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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148화 (148/305)

제148화

저게… 있으면…… 여기가 꼭…… ■■ 같잖아……?

[큰 절망이 당신을 내려다봅니다.]

아…. 이해했다.

이거 ■■구나.

튜토리얼이 끝나고 나면 세상은 이따위로 변하게 되나 보다.

그런데 왜 내가 생각하는 그 ‘단어’가 떠오르지 않지?

이상하게 그 글자만이 떠오르지 않아서 한참 머리를 긁적였다.

만약 내가 정신 방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면 분명 미쳐 버렸겠지.

[작은 절망들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갑자기 사람의 몸을 장악한 버섯들이 부들부들 떨며 사람의 육체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것들이 이동한다.

아니, 뭔가에 쫓기는 것 같다. 하늘에서 날아다니던 괴물들도 한 방향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는 녀석들이 무엇에게서 도망치는 것인지 볼 수 있었다.

어둠.

검은 지평선이 저 멀리서부터 다가온다.

석양이 지고, 밤이 찾아오는 것처럼 그것이 다가오면서 그것에 닿는 것들을 전부 집어삼키고 있다.

느리지만 꾸준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만은 제아무리 정신방벽을 최상급까지 밀어올린 나라도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이거 설마 앞으로의 미■……?

앞 글자 하나가 생각이 났다.

모골이 송연하고, 솜털이 쭈뼛 섰다.

저 어둠에 닿으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감각이 머릿속에 비집고 들어왔다.

뭐야. 저거. 저게… 대체 뭐야?

마치 모든 것을 지워 버리는 것처럼…….

멀리 있었지만 그래도 보이긴 했다.

어둠에 닿은 괴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산산조각 나고, 그대로 흔적도 없이 흩어져 버리는 것이.

모든 것이 사라진다.

사라지고. 사라지면서……. 이윽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는 드디어 ■■의 두 글자를 떠올린다.

이게 설마 앞으로 생길…….

‘말하면 안 돼.’

내 목소리가 내 귀 안쪽으로 밀려왔다.

그 순간, 나는 꺼냈다.

“소환 [희망의 수호자]!”

-스킬이 해제됩니다.

문득 나는 어째서 스킬이 발동하지 않는지 깨달았다.

기능 : 마음이 꺾이지 않는 한 파괴되지 않는다.

무너진 건 내 마음인가. 고작 남산타워가 보이고 주변이 조금 지옥이 되었다고, 꺾이는 건가.

“다시 소환, [희망의 수호자]!”

-스킬이 해제됩니다.

그렇구나. 의식으로는 부정하고 싶어도 무의식은 눈치챘다.

어떤 것들은 안다는 것만으로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내 [사소한 직감]이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고 말해 주는 순간 결국 이 망할 문짝 방패를 꺼낼 수 없게 되었으니까.

그래. 알겠어.

결국 내가 내뱉을 뻔한 ‘■■’라는 단어 때문이야.

그걸 떠올리는 순간. 정말로 앞으로 예정이 될 것 같으니까.

“망상 집어치워!”

그래. 이 세계는 결코 앞으로의 ■■가 아니다. 이 세계는 그저 환영일 뿐.

‘절망’이라는 신의 망상일 뿐이다.

그래. 이건 ■■가 아니다. ■■는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내 직감이 뭐라고 말해도, 이건 그저 그럴 듯한 눈속임일 뿐이니까!

“소환 [희망의 수호자]!”

문짝만 한 방패가 나타나려다가 다시 사라졌다.

-스킬이 해제됩니다.

“주… 죽여 줘요……. 죽…….”

[작은 절망들이 당신에게 애원합니다.]

이건 결코 ■■가 아니었다. ■■일 수 없었다. 정해지지 않은 세상이니까.

이를 악물었다.

“하, 하하하…….”

포션을 꺼내 사람들에게 부어 보았다.

가지고 있는 축복이나 저주 해제 스킬을 사용해 봐도 효과가 없다.

“크아악, 아파, 아파아아아!”

오히려 고통이 가중될 뿐.

[작은 절망들이 당신에게 죽음을 애원합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은 절망들이 당신에게 죽음을 애원합니다.]

“이건 절대 인류가 아니야. 그리고 내 ■■도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 스킬로 이들에게 안식을 주는 게 낫지 않을까?

검기. 그리고 검사. 그것을 극대화한다면,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존재를 지워버릴 수 있다.

