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140화 (140/305)

제140화

“일단 알다시피 포션 자체는 ㈜정진 측에서 검토를 보냈고 당연히 합격 판정을 받았어. 같은 D급 포션 중에서도 성능에 편차가 있는 건 알고 있지? 이건 시스템 메시지로도 판별하기 어려운 갭이니까.”

“응. 알고 있어.”

드륵-

바닥에 고정시켜 둔 나사를 조이며 답했다.

“일단 형이 만든 D급 포션은 같은 D급 포션 중에서도 준수한 편이고, 재료도 20,432개 특허 중 어느 것에도 저촉되지 않아. 그러니까 신 레시피인 거지.”

“이야, 스킬도 레시피 따지는 거 진짜 엿 같다.”

“어쩔 수 없어. 그 사람들이 만들어 둔 판이니까. 대기업이 잡아먹은 시장에 중소기업이 끼어든다는 건 원래 그런 거야.”

차륵-

다음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그리고…… 가격은 정확하게 79만 9,800원에 판매할 거고. 진심이지?”

내가 가운뎃손가락을 쳐들었다.

“더러운 담합쟁이 새끼들 다 뒤지라 이거예요~ E급이 100만 원인데 나는 79만 9,800원에 D급을 팔아먹을 거니까 시장 어떻게 돌아갈지 두고 보자고.”

동생은 그런 나를 피식 웃으며 바라보더니 이렇게 답했다.

“그래. 뒷일은 정지한이 책임진다고 했고. 솔직히 테러까지 다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사설 용병을 고용해 준다고 했는데 나는 차라리 그 돈으로 드론을 사는 게 낫다고 보는 인간이니까.”

“개조한 드론이 잘 움직이길 바라는 수밖에.”

얼마나 막아낼지는 모르겠지만, 포션 제작기 자체가 소환수인 이상 내가 소환 해제를 할 때까지 시간만 벌어주면 된다.

그리고 기계가 소환수라는 걸 알게 되면 그때는 날 죽이러 오겠지만 뭐, 목숨 걸고 달리는 거 원투 데이도 아니고 별 감흥도 없다.

“형은 미쳤어.”

“고마워.”

“서류 업무 쪽은 이제 다 끝났으니 출시만 하시면 됩니다. 형님.”

“오케이. 판매 사이트 쪽은?”

동생이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위로 쳐든다.

이윽고 눈꺼풀이 열리니 동공 안쪽에서 푸른빛이 점멸하듯 반사된다.

“모두 준비됐어.”

“컴퓨터가 없어도 처리가 된다니 그거 신기하네.”

“형도 할래?”

“에이, 괜찮아. 이 형은 구닥다리 무공이나 붙잡고 있을 테니, 너는 거기서 뉴 유니버스나 열어라.”

그리 말하고는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이제 라이브 켜도 돼?”

광고 방송.

그것도 실시간이다. 동생이 말했다.

“음, 예고 시간까지 3분 23초 남았네. 그때 켜는 게 좋을 것 같아.”

“오케이.”

그리 말하며 나는 그럴 듯하게 연금술사들이 많이 입는 고무 앞치마를 꺼내서 입었다.

어차피 스킬로 처리하지만 보기에도 그럴듯한 게 좋지 않나.

그러고는 공장 구석에 퍼놓은 쌀바가지에 향을 꽂아 넣었다.

헌터 보조원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오랜 미신이다.

‘잘 지켜봐 주시죠. 아저씨.’

사람이 죽어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터가 정말로 저주받은 자리인지 어떤지는 어디 한번 지켜보시라.

* * *

시간이 되었다.

외모 체크, 의상 체크, 무대 체크, 모두 완료.

라이브 시작.

“안녕하세요! 엄지검지. 엄지척입니다! 모두들 좋은 하루 보내시고 계신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동생 놈을 불렀는데요. 무척아!”

동생은 큰 키로 성큼 다가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안녕하십니까. 엄무척입니다.”

처진 눈을 곱게 접어서 일부러 분위기 있게 웃었다.

-와, 역시 오늘 트윈 방송 맞구나?

-방금 너스타에 뜬 사진 보니까 같이 하는 거 맞아 보였어.

-평소처럼 던전은 아니네? 콘셉트가 뭐지?

“일단 이거 보시죠!”

