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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121화 (121/305)
  • 제121화

    [이 근처는 이미 너무 값이 오른 땅이니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저렴한 지역으로 가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게다가, 지금은 화분에 심어도 상관없는 크기입니다만 세계수가 본격적으로 자라게 된다면 결국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때는 지금의 이 자리에서 계속 키울 수 없을 겁니다.]

    흐음… 아예 나만의 지역을 개척하는 셈인가.

    ‘생각해 보면 성광의 농장도 그런 개념이긴 하지.’

    물론 성광은 게이트가 열릴 걸 대비해서인지 농장 동물들이 무슨 몬스터마냥 강했지만 말이지.

    세계수.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기를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나무다.

    그렇게 크게 자라난다면…… 단순히 마당 넓은 집을 구하는 수준으로는 끝나지 않을 수도 있겠어.

    나만의 동네가 만들어지는 셈인가.

    그러면 거기에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까?

    단순히 토지를 샀다 팔아 차익을 보는 걸로는 왠지 부족하지.

    어차피 그런 건 한두 달 내로 될 문제도 아니고, 당장 세계 멸망이 어찌 될지도 모르는데.

    흐음.

    “그나저나 세계수는 그렇다 치고, 지금 내 따봉은 얼마?”

    [꾸준히 증가 추세입니다. 누적 132만 따봉입니다.]

    임프 던전은 녹화만 해 두고 아직 올리지는 않았다.

    히든 던전 정보 자체가 큰돈이 된다.

    입장 방법은 편집을 해서 올리고, 히든 던전 정보는 경매로 내놓을 생각이다.

    그나저나 하루 쉬었어도 따봉이 계속 누적되는 걸 보면, 인기가 확 오르긴 했네.

    [구독자 수는 이제 60만 2천 명이 넘었습니다.]

    “진짜 격세지감이야…. 그 헌터는 구독자가 지금 얼마지?”

    저번에 뜬금없이 내 방송에 나타났던 ‘그 헌터’.

    [1억 5천만 명입니다.]

    무시무시하네…….

    ‘그 헌터’가 따봉 능력을 얻었으면 이미 진즉에 세계를 구하고도 남는 거 아닐까?

    기묘한 동경심이 들면서도, 왜 저런 놈이 이 직업을 못 가진 걸까… 아깝기도 했다.

    [주군께서 신경 쓰시는 것도 이해가 가지만 이런 건 결국 운이죠.]

    아아, 모르겠다.

    근데 어차피 그 인간은 도네를 받는 것도 광고를 받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어찌 보면 영상을 올리는 건 자기 만족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시청자에게 따봉 하나 더 얻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말이지.’

    [반대로 김초코 헌터 같은 분도 있고요.]

    그래. 그 사람한테는 내가 그렇게 보이겠지.

    생각해 보면 은근히 이런 건 연예계랑 비슷한 면이 있단 말이지.

    ‘그 헌터’는 던전 들어가 있느라 아직 답장 안 왔지?

    [네. 어느 던전에 들어갔는지는 비밀입니다.]

    이번에도 누구도 깨지 못한 그런 던전에 갔겠지.

    [질투는 안 하십니까?]

    그것도 비슷해야 하는 거지, 나 같은 논병아리가 뭐에 질투를 해?

    그냥 내 일을 우선으로 하는 거지.

    [……그게 주군의 장점 같습니다.]

    음?

    척량은 생각에 잠기다 이렇게 말했다.

    [어떤 논문에 의하면 각성은 운도 있지만, 성격 영향도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탱커는 성직에 몸담은 분들이 많이 되고, 반대로 우울증이 있었던 사람들은 정령사, 네크로멘서, 소환사 직군이 많이 뜨기도 하고요. 어쩌면 주군께서 그런 능력을 갖게 된 건 그 성격 때문인지도 모르죠.]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어쩌면.

    자… 그러면 [요정의 눈물]을 찾으러 가보실까?

    [안 기다리시고요?]

    인간적으로 일 년을 어떻게 기다리니. 당장 올해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그 전에, 한 가지 다른 일도 처리하려고.

    [주군의 아우님 일이군요.]

    그래. 정비가. 그녀를 만나 봐야겠어.

