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7화
“이 던전은 미로입니다. 성 내부의 통로가 전부 미로처럼 얽혀 있고, 그 미로를 헤매며 정신 붕괴를 일으키는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걸 피하거나 억지로 잡아가면서 진행해야 하겠죠?”
-그거 모르는 사람?
-엄지야. 던전 설명하면서 시간 괜히 때우지 말고 넘어가고 바로 그냥 전투나 해라.
하지만 말이다. 헌터 갓튜브 많이 보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여도 일반인들은 모르는 이야기거든.
그 사람들 배제하면 안 돼.
뉴비들을 위해 떠먹여 줄 수 있는 건 다 떠먹여줘야 한다.
나는 채팅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그 와중에 미로의 핵을 찾는다? 이거 진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죠. 괜히 사람들이 이 던전을 안 오는 게 아니에요.”
-아, 그래서 힘든 거구나. 몰랐다.
거 봐, 뉴비 있잖아. 설명은 친절해야 한다니까?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지금은 아니에요. 저는 동양식 #호러가 아니라 서양식 #액션 호러로 가겠습니다! 서양 #호러는 뭐로 끝난다? 화력으로!”
우주에서 온 촉수 괴물도 샷건으로 퇴마하는 게 할리우드 호러.
산탄총이라도 들면 한 방에 주님 곁으로 보내줄 수 있다.
나는 그걸 좀 본받기로 했다.
무음영창. 모노 바이크G 소환.
번쩍! 하고 내 옆에 모노 바이크G가 소환되었다.
“지금 필요한 건 뭐다! 스피드~ 이곳의 몬스터 씨를 완전히 말려 없애기에 이것만 한 게 없죠.”
바로 모노 바이크G에 올라탔다.
-미…… 미친넘아!
-미로 내부를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새끼가 어딨어!?
-저놈 벽면 보행 있어서 가능할지도?
“자, 그러면……. 가보자고!”
부아아아앙!
크투가의 걸음에 블레이즈 워크를 동시에 사용. 그대로 앞으로 쭉쭉 달리기 시작했다.
“이야호오오오오!”
고풍스러운 돌벽을 질주하며, 장애물이 나타나면 곧바로 핸들을 꺾어 천장에 딱 붙어 거미처럼 달린다.
그 뒤를 다급히 몬스터들이 뒤쫓지만 화염 불바다 맛을 보고 있다.
세뇌에 특화된 놈들이라 체력은 또 개판이거든?
“나타나는 몬스터가 그야말로 ‘삭제’되는 마술! 지금 보시죠!”
* * *
어렸을 때 나는 게임을 제법 좋아하던 아이였다.
개중에는 몬스터와 조금만 닿아도 링을 흩뿌리며 날아가던 퍼런 고슴도치가 몸을 웅크리고 구르기만 하면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최강 대포가 되는 게임이 있었다.
제아무리 거대한 기계 몬스터라고 해도 그렇게 몇 번 때리기만 하면 잡을 수 있었더랬다.
그 쾌감!
그 속도감에 하루 종일 게임을 했었지.
그 순간만큼은, 그 작은 네모 상자가 내 모든 세계였고 내 모든 현실이었다.
그리고 지금.
지금의 나는 그 게임의 캐릭터와 닮았을까?
어쩌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압도적인 화력과 스피드에 내 앞에서 몬스터들이 줄줄이 삭제되고 있으니까.
몬스터만 삭제인 줄 알아?
보스도 삭제가 돼요!
[이곳은 나의 성역! 주군께서도 이곳에서는 나를 존중하여 어찌 못 할 터! 그런데 감히 너 같은 잡것이 내 주방을 더럽혀!? 조수! 조수 놈들아! 뭐하고 있는 게냐! 이 인간 놈을 빨리 재료로 만들……. 으아아악!]
음, 전형적인 중간 보스 대사 잘 들었고요.
10점 드리겠습니다.
오크 같은 얼굴에 체구는 3미터. 거기에 거대한 식칼을 든 보스 [탐식의 주방장 데일]은 온몸이 폭발하며 그대로 사망.
[주군께서 영겁토록 저주 내린 이 성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너 어리석은 필멸자야, 너 역시 영겁 저주를 받아 이곳에서 억겁의 시간 동안 참회하며 망자가 되어 떠돌게 될 것이다! 자. 이제 너의 어리석음을 저주하……. 끄아아악!]
