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2화
세 명이 놀라는 사이 척량이 말했다.
[주군. 크게 불의 장벽을 만들어 녀석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몇몇은 이미 빠져나갔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 우선은 저것들부터 처리해야겠어.
척량이 만든 거대한 불꽃의 원형 장벽.
구울들은 그 안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하지만, 저것도 결국 시간 끌기다. 불꽃에 타는 걸 아랑곳하지 않고 뛰쳐나갈 수 있으니까.
창고 아래는 이미 정화 지역이 되었음에도, 구울 놈들이 기어들어 와서 창고의 벽을 두드리고 있는 중이었다.
먹이인 우리가 여기에 있어서 그런 거다.
“그럼. 척량아, 가! 방패도 척량이를 보호!”
[예. 주군!]
세 명이 척량의 위에 올라타자, 그대로 척량이 훌쩍 뛰어내렸다.
방패가 그런 척량을 따라서 움직인다.
구울들의 시선이 지상에 내려가 달려가는 척량을 향하고, 그쪽으로 움직이려고 드는 게 보인다.
하지만 이내 관심을 끊었다.
척량의 속도가 빠른 탓도 있지만, 그대로 블레이즈 워크와 크투가의 걸음을 같이 사용했기 때문.
그걸 보고 있자니 조금은 마음에 안도감이 서리는군.
“후… 이걸로 다 구했네요. 다행입니다.”
“지척 씨 덕분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제가 마침 여기에 오기를 잘했네요. 안 그랬으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어후. 안 좋은 생각은 그만두죠. 그나저나, 저것들을 처리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일단 불로 장벽을 만들어 두긴 했는데, 얇아서 저거 뚫고 나가려면 나갈 수도 있어요.”
보육원을 중심으로 지름 1킬로미터의 원형의 불길.
내 마력&내공을 사용하여 아직도 타오른다.
“지척 씨 마력은 얼마나 남으셨는데요?”
“대충… 80%요.”
“진짜요? 아니, 어떻게…….”
-1따봉을 받으셨습니다.
“제가 마나통이 좀 커서요.”
이래저래 회복 스킬도 많으니까 이게 가능하지.
그나저나… 완전히 위급한 상황이 되지는 않아서 다행이긴 했다.
여차하면 따봉을 전부 쓸 생각을 했었는데.
“저도 스킬을 많이 쓰지 않아서, 아직 문제는 없습니다만……. 문제는 숫자네요.”
구울의 수는 거의 수백은 되어 보인다.
폭포처럼 쏟아지던 것은 멈추고 더는 아무런 몬스터도 나오지 않지만, 문제는 저것만으로도 재앙이라는 점이다.
저걸 한꺼번에 처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크투가의 걸음과 블레이즈 워크.
두 스킬이 생성한 화염에 닿으면 분명 놈들도 괴로워하긴 하지만, 단번에 쓰러질 정도의 유의미한 피해가 나는 건 또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적어도 30분 정도 한 자리에서 노릇하게 구워 버린다면야 쓰러트릴 수야 있겠다만…….
“차라리 확실한 어그로 스킬이 있으면 좋겠는데… 수백 마리 구울이 한 번에 나를 보고, 죽어라 나만 쫓아다니게 할 만한 어그로 스킬…….”
중얼중얼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답변이 들려왔다.
“있어요.”
“예?”
있다고? 성직자한테?
성광 씨를 돌아보니, 빙긋 웃고 있다.
“예. 있어요.”
“힐러한테 어그로 스킬이 있어요?”
“있죠. 특히 언데드한테 잘 먹히는 게요.”
“오호라. 자세히 들려주세요.”
나는 성광에게 그 어그로 스킬에 대해서 물었다.
* * *
“자. 그러면 준비되셨죠?”
“예.”
“그러면 시작해 주세요.”
우리 둘 다.
모노 바이크G에 올라탔다.
작전은 미리 논의했다. 일단 성광이 나에게 스킬을 쓸 거다.
“소의 사도시여! 여기 당신의 힘을 간절히 원하는 어린 양이 있습니다! 그 위대하신 생명을 내려 주소서!”
-광신도, 성광의 버프 스킬로 생명력이 빠르게 차오릅니다.
회복력이 비대하게 내 안에서 펌핑되는 감각이 들었다.
동시에 제법 멀리 있던 구울들까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이것이 성광이 말한 어그로.
생명력 증대.