    기감으로 슬쩍 확인해 보니, 무척이 녀석은 진짜로 잠들었다.

    던전에서 마력을 그렇게 많이 쏟아부었으니 죽을 만큼 힘들었겠지.

    시간을 확인해 보니 현재 시각은 저녁 9시.

    마침 착한 어른은 잘 시간이군.

    그러면 이 나쁜 어른은 움직여 볼까.

    폰을 들고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정비가 대표이사님. 야밤에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일이어서요.

    그러자 번개처럼 답신이 온다.

    -웬일이야? 우리가 이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잖아? 대충 연구실은 빌려줘도 연락은 업무 시간 내에만 하는 사이 아니었어?

    -죄송합니다.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뭔데?

    -무척이 몸. 정비가 대표이사님이 개조하신 것 맞죠?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메시지를 보내고, 잠시 조용해졌다.

    [뭔가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그렇겠지.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지척 씨, 상당히 유능하네. 그걸 어떻게 알았지?

    -무공 사용자의 기감은 신체 내부의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죠.

    -무공에 그런 기능도 있었어? 관련 지식을 내가 너무 등한시했네. 응. 인정. 내 실수야. 그러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쪽으로 지금 찾아뵈어도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메시지로 나눌 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거든요.

    -좋아. 저번에 빌려준 공방으로 와.

    -예. 곧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부아아아아앙!

    바람을 가르며 내달렸다.

    던전에 갈 때야 회사에서 내주는 전용 차량이 있지만, 시내를 돌아다닐 때에는 이걸 더 많이 쓴다.

    모노 바이크G. 마력으로 풀충전하면 바이크면서 속도는 무려 시속 600km도 나올 수 있는 몬스터 머신.

    서울에서야 이 속도로 달릴 일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속도는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물건이다.

    때문에 순식간에 정비가의 공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방이라고 해도 공장이 아니며, 정비 중공업의 본사 빌딩이다.

    주차장에 주차하고서, 예전처럼 간부 전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내려서 통로를 걷고, 이내 예전에 빌렸던 공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서 와, 엄지척 씨. 오랜만은 아니지? 공방 빌린 지 일주일도 안 됐으니까.”

    공방의 문이 열리자, 깔끔한 정장 슈트를 입은 정비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 오랜만은 아니죠.”

    “서로 인사치레는 접어 두자고.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온 거야?”

    “정비가 대표이사님이 무척이 몸을 강제로 개조하신 건지 아닌지 알아야겠습니다.”

    그녀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그녀가 그대로 옆의 책상을 치면서 웃기 시작했다.

    “아핱흐핰핰하하하하!”

    한참을 웃더니 눈물을 닦는다.

    “아. 미안미안. 이렇게 웃어 보는 건 오랜만이야.”

    기다렸다. 조용히. 그냥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예전부터 지켜본 거지만, 대단한 형제애(兄弟愛)야. 우리 집안은 그런 게 없어서 조금 부러울지도?”

    “…….”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겠지.

    그저 바라볼 뿐.

    “이야~ 우리 지척 씨. 갓튜브 때와는 완전 분위기가 다른데?”

    그녀는 손가락을 튕긴다.

    기계 팔이 벽면에서 두 개 나타난다. 그 기계 팔의 손에는 찻잔이 각각 들려져 있었다.

    “마셔. 요새 연구하고 있는 허브차야. 마력을 영구적으로 늘려 주는 효과가 아주 조금 있어. 무공에 쓰이는 영약을 연구해서 만들고 있는 거지.”

    그녀는 찻잔에 손가락을 건다.

    “말해 두자면, 제안은 내가 했지만 강압적으로 한 건 아니야~ 기록사라는 직업은 분명 강력해 보이지만, 극단적으로 말하면 결국 한계가 있어. 서포트 능력이니까. 그건 너도 짐작하지?”

    “…….”

    “그래서 네 동생이 원한 거야. ‘더 강하게’ 해 달라고 하더라. ‘무리’한 방법이나 수단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무리한 방법이나 수단…입니까? 어떤 종류인지 말씀해 주시죠.”

    찻잔에서는 깊은 향이 나왔다.

