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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122화 (122/305)

제122화

아, 물론 착하다는 건 아니다.

그녀는 ‘악당’이지.

착한 사람은 저얼대 아니다.

그녀가 그간 세상에 보여준 모습들을 생각하면 악당, 빌런, 이런 말로는 부족하고.

그냥 대마왕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미친 마왕.

좀 많이 돌아 있는?

그녀는 쉽게 믿어 주는 내가 의외인 건지 한참 빤히 바라보았다.

“…….”

이윽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지한의 거짓말 탐지 스킬 같은 게 있는 거면 그거 너무 믿지 마. 그것도 속이는 법이 있으니까.”

거짓말 탐지라기보다는 [사소한 직감]이지.

양자택일밖에 하지 못하는 데다가 약간 미심쩍은 부분이 있지만, 결국 이건 탐지가 아니라 ‘예지’에 가깝다.

“굳이 그런 말까지 하면서 믿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뭡니까?”

“어디 가서 호구 잡힐까 봐 그러지. 다들 나를 무서워하지 않나? 어째 처음 봤을 때부터 너는 하는 짓이 참 이상해서 그래.”

뭐, 선인은 아니잖습니까요?

독재 국가에 무기 드론 만들어 파는 정비가와 아프리카에 농업 드론을 만들어 뿌리는 정비가.

결국 돈만 되면 다 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여기에 흥미가 생기면 돈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이상한 것들을 만들어 사고를 친다.

선악에 구애받지 않고 타인의 말 같은 건 듣지 않으며, 심지어 누군가와 깊게 관계를 갖지도 않고 살아가니.

방금 전까지 악당이라고는 했지만, 악당이라는 표현도 또 엄연히 말해 모호하지.

그녀가 밖으로 나가서 사람 죽이고 다니는 건 아니니까.

이런 인간을 ‘이질적’이라는 말만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당장 나만 해도 내 동생을 실험체로 삼아 마구잡이로 뭔가 한 줄 알았고.’

피식.

왜인지 정비가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웃겨서 말이지.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놈이 생길 줄은 몰라서. 흐음…….”

“수상쩍게 말씀하시긴 했죠.”

“그래. 그래도 난 이런 걸로는 거짓말은 안 해.”

허브차를 깊게 한 모금 삼키더니 그녀가 천장을 한 번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네 동생은 괜찮을 거야. 기록사라는 직업은 확실히 대단하니까. 스스로 스킬을 써서 페널티를 해소했는데 나도 놀랐어. 덕분에 좋은 데이터도 되었고.”

“그래서. 제 동생은 괜찮은 겁니까?”

“문제없음. 사실 더 좋은 거지~ 아주 이상적으로 개조돼서 강해진 거니까. 페널티 스테이터스라는 단어. 알아?”

처음 들어 보는 단어다.

의미만 보면 안 좋아 보이는데…….

그때 척량이 불쑥 말했다.

[페널티 스테이터스… 제가 수집한 정보 중에 있습니다. 주군.]

그게 뭔데, 척량?

[헌터들 중 일부는 자신에게 페널티를 가함으로써, 다른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의식술사라는 헌터의 경우 공양 의식을 통해 자신의 청각을 바치고, 대가로 마력을 더욱 크게 강화시키는 행동이 가능하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거 완전 아랫돌 빼서 윗돌 올리는 거잖아…….

“어라? 신체 반응을 보니, 대충은 이해한 모양이네? 그럼 이야기가 쉽겠어. 엄무척. 그 아이에게 한 게 그런 거야. 페널티를 감수하는 대신 큰 능력을 주는 것. 그런데 그 페널티를 없애 버렸네? 좋은 것만 남은 거지.”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죠?”

“그건 네 동생에게 물어 보렴?”

빙글빙글 미소 지으며 찻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참……. 얄밉다. 얄미워.

왜 이렇게 오해 사기 쉬운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이렇게 깊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게 서툰 걸지도.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이왕 뵌 김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시는 제 동생에게 그런 위험한 개조 수술은 하지 마세요.”

“글쎄다. 그건 네가 정할 게 아니지 않을까? 우리 지척 씨가 동생을 아끼는 건 알겠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엄무척이라는 인간이 결정할 일이야. 네 동생도 성인이잖아?”

