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인생은 뭘까?
옛날 시인들은 강 같다고, 농사와 같다고도 하고, 또는 운명이 가득 담긴 술잔과도 같다고 하는데.
나 같은 평범한 현대인이 봤을 때 인생은 출근, 출근, 그리고 출근이다.
그게 인생이다.
학생은 학교로 출근하고, 직장인은 회사로 출근하고, 백수는 이불에서 컴퓨터로 출근하고, 헌터는 던전으로 출근하지.
그렇게 돌고 돌고 돌다 보면 월급이든 인생의 쓴맛이든 뭐라도 건지게 되는 모양이라.
나도 이렇게 [희망의 성채]로 개근 도장을 찍고 있다.
그렇게 연속으로 매일 이 녀석을 돌며 했던 일은 이러하다.
부서진 성벽을 고친다거나, 부상을 입은 NPC들에게 힐을 해 주며 치료를 한다거나 하는 일들.
-엄지 새끼 살다 살다 따봉 더 벌어 보겠다고 이제 NPC도 챙기고 앉았냐?
-독한 놈 보소ㅋㅋㅋㅋㅋㅋ 레벨 제한 없으니까 아주 타이틀 끝까지 쥐어짜나 보네.
-엄지 님 고맙습니다. 저랑 제 동생도 곧 [희망의 성채]에 들어갈 레벨인데 덕분에 어떻게 플랜을 짜야 할지 알 것 같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영상 교과서처럼 보라고 난리세요.
이 새끼는 독한 놈이다, 미친놈이다, 중렙으로 넘어가는 헌터들의 등불이다, 수많은 리플들과 따봉을 뒤로 하고.
나는 그냥 반복했다. 뭐가 나오는지 #가보자고!
그 결과.
[초보 치료사] - 치료량 5% 상승.
[생명 지킴이] -> [하급 생명 지킴이] - 방어전 시 아군 NPC 전체 능력 10% 상승.
[희망의 수호전사] -> [희망의 수호기사] - 주변 아군이 부정한 정신적 영향에 저항.
[성벽 지킴이] -> [하급 성벽 지킴이] - 방어전 시 건축물 내구력 10% 상승.
[자원봉사자] - 치료량 3% 상승. 내구력 3% 상승.
[참수자] - 절단 공격력 10% 상승.
[파멸의 화신] - 공격력 3% 상승.
[땜장이] - 도구 수리 시 내구력 추가 수리.
[수성전의 전문가] - 방어전 시 모든 아군 모든 능력 5% 상승.
그야말로 노가다의 승리.
보이십니까.
이게 출근으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중간에 몇 번 죽을 뻔했지만, 그래도 ‘불굴’이 있고 없고가 차이가 크지요.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그래도 보험이 하나 있는 셈이니 조금 더 과격한 전투도 가능하지.
[주군, 그러다가 진짜 죽는 수가 있습니다.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으음, 그렇게 위험해 보였나?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승산 있는 전투들이었는데 말이야.
거기다 얻은 건 그뿐이 아니에요.
성장형 능력들 중 일부는 F에서 다음 단계인 E로 성장했고, 본래 E급이었던 것들은 D급까지 성장했다.
이게 또 달달하지~
마력 소모량이 줄어들고, 위력은 상승하고!
스킬 숙련 랭크가 성장한다는 건 그런 의미니까.
물론 이뿐만이 아니지.
타이틀을 무더기로 얻고 나자 새로운 타이틀이 하나 더 생겼거든?
[스무 가지 수집가]
등급 : 유니크
20개 이상의 타이틀을 보유한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모든 타이틀 효과 상승률에 5%를 추가한다.
어이가 없네. 아주.
5% 상승이 아니고, 5%를 추가한다는 거니까.
[초보 치료사] 타이틀 효과가 치료량 5% 상승이잖아?
이 [스무 가지 수집가]가 있으면 10%로 올라가는 거야!
고레벨의 헌터 놈들… 이런 개꿀 정보를 숨기고 있었다니.
정지한도 정하 그룹 막내아들이니까 이런 정보 알고 있었을 텐데 왜 안 알려줬어?
[그 인간은 때를 기다리고 함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럴지도. 하긴. 지금 내가 주로 활동하는 영역이 50레벨 대니까. 50레벨 대에서 타이틀을 20개 이상 획득하는 게 말이 안 되긴 하지.”
괜히 타이틀 얻겠다고 무리하다가 내가 개복치처럼 죽을까 봐 숨기는 건가?