    365일 술이나 빨 것 같은 이미지와는 정반대인 고아한 향의 차였다.

    그런 걸 기계 팔로 타고 있으니 보통 정신이 나간 게 아니지.

    “원래라면 기밀로 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팬으로서 가르쳐 줄 수밖에. 아, 이건 진담이다?”

    그리 말하며 각설탕을 차에 퐁당 탔다.

    “전혀 안 믿는 모양이네~ 서운해라.”

    “……답을 해주십시오.”

    “너도 나를 마녀라고 생각하는구나. 하긴. 다들 그렇지.”

    그녀는 쓰게 웃는다.

    “네가 믿을지 안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네 동생에게 있어서만큼은 순수하게 선의로 대했어. 물론 네 동생도 믿지는 않지. 큭큭큭.”

    그녀는 그리 말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뭐, 내가 봐도 나는 꽤 정신 나간 게 맞긴 하니까.’라고.

    왜일까.

    분명 세상을 뒤에서 지배하는 악마이고.

    주식쟁이들의 애증의 상대이며.

    탈법과 범법을 밥 먹듯이 하며 사는 인간인데 묘한 고독감이 느껴지는 것은.

    그녀는 표정을 바꿔 다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원리만 말하자면 뼈만 손을 댔어. 그러니까, 네 동생의 뼈는 최첨단 마법공학의 정수 같은 거지.”

    그녀가 손을 다시 튕긴다. 그러자 그녀의 뒤로 큰 화면이 생겨났다.

    그것은 마공학으로 이루어진 골격이었다.

    “마나반응성 형상기억합금 인공골격. 길지? 줄여서 MS라고 부르고 있어. 마나와 스컬의 앞 글자만 따왔지. 기계와 마법의 환상의 컬래버레이션. 스스로 마력을 ‘생성’하고, 언제나 육체를 최상의 상태로 ‘회복’시키며, 몇 가지 ‘스킬’까지 가지고 있는 뼈지.”

    “부작용은 무엇입니까?”

    “뭐어~ 사소한 부작용이 있긴 해.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생성되는 마력을 견디지 못하게 된다면 자칫 오염되거나 변이될 수 있어. 그러니까 하이 리스크, 초하이 리턴인 셈이지.”

    “그딴 걸 잘도…….”

    그녀가 쓰게 웃었다.

    “내 이름에 걸고 말할게. 나도 하기 싫었어. 이렇게 극단적인 것까지 수술해 줄 생각은 나도 없었지. 하지만 우긴 건 네 동생이었어. 형을 지켜야 한다고.”

    정비가의 안광에서 흡사 천사의 고리 같은 빛이 밀려왔다.

    “못 믿겠어?”

    “…….”

    “못 믿겠다면 그냥 나를 원수로 생각해도 돼. 익숙하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비가는 왜 저렇게 스스로 악역을 자처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좋게 말을 할 수도 있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도발하듯 말한다.

    이래서야 마치.

    ‘사람들이 생각하는 빌런 그 자체잖아?’

    문득 탱커 정지벽이 왜 그녀를 욕하면서도 내심 신경 쓰는지 알 것 같았다.

    좋아. 일단 양자택일 스킬인 [사소한 직감]을 써보자.

    ‘정비가의 말에 거짓은 없을까?’

    “…….”

    놀랍게도.

    사실이라는 직감이 밀려온다.

    정말로 그녀는 내 팬이고, 동생에게 선의로 시술을 했다는 건가.

    ‘허허허허, 내가 쓴 스킬이지만 믿기지가 않네.’

    정비가는 내가 오히려 가만히 있자 이상한지 살짝 갸우뚱했다.

    “따귀라도 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믿기긴 해서요.”

    띠링-

    -마스터, 정비가가 당신의 신뢰에 살짝 당황합니다.

    -1 따봉을 받았습니다.

    원수로 생각해도 된다니. 익숙하다니.

    이상한 인간이라는 생각밖에 안 드는데, 이거.

    그래. 제정신이었으면 ‘마스터’.

    그것도 ‘메카닉 마스터’에 도달하지 않았겠지.

    미친 소리 같지만 이 파티의 제왕이자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사실은 정작 신뢰 관계에는 서툰 외골수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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