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화
“좋다. 엄지척. 이곳이 어떤 공간인 줄은 알고 있겠지?”
“예. 무신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전에 먼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해 봐라.”
“지구 튜토리얼이 끝나는 때는 언제입니까?”
신.
무신이 나를 필멸자라고 부르듯.
그는 불멸자이다.
그리고 인간인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권능을 가진 존재일 테지. 그러니 튜토리얼이 끝나는 때를 물어봐서 정보를 얻으면 좋을 것이다.
“그건 규칙에 어긋나서 답해 줄 수 없군.”
역시. 안 되나.
“이 공간은… 내가 무(武)에 심취한 녀석들을 위해서 만든 공간이다. 때문에 여기서는 무(武)를 가르치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어. 알겠나?”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저는 무엇을 배우게 되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무엇이 아니야. 한 번의 가르침을 주는 것뿐이다.”
한 번의 가르침? 그게 무슨 의미지?
그렇게 의문을 가지고 있으니, 그가 턱을 긁으며 말했다.
태도는 전혀 신답지가 않지만, 그 내용은 심오한 거였다.
“네 앞에 있는 나는 무(武) 그 자체인 존재이다. 무(武)라는 건 뭘까?”
“어….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만… 무공… 아닙니까?”
“아니야.”
무신은 싱긋 미소 지었다.
“무(武)라는 것은 싸움이며 강함 그 자체를 뜻해. 조그마한 장수풍뎅이 두 마리가 뿔을 맞대는 다툼에서, 아득한 고수가 서로를 죽이려 드는 생사혈전까지 전부다.”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이해가 어렵다.
“싸운다는 행위. 그리고 싸우기 위해서 필요한 기술의 결과는 무엇인지 아나? 바로 강함이라는 것이 완성되며, 그것들의 근원이 바로 무신인 나라는 존재를 구성한다. 내가 존재하기에 세상에 싸움이 존재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싸움. 그리고 강함.
그 형이상학적인 개념의 근원 그 자체라는 의미인가?
말만 들어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필멸자인 네가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려울지도. 그러면 더 간단하게 이야기해 주마. 조금 조악하게 말하자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전투 기술은 나에게서 비롯된다. 혹은 나에게 속하게 되지. 무공도 그중 하나고.”
“아…….”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전투 기술……. 즉. 싸우기 위한 기술.
“때문에, 나는 너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쳐 주지. 싸운다는 행위에 걸맞은 것이라면,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지도해 주겠다 이거야. 다만 딱 하나만. 그게 이 공간이니까.”
“나중에 다른 조각상을 얻어도 다시 올 수 없는 건가요?”
“조각상 하나당 한 번씩이야. 그러니 하나 더 구할 수 있으면 구해서 오든가.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낸 녀석은 거의 없었지.”
그만큼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라는 건데. 정지한은 이걸 어떻게 구한 거지?
애초에 경매장에서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인데.
“자. 그래서 무엇을 배우고 싶지? 네 주력은 무공이지만, 다른 것들도 쓸 만해 보이는군. 라이더 스킬도 더욱 뛰어나게 진화시킬 수 있고, 혹은 마법이나 연금술 쪽에서도 ‘전투’에 적합한 부분은 내가 가르침을 내려줄 수 있다.”
“무공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오호.”
“천무지체를 얻었고, 혼원건곤신공이라는 강력한 무공을 수련하고 있으니까요.”
“크큭……. 역시 이런 미혹은 안 통한다는 건가?”
“절 시험하신 건가요?”
“돈과 지위를 이용해 가끔 자격도 안 되는 놈들이 와서 무에 대한 가르침을 원할 때가 있거든. 이런 유치한 시험에 혹해서, 그다지~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을 배우고 나가는 거지.”
무신의 말은 냉소적이었다. 아니. 멸시라고 해야 할까?
“나는 말이야. 강해지는 것에 진심인 녀석을 좋아하거든. 일검일검에 목숨을 담고, 미천한 생을 조금 잇기 위해 무(武)를 갈고닦는 놈이 좋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네요.”
“후후후. 자. 그러면……. 너는 기본부터 해야 할 것 같다.”
“기본이요?”
