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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119화 (119/305)
  • 제119화

    안마 스킬.

    이거는 처음에 얻은 스킬이기도 하지만, 이런 때에도 요긴하다.

    그리고 이게 내가 그냥 스킬만 쓰는 거랑, 조금 배워서 쓰는 게 많이 다르더라고.

    -안마 스킬을 발동합니다.

    소부혈(少府穴)을 누른다.

    소부혈은 넷째와 다섯째 손가락 사이의 손바닥에 위치한 혈도다.

    손허리뼈라고 부르는 부위의 움푹 파인 위치에 있는데, 주먹을 쥘 때 새끼손가락 끝이 닿는 곳이기도 하다.

    심장 뛰는 것을 다스리는 데 좋고, 정신을 안정시켜서 불안과 초조함 등의 스트레스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끄……. 이거 아픈데?”

    “지금 누른 데가 심장 안정, 스트레스 완화 혈이야. 그만큼 네 녀석이 스트레스가 좀 심하다는 거지. 그래도 이게 스킬 효과가 들어가니까 효과가 좋지?”

    “뭔가…….”

    “뭔가 뭐?”

    “나른해지고 졸려지기는 하네.”

    “팔까지 내밀어 봐라.”

    녀석이 팔을 더 내민다. 그대로 잡고 곡지혈을 눌러 주었다.

    “으악!”

    비명을 지르며 녀석이 펄쩍 뛴다.

    그럴 만하다.

    여기가 뒤지게 아픈 혈이거든.

    곡지혈은 팔을 구부렸을 때 팔꿈치 안쪽에 위치한 혈도인데, 이 혈도를 풀어 주는 것만으로도 여러 가지 효능을 볼 수 있다.

    소종지통(消肿止痛 붓기를 빼고 통증을 완화시킨다), 조화기혈(调和气血 기혈을 조화롭게 다듬는다) 등의 효과가 있다고 하며 뇌졸중을 예방하고, 소화를 촉진하며 전신의 피로 회복에도 크게 관여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무안단물 같은 사이비스러운 혈도이지만, 이게 내 안마 스킬과 만나면 정말 기적과도 같은 효과를 지녔다.

    바로 이렇게.

    “어…. 어어?”

    무척이가 그대로 소파 위로 늘어진다.

    “이거. 뭐야? 형. 왜 이렇게 졸려?”

    “네가 피로 덩어리라 그런 거란다. 자. 여기도 눌러 주면…….”

    그대로 녀석의 목덜미로 손을 올려서 풍지혈(风池穴)을 눌렀다.

    뒤통수 아래. 목과 이어지는 부분의 풍지혈을 제대로 풀어 주면 아주 그냥 잠의 나라로 훅 가 버리거든요.

    “레알? 나 피로 회복 스킬 있어서 그럴 리가 없…….”

    녀석은 몇 번 꿈벅꿈벅하더니, 그대로 눈을 스르르 감고 잠이 들었다.

    “잠들었군.”

    [예. 주군. 잠들었군요. 무공의 경지가 점점 높아지시는 듯합니다.]

    안마 스킬로 녀석의 피로를 확 풀어 버리면서…….

    무공의 하나. 점혈을 썼다.

    수혈(睡穴)이라고 해서 잠이 오게 만드는 혈도에 내공을 슬쩍 밀어 넣는 것이다.

    무공까지 스킬과 함께 써서 이 녀석은 혈도 짚이는 줄도 모르고 잠이 들어 버린 것.

    이유?

    조사를 하려고.

    던전에서부터 뭔가 이상해서 하려고는 했는데.

    안마하면서 재미있는 걸 발견했거든.

    -개조 인간의 피로를 크게 풀어 주었습니다!

    -숙련 경험치 보너스!

    개조 인간이라, 보통 이런 단어 나오는 영화치고 디스토피아가 아닌 게 없는데 말이지.

    어디 볼까.

    “관찰의 눈.”

    [엄무척]

    성별 : 남성

    레벨 : 36

    직업 : 기록사 / 개조 인간

    갓튜브 소셜 스타 엄지척의 동생. 기록사의 스킬과 과학 계열 능력자의 스킬을 융합해 육체를 업그레이드했다.

    개조율 22%.

    “허어?”

    이 새끼…….

    뭐가 어드레?

    나 안 보는 사이에, 육체 개조를 했다고라…….

    어디서? 아니다.

    곧바로 내 뇌는 답을 내렸고, 척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답은 한 명뿐이니까요.]

    누구겠어? 정비가 씨겠죠?

    그러면.

    강압적으로 했을까?

    으득.

