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120화 (120/305)
  • 제120화

    무척이가 말했다.

    “너는 걱정하지 말고 공부만 해. 그렇게 말했어.”

    뭐, 특별할 건 없는 말이었네.

    드라마에서도 수십, 수백 번은 나왔을 그럴 말.

    그럴 다짐.

    “그게 왜? 너 그래서 수능도 대박 나고 대학교 좋은 곳 들어가고, 승승장구하고 있었잖아.”

    “응. 그래. 형 목숨 팔아서 갔지. 그나마도 중간에 학비 한번 끊겨서 휴학도 했고.”

    “그건 미안하게 됐다.”

    “아니…. 형이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머리를 벅벅 긁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그러고 살고 싶지 않다고. 그냥 형과 같이 돈도 벌 수 있잖아! 위험할 때 한 번 정도는 내가 막아줄 수 있잖아? 형은 무공 사용자니까, 나는 원거리에서 저격도 가능하고!”

    “그게 네가 개조한 거랑 무슨 상관이냐.”

    녀석은 고민에 빠지다가 결국 속내를 털어놓는다.

    “……형이 너무 훌쩍 가버리니까, 그대로 나중에 영안실에서 볼 것 같아서 그렇다고. 그게 다야.”

    이윽고 한숨을 깊게 몰아쉰다.

    “어쨌든, 고민 많이 했고. 세계 3대 메카닉 마스터에게 강화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

    “…너는 무슨.”

    “나도 같이 형이랑 돈 벌고 싶다고! 그게 죄야?”

    녀석은 그렇게만 말하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쾅!

    문이 세게 닫힌다.

    이 새끼도 화가 나긴 했군.

    평소라면 문 곱게 닫으라고, 형한테 이게 무슨 버르장머리냐고 화를 내겠지만 왜인지 말문이 턱 막힌다.

    ‘나랑 같이 돈 벌고 싶다니….’

    * * *

    돈이라는 게 참 사람 비참하게 만든다.

    있을 때는 모르다가 흙수저가 되었을 때 알게 되는 게 돈이란 놈이다.

    어렸을 적.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몬스터 웨이브 때 게이트가 열리고 출퇴근길을 덮쳤다.

    그때 많이들 죽었지.

    유가족들 입장에서는 뭐라도 하고 싶어도 시청도 박살이 나고, 공무원도 사망하고.

    수많은 데이터를 저장해놨던 서버실은 날아갔다.

    웃기는 건 결국 문서로 된 정보. 그중에도 불에 안 탄 것들만이 이 사람이 복지를 받을 수 있음을 나타냈다는 것.

    개판이 된 세상 속에서.

    -너는 공부만 생각해. 나머지는 이 형이 알아서 할게. 알았지?

    어린 무척이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저 정신을 차려보니 화장실이 밖에 있는 집에서 살다가, 나중에는 화장실도 없어서 공원까지 내려가야 하는 집에서 살게 되고.

    법원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봤지만 별 소득도 없었고.

    형이 월급 대신 쌀을 들고 와서 그걸로 밥을 지어 먹었다는 것 정도.

    그래도 살 만했다.

    그때는 세상이 미쳐 있었으니까.

    판자촌에서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게 형제만이 아니었다.

    괴로움이란 결국 정상 인식에서 나온다.

    다 같이 굶고, 다 똑같이 겨울이 힘들고, 옆집이나 뒷집에서 연탄으로 사람이 죽고.

    그냥 그게 당연하던 시기에는 그게 힘들다는 생각도 안 든다.

    그러다 좋은 집에 이사 갔다.

    여전히 작았지만 집 안에 화장실이 있었고, 온수 보일러가 돌아갔으니까.

    -아. 이거? 칼날에 조금 베인 거야. 걱정 마, 걱정 마.

    -손가락 잘린 게 뭐 대수라고. 걱정 마. 요새 직원 복지가 좋아서, 힐러들이 치료도 해 주거든. 자, 봐 봐. 이미 붙었다?

    -미안미안. 오늘 냄새가 많이 나지? 회사에서 씻고 와도 이런다니까.

    걱정 마. 괜찮아. 너는 신경 쓰지 마.

    그게 지층이 되어 쌓이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인터넷은 절대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

    주변이 똑같아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사실은 ‘흙수저’, ‘공기 수저’였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니까.