“그래. 기본부터. 그것만으로도 네놈은 강해질 것이다. 우선……. 무공이라는 것에 대해서 중요한 기본부터 가르쳐 주마. 본래는 스승이 가르쳐야 하지만, 너는 스킬로 익혔기에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무신은 그리 말하고서는 팔짱을 끼고 말했다.
“무공이란. 무를 쌓는다는 의미이다. 공(功)이라는 한자가 왜 무(武)라는 한자 옆에 붙었다고 생각하나? 무라는 단어를 강함. 혹은 힘이라고 생각해 보도록. 그것을 쌓아나가는 것. 공부하는 것(功). 그렇기에 무공이다.”
그는 여상하게 말을 하며 한 걸음 내게 다가왔다.
“때문에 무공은 ‘어떻게 힘을 쌓아 나가는가?’ 혹은 ‘힘을 쌓는 방법은 이러하다’라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지.”
뭔가…… 그럴 듯하다? 아니. 신이 직접 강좌를 해 주시는 거니까. 맞는 말이겠지.
“네 수준에 맞춰서 다운그레이드해서 설명해 주는 거니까 잘 새겨들으라고. 영어로 치면 알파벳부터 가르쳐주는 거니까. 그냥 그런 놈 같았으면 냅다 주먹으로 팼다.”
엄청나게 친절하게 말해 주고 있는 거 맞지?
“그러면 네 혼원건곤신공은 어떨까? 아까 말한 ‘힘을 쌓는 방법은 이러하다’라는 것을 감안하고 생각해 보자고. 혼원(混元). 이것은 질서가 정립하기 이전, 근원적인 어떤 힘의 상태를 뜻한다. 그렇다면 거기에 따라 붙는 건곤(乾坤)은 하늘과 땅을 의미하지.”
그는 허공에서 목검을 소환해 하늘과 땅을 가리켰다.
“즉. 무질서한 근원적 세계에서 하늘과 땅을 만들어낸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너는 스킬을 통해서 무공을 익혔기 때문에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이를 테면 이런 거다.”
그가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쭈그리고 앉는다.
그럼에도 체구가 커서, 나보다 조금 작은 정도.
그 상태로 그가 손을 뻗어 내 아랫배. 단전에 손을 가져다 댄다.
“천지만물 본래 혼원으로 가득하였고, 들숨에 그를 받아들여 건곤으로 만드나니. 그것이 곧 소우주가 된다.”
어. 그건 혼원건곤신공의 내공심법의 구결…….
이라고 생각한 순간.
퉁.
어떤 진동이, 내 단전을 때렸다.
단전 안의 내공이 갑자기 거세게 흔들리며 전신으로 내달린다.
헉!?
“들숨에 원기를 담고, 날숨에 탁기를 뱉어라!”
무신의 호통에, 홀린 듯이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천천히. 의지를 가지고. 규칙적이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호흡.
동시에 내 전신이 세세하게 깨어나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 와중에 깨닫게 된다.
이게 진정한 대주천(大周天)이다!
그간 내가 했던 것은 대주천을 흉내 내었던 것뿐이었어!
기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완전히 움직인다.
환골탈태를 하던 당시보다 더욱 격렬하고, 세세하며 전신의 세포 한 조각까지 기가 스며들었다가 빠져나온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나는 어느 일순간 눈을 떴다.
“후우우우!”
몸에 열기가 가득하다.
힘이 넘치고 있다.
내공의 정순함이 달라진 감각이 느껴졌다.
“무공의 기본. 그것은 곧 내공의 수련이다. 내공이란 결국 천지만물의 기를 담아내는 것으로, 무공이라는 단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수련이기도 하다. 너는 지금. 제대로 된 내공 수련 방법을 배운 셈이다.”
“감사합니다!”
이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단지 내공을 모아서 쌓는 것만이 아니다. 내가진기라고 하는 힘을 제어하고 운용하는 것까지 알려준 셈이었다.
애초에 하나인 것일지도.
“자. 그러면……. 계속해 볼까?”
무신이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턱.
그가 내 어깨를 잡는다.
“잘 기억해 두라고?”
송곳 같은 걸 내 혈관에 강제로 쑤셔 넣은 기분이 들었다.
