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129화 (129/305)
  • 제129화

    뎅강.

    음~ 아주 깔끔하네.

    쇠파이프의 단면을 아주 자세히 보면 수십 가닥의 실로 잘린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칼날이 닿기도 전에 검사(劍絲)로 잘려나간 것.

    “염라두한테 고마워해야 하나?”

    [주화입마가 올 뻔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잘 풀렸지요.]

    놈에 대한 깊은 분노가 나를 다음 경지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이거 무슨 드래X볼 초X이어인도 아니고, 참 어이가 없네.

    [따봉으로 거의 대다수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경지를 올리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만약 경지를 올리게 된다면…….]

    “초절정 고수의 다음이라는 화경에 도달할 수 있는 건가?”

    [아마도 그렇겠지요.]

    “무공 경지 참 짜다… 그러면 랭크 B가 화경? 랭크 A는 현경인가?”

    현경이라…….

    중국 쪽의 무공 최고수도 현경의 경지는 아니라고 했었는데. 현경이 진짜 가능하긴 한가?

    “실험해 보자고. 따봉. 혼원건곤신공 랭크 상승.”

    [혼원건곤신공]

    등급: 레전드 (성장형 C) -> 레전드 (성장형 B)

    -5,000,000따봉.

    500만 따봉!?

    아니……. 이거 뭐 이리 비싸?

    이건 그냥 열심히 수련하면 오를 수 있는 경지인데, 500만이면 우리 목표인 1,000만 따봉의 절반이잖아.

    그걸 달라고? 미친 양심리스네.

    [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주군.]

    “왜 그리 생각하지?”

    [만약 레전드 C에서 레전드 B까지 올릴 수 있는 시간이 약 10년이라고 한다면 그 시간을 사는 거니까요.]

    “과연 그럴까?”

    [숙련도 증가율을 계산해 보니 그리됩니다. 시간을 자원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의미이니, 이것은 거대한 권능이지요. 거기다 원래라면 깨달음의 구간에 크게 고생하는데 그것까지 따봉으로 처리해 버린다는 뜻이니.]

    그 깨달음마저 따봉만 붓는다면 어떻게든 해준다는 건가.

    어이가 없네.

    따봉 만능주의 대단하다.

    “일단 시간이라… 그렇게 생각하면, 내 모든 행동이 결국 시간 자원이라는 뜻인데……. 따봉을 모으는 것도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고, 세계 멸망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으니…….”

    이런 고민을 지금 해봐야 아이고, 의미 없다.

    어차피 따봉 없어서 못 산다.

    지금 그 반의반도 염라두에게 살을 튀겨 가며 모았는데 무슨 수로 500만을 박겠어?

    “…….”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중요하지 않던가.

    마찬가지로 따봉을 쓰는 건 늘 고민이 된다.

    한 번도 쉽게 결정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척량.”

    [하문하십시오, 주군.]

    “튜토리얼이 끝나고, 세계가 멸망하려고 할 때.”

    [예.]

    “나 혼자서 세계 전체를 지키는 건 무리일 거야.”

    세계멸망.

    어떤 형태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초인이 된다고 해서 모든 이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고블린 던전이 생겼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 멋모르고 던전 입구에 가서 몬스터를 막아섰었지…….

    하지만 만약 던전 입구가 여럿 생겼었다면?

    그곳을 내가 막았다고 해도, 다른 곳에서는 피해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나 혼자서, 세계 전체를 구할 수 없다.

    슈퍼맨의 딜레마. 그렇게 강한데도 혼자서 세계 전체를 구하지는 못한다.

    세계를 구하려면…….

    “우선은 작은 것부터.”

    [어떤 생각이신지 알 수 있겠습니까?]

    “이익은 거의 없지만, 손해도 없는 것. 그러나 인류에게 도움이 되고 대량 생산 할 수 있는 물건. 그런 것을 만들 방법을 찾자.”

    [구체적이시군요.]

    “어릴 때 배웠거든. 의무 교육의 성과지.”

    따봉 상점을 켰다.

    “농업혁명 이후로, 인류가 제대로 지구의 주인이 되기 시작한 것은 크게 산업혁명과 위생 관념 덕이겠지. 그러니까 우리도 그렇게 해 보자고.”

    모노 바이크G.

    내가 가지고 있는 마도 공학 스킬의 성과다.

    마도 공학은 과학기술과 마법이 합쳐진 것.