이 방송은 광고 방송이며 어쩌고 하는 자막이 송출된다. 그게 뜨는 순간 시청자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이고, 좀 참아 봐!

“엄지 녀석 채널 좀 컸다고 벌써 앞광고? 하시겠지만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봐요. 30초만!”

-자진 신고ㅋㅋㅋㅋㅋㅋㅋㅋ

-엄지가…… 말대꾸?

-무척이랑 지척이랑 둘이 그림 좋다.

-광고는 좀 지루한데…….

에라, 모르겠다.

“저 포션 공장 돌려요! 짜잔!”

아예 그냥 포션 제작 기계를 보여 주었다.

뜬금없이 포션 제작 기계가 뜨니 나가는 사람들이 멈춘다. 하지만 반대로 신규 유입과 함께 악플도 달리기 시작했다.

-이야……. 팬한테 잘할 생각을 해야지, 벌써 빨아먹을 생각을 하다니 엄지 인성 잘 봤구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포션 가격이 백만이 넘는데 그걸 빨아먹으려고 방송 차렸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는 팬 장사 할 거면 소소한 굿즈부터 뜯어가야지 처음부터 포션을 들고 와서 파네. 지능 괜찮냨ㅋㅋㅋㅋㅋㅋㅋㅋ

-제약회사랑 뒤로 콜라보하고 파는 거 아님? 엄지는 얼굴 마담만 하고.

음, 여기까지는 예상대로군.

“포션은 D등급 포션. 가격은 79만 9,800원--! 아, 식약청 허가는 받아 놨습니다. 링크 아래에 뜰 테니까 보시면 될 것 같군요.”

한동안 채팅방이 멈췄다.

D등급을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판다는 미친 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팬과 안티 모두 잠시 사고가 정지되는 소리가 여기까지는 들리는군.

나라도 그럴 거야.

만약 허가 없이 불법 약물을 팔아 버리면 준엄하신 제약법의 심판을 받을 터.

거기에 ㈜정진, ㈜정비가 나란히 붙어 있는 게 범상치 않다.

㈜정진 그룹의 모회사는 ㈜정하 그룹.

정비가가 가지고 있는 ㈜정비는 그냥 그 자체가 덩치가 크다.

갓튜브에서 불법 약 팔이를 하자고 움직이기에는 너무 스케일이 컸으니까.

“파주시 대피소에서 많은 걸 느꼈거든요. 그래서 효과는 그대로, 대신 가격은 저렴한 포션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연구를 했고……. 잘됐네요. 휴우!”

일부러 과장되게 땀을 흘리는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시판매니까. 일단 한정 판매합니다.”

1,000병 한정 판매.

한정이라고는 해도 적은 숫자는 아니다.

그러나 방송 한 시간 만에 D등급 포션이 모두 완판되는 기염을 토했다.

되팔이들은 두 배를 붙여서 팔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이득인 기묘한 가격이 그렇게 탄생했다.

[완판, 완판입니다. 주군, 완판!]

척량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나는 폰을 들고 열심히 찍는 중이고.

“이거 완판 댄스로 써먹어야겠다.”

SNS에 척량이 짤방 좀 돌아다니겠는데?

* * *

[포션 제조 기업 주가 동반 추락!]

본디 대한민국 5대 기업이라고 하면 다음과 같다.

정하 그룹, 신성 그룹, 대헌 그룹, GK 그룹, SL 그룹.

다들 연금술과 화학 관련 자회사는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을 주력으로 하고 있느냐, 아니면 그냥 문어발 다리 어딘가에서 존재만 하다가 구조조정을 기다리느냐의 문제일 뿐.

예를 들면 대헌 그룹의 연금술, 화학 관련 자회사는 특수 콘크리트 연구에 특화되어 있다.

건설 회사가 주력인 만큼 사람이 먹는 약보다 건물이 먹을 약을 훨씬 중요하게 취급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정하 그룹은 주로 기계공학을 보조할 화학 연금술에.

GK 그룹은 자동차 중공업에 필요한 냉각수 제조에 특화되어 있다.

그에 비해 확실하게 연금술과 화학이 본인들 주업이라고 할 만한 곳은 SL 그룹이다.

최근 해외 제약회사와 주식을 나누어 가진 SL 그룹은 한국 내의 포션 시장의 46%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지분은 미국, 중국, 일본 등의 제약회사들이 해먹고 있는 상황.