“으아아아악!”
“아프지만. 기억해 둬. 기운을 움직인다는 건 이런 거다.”
“아아아아악. 이…… 이거 수련 맞습니까아아악!”
“맞아. 속성 훈련이지. 내공심법의 올바른 운용법 및 활용법이다. 몸에 때려 박아 주지.”
“크아아악!”
죽을 듯이 아프다아아아!
“고마워해라. 참, 이참에 네 채널 구경이나 가 봐야겠다. 스승도 없이 이런 잡탕 몸으로 어떻게 버틴 건지.”
“채, 채널… 구독 좋아요…… 부탁…. 끄아아아악!”
“이거 미친놈일세. 이 고통 속에서 멘트를 친다고?”
직업병이다.
* * *
“허억! 허억!”
[주군! 괜찮으십니까?]
“정…….”
겨우겨우. 허파에 공기를 짜내서 말을 내뱉었다.
“…신적으로…… 죽을 것 같아…….”
[고되셨군요…….]
주변을 둘러보니 무신의 조각상을 사용한 내 집 수련실이다.
정신만 갔다가 온 건가?
몸은 다친 곳이 없는 걸 보니 그런 모양이야.
하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이래서야 수련이 아니라 고문에 가깝지 않나.
‘아니, 기초부터 가르쳐 준다면서?’
처음은 무학의 이론에 대해 말도 해주고 그랬다. 뭔가 좋아 보이기도 했지. 그런데 피날레로 사람을 지옥 불에 튀겼다.
[성과가 있으셨습니까?]
“있어.”
손가락을 들어 본다. 그러자 기가 내 손가락에서 빠져나와 형태를 이루었다.
[오오…….]
“의기상인(意氣傷人). 의념으로 기를 제어하는 단계. 검사지경에 이른 무인이라면 본래 했어야 했던 거라고 하더라고.”
생각만으로 기를 움직인다.
[그렇군요. 그 말씀은?]
“장풍 같은 것도 쓸 수 있게 된 거지. 이렇게.”
가볍게 손을 흔든다.
십이경맥을 따라 흐르던 내공이 손바닥을 통해서 뻗어나가기 시작했고.
혼원건곤신공. 혼원장.
펑!
수련실의 외벽에 충돌한 장풍이 폭발한다.
마법적인 힘으로 강화된 벽이기 때문에 그나마 멀쩡하지, 일반적인 벽이었으면 와르르 무너졌을 거다.
[대단하십니다, 주군! 그러면 이제 진짜 무공을 익힌 무인이 되신 것이군요.]
“응. 그런 거지. 갈 길은 멀지만…….”
무신.
그는 내공심법의 제대로 된 운용법을 가르쳐 준다면서…… 내 몸 안에 기운을 집어넣고 강제로 몸 전체를 들쑤셨다.
‘아니, 무신은 정도를 모르나?’
무신을 영접했다는 다른 사람들의 후기라도 읽고 싶었는데 알 방법이 없네.
[많이 힘드셨습니까?]
응. 후기에 ‘가르침을 준다고 해놓고서는 인권이 없었습니다. 너어무 아팠고, 안 죽은 게 용했네요. 부작용 없는 거 확실한가요? 그래도 배우긴 했으니까 별 세 개 드립니다^^ ★★★☆☆’라고 쓰고 싶을 정도야.
[……묘하게 현실적이군요. 주군.]
척량은 내 후기(?)에 감명받았는지 잠깐 주둥이를 쩍 벌리더니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우면서 많이 배우셨나 봐요? 별 세 개면.]
그런 셈이지.
고통으로 혼절까지 가는 와중에 깨달은 것들이 많았으니까.
앞으로 내가 어떻게 수련해야 할지 그 방향도 알 수 있었고.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연이 닿아 훗날 조각상을 하나 더 얻을 수 있다면, 그때는 혼원건곤신공의 무공 초식들에 대해 지도받고 싶을 정도인걸?
아. 머릿속 후기에 한마디 덧붙여야겠네.
‘그래도 괴로운 건 한순간이지만 실력은 영원하니까 별 하나 더 얹습니다^^ ★★★★☆’
별 다섯은 죽어도 못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