    연금술로 구현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이걸 이용하면 뭔가 될 것 같다. 그렇지? [사소한 직감]?

    양자택일의 [사소한 직감]이 발동했다.

    심장이 뛴다.

    “오케이.”

    당장 해보라고 난린데?

    * * *

    “안녕하세요. 여러분. 엄지검지, 엄지입니다! 오늘은 어디 와 있느냐? 일산-파주 공장 지대!”

    명랑하게 제스처를 취한다.

    역시 라이브가 아니라서 흥이 좀 안 나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번 편은 아무래도 가게 주인도 찍힐 수 있으니까 미리 사전에 양해를 구해야 한다.

    얼굴 나와도 되는지 아닌지.

    상대가 헌터면 민법상 공인으로 분류돼서 그냥 찍어도 되는데 가게 주인은 민간인일 수도 있으니까.

    이게 은근 귀찮단 말이지.

    [주군. 저것도 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케이. 여기 계신가요~?”

    따봉 상점에서도 살 수 있겠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돈으로 사는 게 좋지.

    내가 요즘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서 1따봉 정도는 팍팍 쓰고 있지만, 그 이상은 여전히 지갑을 닫고 있다.

    레벨이 오른 만큼 내 수준에 맞는 스킬과 물건을 사는 데 필요한 따봉이 이제 수십만 단위가 후끈하게 넘어가니, 급한 대로 현금부터 쓸 수밖에.

    그래서.

    지금 나는 서울을 벗어나 일산-파주 사이의 공장 지대로 와서 각종 업체를 방문하는 중이시다.

    이 동네는 과거에 출판 단지였는데,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지금은 마도 공학 기업들이 즐비한 곳으로 변모했다.

    정부에서 재개발을 하니, 중소기업 상생을 하니 하며 결계석까지 구매해서 잘 꽂아둔 덕에 단지는 더욱 번화하고 이제는 헌터들의 벼룩시장이 된 거지.

    여기는 약초와 원석, 금속, 기초 부품 등을 다룬다.

    그러다 보니 약초를 대량 구매하러 온 연금술사 헌터에서 새로운 금속 부품을 사러 온 제작계 헌터까지 다양한 고객들이 모인다.

    “확실히 백화점과는 다른 분위기네요.”

    [네. 백화점은 엄선된 물건을 비싸게 올리는 느낌이라면, 여기는 개개인이 모두 사장이고 직원이니까요. 대신 눈 뜨고 코 베이지 않으려면 사는 사람의 안목도 중요합니다.]

    “어이, 거기 혹시 엄지척 헌터 아닙니까!”

    덩치가 산만 한 사장님이 우렁차게 내게 인사한다.

    오,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나 좀 유명해졌나 본데?

    “약초 사러 왔습니까아! 싸게 해줄 수 있는데~!”

    사투리 억양이 섞인 표준어 말투.

    사장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자 모두가 고개를 돌려 나와 그 이름 모를 사장님을 번갈아 본다.

    “아뇨, 오늘은 연금술 부품 사러 왔는데요.”

    “에헤이, 그러면 사인만 해주쇼!”

    “와하하하하!”

    가게 주인들이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사인한 종이를 받은 가게 아저씨가 간판에도 사인을 해 달라고 해서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래도 돼요?”

    “하모! 내 딸이 엄지척 헌터님 먹방 안 보면 점심을 안 먹는다 아닙니까! 간판에 사인 있으면 그거 보러 아빠 가게도 친구들이랑 자주 놀러 오겠죠?”

    “하하하하하!”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사다리에 올라가 커다란 펜으로 사인을 했고, 사장님은 시약을 물뿌리개에 담아 뿌렸다.

    “이렇게 코팅하면 비 와도 안심이지. 안 그나?”

    “따님이랑 사이좋으신가 봐요.”

    “아휴, 말도 마십시오. 옛날에는 아빠밖에 몰랐는데 머리 굵어지니 남자친구만 찾습니다. 남자친구랑 헤어지니 이제는 엄지척 헌터님만 찾고요.”

    [시련의 아픔을 입덕으로 치유한 모양이군요. 좋은 일입니다.]

    척량의 진지한 목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방송에 제 얼굴 나옵니까?”

    “네. 원하시면 흐리게 가려 드릴 수 있어요.”

