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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124화 (124/305)

제124화

“그러면, 좋은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오늘의 긴급 생방송은 이걸로 종료! 다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적절한 클로징 멘트를 하고서 방송 종료.

“자…. 불을 질렀으니까. 반응이 어떠려나?”

[주군. 적이 미끼를 물었습니다. 메시지가 벌써 도착했군요.]

“벌써? 성격도 급해라. 그러면 메시지부터 확인…….”

띠리리.

폰이 요란하게 울린다.

들어 보니 정지한 대표이사였다.

“이거 아무리 봐도 방금 전 방송 보고 전화한 것 같지? 정비가랑 있었던 일은 모를 테니까.”

[100%입니다.]

“싸우지 말라고 말리려고 그러는 거려나…….”

일단 전화를 받았다.

“예. 전화받았습니다.”

정지한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울린다.

-잘 지내시는 줄 알았습니다만, 오늘 사고를 거하게 치셨더군요.

“아하하. 그렇게 됐네요. 아무래도 저도 방송을 하다 보니까 어쩔 수 없더라구요.”

사실 이 모든 것은 따봉 때문이지만.

나만큼 방송에 목숨 거는 사람도 별로 없을 거야.

-그렇군요. 차라리 잘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 * *

정지한은 인적이 아예 사라진 폐허 도시의 한복판에 서 있다.

기지국도 없는 이 행정의 빈 공간 속에서도 그는 태연하게 엄지척과 통화를 계속했다.

북한 지역.

던전 브레이크를 막을 수 없어, 이제는 몬스터들이 서식하는 마경(魔境)이 되어 버린 지역은 그 위험함 때문에 사람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 범죄 조직들의 은신처가 숨겨져 있는 곳이기도 한 이곳은 악의(惡意)가 중첩된 지옥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과거 독재 국가의 도로는 이제 흔적도 거의 없고, 건물들은 이계의 식물들이 자라나는 모판이 된 지 오래.

그런 황량한 도시를 걷고 있는 정지한이지만, 위기감은 조금도 없다.

이미 그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시체들이 쓰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다수는 몬스터지만, 일부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 지역에 은신하고 있는 범죄 조직들.

“그렇군요. 차라리 잘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염가는 조금 눌러둘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경기도 단목시에 자리한 단목 염가.

그에 대해서 정지한은 떠올린다.

지역 토착 세력이며, 동시에 한국에서도 상당히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헌터계의 명문가.

화염계 능력에서는 세계에서도 알아줄 정도의 능력자들이 있는 가문.

그러나, 그들은 세계의 멸망에서 자신들만 살겠다고 대한민국을 배신했던 자들이다.

미리 치워 두면 좋겠지만, 아직 그들은 ‘죄’를 짓지 않은 시점.

그런데 그 장애물을 엄지척이 미리 건드릴 줄이야.

‘분명 모르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일 텐데.’

엄지척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인 정비가를 갓튜브로 포섭하고.

이번에는 미래의 매국노인 단목 염가를 건드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 개연성 역시 지독하게 자연스럽군.’

정확히는 염라두 본인이 엄지척에게 도발당해 불나방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어이가 없다.

오랫동안 고민해 온 문제를 이렇게 쉽게 해결할 줄이야.

“예. 묵사발을 내주시면 됩니다. 필요한 지원 물품이 있으시면 서포트 팀장에게 요청해 주십시오. 예. 그러면 무리하지 마시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삑.

통화를 종료하고, 정지한은 주변을 돌아본다.

주변에 살아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 온기가 조금 남은 시체들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가 왼손을 들어 올리자, 모든 시체가 입자로 변해 그의 손등으로 빨려 들어가며 그의 등 뒤로 톱니바퀴의 환영이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엄지척을 습격한 두 명의 암살자를 처리했을 때와 같은 풍경.

“염라두와 충돌했던 것이 24번이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는데……. 역시. 이번의 그는 이전 삶과 뭔가 다르군.”

특이점.

그것도 수없이 죽고, 죽기를 반복했던 특이점이다.

