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108화 (108/305)
  • 제108화

    “저게 가능한 거였어? 할아범. 어떻게 생각해?”

    그가 앉은 소파 옆, 누가 봐도 영화 속의 집사라고 주장하는 것 같은 사내가 정 자세로 서 있었다.

    그는 아주 고풍스러운 외눈 안경을 쓰고 있었고, 표정은 시종일관 건조했다.

    브론즈 가문은 과거 제2차 세계 대전 때 미국으로 건너와 각종 증권, 은행의 우두머리로 군림하고 있는 곳.

    엄마도, 아빠도, 삼촌도, 이모도, 고모도 죄다 금융업에 종사하며 사람을 태워 달러를 버는 집안이다.

    그것도 3대가 넘어버리면 사람들은 ‘명문가’라고 부르고.

    촘촘하게 엮인 금융가들 속에서 혈연과 규범은 공고해지기 마련.

    그 속에서 아담 브론즈는 10대 초반까지는 착한 아들이었다가 언제부턴가 가문의 검은 양이 되었달까.

    어느 날인가 마리화나에 취해 나체로 할로윈 파티를 돌아다니는 영상이 SNS를 타자 브론즈 가문은 이놈의 호적을 한번 팠고.

    이놈이 특별한 능력을 각성했을 때,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다가.

    게이트 웨이브 이후 브론즈 가문에서 했던 짓이 카르마가 되어 미국 국민들이 샷건을 들고 증권가로 몰려왔을 때 이놈이 달러 백으로 진정시키자 다시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주었다.

    본인 이름이 적혀 있는 패밀리 트리와 함께 집사 오즈월드도 같이 보냈다.

    현재 [A/B]가 치는 사고의 태반은 이 집사가 수습하고 있다.

    이 돌아버린 새끼를 막는 건 불가능하나, 수습은 어떻게든 해보라는 뜻.

    매부리코의 영감은 이리 답했다.

    “눈앞의 현상에서 눈을 돌리지 말라.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누가 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X라 현실적인걸?”

    “제가 매번 도련님께 해 드린 말입니다만.”

    “아~ 우리 러블리한 집사장님 말씀이셨군. 그래. 옳은 말이야. 눈앞에 있는 것을 의심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러면, 왜 저게 가능한지부터 따져 봐야겠네.”

    “그렇습니다. 도련님.”

    아담이 손가락을 딱딱, 튕기자 어둡던 극장이 밝아진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당기자 홀로그램으로 전환되었다.

    작은 엄지척이 3D로 아담 앞에 선다.

    어찌 보면 SF 같아 보이는 광경이지만, 이제 돈만 주면 이런 시설은 흔하다.

    ㈜정비에서 제작하고 있는 기술이니까.

    다만 자꾸 보면 눈이 아프고, 그냥 브라운관으로 충분히 하고도 남는 걸 굳이 홀로그램까지 띄워서 하는 게 귀찮아서 잘 안 쓸 뿐이지.

    어찌 보면 곡면 핸드폰이 인기가 없는 것과 똑같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부득불 그 곡면 핸드폰이 하이 테크놀로지고, 나는 얼리 어댑터라 주장하는 놈이 있기 마련.

    “우선은… [벽면보행]이 열쇠를 쥐고 있겠지. 성벽에서 다른 성벽으로 공간 이동, 비행, 점프 등의 수단으로 이동하려던 건 과거 무력화되었잖아? 음, 한국 쪽 영상을 봤던 내 기억으로는 말이야. 저렇게 바이크로 거미처럼 달라붙어서 달려 올라간 시도는 처음이었단 말이지. 맞지?”

    “데이터상으로는. 네, 그렇습니다.”

    “라이브 때 이미 조사했나 보네. 역시 영감이야.”

    홀로그램으로 엄지척이 바이크를 타고 망루를 오르는 장면이 반복되어 재생된다.

    아담은 흡사 정교한 피규어를 살피듯 위아래로 둘러보다가 말했다.

    “좋아, 좋아, 재미있네. 그러면 새로운 타이틀도 주려나?”

    “최초이니 높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겠죠.”

    아담은 손가락을 딱, 딱, 딱 튕긴다.

    생각에 잠겨있을 때의 버릇.

    어찌 보면 방정맞다 싶을 정도라서 도서관에서 몇 번 퇴실당하고는 그때부터는 얌전히 기숙사에서 공부하게 된 그 버릇이다.

    다행히 룸메이트는 학비 전액을 그의 가문에서 대주기로 한 터라 그의 괴이한 습관을 참아 주기로 했다.