    만약 강압적으로 했다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테다.

    만약 내 동생에게 함부로 그 짓을 한 거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주군. 주군!]

    척량이 내가 발출한 살기에 버거워했다.

    방송에서도 웃으면서 싸우고, 오히려 시청자가 보기 좋게 살기는 최대한 감추며 전투해 나갔으니까.

    후우, 그래. 척량이 무슨 죄냐.

    하지만 동생이 이 꼴이 되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있겠어.

    [……순간 분위기가 바뀌셔서 놀랐습니다.]

    그래. 척량아.

    비록 이놈이 나 대신 던전 갈아 주는 우직한 소 새끼지만, 내 소 새끼야.

    내가 용돈 줘서 키운 놈에 손을 댔는데. 그걸 누가 참냐.

    개조 인간이라니?

    예전에 내 동생 건드린 외국 놈도 그래서 뭉개 버렸었다고?

    그놈 지금 매장당하고 던전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라.

    소속사에 팽당하고 서포트를 잃은 데다가 러시아는 한국보다 헌터 징용이 빡세요.

    정하 그룹 뒷배도 날라갔겠다, 예전에 해온 업보들까지 굴비 엮여서 본국에 송환.

    굴라그 던전을 전전하다 사망했지.

    그 비참한 죽음을 동정했냐고?

    아니, 나는 내 가족 건드리는 건 못 참거든.

    [네. 주군이라면 놈을 매장시키려고 작정했을 때 이미 그것까지 그려 놓으셨겠죠.]

    세상에는 말이다.

    죽음보다 무서운 게 있어요.

    죽으면 오히려 편해. 유가족만 좀 애도하다 끝나고.

    아무리 개새끼라도 고인이 되면 그래도 그것도 추억이 돼서 미화되기 마련이야.

    하지만 말이다. 척량아.

    지옥은 살아 있을 때 오거든?

    정비가가 이상하게 나한테 잘해 준다고는 해도 동생을 강제로 건드린 거면 각오해야지.

    [일단 침착하시고! 어디가 어떻게 개조된 것인지 알아보시죠.]

    다시 살기가 새어나왔나.

    이건 나도 조절이 어렵군.

    후우, 그러면…….

    손을 들어 녀석의 명치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천천히, 세밀하게 기(氣)를 불어 넣는다.

    진기도인(眞氣導引)은, 무공을 익히고 경지가 상승하게 되면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기술 중 하나.

    내 몸 안의 기운의 흐름을 조절하는 것으로, 이것을 잘 응용하면 타인의 몸 안에도 밀어 넣어 그 안에서 기가 퍼져 나가게 할 수 있다.

    이게 기감(氣感)하고 합쳐지면, 상대의 몸 내부를 파악 가능한 것이다.

    “뼈네.”

    [뼈입니까?]

    “그래. 뼈가 달라. 그 개조라는 게… 완전히 뼈만 개조한 거야. 이 느낌은 꼭 무슨 티타늄 같은 재질…인 데다가, 기계 장치 같은 느낌도 느껴져. 이건… 역시 정비가. 그녀가 맞아.”

    모노 바이크 조립하면서 티타늄 합금에 기를 넣을 기회가 있었는데 느낌이 비슷하다.

    강도만 보면 일반 티타늄 합금보다 훨씬 단단하고.

    [그녀가 아니라면 이런 수준의 인체 개조는 불가능할 테니까요. 그래도 내부 장기나 근육 같은 것이 기계화된 것은 아니라서 다행이군요.]

    어이가 없네. 뼈가 티타늄 합금이라니.

    거기다가 마력이 통하는 속도가 보통 사람의 수십 배.

    무협으로 치면 중단전까지 타통된 거다.

    “하아… 이 새끼 진짜…….”

    이 미친놈을 어쩌나?

    “일단 깨워서 물어 봐야지.”

    무슨 생각으로 몸의 뼈를 수상쩍은 마도 공학 기계 장치로 바꾼 건지. 그리고 정비가의 강압이 있었는지. 알아야겠다.

    * * *

    “아~ 개운하다~ 형. 이거 나중에 또 부탁해~ 진짜 너무 좋네.”

    안마로 피로를 완전히 풀어준 다음. 혈도를 짚어서 깨우고 나서 일어난 무척이 녀석은 싱글벙글한 표정이다.

    이 새끼. 그 얼굴이 어떻게 변하나 보자고.

    “그래? 자주 해 주는 게 뭐가 어렵냐. 우리 동생. 뼈다귀도 형 몰래 기계로 바꾸고, 이 형한테는 말도 안 하고 개조 인간이 되는 녀석인데. 얼마나 예쁘겠어? 그럼요. 또 해 줘야죠. 우리 동생. 그렇지?”