그녀의 말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입 안이 쓰다.

“오래 살아. 오래 살아서 좋은 방송 많이 해줘. 너도 동생도.”

어감은 여전히 악당 같은 말투. 묘하게 사람의 성질을 긁는 음흉한 어조다.

그럼에도 직감은 ‘진실’.

놀랍게도.

그녀는 진짜로 나도 내 동생도 오래 살아서 좋은 방송을 하길 원하고 있다.

척량이 말했다.

[의외로 나쁜 사람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우리한테’는 말이지.

-조력자, 정비가가 당신의 신뢰를 기분 좋게 생각합니다.

-1 따봉을 받았습니다.

* * *

“마탄 생산, 마력 생산, 재생, 예측. 네 가지 스킬이 들어간 거야. 거기에 마공학 연산 기능이 있고. 나 인터넷도 접속한다?”

“너 그러면 와이파이 연결되냐?”

“와이파이 없어도 인터넷이나 해킹 같은 건 모두 가능해. 형.”

집에 돌아와 수련실에 처박혀 명상과 내공 수련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러고 있었더니, 동생 놈이 수련실에 들어와서는 말을 꺼냈다.

“부작용으로는 마력 오염, 고통 등이 있었지만 스킬로 해결했고.”

“어떻게 해결했는데?”

“기록사는 단어의 힘을 그대로 불어넣을 수 있잖아? 거기서 착안한 거뿐이야. 적응(適應)이라는 단어가 편리하더라.”

적응. 어떤 상황이나 환경 같은 것에 익숙해지고, 결국 아무렇지 않게 된다는 뜻의 단어.

“하아…….”

내가 한숨을 내쉬자 녀석은 피식 웃었다.

“걱정 마. 괜찮아. 안 죽어.”

저 말을 듣자마자 왠지 욱하고 화가 났지만, 한숨만 터지는군.

“야. 너 지금 복수한답시고 그런 건 아니지?”

“그 정도로 미친 건 아냐. 그냥. 형도 한번 느껴 보라고 말해 봤어. 형이 늘 하던 말이잖아. 손가락 잘리고 와서 했던 거 기억 안 나?”

“너 진짜… 아오…….”

내공 수련 하던 것을 때려치우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진짜 걱정하지 마. 나름대로 괜찮으니까. 레벨 업 이외의 강해지는 요소가 이 업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형이 나보다 더 잘 알잖아? 아이템에 다들 그렇게 돈을 때려 박는 것도 그래서고. 게다가 형이 알까 모르겠는데, 나 정도 수준으로 개조하려면 금액이 거의 천억 원대 이상…….”

“됐다, 됐어.”

“왜? 정비가 말로는 사실상 군사 전략무기를 뛰어넘는 마공학 기술이 집대성되었다던데.”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 녀석의 어깨를 꽉 잡았다.

“앞으로는 꼭 나하고 상의해라. 꼭. 반드시다.”

지금은 운이 좋아서 이득을 보긴 했다.

하지만 이 형 눈에는 이 새끼가 비가표 마개조 코인으로 돈 벌었다고 또 전 재산 투기할 놈으로 보여서 두려워지는 것이에요.

“믿는다. 알았지?”

“아니, 이만큼 강해졌는데도 걱정하는 사람은 형뿐이라니까.”

이렇게 말하더니 손끝으로 뇌전을 일으켰다.

파지직-

흰 번개가 구불구불 검지에서 엄지로, 중지로, 약지로 테슬라코일처럼 이동했다.

“전기 속성도 다를 수 있게 되었어. 번개 관련은 꽤 레어하잖아?”

[오오! 주군. 본디 뇌전은 자연 속성 중에서 가장 파괴적이고 다루기 힘든 힘. 마법 사용자가 아닌데도 사용한다는 건 장차 대단한 메리트…….]

“……무척아.”

“알았어. 형. 미친 짓하게 되면 형과 상의한다. 약속!”

“좋아.”

어깨를 몇 번 팡팡 쳐 주고서, 녀석을 지나쳐 밖으로 향했다.

“밥이나 먹자. 오늘 밥은 뭐야?”

“어. 계란 후라이 반숙하고…….”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시작한다.

‘대체 내 동생은 뭘로 성장하고 있는 걸까.’