그렇게 이들에게 편안을 주는 것.

울컥.

그 순간, 심장 속에서 뭔가가 울컥 올라온다.

그건 형용할 수 없는 ‘짜증’, ‘분노’, ‘연민’이 뒤섞인 무언가였다.

이대로 저들을 죽이라고?

괴물들에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죽여서 고통에서 해방하라는 건가?

이게 절망이 내린 시험이라면.

파칫! 파치칫!

검기를 만들고, 그것을 키운다. 그리고 감정을 담아 휘둘렀다.

서걱!

“키이이이익!”

검기는 ‘작은 절망’을 베지 않았다.

그저 스쳐 지나가 촉수를 꿈틀거리는 기괴한 ‘무언가’의 몸체 일부를 잘라낸다.

기괴한 ‘무언가’가 비명을 지른다.

괴물의 불길해 보이는 흑녹색의 피가 사방으로 떨어져 내리며 매캐한 연기를 만들었고, 촉수에 붙잡혀 있던 사람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아비규환.

그 속에서 사람들이, ‘절망’들이 아우성쳤다.

[작은 절망들이 당신에게 실망합니다.]

시스템은 그들을 사람으로 치지 않았다.

‘작은 절망’. 그게 시스템이 정의한 표현.

이미 인간으로서의 형상을 잃은 자들은 어떻게 살아 있는지도 의아할 지경이었고.

[작은 절망들이 왜 죽여 주지 않는지 의아해합니다.]

[작은 절망은 죽음을 원합니다.]

[작은 절망은 당신이 죽음을 내려주길 원합니다.]

[작은 절망은…….]

“기다려봐. 나는 아직 다 안 했다고!”

그래.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직 이 세계를 모르지 않나.

저 남산타워 하나 가지고 절망하는 건 웃기지도 않는 일 아니냐?

“끼이이오오오오!”

검기에 촉수가 잘린 기괴한 ‘무언가’가 괴성을 지르며 꿈틀거린다.

콰콰쾅!

땅이 갈라지고, 그곳에서 촉수와 이어진 더 거대한 무언가가 튀어나온다.

이런 미친!

땅 속에 본체가 있었던 거였냐!!

“빌어먹을. [희망의 수호자]!”

-스킬이 해제됩니다.

여전히 방패는 나타나지 않는다.

내 직감은 답을 알고 있다.

대지가 갈라지고, 이윽고 녀석이 지상에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전체적인 크기가 빌딩 정도만 하다.

하…하하하하. 너 이 새끼. 진짜 크구나?

촉수 중 하나가 꿈틀거리더니 무시무시한 속도로 나를 향해 내리쳐진다.

건물 하나만 한 크기의 촉수.

내 근처의 ‘절망’들이 촉수만큼은 피하려는지 아등바등 움직이는 가운데, 나는 생각했다.

‘와, 이건 못 막는다.’

[작은 절망들이 죽음을 찬양합니다.]

[작은 절망들이 당신이 죽여 주길 바랍니다.]

그들이 바라는 건 단 하나.

죽음, 안온한 사(死)의 찬미.

모노 블레이드를 활성화하고, 내기를 전부 불어넣는다.

본능에 따라, 야성의 감각에 따라 뛰어오르며 두 개의 검으로 집채만 한 촉수를 갈라 나갔다.

검기가 오 미터가 넘게 길어진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 그사이에 반짝이는 반딧불처럼 검에 대한 영감이 생겨나 타오른다.

스카카카칵!

무수히 많은 검의 잔영이 그대로 촉수를 가르고 해체한다.

나는, 나는 정신을 차려 보니 쌍욕을 하며 작은 사람 모습을 한 ‘절망’들을 지켜냈다.

하. 극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되…….

콰아아아아!

옆에서부터 촉수 하나가 횡으로 날아오는 게 보인다.

위에서 내리치는 건 페이크였냐! 이렇게 죽는 거야? 내 어이가 없어서.

이 와중에 나는 마지막으로 불렀다.

“[희망의 수호자] 안 나오냐! 이 씨발 스킬아아아아!”

분에 차서 머리가 시뻘게진다. 그러나. 이 새끼는 나오지 않았다.

콰쾅!

거대한 촉수가 나를 때렸지만, 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온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못 박힌 채로 서서 작은 ‘절망’들을 지켜냈다.

-불굴이 발동합니다.

“하…하하하…….”