언데드는 산 자를 증오하고, 산 자를 잡아먹으려고 든다.
살아있는 것의 존재감. 즉 생명력이 커질수록 언데드는 해당되는 산 자를 죽어라 쫓아온다고 했다.
때문에 언데드와 싸울 적에는 특히나 힐을 조심해서 해야 한다고. 왜냐면 힐을 사용하는 성직자가 일순간 생명력의 덩어리로 보이기 때문.
원래부터 힐러의 힐은 아군 탱커의 어그로 스킬에 영향을 미쳐서, 가끔 어그로가 풀릴 때도 있다.
시스템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본래라면 자기가 죽든지 말든지 세뇌당한 것처럼 탱커만 때리던 몬스터가 갑자기 힐을 과다하게 사용한 힐러를 공격하는 경우가 생긴다.
언데드는 산 자를 증오한다는 특성 때문에, 힐러가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사용한 것은 성직자 전용 버프.
탱커의 체력을 20% 증가시켜 주는 신성 마법이다.
그걸 최대 출력으로 나에게 걸었기에, 멀찍이 있는 언데드까지 전부 나를 보게 된 것이다.
“카아아아!”
이미 창고 근처에 있던 놈들이 이제는 미친 듯이 벽을 두드리고 달라붙으며 올라오려고 난리고, 멀리 있던 놈들은 필사적으로 달려오기 시작한다.
“지난번 언데드 던전에서 정지벽 씨에게 건 게 이거군요.”
“네. 효과 좋았죠.”
어쩐지 어그로가 거의 안 튀더라?
내버려 두면 저 멀리 있던 놈들까지 달려와 벽을 쌓아서 여기로 올라오겠지. 그렇게 내버려 둘 수야 있나.
“그럼 갑니다!”
“예! 형제님.”
성광이 한 손으로 내 허리를 반만 휘감고, 벨트를 단단히 잡는다.
반대쪽 손으로 디바인 마크가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대로 모노 바이크G에 가속을 사용. 즉시 옥상에서 점프했다.
“크투가의 걸음! 블레이즈 워크!”
두 개의 불꽃이 바퀴 끝에 매달린다. 동시에 신Bike합일을 사용.
검기를 두른 채로 그대로 돌진했다.
콰직! 서걱!
덤벼들었던 구울들이 충돌과 함께 찢겨나가며 흩어졌다.
그러나 충돌할 때 느낌이 제법 묵직했다. 적어도 구울이 다섯 이상 겹친다면 이렇게 질주를 계속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
게다가.
마력&내공도 제법 소모되는걸……?
기본적으로 검기는 내공을 계속 소모하는 무공 스킬이다. 그리고 잘 베어지지 않으면 그걸 베기 위해서 내공을 더욱 써야 한다.
몬스터에게 저항력이 있거나, 너무 단단하다면 그만큼 계속해서 내공 낭비가 이루어지는 셈.
그리고 지금 보면…… 한 마리를 잘라내는 데 쓰이는 내공이 적어도 1%.
이 상태로는 겨우 백 마리 정도 썰고 나면 끝이야.
물론 그건 내가 마력 포션 같은 회복제가 없고, 지금처럼 급해서 아무런 버프도 안 받을 때의 일이지만.
“실프의 축복. 마력 방패. 근력 증가. 마력 부여. 도약 증가.”
번쩍거리는 빛이 연속으로 내 몸에서 폭발한다.
내가 쓸 수 있는 버프는 전부 다 건 것.
내 행동에, 뒤에서 성광도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소의 사도시여! 당신의 힘을 우리에게 내려 주소서!”
-광신도, 성광의 버프 스킬로 성력이 부여됩니다.
예전부터 생각하던 거지만, 성광의 스킬은 스킬명이 분명치 않아서 잘 파악하기 어렵단 말이야.
빛이 내 몸에 임한다. 그 이후에도 성광이 내 몸에 다량의 버프를 계속 걸어 댔다.
과연 힐러계의 슈퍼 루키.
몸 안에서 힘이 끓어오른드아앗! 검기는 어느샌가 신성력이 섞인 검기가 나왔다.
띠링-
-신성력이 검기에 스며듭니다.
-합체 스킬 성광검기(聖光劍氣)로 변화됩니다.
이런 게 있어? 신기한데.
이대로 차징!
부아아아앙!
파삭!
닿은 구울은 마치 오이 채 썰리듯 흩어졌다.
