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8화
사방의 문에서 뿔 달린 고블린 무리가 나타나 소리를 지른다.
홉 고블린이 넷에, 그냥 고블린은 끝도 없이 튀어나오고 있다.
전부 무장을 갖추었고, 기세도 흉흉하다.
물론 놈들이 나타나서 근접하기 전에 무척이는 행동을 개시했다.
“속사! 가속!”
두 개의 단어가 녀석에게 스며든다. 그러자 무시무시한 속도로 두 개의 쌍권총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이미 권총의 개념을 초월해서, 기관포가 된 모습.
순식간에 고블린들이 구멍이 난 채로 쓰러져 버렸지만, 홉 고블린들은 몸에서 불길을 일으켜 저항하며 돌진해 왔다.
“야생의 고함! 날 봐라아아아!”
두 개의 쌍검을 꺼내들고, 동시에 어그로 스킬을 발동. 그러자 놈들이 분노에 찬 눈으로 나를 향해 달려온다.
그사이에도 무척이의 총탄이 녀석들의 몸을 두들겼지만, 기묘한 불꽃으로 보호되는 녀석들은 갑옷이 깨지고 피투성이가 되기는 했어도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홉 고블린이 두툼한 대도를 나에게 휘두른다.
빠르고, 힘 있는 일격이지만.
무공을 익힌 몸으로서 어설프다고 말하고 싶었다.
야. 칼 그렇게 쓰는 거 아니다.
캉!
손에 쥔 쌍검 중 흑검으로 내리찍어 오는 검의 옆면을 때린다.
칼의 궤도가 수정되며 옆으로 떨어져 내리고, 그사이에 나는 백검으로 녀석의 목을 부드럽게 찔렀다.
검기가 일어난 검은 녀석의 목을 관통. 그러고서 영활한 뱀처럼 빠르게 회수되었다.
-임프가 당신의 일격에 크게 놀랍니다.
-1 따봉을 받았습니다!
드디어 임프쯤 되니까 이렇게 따봉이 오는구먼.
너무 저렙이거나 지능이 낮으면 적이 따봉을 안 주더라고.
한 놈을 그렇게 처리하고 나서, 두 번째 홉 고블린을 향해 다가갔다.
녀석은 두툼한 전쟁 망치를 양손에 든 놈이었는데, 스킬을 쓴 듯 망치가 붉은빛을 번쩍인다.
녀석도 불꽃을 두르고, 전신에 피를 흘려대고 있었지만 투지는 꺾이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러나 역시 이 녀석도 무술의 무 자도 모르는 모양.
그냥 대놓고 망치를 내려찍기에, 건곤보(乾坤步)로 슬쩍 피해냈다.
쾅!
망치가 땅을 찍는다.
야. 그렇게 허술하게 망치를 쓰니까 빈틈이 훤히 보이는 거야.
서걱!
일검에 녀석의 목을 반쯤 베어냈다.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거리는 두 번째 놈을 내버려 두고, 좌우에서 달려드는 두 마리 홉 고블린을 마주한다.
어째 홉 고블린들은 전부 비슷하네. 검술 수련 좀 해라.
힘만 믿고 덤비지 말고.
한 놈은 창. 다른 하나는 칼. 그러나, 역시 이 둘의 공격도 허술하다. 가볍게 피해 내고, 이번에도 목을 반쯤 베어 냈다.
그러고 뒤를 돌아보니.
무척이가 계속 권총 쏘는 것을 멈추고 나를 보고 있는 게 보였다.
고블린의 시체가 사방에 쌓였다.
더는 고블린이 나오지 않는다.
-임프가 당신의 팀플레이에 크게 경악합니다!
-3 따봉을 받았습니다!
“이야… 형, 진짜 강하네. 무슨 영화 보는 줄 알았어.”
“스킬이 전부가 아니니까. 무공 사용자는 특히 그래. 괜히 헌터 킬러라는 소리 듣는 게 아니잖아?”
무공 사용자는 기본적으로 대인전에 강력하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사실이긴 하지.
애초에 무공이라는 거 자체가, 스킬을 획득해서 강해지는 개념이 아닌 데다가, 전투를 할 때의 디테일이 다른 스킬 사용자들과는 많이 다르다.
홉 고블린을 내가 쉽게 무력화한 것과 같은 것.
“그나저나. 페이즈 1은 끝났고…….”
고개를 들어 석상 위를 보니 임프가 분노한 얼굴로 씩씩거리고 있다.