뭐 이런 쓸데없는 것에 뒤졌나 싶을 만큼 사소하게 죽고, 버러지처럼 죽었다.

그렇게 자신의 시신을 쌓아올려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알고 이러는 건 아닐 거고.”

엄지척이 자신과 같은 회귀자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렇게 데드 플래그를 기막히게 해체하며 전진하는 게 놀랍다.

깨끗해진 폐허의 도시 속에서, 그는 홀로 중얼거렸다.

“나도 이전보다 혼잣말이 늘었어. 자아가 붕괴될 조짐인가.”

그는 이마를 살짝 쓸었다.

그가 주변에 쌓아올린 시체와 몬스터들의 산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도시처럼.

그런 풍경을 만들고, 그런 풍경을 다시 지워 나가며.

청년은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이번 엄지척이야말로 어쩌면…….”

이윽고. 그는 마치 연기처럼 흩어지며 그대로 사라졌다.

빈 도시에는 적막만 가득 찼다.

* * *

“뭐? 내가 도전장을 내밀어!! 이 시X 것이 진짜!!”

‘헌터 봤수?’의 촬영이 끝나고 집에 가던 길.

당연히 운전은 자기 손으로 하지 않는다.

운전기사가 모는 고급 세단 차량의 뒷좌석에서 자신의 갓튜브 채널 리플을 보는 게 낙인 그가 엄지척의 라이브 방송도 같이 보게 된 것은 필연.

분노를 터뜨리는 팬들의 댓글을 보고 달려가서 눌러 보니 엄지척 유튜브에 새 영상이 갱신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따봉 튜브, 엄지 튜브라고도 부르는 그 채널을 클릭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엄지검지 엄지척입니다!

방송에 뜬 엄지척은 밝고, 화사했다.

누가 보면 키즈 튜브인가 싶을 만큼 발랄하다.

엄지척이 발랄하게 맨트를 날리면 날릴수록, 염라두의 얼굴은 더욱 사정없이 구겨졌다.

아닌 듯 섬세하게 세팅된 머리와 아닌 것 같아도 잘 보면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스타일링.

입고 있던 후드티도 로고는 없지만 딱 봐도 스폰서가 보내준 의류 브랜드.

요즘 급식이들이 좋아하는 한창 뜨고 있는 브랜드다.

그랬다.

그야말로 이놈은 대국민 사과 방송을 하는 대신에 중무장을 하고 온 거다.

들인 돈을 보니 이 방송으로 염라두를 잡아먹어서 화제성을 올려 보겠다는 속셈이 느껴진다.

이건 동종업계라 한 번에 보이는 거겠지.

‘감히 단목 염가의 직계 자손이며, 화염계 능력자 중에서도 슈퍼 루키인 나를 무시해?’

누가 누구에게 도전한다는 거냐!

쾅!

그는 화가 나서 운전석 의자를 발로 찼다.

“끅!”

기사 아저씨가 신음을 뱉었지만 알 바 아니지. 암.

엄빠 월급 받아먹고 사는 머슴 아닌가. 발로 차면 감사해야지.

염라두의 주변으로 살기가 치솟는다.

“끄윽, 도련님… 제발… 도착할 때까지라도 진정을…….”

기사 아저씨가 다시 살기에 눌려 제발 그만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알 바 아니다.

막말로 기사 아저씨가 잘못된다고 해도 A.I가 운전해줄 거고.

설령 사고가 난다고 해도 뒤지는 건 민간인인 기사 아재지, 각성자인 자신이 아니니까.

“씹어 먹을 새끼… 진짜 조져 버리고 싶다…….”

하지만 진짜로 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하 그룹의 보호도 있지만, 갓튜브를 하는 녀석들은 언제든지 주변 상황을 영상으로 송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건 보통 던전 안에서 일어난다.

던전 안에서 갓튜브 송출을 스킬로 끊어 버리지.

그렇게 되면 증거도 찾을 수 없고, 사실상 던전은 치외법권 지역이 되어 버리지.

대부분의 헌터 간 살인 사건이 던전 안에서 일어나는 게 이 때문.