    네 뼈가 왜 티타늄 합금 같은 머시기인지 이 형은 아아주 궁금해요.

    내 말에 놈이 흠칫 놀란다.

    “어떻게 알았어?”

    “나 무공 익혔어, 새꺄. 기감 모르냐? 이거면 네 몸 안에 뭔 일이 있는지 아주 속속들이 알 수 있거든요.”

    “아, 씁. 내가 무공 익혀 봤나.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성격도 거칠어졌고. 말투도 좀 날티가 나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티타늄 통뼈 덕이니?”

    “아니… 하. 그건 스킬 영향.”

    이놈 시키.

    결국 대가리 커졌다고 지 맘대로 하고 다니는 건가.

    던전이 열리고 이능력이 생기고, 이 세상에 없던 소재들이 생기는 것에 따라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라는 게 크게 발전하기는 했지.

    처음에는 사람 손과 다름없는 의수를 만들 수 있던 게, 이제는 사람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의 의수와 의족이 제작되기 시작했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레이저가 나가는 눈이나, 개보다 뛰어난 코 같은 것들까지.

    그러다 보니 ‘돈 많은’ 일반인, 또는 강해지는 데 ‘미친’ 헌터들 중에는 신체 업그레이드를 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참고로 보험 안 된다.

    우리나라는 신체발부수지부모라는 K-유교.

    플러스로 거기까지 가버리면 묵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666표를 받는 것이고 너무 개조하면 천국 못 간다고 하는 K-사이비가 함께 결합돼서.

    미친 소리 같지만 야악간 문신 취급을 받고 있어요.

    국회의원은 하면 안 되는데, 연예인은 한달까?

    방송에 그런 기계적인 외형은 안 되서 살색 테이프를 붙이거나 옷으로 가린달까?

    그래 놓고 인스타에 다이아가 잔뜩 발린 롤렉스랑 같이 외골격 팔을 찍어서 올리는 그런 느낌.

    래퍼들이 이상하게 많이 한다.

    분명 걔들도 똑같이 급식 먹고 자랐을 텐데 포스는 흑인 갱스터다.

    -나는 차가운 머신, 내 팔은 10만 마력, 각성자는 keep out. 내 마이크는 레이저건!

    -mother가 끓여준 김치찌개. 하지만 내 혀는 cold machine. 이제는 아무도 없지.

    -홀로 살아가는 cold machine.

    왜 이딴 구린 가사가 1위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가게마다 꽤 오래 들렸다.

    아무튼 장애를 입은 것도 아닌데 힙하다는 이유로 자기 팔을 잘라다 기계를 붙이고, 그걸로 랩팔이를 하는 가수부터.

    단순히 조금 더 강해지려고 개조하는 헌터들도 소수.

    랭킹 10위의 궁수는 눈을 기계 눈으로 바꾸고, 스킬을 이용해서 수 킬로미터 너머에서 초고속 저격이 가능하다고도 하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 나름의 각오와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고.

    아직 나는 신체발부수지부모의 K-유교가 있는 인간이라 용납이 잘 안 된다.

    이놈은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대체?

    “말해 봐라. 왜 그랬냐?”

    “꼭 말해야 해?”

    “그럼. 말 안 하고 그냥 지나가려고?”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자, 녀석이 한숨을 내쉬며 오만상을 다 얼굴에 담아서 찌푸린다.

    이윽고 시선을 돌리고 한참 창밖을 본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걸까, 아니면 망설이는 걸까.

    “형, 부모님 돌아가신 날. 기억해?”

    “기억하지. 그게 왜?”

    “그때 형이 뭐라고 했어?”

    그 질문에 말문이 턱 막힌다.

    “뭐?”

    “그때 형이 뭐라고 했냐고.”

    “어…….”

    기억 잘 안 난다.

    그때는 장례를 치르고 아직 친척이 보험금이랑 집 뺏어가기 전이기도 했고.

    게이트가 여기저기 한꺼번에 열리면서 세상이 혼란했고.

    ……장례식 하는 데 주어진 시간이 세 시간이었던 건 기억나네.

    예식장은 길일에 이렇게 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하던가.

    장례식도 마찬가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미어터졌던 기억은 났다.

    향냄새가 엄청났다.

    하지만 향이라도 피우지 않으면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냄새가 사방에서 났으니까.

    마치 대형 마트 계산대처럼 애도가 찍혀서 나갔다.

    조문객들도 제정신이 아니었지.

    그때 내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기억은 전혀 나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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