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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126화 (126/305)
  • 제126화

    염라두 vs 엄지척.

    방송은 원래부터 서사가 반이다.

    엄지척으로 인해 부모님이 대국민 사과까지 해버린 염라두.

    그런 염라두가 엄지척보고 사기 그만 치라고 선포했고,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풀 스타일링에 스폰서 브랜드 옷까지 입고 와서 받아준 엄지척.

    -염라두도 한성격하지만 엄지도 제정신 아니다. 나 걔 방송으로 웃고 있는 거 봤는데 소름ㅋㅋㅋ

    -엄지 얼굴에 괜히 [기 존나 셈] 넣은 짤방이 돌아다니겠냐ㅋㅋㅋㅋㅋㅋㅋ

    -원래 헌터 따라 서포터즈도 닮아가는 거ㅋㅋ 쟤네 서포터즈 성격 보면 엄지 성격 각 나오죠?

    -고레벨 헌터끼리 싸움도 아니고 기껏 중저레벨따리 싸움에 이렇게 사람 몰린 건 또 첨임.

    ↳222222

    ↳3333333

    ↳44445555555556666

    ↳엄지를 중저렙이라고 할 수 있나? 얘는 좀 특수 케이스 아님?

    ↳얘 각성 시기도 그렇고. 던전이 일단 중저렙 중심이라 그렇게 보는 게 맞는 듯함.

    양쪽 서포터즈도 아니고 그냥 요즘 이슈라서 들어온 사람들도 많았다.

    -염라두 셈? 엄지척은 요즘 잘나가서 가끔 갓튜브 알고리즘으로 뜨던데. 그 여의도 던전 혼자 깬 애가 엄지 맞지? 희망의 성채도 되게 핫하던데. 근데 염라두는 머임?

    ↳단목 염가 천재 각성자.

    ↳단목 염가면 거긴가? 화염계 능력 명문가에 집안 줄줄이 고레벨 각성자인 거기?

    ↳ ㅇㅇ. 걔 할아버지가 국회의원도 5선이나 했었음. 걔 엄빠는 연예계 쪽에서도 유명하고.

    -단목 염가를 모르는 놈도 있네ㅋㅋㅋㅋㅋㅋ 나랑 다른 대한민국 살다 온 듯.

    -님 이거 어따 돈 걸어요?

    ↳토토 등록 안 됐어요. 님아. 님 짐 하려는 거 불법이에요.

    채팅창에 올라가는 문구가 사회 보는 둘의 대화보다 더 재미있는 진풍경 속에서,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었다.

    김초코는 생각했다.

    ‘제발 이겨야 할 텐데.’

    갓튜브 세계에서 서포터즈의 승패는 결국 본진을 따라간다.

    제아무리 단목 염가 패밀리들이 머릿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결국 엄지에게 지면, 머릿수가 얼마가 되든 패배하는 법.

    백날 키보드 워리어 해봤자 결국 엄지척이 이기면 이기는 게 된다.

    ‘모든 엄지 팬들이 하고 있는 기도겠지만. 제발 승리하세요!’

    김초코는 거기에 자신의 기도도 보태기로 했다.

    ‘그냥 이겨서도 안 돼. 아예 다시는 안 기어오르도록 철저하게 밟아야 한다.’

    단목 염가 팬덤은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그러니 절대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 되고. 아예 독종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상황.

    ‘그걸 기존의 착하고 청량하기만 한 엄지척 헌터가 해낼 수 있을까.’

    어찌 보면 그동안 쌓아왔던 이미지를 제 손으로 박살 내는 걸 텐데.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독기다.

    독기 가득해야 한다.

    산독기 독기야.

    * * *

    월드컵 경기장의 [결투장]은 이야기만 많이 들었지, 사실 처음 와 본다.

    일개 시청자로서 영상으로는 몇 번 본 적이 있긴 하지만.

    현재 내 무장은 쌍검, 헌터 슈트, 거기에 무척이한테 다시 가져온 [환상의 조각] 목걸이에 허공을 부유하는 [희망의 수호자], [흑염의], [트롤 재생력의 반지], [야광 페어리 클립]까지.

    사실상 풀 세트 상태.

    사실 칼은 이제 슬슬 바꿔도 될 것 같기는 하다.

    아니면 업그레이드를 하든가.

    그것도 저 녀석을 뭉개버린 다음의 이야기지만.

    [확실히 돈 많은 부호 집안 자식은 다르군요.]

    왜?

    [인터넷 검색 결과. 외견으로 보이는 장비들이 전부 초고가의 물건들입니다. 랭크가 A가 아닌 물건이 없는 상태일 정도입니다.]

    그러면서 척량이 설명해 줬다.

    녀석이 낀 목걸이, 팔찌, 장갑 그리고 슈트. 전부 랭크 A의 초고가품.