[희망의 수호자]가 아니다. 불굴이 발동해서, 억지로 나를 지탱해 준다.

쿠그그그그.

촉수가 뒤로 물러나는 걸 보며 비틀리고 메마른 웃음을 지었다.

크. 크크크크.

내가 이대로 뒤져 줄 거 같냐!

검기나 처먹어라!!

쐐에에엑! 스칵! 서걱!

물러나는 촉수를 잘라내고, 잽싸게 그림자에서 포션을 꺼내서 억지로 삼킨다.

몸이 누더기처럼 조각난 것 같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낸다.

[작은 절망들은 왜 자신을 죽여 주지 않는지 궁금해합니다.]

[작은 절망들은 이길 수 없는 존재를 왜 상대하는지 이상해합니다.]

[어차피 이길 수 없습니다. 자신들을 죽여 주고 신속하게 자결할 것을 작은 절망들이 권합니다.]

죽여 달라고? 자결?

어떤 절망은 냉정한 현실 인지에서 나온다.

현실을 인지할수록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인간은 더욱 깊은 절망 속으로 침전한다.

‘와…. 이거 참.’

울컥 눈물이 치민다.

명치에서 불이 치밀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절망을 이기는 건 자애나 해탈 같은 고아한 감정이 아니었다.

아득한 분노와 억울함.

그런 의미에서 나는 착한 사람은 아니지.

카메라 앞에서야 곱게 웃고 있지만, 사실 지랄 나면 일단 짖고 보는 개새끼가 나다.

이 뻗치는 열을 ‘작은 절망’들에게.

“웃기지 마! 내가 왜 너희들을 죽여 줘야 해!”

나는 ‘작은 절망들’에게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억울하면 같이 싸워! 이 씨발 새끼들아!!!!!”

[작은 절망은…….]

“남의 사정 따위 알 바 아니야! 너희들 죽일 마력은 이 거대 촉수 하나 흠집 내는 데 다 쓸 테니까. 니들은 니들이 알아서 해!”

그게 머리에 치밀고 나니 나는 그제야 이 단어를 절망 없이 온전하게 말할 수 있었다.

‘■■’.

“이딴 걸 내 ‘미래’라고 하지 마라. 역겨우니까.”

단어가 부서진다.

온전하게 거부의 마음을 담아 입 밖으로 튀어 나간다.

머리가 분에 차서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고.

악다구니처럼 촉수를 상대로 칼질을 한다.

그러나 이제는 아까처럼 한두 개가 아니다.

집채만 한 촉수 수십 개가 나를 때려죽이려고 움직였다.

그렇구나. 튜토리얼이 끝난 후의 세계를, 그 세계에 나타날 ‘괴물’들을 상대하기엔 인간은 너무나도 미욱해서.

살아남을 수 없는 세계였어.

게다가 그냥 죽는 것도 아닌… 영세토록 고통받는 지옥.

콰쾅!

잠깐 생각한 순간, 도착한 촉수가 지면을 박살 내며 뒤집는다.

그 사이로 마치 서커스를 하듯, 애크러배틱한 묘기를 부리듯이 움직였다.

사람 손에서 도망 다니는 작은 벌레처럼, 이제는 내가 거대 괴물이 잡으려고 하는 작은 곤충이 돼서 도망친다.

그리고 냅다 칼질!

“카아아아아아아아!”

녀석의 비명을 인디 밴드의 락 음악처럼 들으며 달렸다.

달리고 달릴수록, 나는 더욱더 잘 피하고 더 잘 달린다.

그래! 나 천무지체다, 이 시발아!

점점 더 강해진다! 계속 강해진다고, 이 개새들아!

“이대로 죽을 바에는 이 새끼 촉수 하나라도 더 자르고 간다!”

아아, 이거구나.

‘희망’은 결코 희고 아름다운 무언가가 아니었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었을 때 뛰쳐나온 희망은 ‘판도라 님, 슬퍼하지 말아요. 저는 희망이에요. 이 고통을 이겨내게 해줄 거랍니다?’ 하고 속삭이는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좆같은 세상 내가 이대로 뒤질 것 같냐’ 하고 외치는 외마디 비명이었다.

촉수에 한 번 스칠 때마다 몸 한 곳이 부서진다. 그저 바람만으로도 체력이 극한까지 깎여 나갔다.

허나, 다시 일어나서 칼질한다.

다시 쓰러지고.

우드득-

“끄아아악! 씨발, 개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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