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화
“그나저나 네 스킬이 사기긴 사기네. ‘적응’이라는 글자로 어떻게든 할 수 있잖아?”
무척이는 성광과 달랐기에 위험한 반응이 있었다.
그런 마도공학 기술이 있다고는 해도 이미 익혀둔 다른 근접 패시브 스킬과 충돌할 뻔한 것.
소주천 와중에 기운이 몸 안에서 날뛰는데 이러다 주화입마가 오나 싶었다.
그런데 그것도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수그러들었다.
상시 적용 중인 ‘적응’ 때문이라나?
굉장히 편리한 스킬로 보였다.
“그나저나 마력은 어때?”
“지금 절반 정도 찼어.”
“……느리네.”
“형은 개사기 치트 캐릭터고요. 나는 평범한 개조인간이잖아.”
“개조인간이 언제부터 평범해졌어?”
“하하하하, 형, 나는 뼈만 개조거든? 나머지는 평범해.”
그러시구나. 그래서 폰도 안 켜고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뒤질 수 있으시구나.
“그렇다고 해 두자.”
“아……. 외울 거 생각보다 너무 많아.”
“개조해도 기억력이 올라가진 않나 봐?”
“만약 그렇게 되면 내 뇌에 손댔다는 뜻이니 더 위험한 거지. 나는 그냥 나야. 약간의 호르몬 비슷한 것 때문에 충동 통제가 힘들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인 거지.”
정비가가 이런 건 확실한 모양이네.
무공 구결에다가, 기경팔맥을 비롯한 혈도도 외우게 하고 있다.
성광도 혈도까지는 다 못 외웠다.
사실 하루 만에 외울 수 있는 양도 아니니 어쩔 수 없지.
나? 스킬로 익혀진 데다가 무신님 특별 가르침(?)을 받아서 어떻게든 외웠다.
역시 고통으로 암기하고 팔도 한번 터뜨려 봐야 기억에 남지.
그에 비해 너님은 진짜 편하게 익히고 있는 거예요. 동생.
“부지런히 외워라. 부지런하게.”
“그럴 거야. 그나저나 형은 나랑 말하면서 내공 수련이 되네? 이 무공 비급에 보면 그러다가 주화입마에 걸린다는 것 같은데.”
“익숙해서 그래.”
동생 놈은 세계수 아래에 책상 놓고 앉아서 비급 공부.
나는 그 옆에 가부좌 틀고 앉아서 내공 수련.
이 무슨 세기말 스터디 그룹 같은 모양새인가 싶지만, 효율은 좋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오전 공부 및 내 수련이 끝나서 점심을 먹고.
점심 먹은 이후 다시 나는 수련, 무척이는 공부를 한다.
하루에 한 번 들어갈 수 있는 무신의 수련 공간에 들어가서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는 수련도 잊지 않았다.
수련 공간에서 나와서는 다시 앉아서 내공 수련.
그렇게 밤이 되니 아무리 세계수가 있다고는 해도, 퍼져 버린 미역마냥 흐느적거리게 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그나마 무척이는 공부만 해서 그런지 쌩쌩하다.
녀석이 뭔가 스킬을 사용하더니, 옛날 공부하던 시절의 집중을 해내는 게 아닌가. 역시 [기록사]는 신기하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 * *
며칠간.
아예 무척이 녀석을 데리고 성광네로 가서 무공을 전수했다.
따로 각각 가르치는 건 아무래도 비효율적이니까.
이론 교육을 빡세게 하고, 내공 수련과 외공 수련 실전을 개같이 굴려댔다.
그 결과.
둘 다 무인 입문자 수준이 되고 말았다.
즉. 두 명은 스스로 무공을 수련할 수 있게 된 것!
성광은 내공을 모으는 족족 외공을 단련하는 데 사용했는데, 반면에 무척이 녀석은 축기로 쌓은 기운을 반은 내공, 반은 외공을 단련하는 데 사용했다.
‘여기서부터는 본인 자유지.’
서로 다른 능력을 각성한 데다가, 스타일도 다르니까 여기서부터는 각자 자신에게 필요한 쪽에 먼저 투자해야지.
그렇게 두 명이 수련을 열심히 하는 사이.
나는 다음 콘텐츠를 뭘로 할지 척량과 고민하고 있었다.
[대피소를 구했던 건은 특별한 사건이었으니 제외하고. 최근 가장 많은 따봉을 기록한 것은 역시 희망의 성채였습니다.]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던 일을 해냈으니 그만큼 시청자들이 몰린 거겠지?”