    너스타만 켜도 래퍼가 신은 신발이 루이비통이니, 한정 디올 에어맥스니 하고.

    애들은 꽤 넓은 집에서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새로운 영어 교육’을 광고하고 있고.

    나쁜 애도 교육 전문가를 부르면 교정이 된다 하고.

    영어를 익히기 위해 초등학교 때도 유학 보내는 세상에서.

    세계사를 익히기 위해서 진짜로 유럽도 보내주던 세상에서.

    무척이는 각성을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니 공부밖에 없더라.

    그 행운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사실 진짜 그랬긴 하지.

    마지막까지 그는 각성자가 되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형도… 그때까지는 그랬고.

    -와! 역시 내 동생! 진짜 방송이랑 문제집만으로 이걸 하네. 역시 머리 좋아. 암! 나랑은 다르지.

    -이여~ 나중에는 동생 덕 좀 볼 수 있는 거야?

    우리나라 최고 대학 법대 합격.

    의대는 요즘 각성자 힐러와 연금술사들이 제작하는 포션이 있다 보니 그쪽과 경쟁을 하고 있는 판국.

    그 상황에서 법대가 더 먹어주는 이상한 세상이 되었다.

    법의 기능이 개판이 된 헌터 세상에서 부익부빈익빈은 커져만 갔고, 부자님들은 탈법과 불법을 저지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변호사는 돈을 참 많이 버는 직종이 되었다.

    변호사는 언제나 부족하다 보니 법대, 그것도 상위 법대에 합격할 수만 있으면 웬만하면 로스쿨까지 프리패스를 하고.

    그것만으로도 세계는 달라진다.

    헌터 세상이 되니 더욱 그랬다.

    졸업까지 잘 해내고 나면 대출이 더 쉬워질 거고, 뭔가 그래도 할 수 있겠지.

    물론 이런다고 금수저 애들한테 비비지 못한다는 건 안다.

    상위 로펌에 들어가려면 결국 부모 직업 따라가야 하는 세상이니까.

    그동안 형은 손가락이 한번 잘렸다가 병원에 달려가서 붙이고.

    그다음 발가락이 잘렸다가 다시 병원 가서 붙였다.

    그래서 엄지발톱은 여전히 안 난다.

    3D업이 왜 3D업이겠나.

    형은 발톱도 없는 발에 양말을 씌우고는 너는 신경 쓰지 말라고 출근했다.

    그리고 더 벌기 위해 기숙사 신청을 했다.

    더 많은 던전을 가기 위해서.

    기숙사 신청은 받아졌다.

    그때 형이 했던 말.

    ‘괜찮아.’

    참 엿 같은 말.

    손가락 날리고 발가락 날렸을 때도 했던 말.

    “아. 똑같이 되돌려 준다는 거 까먹었다.”

    엄무척은 침대에 누워서 방금 전의 대화를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

    “내일 해야지…….”

    수마가 그를 감싼다.

    괜찮아. 걱정?

    에이,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똑같이 돌려주면 느끼는 바가 있겠지.’

    * * *

    ‘뭐? 같이 돈 벌고 싶어?’

    어이가 없네.

    나름대로 부족하지 않게 잘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각성하고 나니 돈 귀신이 되어 돌아왔네.

    ‘어휴.’

    마음이야 복잡하지.

    이놈은 원래라면 각성할 일이 없는 놈 아닌가.

    그런 놈이 형이 각성했다고 저도 따라서 각성석 먹고 그리되었으니.

    돈? 그래. 변호사보다 A급 각성자가 훨씬 많이 벌겠지.

    하지만 몸뚱이 개조하라는 소리는 아무도 안 했다.

    ‘아… 정비가… 이 인간은…….’

    결국 정리하자면 강제로 뭔가를 한 적은 없고. 이놈이 돈을 더 벌겠다고 그 짓을 벌였다는 건데.

    어이고…….

    이게 진짜 문신처럼 피부 좀 물들이고 마는 거면 좋겠다.

    [주군! 최근 논문에 따르면 인체 개조를 한 헌터가 그렇지 않은 헌터에 비해 생존률이 12.3%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고. 메카닉 마스터에게 받는 개조를 ‘조율’이라 부르는데 그렇게 조율받은 헌터들은 세계적으로…….]

    척량아.

    너는 위로를 왜 그렇게 하니.

    아무튼 이미 벌어진 일이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봐야겠지.

    그래서 일단 남는 시간에 할 일을 했다.