    “아휴, 그럼 안 되지. 얼굴 팍 찍어 주십시오. 여기 보이십니까. 영인 약초입니다. 연금술에 필요한 약초와 귀한 요리용 약초도 팔고 있습니다. 스마트 팜 기술로 모든 약초는 농약 없이 실내에서 재배하고 있습니다~ 맛있어요~”

    이러며 양손을 좌우로 익살스럽게 흔드셨다.

    [이분 그림 잘 나오시겠네요.]

    응. 세상에는 연예인도 아닌데 연예인급 끼가 있는 분들이 계셔.

    [그리고 말은 저래도 따님과 사이 엄청 좋아 보이십니다. 보통은 딸이 무슨 갓튜브를 보든 부모가 같이 봐주는 일은 별로 없으니까요.]

    좋은 아버지시기도 한 것 같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명함을 교환했다.

    나중에 약초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해야지.

    그 이후 다른 가게에 가서 원하는 부품을 찾았다.

    가게 주인들도 한 사람이 방송 촬영을 하니, 자기도 찍어 달라며 앞다투어 말을 걸었다.

    역시 내가 좀 떴나 봐?

    [뭔가 싶어서 다급하게 엄지척을 검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치.

    그렇게 물건도 사고 인사도 하고. 방송 그림도 만들고.

    [이제 이 재료들로 제작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염라두의 사기꾼 논란도 완전히 사라지겠군요.]

    그렇게 되겠지.

    지금 염라두 서포터즈 쪽에서는 ‘엄지척이 이긴 건 맞지만, 그렇다고 바이크를 직접 만든 게 맞는지는 알 수 없는 거 아니냐’로 단합한 모양이니.

    [일대일로 싸우자는 건 염라두인데 어이가 없더군요.]

    그래. 그런데 좋아하는 게 무너지면 정신승리할 게 필요해.

    자신이 파는 헌터가 몰락하는 모습을 보고 그냥 정떨어져서 탈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붙잡고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에게는 뭔가 정신승리할 거리가 필요하다.

    그게 학폭 헌터가 살아남는 이유다.

    ‘내 새끼는 학폭을 안 했다. 이건 쌍방이 싸운 거다.’라며 현실 부정을 하는 경우부터, ‘내 새끼는 학폭을 했지만 그건 스킬의 영향으로 정신이 불안정한 것이다.’라는 당위부여형까지, 다양한 정신승리 유형이 있다.

    염라두도 똑같이 가는 거야.

    [그러면 겸사겸사 남은 염라두 팬덤도 흩어 버리려는 거군요. 사악하십니다. 주군.]

    에이, 그래도 극 코어층은 남을 거야.

    그건 아마 염라두가 대로변에서 사람 찔러도 방송을 계속하면 붙어 있을 애들이니 어쩔 수 없고.

    적어도 염라두가 거짓말을 했다는 게 확실해지고, 정신승리할 일말의 건덕지도 없어졌을 때 뜨는 애들이 있긴 할 거거든?

    그리고 의외로 대중의 눈이 꽤 지엄해요.

    유입은 막겠지. 지금도 이미 병크 터졌다며 돌아다니는 걸 보면 거진 막혔지만.

    좋아하던 것을 쪽팔리게 한 건 그놈이거든.

    [그것뿐이 아니지 않습니까?]

    크헤헤헤헤! 내가 딴 건 몰라도 동생 건드리는 건 못 참지!

    헌터의 실력이 결국 팬덤의 자부심이며 응집력이 된다.

    염라두가 자청해서 하락세를 타고 있는 상황에서 남아 있는 팬덤 분위기는 말로 할 게 아니지.

    그게 자정으로 가는 경우가 있고, 말도 안 되는 곳으로 화살표가 향할 때가 있는데.

    -동생분 얼굴로 시체 혐오짤을 만들어 합성한 계정. 신고가 들어왔습니다만, 고소하실 거죠?

    변호사 전화를 받자마자 죄다 고소하기로 했다.

    이 새끼를 특정할 수 있을지가 문제인데 그건 정지한과 50인의 변호인단을 믿어 보려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얘들 정신승리할 건덕지는 이참에 확실하게 지워 주려고.

    [인간의 악의가 무시무시하네요.]

    그러게 말이다.

    시체 혐짤이라니 상상도 못 했다. 진심.

    내 무덤짤 돌아다닌다고, 고소하실 거냐고 변호사가 물었을 때는 내 일이라 덤덤했는데 말이지.

    합의금 필요 없으니 알아서 하시고, 합의금 발생하면 변호사분이 다 가지시라고 쿨하게 넘어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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