“이익! 버러지들! 내가 직접 나서게 하다니!”
임프의 몸이 불길로 뒤덮이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불길이 녀석의 머리통 위로 몰려가 뭉쳐진다.
“야생의 고함!”
우선 어그로 스킬 발동.
녀석의 눈이 나를 향한다.
“거슬리는 인간! 죽어라!”
화악!
녀석이 악마의 불꽃을 던졌다. 하지만 총알처럼 빠른 건 아니었다.
건곤보(乾坤步) 퇴형(退形).
단순히 뒷걸음이 아니다.
미묘한 근육의 움직임에 내공을 섞어 미끄러지듯이 순식간에 10미터나 뒤로 물러나는 보법.
콰쾅!
내가 섰던 자리로 불이 떨어져 폭발하는 걸 보고, 임프를 바라보니 하늘을 날고 있다.
“죽어! 죽어! 죽어어어!”
이야. 날개 있다고 잘 날아다니네.
임프가 하늘을 날며 다시금 불꽃을 던져 내지만, 스케이트를 타듯이 미끄러지듯 움직여 녀석의 공격을 계속 회피.
그사이 무척이는 뒤쪽으로 물러선다. 그리고 스킬을 사용하는 게 보였다.
“관측. 관통. 가속. 증폭.”
하나의 단어를 말할 때마다 빛이 번쩍이며 녀석에게 스며든다.
필살기를 준비 중인가 보네.
그러면 시간을 더 끌어야겠지?
-내가 시간 끄는 동안 준비 끝내. 그리고 죽이면 안 되는 거 알지?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왼손의 칼을 땅에 박아 넣었다.
“염혼염동!”
비어 있는 왼손에 걸쭉한 액체가 생겨나 길게 늘어진다.
이게 바로 염혼염동의 엑토플라즘이라 이거지!
마법적인 힘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사이킥 파워가 담겨 있어서 준마법적 물건으로 분류된다!
그것은 순식간에 사슬 모양이 되었고, 내공을 실어 일부러 전력을 다하지 않고 ‘느리게’ 던졌다.
촤아악!
“키키킥!”
녀석이 여유 있게 피해내면서 쇠사슬이 옆을 지나친다.
걸렸다, 요놈!
염혼염동 최대 출력! 내공 사용!
촤르르르륵!
“킥!?”
엑토플라즘 쇠사슬이 허공에서 살아 있는 것처럼 유영한다.
아까와 다르게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며 단번에 뱀처럼 녀석의 몸을 휘감아 조였다.
띠링-
-임프가 당신의 치밀한 일격에 경악합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키아악! 나를 진정코 분노케 하는구나!”
콰쾅!
녀석의 몸이 폭발한다.
엑토플라즘 사슬이 끊어지고, 녀석의 몸이 갑자기 부풀어 올랐다.
아닛!? 3페이즈가 있었어?
날개가 더 길어지고, 몸도 늘씬한 근육질이 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3등신짜리였다면 지금은 6등신은 되어 보인다.
“죽어랏!”
급강하. 녀석이 두 손에 불꽃을 두르고 덤벼 온다.
땅에 꽂아놓은 검을 재빠르게 뽑아내서 검기를 둘렀다.
카아앙!
녀석의 두 손과 내 쌍검이 허공에서 충돌.
녀석의 흉측한 얼굴이 내 앞에 있다.
이 새끼… 그냥 마법 쓰는 악마가 아니잖아?
강하다!
“합!”
순식간에 녀석이 두 손을 교차, 손톱을 세워 찔러 온다.
두르고 있는 화염이 어떤 마법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는 듯.
검기와 충돌하고도 멀쩡했다.
게다가 지금 보니 날개는 그냥 펄럭거리는 거고, 이놈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허공에 떠 있는 게 아닌가?
저것도 스킬인 모양인데.
“키악!”
다리를 쭉 올렸다가, 그대로 내리찍는 임프. 옆으로 피해내며 칼을 찌르자, 녀석은 몸을 틀어 피해내더니 그대로 손을 내 머리통을 향해 내리찍는다.
이건 좀 빠른데!?
가까스로 보법으로 피해냈지만, 어깨 부분이 베어져 나갔고.
상처 부위에 열기가 서려서 화상을 입은 것 같았다.
거 되게 날카롭네! 발톱 때문인가? 게다가 화속성 공격까지 있냐?
그렇다면…….
“모노 블레이드!”
쌍검의 스킬을 해방.
그리고 녀석의 두 손을 향해 건곤반검이라는 초식을 사용했다.