“이거 쩌는데요!”
“이런 위력이 나오는 스킬이 아닌데요!? 어째서 이런 위력이 나오죠!? 거기다가 합체 스킬?”
내 말에 성광이 답했다.
“형제님,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아!”
나는 그대로 밟았다.
보육원 방향으로 달리자, 구울들이 사방에서 짓쳐들어왔다.
뒤에는 불길을 매달고 앞에는 성광검기를 두 개 만들어 달리자, 달려드는 구울들이 그대로 먼지처럼 쓸려나갔다.
와우! 단번에 백 마리 정도는 처리한 듯?
끼이이익.
불길의 끝에 가 턴을 하며 정지. 구울들이 더 이상은 따라오지 않고 있다.
대신, 녀석들은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어라…….”
“저게…… 뭐죠?”
성광과 나는 구울들이 벌이는 모습에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구울이 서로 달라붙는다. 그리고 서로를 물어뜯고, 그 손톱으로 서로의 몸통을 찢어내고, 이윽고 뭉개진 진흙처럼 합쳐지기 시작했다.
“아니… 저게 저렇게 나온다고?”
저게 뭔지 알고는 있다.
옛날에 던전에서 보조원으로 일할 적에, 저 녀석의 시체를 본 적이 있었으니까.
끔찍한 뭉개진 시체 덩어리 혐오체.
관측 계열 스킬로 확인해도 그렇게 나오는 저것은, 다수의 시체가 ‘얽혀져서’ 만들어지는 괴물이다.
보기만 해도 끔찍하고 모독적인 저것은,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보스 몬스터로도 유명하다.
“구울이…… 저렇게 변한 것은 처음 봐요.”
성광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럴 만하다.
나도, 구울의 시체가 저렇게 변한 건 처음 보니까.
“저도요. 제가 알기로 저거… 시체가 뭐냐에 따라서 더 강해지거나 약해지거나 하는 녀석이었는데…….”
그리고 저렇게 커지지도 않았었다. 끽해야 3~4미터 정도.
“예. 그런데…… 저건…….”
점점 커진다. 더더 커진다. 그리고.
이윽고 구울들이 뭉쳐진 그것은 거의 8미터쯤 되어 보이는 거대한 거인이 되어 있었다.
아니. 거인이 된 게 문제가 아니라… 끔찍하고 혐오스럽다.
보는 것만으로도 토악질이 나오는 그런 기분.
물론 나는 타이틀 효과로 멀쩡하다.
성광을 슬쩍 보니, 성광도 다행히 정신적인 공격에 노출된 것은 아닌 모양이다.
‘[희망의 수호자]는 척량에게 쥐여 줘서 영향이 없을 텐데, 역시 성광 자신도 정신 공격 대비 스킬이 있는 모양이네.’
“형제님. 움직입니다.”
성광이 말했다.
그 말대로, 끔찍한 뭉개진 시체 덩어리 혐오체 녀석이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게 보였다.
그런데 우리를 슬쩍 보더니-그게 진짜 ‘본다’는 행위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을 돌려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뭐야? 어디 가?
“설마… 막아야 해요! 지척 씨! 저걸 막지 않으면 안 돼요!”
그런데 등 뒤에서 성광이 소리를 지르더니 놈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방향이면 대피소 방향입니다!”
“망할, 꽉 잡으세요.”
대피소로 가는 거면 안 되잖아! 애들이 있다고, 거기!
속도를 높였다.
어떻게 이렇게 귀신같이 가장 X되는 방향으로 달려가니?
* * *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지역적으로는 고양시와 파주시 사이에 위치한 이곳은 과거 출판산업단지가 들어와 있었으나, 게이트 사태 이후에는 헌터들을 위한 각종 업체가 들어선 곳이 되어 있었다.
소규모 핸드메이드 공방들이 주변에 자리를 잡았고, 그들의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 형성된 탓.
북한 지역이 몬스터에 의해서 아예 멸망해 버렸기 때문에, 파주시와 고양시는 사실상 서울을 지키는 방벽 지역이 되어 부동산 가격은 ‘시가’다.
결계석 가격과 국방비, 그리고 공무원 헌터 배치 상황에 따라 갈린다는 뜻.
그러다 보니 이쪽 국회의원들은 국방을 우선으로 하는 의원들이 당선되고 늘 돈을 끌어와 결계석과 군수물자, 콘크리트로 바꿔 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