[분석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도 좀 대단한 걸 해내야 하려나…….”
어떤 던전을 공략할까? 지금 내 능력이라면 3성의 정예 던전에 들어가도…….
잠깐만.
그때 섬광과도 같이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고.
“이건 어때?”
나는 척량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들을 생각하면, 아주 괜찮은 영상을 뽑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오오, 아주 훌륭합니다. 주군. 의외성도 있으니, 괜찮은 영상이 뽑힐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바로 해 버리자고.”
전화기를 들고, ㈜정진의 내 서포트 팀에 전화를 걸었다.
* * *
다음 날. 우리는 남산서울타워에 도착했다.
옛날에는 관광 명소였는데, 지금은 통제 구역이 된 곳.
재생성형 던전이 여기에 있기 때문으로, 주기적으로 클리어를 해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게 관리하고 있는 곳이다.
이 던전은 마지못해 클리어는 하고 있지만 실상 그리 인기가 없다.
결계석의 효용이 발견되기 전, 고릿적 시절부터 두둥 등장하여 아직도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결계석 설치 전에 등장했으니 없앨 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이게 단발형도 아니고 재생성 던전이라 뭐 계속 등장을 할 거고.
그렇다고 이놈이 난이도가 잘 뽑혀서 헌터들이 사냥하기 좋냐 하면 그것도 아니올시다고.
3성 던전. 레벨 제한은 없지만, 적어도 레벨 80대 이상의 헌터들이 들어가기를 권장하는 던전.
이곳으로 오기 전에 이미 생방송을 진행한다는 공지도 올려 두었다.
스태프들도 이미 도착해 있었고, 나는 양해를 구한 후 방송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엄지척입니다! 엄지검지!”
-내가 1빠!!!!
-2빠!!!!!!
-시간 칼같이 지키는 거 봐라.
-뭐야? 오늘은 어디 가는 건데?
“오늘은 남산서울타워에 도착해 있습니다~ 자, 보시죠. 풍경이 죽이죠?”
-억! 저기 거기잖아! 저주 던전 있는 거기.
-진짜네? 거기를 갔네?
“예. 그렇습니다! 오늘의 던전 공략은 이 저주 던전입니다!”
통칭 저주 던전.
정식 명칭은 [찾아 헤매는 미로] 던전.
미리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 안에 나오는 몬스터들은 아주 편향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놀랍게도 전리품은 상당한 값을 하는데.
문제는 이 안의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소모해야 하는 물자가 전리품의 가격보다 비싸다는 것.
즉. 들어가면 적자투성이가 되는 던전이라고 한다.
예전에 내가 갔던 [바위가 걸어 다니는 대지] 던전이 돈이 될 만한 게 거의 없어서 인기가 없었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래서 나라에서 이런 던전은 공략할 때 일부 지원을 해주네 마네 옥신각신했더랬지.
“이 던전으로 말씀드리자면 영혼의 정수, 망념의 결집체 같은 여러 가지 값비싼 재료들을 수확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인기가 없어요. 헌터들이 자주 가지 않죠. 이 던전의 몬스터가 거는 상태 이상을 해제하는 데 들어가는 물자가 만만치가 않다고 알려져 있거든요.”
하지만 나는 된다!
“바로 그런 곳을 저 혼자! 솔로 공략을 해 보겠습니다!”
반응은 예상대로 뜨거웠다.
-오오오오! 솔로 클리어!! 6명이 가도 위험한데!!
-과연 엄지가 이걸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엄지야. 구독+좋아요 올리려고 굳이 꼭 목숨 걸 필요 없어. 이것보다 쉬운 길 많다ㅠㅠㅠㅠㅠㅠ
-그냥 얼굴만 보여주고 척량이랑 먹방길만 걷자 굳이 거기를 왜 가??ㅠㅠㅠ
-乃乃乃乃乃乃乃엄지 멋있다乃乃乃乃乃乃
응원해주는 사람부터 걱정해주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악플이 보이지 않는 게 좀 신기하긴 한데 방심하면 안 되겠지?
“자, 그러면 이제 진입하겠습니다. 던전 안에서는 채팅에 답변 못 드리니 양해 바랍니다~”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방송을 유지한 채로 던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포탈을 넘자 곧 세계가 변하고, 나는 거대하기 짝이 없는 고성의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어지간히 거대한 빌딩을 몇 개 정도 합해 놓은 것 같은 크기와 규모를 자랑하는 거성!