던전 밖에서 사람을 습격하는 건 정말 큰 결심이 필요했다.

확실하게 죽였다는 증거가 남을 경우.

자신도 범죄자로서 법정에 갈 그런 결심 말이다.

실제로 암살을 업으로 삼는 범죄자들은 그런 것도 무시하고 사람을 습격해 대지만, 이 대한민국은 몬스터 게이트가 터진 이후에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치안 유지력을 보여 주는 국가.

어지간해서는 대낮에 도시 한복판에서 사람 죽이는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죽이고 싶어도 던전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고 말지.

던전에 들어가서 갓튜브 송출 끊어버리고 암살에 들어가는 게 정석.

그뿐이 아니다.

그는 아직 어린 나이라서 가문의 제대로 된 업무나 일을 맡은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막장으로 살아오며 많은 사건 사고를 쳤던 염라두이지만, 그 밑에 제대로 된 직속 부하도 없어서 암살자를 고용한다는 등의 행동은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저번 [희망의 성채]처럼 돈으로 매수해서 방해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던 것.

“이 새끼… 좋아. 오늘 그냥 끝장을 보자!”

그는 엄지척을 향해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 잔뜩 글을 쓰기 시작 했다.

이윽고 그는 본인의 비밀스러운 다른 아이디로 접속한 후 초록창에 질문을 올렸다.

-각성자가 살인하면 어디까지 감형되나요? 헌터보호법은 어디까지 실드 쳐 줌? (변호사 비싼 거 씀. 던전 밖 살인임.)

그리고 엔터.

뭐라고 뜨는지 그는 열심히 기다렸다.

* * *

“진짜 멍청하네. 머리통에 뇌 대신에 우동 사리를 넣고 다니나?”

[그러게 말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우둔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군요.]

나와 척량은 사이좋게 염라두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명문이라서 이렇게 넋을 잃고 있는 중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공개해서 언론 플레이를 할 것을 염려한 것인지 나름대로 정중한 말투를 썼지만.

문장 전체가 당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유체이탈식 화법과 쫀심가득형 화법이 공존하고 있었다.

“와…. 얘 국어 못 하는구나. 아니… 최소한 초등학교에서 글쓰기, 읽기는 배웠을 거 아니야?”

멀쩡한 사람도 눈알이 핑글 돌 만큼 난독증을 유발한다.

그나마 알아먹을 수 있는 내용이 있으니 다행이랄까?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오후 1시에 월드컵 경기장에서 한판 붙자는 거네?”

[딱 3시간 남았군요. 월드컵 경기장이면 상암동에 위치한 곳입니다. 그리고 특수한 결계 공간도 마련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아. 그거 말이지? PVP 전용 결계. 그 안에서는 목이 잘려도 안 죽잖아.”

[예. 던전의 구성을 어느 정도 흉내 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만……. 사실 인류가 만든 것이 아니라 신들 중 누군가가 내려준 지식이거나 권능으로 만들어진 공간일 겁니다. 던전이 제각각 ‘조건’을 가진 것처럼 말이죠.]

던전은 내부에 들어가면 조건이 전부 다르다.

희망의 성채처럼 디펜스를 해야 하는 곳도 있고, 퍼즐이나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죽음을 거부하는 자의 신전]처럼 암살이 조건일 수도 있고.

그러다 보니 실제로 던전은 아니지만, 던전 비슷하게 인류가 만든 공간도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월드컵 경기장에 위치한 [결투장]이라는 장소.

특수 결계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사실상 던전인 곳으로, 그 안에서 죽으면 던전 밖에 멀쩡한 상태인 채로 튕겨 나오게 된다.

즉. 죽을 걱정 없고, 후유증 걱정 없는 사투 장소.

인기 스포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다만 좀처럼 박빙의 승부는 나오기가 어렵다고 들었다.

레벨이 비슷하다고 해도, 들고 있는 아이템과 직업 능력에 따라서 강함의 정도가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방적으로 한쪽이 당하는 경우가 많다.

나만 해도 레벨은 1이지만, 강함은 거의 80레벨 대에 도달한 특이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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