    우스꽝스러운 후드 티를 입은 사내는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이렇게 말했다.

    “잠깐, 오… 나는 어차피 레벨 오버라 가도 보상이 없겠네?”

    “그 부분에 집중하시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도련님? 다른 부분에 집중하시지요.”

    “알았어. 알프레드~”

    “……저는 오즈월드입니다, 도련님.”

    사내의 후드 티에는 박쥐가 그려져 있다.

    앞면에는 조커가, 뒷면에는 까만 박쥐 심벌이.

    코믹콘에서 팔 법한 커다란 후드 티에 슬리퍼, 투명 뿔테안경까지.

    너스타에서 볼 법한 화려한 파티 피플은 어디 가고 어딘가의 너드만이 그 자리에 있다.

    “알아, 안다고. 암석 개미를 전부 구워버린 저 [블레이즈 워크]의 위력이 너무 과하다는 거잖아? 저기 있는 통상 레벨로는 저 정도의 마력 랭크가…….”

    그는 허공에 무언가 수식을 적어 나갔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서 수없이 많은 수식들이 지나갔고, 이윽고 그가 말했다.

    “검산해 줘.”

    “계산은 모두 맞습니다, 도련님.”

    “오케이. 그러면 수치상 최소 A랭크의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그 정도의 효율이 아니면 저 과도한 화력을 사용하고도 성벽을 넘어가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음, 영약을 잔뜩 주워 먹어서 올라갔을 가능성도 한번 볼까. 우리 친구. 중국이랑 커넥션이 있는 인간인지. 알프레드, 최근 영약 루트 좀 봐줘. 저렇게 단기간에 강해질 만한 영약이라고 해봐야 몇 개 안 되니 찾기 쉬울 거야.”

    이윽고 집사의 눈이 푸른빛으로 물들더니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자 화면이 전환된다.

    지구본, 그리고 영약을 제조할 만한 장인들의 명단.

    “각 옥션과 가문에서 수집한 밀거래 이동 경로입니다. 최근 단기간에 강해질 정도의 거래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과연, 알프레드라니까.”

    “오즈월드입니다, 도련님.”

    “인간 쪽 이름은 어찌 되든 상관없잖아? 너는 가문 이름으로 계약된 권속이고, 나는 그런 너를 쓰게 된 거니까.”

    “도련님. 이름에는 힘이 담겨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놈의 영지주의. 집안 어르신들은 허구한 날 멸망이 곧 올 거니 브론즈 가문은 단합해야 한다고 난리지. 그래서 닥치는 대로 온 세상 예언과 신비주의를 다 긁어모은 결과가 이거야. 나는 백날 신비주의 다 긁어 봤자 정비가의 드론 군단보다 못하다는 데에 1달러 건다.”

    오즈월드는 차분히 걸음을 옮긴다. 그러고는 얼음통에 들어 있는 콜라병을 꺼냈다.

    칵.

    그가 손가락을 한번 까딱이자, 유리병의 뚜껑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벗겨져 그의 손아귀에 들어온다.

    그렇게 콜라는 단 한 방울도 낭비되지 않은 상태로 아담의 손에 공손히 건네진다.

    “푸하! 여러 조건을 전부 배제하고 남은 건 결국 두 가지 정도의 가설일까?”

    “무엇입니까?”

    “첫째, 저놈은 그냥 천재다. 그래서 마력 랭크도 아주아주 빨리 올렸다. 가끔 그런 일 있잖아? 이 수십억 인구 중에 그 정도 천재 한 명쯤은 나올 법도 하지. 아, 그냥 마력이 아니라 마력&무공 랭크던가? 아무튼, 그건 아무래도 좋고.”

    딱딱딱딱-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정신이 없다.

    이윽고 그가 말을 이어 나갔다.

    “둘째는 이놈이 가지고 있는 직업 자체가 통상적인 특수 직업을 한참 벗어난 오버밸런스 직업이라는 거지. 이건 입증할 증거도 있어.”

    그는 흥이 올랐는지 허공에 빠르게 수식을 적어 나갔다.

    “이 녀석 레벨이 안 오르거나 아주 느리게 오르거나 하잖아? 그만큼의 페널티를 마력 같은 곳에 쓸 수 있는 거지. 무공 사용자지만, 마법도 쓰고, 이상한 소환술도 쓰고, 거기에 닌자 그림자 능력도 있고.”

    “한국에는 닌자가 없습니다, 도련님. 그리고 통상적으로 한국인들은 이러한 혼동을 몹시 싫어합니다.”