[그것도 가능한 변수입니다. 이상하게도 정지한 그자는 주군의 목숨에 집착하니까요.]
아니, 누가 타이틀 20개 얻겠다고 죽어?
나도 지능이란 게 있어. 이놈아!
지금 상태에서 이걸 얻은 것도 결국 시스템의 맹점을 이용한 꼼수지.
갓튜브 소셜 스타라는 기괴한 직업 능력!
…이게 아니었으면 나도 무리였을 듯.
그나저나.
아쉽게도 타이틀을 제외하고, 새로운 아이템이나, 보상을 획득하지는 못했네.
몇 번 해 보니 알겠는데, 특별한 보상은 1회 주면 그걸로 끝인 것 같아.
[주군, 욕심이 너무 과하십니다. 이미 이렇게 빨아 가셔 놓고 더 빨아 가시려고요?]
그, 그런가?
[이대로 타이틀을 계속 수집하면 계속 강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거기다 특수 보상은 없어도 일반 보상은 계속 드셨잖습니까!]
일반 보상이라면… 그거지?
[레어 스킬 교환권 2장. 그리고 스톤 앤트의 시체를 통한 전리품들이요. 거기에 이번 연속 [희망의 성채] 클리어 덕분에 소모했던 70만 따봉을 복구하고도 남았잖습니까!]
그, 그랬지.
사상 최초 [희망의 성채] 솔로 클리어를 했던 거 + 연속 던전 클리어.
이걸로 현재 따봉은 무려 116만 따봉.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내가 정말 놀부 같군.
[…….]
이럴 때는 아니라고 해줘야 하지 않니?
[신하된 도리로 그런 거짓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주군.]
갸아아악!! 하지만 아직도 목이 마르다고!
천만 따봉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오오오오!
70만 따봉 태우고 116만 따봉 모았으니 46만 이득 본 셈인데 그래도 천만은 언제 다 모으냐고!
잠시 일요일이 1시간 남은 직장인처럼 머리를 쥐어뜯다가 다시 원상 복구되었다.
“그러면. 내공도 전부 채웠겠다… 다시 [희망의 성채]를 돌까?”
어제 [희망의 성채]를 클리어하고 나서 집에 돌아와 씻고, 쉬고 일어났더니 내공은 전부 회복된 상태.
#출근, 가보자고!
그런데 척량은 오히려 나를 말리는 게 아닌가?
[다른 던전을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군.]
“응? 왜?”
[3번째 동영상부터 따봉과 조회 수가 제법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방법이라서 하락한 것 같습니다. 더 많은 따봉을 위해서는 다른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역시 그런가…….”
흐, 좀 더 벗겨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리인가?
[일반적인 갓튜버였다면, 이것으로도 충분했을 겁니다. 감소 추세라고는 해도 아직 조회 수나 따봉은 충분히 잘 나오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주군의 역량으로 여기서 안주하셔서는 안 됩니다.]
“[희망의 성채]만으로는 천만 따봉까지는 힘들까?”
[제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불가능합니다.]
그래. 알고 있어.
[희망의 성채]로 벼락 따봉 부자가 되긴 했지만 이걸 천년만년 우려먹을 수는 없는 거지.
같은 영상을 계속 보면서 따봉을 누를 수 있으면 그 사람은 하늘이 내린 장투의 화신일 거다.
그 인내심으로 ㈜정비에 박고 잊는 거지.
부디 비가 누님이 신형 드론을 끝내주게 뽑게 해주시옵고, 너스타에 또 이상한 소리 지껄이지 않도록 도와주시옵고.
탈세 및 횡령으로 세무조사 좀 그만 받게 해주시옵고.
미쿡 나스닥의 총아, 아담이랑 키배 좀 그만 뜨게 해주시옵소서.
㈜정비에 물린 모든 죄인들의 기도문이다.
오너 리스크가 다 해먹는 회사이기에 나도 자기 전에 기도 올리고 있다.
왜인지 뜬금없이 정비가가 주식을 내게 증여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탱커 정지벽이 툴툴댔다.
-대체 왜 그 creepy bitch가 엄지척 씨에게는 잘해 주는 겁니까?
와, 외국인 본토 발음으로 욕을 하니 장난 아니구나.
미드 같아.
하긴 정지벽 씨는 할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외국인이라고 했으니, 한국보다는 미국에 있는 시간이 더 길 거다.
-크윽. 그 미친 자가 세상에 주식 증여라니. 사촌 동생인 나한테는 쥐뿔도 없는데.