체구가 4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전신 철갑 기사 보스 [시체 기사 레크한]은 대사를 다 끝마치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며 사망.
[조금이면 됐어! 됐었어! 그런데 네가 망쳤다! 내가 수천 년간 연구한 지식의 조각이 이제 곧 완성이었는데! 감히! 감히!]
해골에 로브를 두르고, 지팡이를 든 마법사같이 생긴 보스 [리치가 되지 못한 바오크만]은 마법을 쓰려다가 내가 날린 혼원장력에 뼈마디가 부러지며 소멸.
[미천한 천민이 감히 어디라고 이곳에 기어 들어오는 게냐? 여봐라. 저 천것을 오체분시하여 가져오너라. 그 너절한 머리통만 되살려 비명을 듣고 싶……. 커어억!]
잘생긴 중년 아저씨처럼 보이고, 멋들어진 중세 귀족이 입을 법한 정장을 입은 보스 [죄악의 백작 남편 젤타르]도 모노 바이크G에 추돌당하여 그대로 피 분수를 뿌리며 소멸.
[아하하하핫! 잘생긴 아이가 왔구나. 좋아. 이리 오렴. 내 너에게 지극한 쾌락과 안식을 줄 터이니 너 역시 나를 기쁘게 해 주어야 하지 않겠니? 그러니… 크아아악!]
중세의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부채를 한 손에 쥔 채로 웃고 있던 염소 머리 유령 보스 [죄악의 흡혈 백작 엘레나]도 역시 교통사고로 사망.
인생 그런 거다.
우리 날쌘돌이 퍼런 고슴도치에게 걸리면 죄다 가루가 되는 거예요.
좋았어. 이걸로 보스, 6마리 전부 해치웠다.
죽어서 영롱한 보석만 남긴 중간 보스 앞에 서서 나는 엄숙히 선언했다.
“여러분. 이렇게나 교통사고가 위험합니다. 꼭 파란불에 건너시고, 음주 운전은 금물입니다. 10분 먼저 가려다 평생 먼저 갑니다.”
-미쳤다. 이런 빌드업이었냐?
-그런데 이거 대체 얼마 만에 다 잡은 거야?
↳2시간乃
-저게 된다고?
-2시간 컷 실화냐? 이게 헌터 솔로 레이드 맞아? 이게 사냥이냐?
-엄지는 참인성이다. 그 증거로 6인으로 갔으면 다른 5명이 심심할 뻔했는데 그냥 혼자 입던한 것만으로도 참인성인 걸 알 수 있다.
여기까지 전부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2시간.
고작 두 시간 동안 지하 감옥 코스, 연회장 코스, 서재 코스, 하인들의 거처 코스, 요리사의 주방 코스 등등을 돌았다.
돌면서 한 일?
덤벼들면 전부 들이받아서 분쇄!
그러고도 안 죽으면 칼질과 불꽃으로 노릇하게 구웠다!
그나저나.
보스 몬스터들이라서 그런지 척 봐도 좋은 것들을 주긴 하더라. 전리품이 쏠쏠해요.
그림자 주머니에 들어가 있지만, 나중에 꺼내서 감정해 봐야지.
“자. 이제 중간 보스들을 모두 쓰러트렸으니 미로의 핵이라는 게 나와야 하는데요~?”
하와와, 내일은 또다시 목숨을 걸고 죽여 살려 하겠지만.
오늘은 쉬운 던전에서 꿀을 빨아 보겠어요.
그게 보너스 스테이지니까!
“…….”
그런데 안 나온다.
“어라? 왜 안 나오지? 다른 갓튜브 영상을 보면 빛과 함께 미궁의 핵이 소환되는데 말이죠?”
내가 본 영상에 의하면, 빛이 모여들어 핵의 형상으로 변했었다.
그걸 손에 쥐면 클리어가 되면서 포탈이 열렸고.
그런데.
왜 아무것도 안 나오…….
-신들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신들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신들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신들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신들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신들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신들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갑자기 세계가 회색으로 변한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메시지가 내 귀를 가득 때리기 시작했다.
공허한 세상을 문자열이 가득 채운다. 이 느낌 안다.
‘아니. 깜박이도 안 켜고 갑자기?’
-절망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절망?
일전에 만난 희망의 반대되는 신인가?