    “알았어. 기억해 둘게.”

    과연 정말로 기억을 할까?

    오즈월드는 생각했다. ‘어쩌면’.

    눈앞의 ‘인간’은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만 기억한다.

    그러니까, 그가 엄지척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는 동안은 기억을 해둘 것이었다.

    “세상 참 불공평하네. 무공 천재면서, 다중 능력자인 직업을 가지고 있다? 레벨은 오르지 않지만, 그래도 그걸 대신할 만한 밸런스 설계도 갖추고 있고. 너무한 거 아니야, 그건?”

    “도련님께서 그런 말을 하시면 안 되겠죠. 출발선부터가 이미 다른 이들과 다르시잖습니까. 한국에서는 이것을 ‘죽창 맞을 짓’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오케이. 이것도 기억.”

    그리 말하고는 손짓을 한다.

    홀로그램 화면이 극장 스크린에 붙었다.

    “좋아! 내가 즐겨찾기한 채널들 켜줘. 음, 지역은 한국. 헌터.”

    수백 개의 화면이 떠오른다.

    “동시에 받아 적어.”

    그가 명령어를 입력하자 A.I는 그대로 그의 명령을 받아 적는다.

    그의 즐겨찾기 채널에는 동시에 같은 후원금과 메시지가 떴다.

    -[A/B]님이 20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A/B] : 앞으로 엄지척 목격 영상 있으면 찍어서 모두 보내줘. 그러면 천만 원 부어줄게. 기간은 내가 질릴 때까지.

    비인기, 사람 없는 작은 채널 주인에게는 ‘운수 좋은 날’이 될 것이다.

    “그러면. 일단 관찰해 보자고. 그리고 꼭 데려와야지. 저런 인재는 우리 길드의 아주 좋은 에이스가 되지 않겠어?”

    통칭 [A/B]. 아담 브론즈가 히죽거리며 웃는다.

    * * *

    “역시 한국의 얼은 쥐불놀이지.”

    영상 좀 화끈하게 나왔나?

    나와 내 팬덤의 수명까지 태워가며 불을 질렀는데 재미 좀 봐야 할 텐데.

    [폭발적입니다. 다음에 희망의 성채에 들어오기 전에 화염계 스킬을 몇 개 더 구입하고, 화염 대미지 증가 스킬도 구입해서 태우면 더욱 훌륭한 결과를 얻으실 겁니다.]

    오오, 그것참 좋은 조언이군.

    두 번째 성벽, 그것도 그 성벽 아래로 내려가 싹 다 불을 지르고 칼질을 해댔더니 아주 속이 다 시원했다.

    역시 [블레이즈 워크]도 우리 민족이었어.

    만약 내 직업이 정상적으로 레벨 업이 가능한 거였다면 지금쯤 폭풍 경험치를 쭈압쭈압 빨고 있었으려나?

    따봉으로 들어왔으니 그걸로 된 거지만 말이지.

    아쉽긴 해.

    다른 사람의 공략대로 갈 수 없으니 결국 내가 내 길을 이렇게 개척해서 가야 한다는 거 말이야.

    그래도 척량, 전리품 수거할 때 다투지 않아도 되겠는데?

    [네. 불에 탄 흔적이 있는 걸로 판별하면 되니까요.]

    그래. 어느 미친 새끼가 마력 믿고 개미 밭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겠어?

    나 말고 없겠지.

    ‘염라두랑 던전 타임도 안 겹쳤으니 더 편하겠군.’

    [당신과 당신의 팀은 희망의 성채를 지켜냈습니다.]

    -던전 클리어!

    -기여도에 따라 정산을 시작합니다.

    -A팀 랭킹 1위 엄지척, 2위 김도건, 3위 홍선기.

    -B팀 랭킹 1위 엄지척, 2위 유정황, 3위 박막운.

    -C팀…….

    -퀘스트 보상을 정산합니다.

    우와, 이게 되네.

    [주군, A팀과 B팀 모두 전부 1위를 해내시다니!]

    아니나 다를까, 발표가 나오기가 무섭게 채팅 창이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게 아닌가.

    -실화냐? 한 사람이 두 팀 모두 1위를 해먹을 수 있다고?

    -그럼 1위 보상 두 개 먹는 거임?

    ↳희망의 성채 방패는 첫 3위 안에 들었을 때만 나옴, 그 이후에는 헌터 상점 포인트로 대체됨.

    ↳동시 1위는 최초인데 보상이 뭔가 달라야 하지 않나? 시스템 이런 거 깨알같이 챙겨 줬잖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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