    [세계수의 아주 작은 가지]를 불경스럽게도 동네 2,890원짜리 화분에 꽂아 넣어버리고 [최하급 악마의 심장]을 바친 것.

    그러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세계수를 키워 보자!]

    난이도 : ???

    세계수의 아주 작은 가지에 영양제를 공급한 당신!

    세계수의 아주 작은 가지는 배가 고프다!

    만복도를 올려 뿌리를 성장시켜 보자!

    보상 : 세계수의 나뭇잎.

    추가 보상 : ???

    *엘프의 성장 촉진제(만족)

    *최하급 악마의 심장(만족)

    *요정의 눈물(불만족)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여, 뿌리를 내립니다.

    *충분한 시간과 성장 촉진제만 있다면, 요정의 눈물이 없어도 개화합니다.

    *개화시간 : 8,760시간

    나뭇가지에 뿌리가 돋아나기 시작하더니 화분에 안착했다.

    “이거 이제는 뽑아서 들고 다닐 수는 없는 것 같은데? 던전에서 마력 회복하는 데 참 좋았는데 아쉽게 됐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주군. 요정의 눈물이 없더라도 개화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게. 하지만 8,760시간이면… 이야. 1년이잖아?

    그거 기다리느니 요정 찾으러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한국인은 약간, 좀 그래. 1년을 어느 세월에 기다려?

    [하지만 주군. 요정을 웃게 하거나 슬프게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슬픈 이야기가, 그들에게는 웃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슈욱.

    “어?”

    척량과 ‘요정의 눈물은 어떻게 할까…….’ 하고 이야기 나누는 그 잠깐 사이.

    뿌리를 내린 세계수의 아주 작은 가지에 변화가 일어났다.

    향긋한 풀 내음을 분무기처럼 슉슉 뿜기 시작한 것. 그리고 생겨나는 메시지.

    -[세계수의 아주 작은 가지]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세계수의 아주 작은 가지]가 [미약하고 불완전한 어린 세계수]로 진화합니다.

    -[미약하고 불완전한 어린 세계수]가 엄지척을 정원사로 인식합니다.

    -100미터 범위를 ‘성지(聖地)’로 지정합니다.

    -성지 내에서 마나 회복력이 150% 증가합니다.

    -성지 내에서 하급 저주를 상시 해제합니다.

    -성지 내에서 던전 출현이 금지됩니다.

    -타이틀 [어린 세계수의 정원사]를 얻었습니다.

    [어린 세계수의 정원사]

    등급 : 레전드

    어린 세계수를 가꿔낸 정원사에게 주어지는 칭호.

    훌륭한 어른 세계수로 자라게 해 보자!

    *중립 성향 식물계 몬스터가 적대하지 않는다.

    *식물계 지성체와 대화 가능.

    *부정한 힘에 저항한다.

    와…….

    말이 안 나올 정도다. 던전이 나오지 않는다고?

    그… 결계석과 같은 효과라는 거야, 이게?

    [다릅니다, 주군. 결계석보다 상위의 힘입니다. 왜냐하면 결계석의 설명 문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보시죠.]

    척량이 즉시 결계석에 대한 정보를 나에게 보여 주었다.

    [결계석]

    등급 : B

    분류 : 장식물 (아티팩트)

    결계를 가동하는 마법적인 조각.

    *반경 1km 내의 지역에 던전의 출현을 방해하고, 저해한다.

    결계석은 방해하고, 저해한다는 단어구나. 그런데 내가 가진 어린 세계수는 출현이 금지된다는 표현이다.

    그러네.

    완전 다르네.

    “즉… 내 집을 기준으로 100미터는 안전지대라는 거잖아? 이야……. 이거 엄청나네.”

    [정확히는 이 어린 세계수를 중심으로 100미터입니다. 물론 100미터 정도로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만, 이대로 제대로 성장시키면 적어도 수 킬로미터를 커버할 수 있을 겁니다.]

    그거만 해도 엄청나겠는걸? 땅 부자 되겠다…….

    근처 땅을 사 둬야 하나?

    “지금 상태면 정 필요할 때는 그림자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을 거 같은데, 완전히 다 자라면 아예 옮기는 건 무리겠는걸?”

    [네. 하지만 지금 보상을 봤을 때 다음 단계는 엄청난 혜택이 있을 걸로 보입니다.]

    역시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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