    거기다가 화염계 능력을 상향시켜 주는 것들.

    이야… 재벌집 막내아들의 위엄인가 보다. 나도 멀었네.

    내 지금 재산 전부 해도, 저 녀석 장비보다 못하다는 거 아냐?

    [분하게도 그렇습니다. 저도 조금 더 분발해서 계책을 짜내야겠군요. 조금 더 공부를 해 두겠습니다.]

    아니. 뭘 공부하려고?

    [부동산, 주식 등의 재테크에서 사업 관리까지 공부해 두겠습니다. 주군을 보필하는 것이야말로 저의 본업!]

    뭔가. 이상한 열의가 척량이한테서 느껴진다.

    삐--

    영혼을, 그리고 정신을 뚫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전쟁을 좋아하는 심장’께서 하사하신 결투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참가자 엄지척.]

    [참가자 염라두.]

    [각자의 자리에 서 주십시오.]

    나와 염라두는 약 10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섰다.

    “새끼. 오늘 아주 그냥 죽여 주마.”

    “염라두 씨.”

    “왜 새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왜 그렇게 저를 싫어하시는 겁니까? 헌터 시험 때 일 때문에 아직도 앙심을 가진 건가요? 그것 외에는 도통 모르겠어서…….”

    “……!!”

    그 순간, 놈의 이마에 실핏줄이 섰다.

    와. 무슨 만화도 아니고 진짜로 저걸 보네.

    [이런 저급한 도발에 당하다니. 너무 단순한 인간이군요.]

    그러게 말이야.

    “이 새끼가 감히 나를 또 무시해!? 죽고 싶냐아아아--!!”

    모르겠다.

    이놈이 왜 이렇게 나한테 화를 내는 건지.

    헌터 시험 때 일은 본인이 잘못한 거 아닌가?

    2위라도 챙겨 먹었으면 감지덕지하고 자숙이나 하든가.

    왜 굳이 이렇게 바락바락 증오 속에 사는지 모르겠네.

    “그리고 지난번에 볼 때는 또 화면에 안 잡히셨잖습니까? 그 [희망의 성채]요.”

    “그, 하지 말래서 못 했다. 왜!”

    누가 하지 말라고 했는지 말하려다 막힌 모양이군.

    추론상……. 단목 염가 가주님이나 엄빠가 되려나?

    [엄빠일 것 같습니다.]

    음, 쪽 팔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그때는 말 듣는 효자처럼 굴었으면서 왜 이번에는 말 안 듣는 불꽃 효자가 되셨대?

    [일대일의 결투를 확인했습니다.]

    [결투의 고양감이 그대들과 함께하기를.]

    [결투 시작.]

    시작이다.

    “뒤져라!”

    화아아악!

    녀석의 몸 전체에서 불길이 일어난다.

    겉으로 보면 불타고 있는 사람 같지만, 본인에게는 그 열기가 조금의 효과도 없는 듯하다.

    그 불길이 순식간에 나를 향해 뿜어졌다.

    스킬명도 말하지 않는 걸 보니, 화염을 만들고 제어하는 패시브계 스킬인가 보네?

    방패가 내 앞으로 순식간에 나아가 불길을 막는다.

    파괴 불가의 방패는 역시 강력하다니까.

    내 정신력에 비례해서 버틴다라.

    그렇다면 내가 버티면 되는 일 아닌가?

    ‘자, 이제 나는 어떻게 할까?’

    내가 가진 스킬들을 생각하다가, 그간 써 보지 않았던 것을 쓰기로 했다.

    이유?

    쇼맨십을 위해서.

    볼 게 풍성하고, 박빙 승부가 되어야 시청자들도 좋아할 테니까.

    “환상의 조각.”

    속삭이듯 중얼거리고, 마력이 목걸이를 통해 빨려 나가 내 마음속의 형상을 밖으로 꺼냈다.

    [엄지척 헌터! 환상을 불러냈습니다! 저건 엄지척 선수가 방송에서 언박싱할 때 나온 거죠~!]

    멀리서 사회를 보는 김초코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 이걸 언박싱했었죠. 그리고 스킬은 한 번도 안 쓰다가 마력 랭크 높이라고 무척이 줬었다.

    하지만 이런 대인전에서는 이게 아주 요긴할 거 같아서 가져왔지!

    위웅.

    내 마력&내공 랭크는 이제 A.

    거기다가 이건 대인전이라 마력 소모량 걱정할 필요는 없지.

    [그동안 갓튜브에서는 일대다로 몬스터 잡는 모습만 보여서 대인전은 얕잡아 보였을 겁니다. 사실, 주군의 주특기는 일대일에서 나오는데 말입니다.]

    그 결과.

    주변에 엄청난 숫자의 내 모습이 나타났다.

    어릴 적 유행하던 닌자 만화의 분신술과 비슷하다.