정하 그룹 내에서도 정비가의 미친 성격은 유명한 모양이다.
그 미친 자가 얼마나 개새끼인지 들어 보라며 정비가가 과거 이야기를 쏟아냈다.
악마, 마왕, 마녀, 악당, 냉혈한.
영어로는 욕을 서슴없이 하더니 한국어로 넘어오니 정지벽이 할 수 있는 욕이 점점 줄어드는걸?
그냥 잠자코 앉아서 들어 줬다. 이런 건 괜히 같이 사촌 언니 욕을 같이 했다가는 나중에 개새끼 되는 거예요.
결국 후련해졌는지, 다시 헬스 하러 간다고 올라갔지.
음, 애증마저 느껴지는군.
아무튼 이렇게 뜬금없는 꿀을 빨게 될 줄은 나도 몰랐고.
㈜정비 주주들의 기도를 나도 읊게 되었다.
고점 때 팔아야 하는데 대체 언제가 고점인지 모르겠네.
배당금만으로도 달달하던데 그걸로 안고 있을까?
“그래. 이 정도면 먹을 타이틀은 다 먹었으니까… 정진에서의 레이드는 언제였지?”
[3일 후 미팅. 그리고 4일째 되는 날 레이드 예정입니다.]
이래서 대기업이 편해요.
내가 혼자 했으면 관공서를 몇 바퀴 돌고, 협력 업체에 전화를 몇 번 돌려야 하냐.
그럴 필요가 없어서 편해.
이래서 연예인들이 소속사발 많이 탄다고 하는구나.
“주 1회…라고는 하지만. 딱 떨어지게 레이드를 하는 건 아니니까. 마력 회복부터 이거저거 준비해야 할 거고……. 그러면 다시금 갈림길이네.”
[예. 주군. 여기서부터는 제대로 된 길은 없습니다. 새롭게 선택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애초에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도 내 페이스를 따라올 수 없으니까.
“던전 정보 좀 줄래?”
[기꺼이.]
좌륵-
내 앞에 인터넷 창 비슷한 것들이 떠오르면서 관련 정보들도 함께 링크된다.
각종 던전에 대한 것들을 정리한 정보의 알고리즘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면 현실적으로 봤을 때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게 어디 있을까.
“그러면. 그걸 해 보자고.”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최하급 악마의 심장]하고 [요정의 눈물]을 구할 수 있는 정보가 있나 찾아봐. 따봉 상점에서 그걸 팔지는 않더라도, 구할 수 있는 정보는 있지 않을까 싶거든. 던전 소멸에 대한 정보도 그랬잖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망할 [세계수를 키워 보자!] 퀘스트 좀 해결해 버리자.
필요한 게 저 두 가지인데 어디서 어떻게 구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단 말이지.
경매장에도 없고. 그렇다면 기왕 따봉 넉넉해진 김에 좀 방법이 없을지 찾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
[좋은 생각입니다. 검색하겠습니다. 검색 중… 있습니다, 주군!]
“진짜냐! 어서 보여줘.”
[악마의 심장 구하는 법.hwp – 100,000따봉]
[요정의 눈물 구하는 법.hwp – 100,000따봉]
죄다 양식이 hwp라니, 관공서냐?
아니, 그 전에.
“10만 따봉? 요새 따봉 물가 왜 이래?”
뭐만 하면 10만을 가볍게 넘겨서 요구하고 난리야? 이놈들 양심을 어디다 팔아먹었어?
[따봉 상점 시스템이 제대로 장사를 해먹고 있군요.]
이 망할 새끼들,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후… 어쩌겠어. 구입.”
구입했다. 그리고 나온 정보.
[악마의 심장 구하는 법.hwp]
악마의 심장은 악마를 잡고 거래를 하면 얻을 수 있어요. ⸜(*ˊᗜˋ*)⸝
굳이 악마를 잡은 이후 거래를 해야 하는 이유는, 그 전에 거래하려고 하면 악마가 당신을 호구 잡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죠!
악마와 적당히 주먹의 대화를 하고, 협박을 하면서 거래를 하는 쪽이 싸게 얻을 수 있어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영구적인 봉인을 하겠다고 협박하는 거죠!
악마를 죽인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의하셔야 해요~
그러나 악마의 심장을 얻으려면 악마와 조우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악마와 조우하는 방법.hwp]에 수록되어 있답니다~(*ᴗ͈ˬᴗ͈)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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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친 새끼들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