그런 SL 그룹의 대표 회사이자 지주회사 노릇을 하는 SL화학의 주식이 13%나 떨어졌다.

그야말로 급락! 그리고 그 다음 날. 이번에는 9%가 더 떨어졌다!

SL화학만 떨어진 것이 아니다. 대형 포션 제조 기업들 전부가 급락!

그래도 중간에 하락이 멈추었지만.

순식간에 엄청난 금액이 급락하는 기현상 중이다.

이상하진 않다.

어느 미친 새끼乃가 D급 포션을 79만 9,800원이라는, 홈쇼핑에서나 볼 법한 가격에 풀어버리기 시작한 것.

-현재 추측하기로는 하루에 제작할 수 있는 물량 자체가 1,000병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뽑고 있으니 먹고 자고 할 시간이 뭐가 있겠습니까?

“세상 혼자 살고 있는 새끼네. 겁이 없어.”

-D급 포션 가격은 평균적으로 200만 원. 그것보다 무려 120만 원이나 싼 포션을 내 버렸으니까요. 루머용으로 기자들에게 돈을 풀고 있지만, 정하 그룹을 등에 업은 정지한이 이미 손을 쓴 터라 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속담에 싼 게 비지떡이라는 이야기가 있잖아? 싸니까 그만큼 성능도 나쁠 거라는 식으로 기사 내줄 수는 없어?”

-성능이 설령 D급들 중에 나쁘다 하더라도 그 가격이면 사겠다는 반응이 지배적입니다. 거기다 시스템 창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그놈의 시스템, 시스템!”

-관찰 스킬을 가진 연금술사들에게 보여 주었는데 시스템에서 부작용 이야기가 출력되질 않습니다.

“결국 시중에 돌아다니는 회복 포션과 똑같은 성능으로 보인다는 게 문제군. 그리고 엄지척 헌터는 훗날 성장하면 포션 제작 속도가 더 빨라질 거고.”

단가는 더 내려갈 거고. 그렇게 되면 제약회사도 같이 내려야 한다.

“군수 쪽은?”

-그쪽은 계속 우리 쪽을 써줄 겁니다. 정권 바뀌면 또 어떨지 모르지만요.

골치 아프다.

하급 포션 시장이 개편되어야 하는 상황.

SL 그룹의 회장.

박막기.

여든에 가까운 나이이지만, 각종 스킬과 비약들의 도움으로 오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일 정도로 쌩쌩한 얼굴.

그는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전화기 앞에 앉아 흉신악살 같은 얼굴이 된 상태였다.

“후, 일단 끊는다.”

그는 전화를 끊고는 한참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이제 아는 번호로 걸었다.

몇 번 통화음이 이어진 후.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박막기는 분을 삼키며 말했다.

“이봐, 정 회장. 남의 밥그릇 깨 놓고 그렇게 태연하게 굴면 안 되지.”

-허허허, 잘 계시나? 박 회장? 아이고, 내가 뭘 하겠나. 내 막내 손자 놈이 멋대로 저지른 일인데.

“뭐? 막내 손자가 자기 멋대로 저질렀다고? 그러면 뭐야. 내가 손봐 줘도 된다는 거지?”

-그럴 수는 없지. 내 손자를 혼내도, 내가 혼내야 하지 않겠나?

“하…하하하하…….”

전화기 너머에서 느긋한 목소리가 울린다.

안 혼내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대로 놔두겠다는 뜻이고.

그 목소리에 박막기 회장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이봐, 만득이.”

-어이고, 막기야. 왜 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그래?

“진짜 해 보자는 거지? 좋아. 해 보자고. 자네 손자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병신이 되면 위로 삼아 꽃이나 보내 주지.”

-그러든가. 그러면 끊겠네.

뚝.

통화가 끊어진다.

박막기 회장은 전화기를 노려보며 입을 연다.

“일성아.”

“예. 회장님.”

박일성.

박막기 회장의 장남이자, 현재 SL 화학의 사장으로 있는 자.

일찍이 후계 구도를 정리해 SL 그룹은 이미 박일성이 그룹의 전반적인 일을 전부 운영하고 있었다.

“만득이 놈이 진짜 해 보자고 하는구나. 저놈이 노리는 게 뭐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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