    더 옛날로 내려가면 손오공의 분신술과도 똑같고.

    하지만 비슷하기만 할 뿐, 비견하기는 어렵지. 이건 실체가 없는 허상일 뿐이니까.

    “뭣!? 뭐야, 이거!?”

    녀석이 당황한 듯 불길을 몸에 두르고 허둥거렸다.

    좋아, 가볍게 잽을 날려 볼까?

    우선 원거리 공격부터.

    “염력 화살.”

    스파팟!

    하늘에 염력이 뭉쳐진 구체가 나타나 그대로 놈을 향해 날아간다.

    마력이 많으니 흡사 기관총 같은 속사.

    그러나 놀랍게도 녀석의 불꽃에 닿자 염력 화살이 그대로 사라졌다.

    저게 뭐야?

    [마법 저항력입니다, 주군! 저 불꽃이 낮은 클래스의 마법은 무효화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호? 그런 사기적인 능력이!?

    말 그대로 불꽃이 보호막이 돼서 충격을 막아 주는 걸 넘어 충격을 무효화시킨다는 거네?

    ‘막아 주는 것’과 ‘무효화’는 얼핏 비슷해 보이면서도 다르지.

    막아 주는 수준이라면 반복해서 때리다 보면 금이 가고, 더 때리다 보면 부서질 수 있지만 무효화는 몇 번을 때려도 그냥 그 공격을 씹어버리니까!

    “하하하하. 네 녀석의 허접한 마법은 간지럽지도 않다고! 화염 파도!”

    녀석이 두 손을 번쩍 든다.

    그러자, 녀석의 몸에서 화염의 파도가 원형으로 퍼져 나가며 주변의 환상을 그대로 흩어냈다.

    화염 파도는 내 앞까지 왔지만, 방패에 막힌다.

    잔기술로는 안 된다는 거죠?

    하와와와, 그러면 본격적으로 해 볼…….

    “크큭. 네놈한테 동생이 있다고 했지? 네놈 다음은 네 동생이다. 이 한국에 발도 못 붙이게 해줄 테니까…….”

    선 넘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뚝하고 인내심이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다시 지껄여 봐. 내 동생을 어쩐다고?”

    동생은 선 넘었지.

    이런 X 같은 기분은 참 오랜만인걸.

    * * *

    ‘대화력. 염혼 폭증.’

    염라두는 스킬을 사용한다.

    말을 하지 않아도, 스킬을 사용하게 해 주는 [무언의 영창 목걸이]를 이용한 것.

    화염계 능력을 일순 증가시키는 스킬을 연달아 사용하고서, 방패 뒤에 숨은 엄지척을 주시한다.

    화염 파도가 아직 계속되고 있기에,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가 움직이지 않는 동안에 염라두 역시 화염을 축적하고 있다.

    화염이란 계속 타오르는 힘.

    화염 스킬을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화기의 일부를 몸속에 쌓고, 쌓고, 쌓아 가는 고난도 기술로.

    게임 용어를 따서 ‘스택’이라고도 부른다.

    ‘스택을 쌓는다.’

    이렇게도 표현한다.

    이렇게 화염이 완전히 축적된 후.

    어느 순간, 한꺼번에 폭증한 데미지를 주는 것은 꽤 어려운 기술 중의 하나.

    이것을 염라두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혀 나갔고.

    부모님의 도움으로 완전히 마스터를 했다.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이기라는 부모님의 응원.

    기왕 병신이 될 거면 이기는 병신이 낫다는 어머니의 포기 섞인 응원!

    ‘새끼. 내가 방패째로 태워 주마. 고통스럽게 죽으면 그제야 지가 뭔 잘못을 했는지 알겠지! 화력이 다 모였으니 이제 죽어!’

    강대한 화염의 힘이 그의 심장에서 타오르고 있다.

    화염 파도를 유지하면서, 이렇게 불의 힘을 끌어모은 스스로를 칭찬하며 그가 입을 열었다.

    “크큭. 네놈한테 동생이 있다고 했지? 네놈 다음은 네 동생이다. 이 한국에 발도 못 붙이게 해줄 테니까…….”

    오싹.

    솜털이 쭈뼛 섰다.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살기다.

    어느샌가 방패가 치워지고, 엄지척이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어찌 된 게 화염 파도가 녀석의 몸에 달라붙고 있음에도,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놈의 옷과 스킬이 어느 정도 화염을 감쇄해 주는 모양.

    하지만 그 고통까지 어찌할 수는 없을 텐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 중의 하나가 작열통 아닌가.

    그러나 그 사실에 놀라기도 전에 염라두는 공포감을 느꼈다.

    엄지척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늘하게 그를 바라만 보고 있다.

    재수 없이 잘생긴 얼굴인데, 표정이 없는 것만으로도 공포 영화의 살인마 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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