초식명은 거창하지만, 결국 쌍검으로 사선 베기!
“크악!”
녀석의 불꽃이 ‘지워’져 버리고, 그 두 손이 잘려나갔다.
피가 철철 흘러내리자마자 녀석이 날개를 크게 펼치더니 뛰어오른다.
도주하려는 모양인데. 이제 늦었다고?
어그로 스킬 때문에 나한테만 달려든 죄는 크다!
“천관(天貫)!”
한쪽에 물러나 있던 무척이의 쌍권총은 어느샌가 두 개가 하나로 합쳐져서는 대물용 저격총처럼 변해 있었다.
저런 변신 기능이 있었어!?
그 총구에서 번개가 쏘아져 나왔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멋들어지게 악마의 날개를 그대로 찢어버렸다.
“크악!”
쿵!
날개 한쪽이 없으면 그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비행은 못 하는 건지, 녀석이 그대로 쓰러진다.
두 팔이 잘렸고, 날개 한 짝은 날아간 처참한 모습.
더 경악스러운 것은 히든 던전의 보스는 보스인 건지, 두 팔의 출혈이 금방 멎더니 그대로 재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와… 이거 뭐 트롤인 줄 알겠어.
재빠르게 다가가, 그대로 칼을 녀석의 목에 가져다 댄다.
임프 녀석이 분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만 있다. 어째 내가 악당 같다.
“형! 잡았어?”
“잘 잡았죠~ 아주 잘했다. 나이스 슈팅.”
“형이 탱킹 잘해서 그런 거지, 뭘.”
“크…. 내 동생 잘 컸어.”
역시 검은 소, 누렁 소 중에 동생 소(牛)가 가장 일을 잘해~
이번 전투를 올리면 또 제법 따봉이 달달하겠는데?
“자. 그러면 임프. 우리 거래를 해 볼까?”
칼날을 들이밀고, 악마에게 거래를 제안하는 나.
“누가 악당인지 모르겠네…….”
어허, 동생 소. 그 입 닥치지 못할까?
* * *
얻었다. 악마의 심장!
임프 놈에게 칼을 가져다 대고 ‘봉인당할래? 심장 내놓을래?’ 하고 협박했더니 얌전히 심장을 바쳤다.
그럼으로써 알게 된 점이 하나.
악마는 죽어도 마계로 되돌아갈 뿐 소멸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봉인되면 마계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갇히게 되니, 차라리 심장을 바치고 마계로 되돌아가는 쪽이 이득이라고.
심장을 바치면 힘은 약해지지만, 기약 없는 봉인보다는 낫다나?
‘역시 [악마의 정수]를 얻는 것과는 또 다른 방식이야.’
쓸모 있어! 따봉 상점의 정보.
그 블로그 알바 포스팅을 따봉 주고 샀지만. 그래, 이 정도면 만족이지.
그렇게 던전을 클리어했는데, 아쉽게도 히든 던전의 전리품은 꺼내 올 수가 없었다.
우리가 던전을 나오고, 서포트 팀이 들어가니 그냥 일반적인 고블린 던전이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히든 던전은 아무래도 사라지는 모양.
그래도 악마의 심장.
그리고 히든 퀘스트까지 클리어해서 얻은 보상은 쏠쏠했다.
레어 스킬 교환권 1장의 기본 보상에, 유니크 스킬 교환권까지 1장 더!
히든 던전이라 보상이 아주 좋네!
그렇게 생각하며 우리는 집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거실 소파에 앉아 있다.
물론 깨끗이 씻고, 셀프로 안마를 사용해서 피로를 회복했으며, 장비는 전부 장비 보관함에 넣었다.
“후우…. 시원하다.”
그리고 무척이 녀석이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샤워실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야.”
“왜?”
“여기 와서 앉아 봐라.”
“아. 왜 또?”
“형이 앉으라면 앉을 것이지 말이 많아.”
“나 피곤해. 마력은 적게 썼지만 몸은 아니잖아. 바이크 뒤에 타서 허벅지에 힘주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레벨도 30 넘은 놈이 뭔 개소리를 지껄이냐? 일단 와서 앉아 보기나 해라.”
“참, 내.”
무척이 놈이 터벅터벅 걸어와 내 앞에 앉았다. 확실히… 피곤에 찌들어 보이는군. 그래서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
“내가 개야?”
“안마 스킬 쓸 테니까 손 내놓으라고.”
“아. 그거? 그거면 땡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