[죽음을 거부하는 자]의 영역이 아니었어, 여기?
언데드잖아. 그런데 절망?
-절망이 당신에게 시련을 제안한다.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절망의 시련]
난이도 : ???
‘절망’이 당신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보상 : 절망의 가호.
수락 – Y/N
절망의 가호…….
희망이 나에게 주었던 [희망이 지켜보는 필멸자]와 같은 등급의 것이려나.
부정한 정신적 영향에 면역의 힘을 주는 레전드 등급 타이틀.
오늘 이 던전을 이렇게 쉽게 처리한 것도 이 가호 덕분이었다.
레전드 등급에 어울리는 힘을 보여 주는 타이틀.
[주군. 시련에 응하시는 것은 분명 큰 모험일 겁니다.]
알아. 나를 죽이려고 들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보상은 분명 좋을 거야. 그건 확실해.
반대로 내가 거부한다면 신들은 더 이상 관심을 끄겠지.
[그렇긴 합니다만…….]
여기서 필요한 건 각오.
위험을 감수하고 한 발자국 더 나갈 것이냐, 말 것이냐? 그렇다면.
내가 목숨을 판돈으로 걸 이유가 있느냐를 따져 봐야겠지?
[주군…….]
“하하하, 어쩐지 너무 쉽더라.”
무슨 보너스 스테이지? 개꿀 던전?
내 인생이 그럴 리가 없지.
어쩐지 요즘 악플이 좀 덜 보이더라고.
포션 장사도 잘되고 말이야.
그러니까.
한다.
여기까지 와서 안 받을 이유가 없잖아.
그나저나 척량. 이거 방송 촬영 중이야?
[시청자들의 반응도 정지되어 있습니다. 세계 전체가 멈춘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척량도 멈추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척량은 나와 같은 시간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야. 다행이네.
“척량, 당황하지 마. 이 시련을 받고 나면 다시 시간이 움직일 테니까.”
[……네.]
척량의 목소리에서 공포를 느꼈다.
시험을 내는 자가 ‘절망’이니 그럴 법하지.
그게 신의 이명인지 아니면 어떠한 ‘개념’ 그 자체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쉽지는 않을 게 분명했고.
그래. 웃자.
“시련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절망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세계가 변한다.
나는 어느샌가, 전혀 모르는 공간에 와 있었다.
척량도 없이, 나 홀로 ‘지옥’을 현실에 가져다 놓은 것 같은 공간에 서 있었다.
“주……겨어어…… 줘어어어…….”
시발. 이게 뭐야?
만약 어느 예술가가 심의 없이 사람 몸뚱이로 ‘절망’을 표현하면 이렇게 나올 성싶다.
“와, 삼류 영화도 이렇게는 효과 안 주는데 말이지.”
안면 근육을 당겨 억지로 웃는다.
그도 그랬다.
눈앞에 있는 자는 어째서인지 몸에 비늘이 끔찍하게 돋아나 있었다.
몸의 반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녹아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남은 반은 새살이 돋는다.
버섯 같은 게 몸에 돋아난 사람도 보인다.
어쨌든 이곳에 있는 자들은 인간의 형태를 유지한 자들이 없었다.
지옥.
고통에 눈물을 흘리던 어떤 남성은 초점 없는 눈으로 죽여 달라 애원한다.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며, 빌딩 사이로 거대한 버섯의 숲 같은 것이 만들어져 있었다.
모두가 그런 상태로 고통받고 있다.
[작은 절망들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작은 절망들이 죽음을 바라고 있습니다.]
하늘에는 포탈이 수를 세기 어려울 만큼 열려 있고, 그곳에서는 기괴한 ‘무언가’가 계속해서 튀어나오고 있고, 저 멀리 태양은 그 빛이 희미하다.
포탈에서 쏟아져 나온 기괴한 ‘무언가’는 형태를 묘사하기 어려운 괴물이었지만, 촉수를 몸 여기저기에 매달고 있었다.
그것들이 사람들을 잡아서 먹고 있다. 아니. 먹는다기보다는, 자기들의 촉수에 매달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 끔찍한 ‘무언가’의 장신구, 혹은 장난감처럼 다루어지며 고통받을 뿐.
나는 그 사이에서 멍하니……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을 보았다.
“남산타워네? 남산타워가 왜 여기 있어?”
이상하네. 저게 있어서는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