작 유니크 등급을 줬거든.’

[아…. 하지만 유니크도 대단한 거 아닙니까.]

희망은 레전드 등급 줬었어.

나는 미칠 것 같은 정신을 부여잡고 깊게 심호흡을 한다.

채팅창에는 걱정하는 사람들과 그렇게 건방 떨더니 꼴좋다는 사람들의 채팅이 함께 섞여 있다.

나는 안면 근육을 당겨서 웃는다.

“와, 나 방금 무서운 거 봤어요.”

-엄지도 만능은 아니구나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전투 끝난 후에 온 거라 다행이다.

-엄지 우는 것도 멋졌어. 괜찮아. 乃乃乃乃乃乃乃乃乃乃乃乃乃

문득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세상이 빙글 돌아갔다.

무너지기 전에 방송 빨리 종료해야겠다.

* * *

부정한 정신 공격 면역.

좋은 능력이지.

이것 덕에 여러 가지 정신계 공격을 무시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정신 피로까지는 없애 주지도 못하고 힘든 일은 여전히 힘들고 그렇다.

어쩔 수 없지 않나.

세뇌당하거나 미치는 걸 막아는 줘도 그 외의 판단은 오롯이 내 것이니까.

집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어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이 아까 보았던 멸망의 하늘과 닮았다.

그때 먼 곳에서 나팔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았다.

검은 ‘그림자’가 냈던 소리 같기도 했는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비척비척 돌아와 옷을 벗고 곧바로 욕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몸은 미역처럼 흐느적거리는데 사지는 벌벌 떨린다.

‘알코올이 부족해서 그런가.’

나와서 맥주를 따서 한 모금 삼킨다.

“…….”

여전히 손이 떨린다.

숨 쉬기도 힘들고.

척량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만 있다.

이 녀석이 봐도 뭔가 이상하긴 한 거지.

그렇게 맥주 한 캔을 다 비웠는데도 여전히 떨림이 멈추질 않아서 다시 맥주를 찾아 움직인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응. 세계 멸망을 눈으로 본 것치고는 괜찮아.”

[절망의 시험이 그것이었군요. 단순한 환각일 가능성은… 아……. 없겠군요. 사소한 직감 스킬로 확인을 하셨을 테니.]

“……그런 셈이지. 그리고 그 정도 되는 존재가 단순히 허깨비로 시험했을 것 같지도 않고.”

성좌는 모두 필터가 된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느 성좌가 나한테 후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저 ‘천 따봉 감사합니다. 고갱님~’ 하고 외칠 뿐이지.

하지만 그 ‘희망’과 ‘절망’은 시스템으로도 필터가 되지 않는다.

내 생각을 읽은 척량이 답했다.

[네. 물론 ‘죽음을 거부하는 자’도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그때는 놈의 영역 안에서 놈의 신도들을 도륙하여 권속으로 삼기 위해 초대한 방식이었으니 인과율이 완성되었을 겁니다.]

척량은 잠깐 말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희망은 희망의 성채라는 이름이 있었으나 신전 형식도, 나오는 몬스터들이 희망을 모시는 지성체도 아니었고. 특히나 절망은…….]

“그래. 던전 이름에 절망도 안 들어가 있었지. 아예 격이 다른 존재였던 거야.”

[그런 존재가 내린 시험에서 살아남는 수준을 넘어 완벽하게 통과했다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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