일단 귀 뾰족한 노란 토끼마냥 전기를 뿜어내는 걸 보니 탈인간을 하려는 건 알겠어.

문득 정비가의 말이 떠오른다.

-오래 살아. 오래 살아서 좋은 방송 많이 해줘. 너도 동생도.

재앙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행운이었다니.

그것도 마공학 번개 속성이라니.

이렇게 된 거 무척이 놈을 내 갓튜브 채널 비주얼 멤버로 삼아야겠어.

* * *

무척이는 근육 트레이닝 한다고 가버렸고, 나는 수련실로 돌아와 내공 수련을 하면서 생각 중이다.

현재 가지고 있는 따봉은 133만 따봉.

자는 사이에 따봉이 1만 더 들어왔더라고. 어딘가의 커뮤니티에 퍼 날라지고 있는 중인가?

[아, 그래도 검색은 금물입니다. 주군.]

그래. 나라고 내 이름 석 자 초록창이며 파란창이며, 흰창이며 죄다 쳐보고 싶은 충동이 안 들겠나.

호기심을 못 이기고 그거 쳤다가 악플 읽고 멘탈 깨져서 전투 중에 죽는 헌터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문제지.

장난 같지?

그런데 그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미친 세상이다.

‘그래. 참자, 참아.’

고작 악플 몇 줄이 사람을 죽이다니, 대체 얼마나 악의를 담으면 그렇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만 나라고 뭐 용빼는 재주가 있어서 그거 보고 멀쩡하겠나.

그래서 헌터 서포트 차원에서 팬들은 어떻게든 악플 정화에 필사적이 된다고는 하는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라고, 인간의 악의 앞에서는 쉽지 않다고 들었다.

나도 그래.

그냥 평범한 인간 A일 뿐이니까.

아마 ‘검지’들은 내가 내 이름 서치 안 하길 바랄 거야.

내 기사도 안 보길 바랄 거고.

그러면 안 보는 게 맞지.

참자.

그나저나 따봉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이나 해볼까?

“2 따봉 미만 스킬들 보여 줘.”

[예. 주군. 1따봉 스킬 432개, 2따봉 스킬 357개가 검색되었습니다.]

척량이를 소환하기 이전, 처음에 봤던 스킬들이 다시 나열된다.

[숨쉬기 : 숨을 잘 쉬어서 건강해진다.]

[걷기 : 오래 걸어도 근육통이 오지 않는다.]

[먹기 : 잘 먹는다. 급하게 먹어도 체하지 않는다.]

[똥 싸기 : 어떤 상황에서도 쾌변이 가능하다.]

[잠자기 : 베개에 머리를 대면 얼마 후, 깊게 숙면할 수 있다.]

…….

무수히 많은 스킬들. 자세히 보면, 결국 사람의 행동 전부가 스킬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역시… 전부 구입해야겠어.”

[불필요한 스킬들이 아닙니까?]

척량이 말이 맞아.

뭐, 이거 없어도 숨이야 잘 쉬고,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긴 하지.

하지만 [사소한 직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묘하게 필요할 것 같단 말이지.

척량이 진짜 제갈량도 아니고 황천의 뒤틀린 제갈 머시기고. 이름을 지어주기 전까지는 [뒤틀린 황천의 책사]였잖아?

이 녀석이라고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한다.

그저 주어진 것을 가지고 점차 학습하고 성장해가는 거지.

그렇기에 결론도 늘 논리적이고 어떠한 논문이 근거가 되는 일이 많다. 남이 안 가본 길을 먼저 제시하지는 않지.

그건 비논리적이니까.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육감이다.

척량이 물론 편리하지만, 모든 걸 죄다 의존하게 된다면 결국에는 한계에 부딪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느낌대로 밀고 가야겠어.

“아니. 내 생각대로면 아주 크게 도움이 될 거야. 그러니까 전부 구입.”

이것들을 전부 구입한다고 하면, 789개의 스킬이 한 번에 생기는 것!

그리고 나는 강해진다.

전부 다 해서 1,000따봉 남짓한 값싼 가격.

따봉 아슬아슬하게 쓰던 초창기라면 모를까.

지금 시점에서 그 정도면 충분히 도박하고도 남지.

그리고 그 효과가 즉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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