여기가 바로 [찾아 헤매는 미로] 던전이다. 저 성 내부가 완전 미궁이라더라.
-[찾아 헤매는 미로]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찾아 헤매는 미로]
난이도 : 던전 3성 – 상급
미쳐 버린 영주가 만들어낸 미로의 핵을 찾아서 회수하세요!
보상 : 결계석
던전에 들어오면 으레 그렇듯이 퀘스트가 떴다.
이 던전의 조건은 ‘탐색’으로, 저 핵을 찾아내야 클리어가 되는 구조다.
미로라는 콘셉트답게 던전에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내부의 구조가 바뀌고, 심지어 저 안에서 일주일이 지나면 사람이 있어도 내부 구조가 뒤바뀌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래서 지도가 따로 없다는 것도 특징.
거기에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보스 몬스터가 무려 6마리나 있다는 것.
6개의 보스 룸이 있는데, 그것들 중에 핵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핵은 가끔 아주 엉뚱한 곳에서 나올 때도 있다고 하니까.
그래도 확정적인 건. 보스를 전부 쓰러트리면 핵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
이 또한 확인된 정보.
사실 여기의 몬스터들은 그리 강하지 않다.
전투력만 따지면, 레벨 40대의 헌터도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까.
보스 몬스터들도 다른 보스 몬스터들에 비해서 그렇게 능력치가 강하지는 않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기피되는 이유는 바로 클리어 조건인 ‘미로의 핵’을 찾는 게 더럽게 어렵다는 점과…….
[사아아아안 자아아아아.]
[이히히히히힛!]
유령계 몬스터 특유의 공격인 ‘정신 공격’ 때문. ‘정신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마법 물품의 가격이 무시무시하게 높다.
그거 때문에 적자가 나는 거고.
위이잉-
유령들이 달려든다. 검은 놈은 악령이고, 하얀 녀석은 망령이다.
외모만 보자면 상체는 그냥 사람처럼 생겼지만, 아래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거꾸로 붙여 놓은 것처럼 생겼다.
전형적인 유령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
어릴 때 본 꼬마 유령 만화랑 비슷하다. 할로윈이 되면 아이스크림 케이크로 파는 그 디자인이고.
악령이 망령보다 레벨이 더 높다고 하던가?
-악령이다!
-오늘 방송 컨셉은 호러네ㅋㅋㅋㅋㅋㅋㅋㅋ
-저게 왜 저기서부터 나와? 옛날에는 성안에 들어갈 때까지 아무것도 나왔는데???
-던전 오랫동안 방치하면 다 저래. 슬슬 이 던전도 터지기 직전이었던 거지. 아니, 근데 엄지야! 뭐하는 거야!!!??
“음, 역시 콘셉트가 호러인 만큼 저주를 한두 개쯤 달아 줘야 진정한 스릴 아닐까요? 그냥 클리어하는 건 재미없죠. 후후훗!”
일부러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서 잘생긴 척을 해봤다.
-뭐? 저주를 자청해서 받겠다고?
미친 소리 같지? 진담이다.
“지금부터 유령들의 저주를 받아 보겠습니다. 여기 상태창도 여러분들이 볼 수 있게 바꿔 놔야겠네요.”
나에게 나오는 메시지를 시청자들도 볼 수 있게 세팅. 그리고 기다렸다.
악령들이 나를 공격하기를.
[으어어어어…….]
[끼히히힛!]
그리고 악령과 망령. 두 마리가 나에게 다가와 손을 휘두른다. 그 유명하고 악명 높은 [악몽의 손길]이다.
-악령의 공격에 노출되었습니다.
-끔직한 악몽이 당신의 정신을 갉아냅니다!
-당신은 부정한 정신적 영향에 면역입니다.
-망령의 공격에 노출되었습니다.
-끔찍한 슬픔이 당신의 정신을 갉아냅니다!
-당신은 부정한 정신적 영향에 면역입니다.
“음? 이상하다. 왜 아무 일도 없지?”
넉살 좋게 말하는 것과는 달리 마음속은 심장이 브레이크 댄스 중이시다.
좋았어!
이럴 줄 알았다고!
예상은 했지만, 진짜 이게 되는구나!
[이미 몇 가지 가호와 스킬이 있기 때문입니다.]
후후후후. 초보자 패키지. 거기에 희망의 신이 준 타이틀 가호의 힘까지 있으니까!
그렇게 기쁨을 만끽하고 있자니 점점 악령과 망령이 몰려드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