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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104화 (104/305)
  • 제104화

    -음? 뭐지? 무슨 스킬을 쓴 거지? 그냥 개미가 사라졌습니다? 그 많던 개미들이 전부 사라졌어요! 그리고 마치 구멍을 뚫은 것처럼 지평선도 어쩐지 일그러져 보이는데요? 전송 능력인가?

    이윽고 그가 다시 스킬을 한 번 더 사용한다.

    레귤레이터(Regulator).

    마치 테이프를 붙여 넣은 것처럼 그곳에는 무수히 많은 개미들이 사체가 되어 쌓여 있었다.

    과정은 없었다. 그 공간에 있는 것은 그저 참살의 결과뿐.

    -개미가… 전부 죽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이거 개미가 죽었어요. 어떻게 죽였는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결코 조작이 아니에요. 라이브 스킬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그 뒤의 영상은 정지한이 대체 무슨 스킬을 쓴 건지 BJ 혼자 추측을 하는 것뿐.

    영상을 보며 한참 우리는 침묵을 유지했다. 이윽고 동생이 물었다.

    “……이게 어떻게 보여, 형?”

    “어, 중간 영상이 삭제된 거 같다?”

    “그런 거 없어. 그저 공간이 잘려 나가고 없어지더니 다시 나타난 게 전부. 그리고 저 꼴이었고. 특이 사항이라면, 저렇게 없애 버릴 때, 내 마력과 성광의 마력이 전부 바닥났어.”

    “강제로?”

    “…….”

    무척이는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만약, 형. 만약에 말이야. 내가 몰려오는 개미들을 공격했다면 딱 그만큼의 마력이 줄었겠다 싶었거든? 만약 개미를 쏘고 나서 내가 기억을 못 한 거라면?”

    “그랬다면 영상에 그렇게 안 찍혔겠지?”

    “그래. 만약 기억을 통제하는 스킬이라면 영상에 나왔을 거야. 하지만 이건 그냥 오리고 붙인 게 전부니까.”

    소름이 돋을 만도 했다.

    “경험치는?”

    “모두 들어왔어. 칭호도 마찬가지고. 딱 죽은 만큼 분배됐어.”

    동생의 표정이 안 좋은 이유를 알겠군.

    “성광은?”

    “음. 다친 사람도 죽은 사람도 없으니 기뻐 보였지. 애초에 그 녀석은 타인에게 신경을 안 써. 사제니까 상처에는 집중하지만, 그 사람의 스킬 같은 건 알 바 아닌 녀석이니까.”

    그렇구나.

    그렇기에 성광은 시스템상 ‘광신도’로 분류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군.

    그렇다고 해도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이런 현상이 생긴다면 누구라도 정신이 나갈 법도 한데 성광은 제정신이 아니다.

    “하여간 정지한은 뭔가 이상해. 정상적인 직업이 아니야.”

    “나처럼?”

    “형과는 달라. 형은 그래도 과거와 현재가 연속되어 있고, ‘개연성’이란 게 있잖아.”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왜 정지한은 저런 힘을 [죽음을 거부하는 자의 신전]에서는 쓰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때에는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였나?

    모르겠군. 모르겠어.

    [주군, 저런 힘을 공개적으로 내보인다는 것 자체가 무언가 계산된 퍼포먼스일 거라는 추측이 듭니다.]

    역시 그렇겠지?

    [네. 그자가 아무런 이유 없이 저만큼 기이한 스킬을 보일 리가 없으니까요.]

    헌터라는 직업 자체가 반쯤 목숨 내놓고 사는 직업.

    그러다 보니 자신의 스킬을 어디까지 공개할지, 어디까지 숨길지가 늘 중요했고.

    그런 의미에서 정지한이 굳이 자신의 스킬 하나를 보인 것은 어쩌면 ‘경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본격적으로 후계자 전쟁에 나서겠다는 뜻인가?

    이제 정하 그룹의 모든 후계자들이 정지한의 이 짧은 스킬을 수백 번, 수천 번을 돌려 볼 터.

    그러면 자연히 그가 가진 스킬이 ‘시간 정지’ 계열인 건 알게 될 것이었다.

    ‘이제 레벨 업 좀 했다는 건가? 더 숨기는 게 좋아 보이는데 꽤 오만한 행보인걸?’

    일단 판이 어떻게 흔들릴지 지켜보실까.

    -아, 얼굴만 잘나고 영양가 없는 엄지보다 제 방송이 훨씬 낫죠. 진짜배기, 이 시대의 진짜 사나이!

    [역시 주군, 저 BJ는 자체 콘텐츠는 못 만드는 모양입니다. 라이브 시청자가 계속 빠지나 봐요.]

    [주군! 저놈 구독자 수가 서서히 감소 중입니다! 역시 이 바닥, 노잼유죄군요.]

    척량, 너 지금 깨소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아, 아닙니다.]

    척량은 꼬리를 흔들며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 녀석, 저 BJ가 자꾸 나를 후려쳤던 게 속상했던 모양이구나.

    * * *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각자 짐을 풀었다.

    “진짜 피곤했나 보네.”

    무척이 녀석, 욕조에서 깜빡 잠이 들었군.

    깨우려다가 10분 정도 놔두기로 했다.

    나는 그동안 뭐 하냐고?

    팩 해야지.

    인기라는 건 올라가는 건 힘들어도 내려가는 건 순식간 아닌가.

    남의 관심 받는 게 이렇게 힘듭니다.

    태어날 때부터 백옥 피부에 살 안 찌는 체질로 타고나서 천생 연예인으로 살면 모르겠는데, 나 같은 일반인은 관리가 답인 것이에요.

    연금술사 길드 쪽에서 산 팩을 바르고 안마 의자에 앉아서 폰을 드르륵 돌려 방금 본 영상을 다시 시청했다.

    어떻게 생각해, 척량?

    [위험한 인간임은 확실합니다. 적이라면 지금이라도 신속하게 제거해야 하지만 아군이라면 이만큼 든든할 수가 없죠.]

    아니, 우리 고용주님을 제거하면 어떻게 하냐.

    나는 재벌 3세한테 빌붙어서 꿀 빠는 게 내 인생 롤인데.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일 뿐, 현재로서는 주군께 충심을 다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니, 내가 고용되어 있는데 반대겠지.

    아무튼 내 생각에도 그래. 꿍꿍이는 모르겠지만, 그가 나를 적대할 동기도 없고, 만약 의견이 부딪치게 되면 어른의 방법으로 해결하면 돼.

    [그게 무엇입니까?]

    ‘사표’지.

    이 여우 놈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니, 노동법이 나를 보호하사 나는 사표 쓰면 땡이야. 나는 일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드아!

    [그, 그렇죠. 사표… 사표 쓰면…….]

    얘가 저 어디 중국 삼국시대에서 와서 그런가 적응을 못 하네.

    저놈과 나의 관계는 뭐다?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관계다.

    정 봤다가 꼬우면 어떻게 한다?

    [사표를 쓴다.]

    그래. 그리고 지금 모은 돈으로 창업해야겠지.

    직장 나가면 지옥이라던데 벌써부터 뼈가 시리군.

    제발 정지한이 내가 싫어할 짓은 안 하길 바라.

    [피를 보더라도 한 하늘을 지고 살지 않겠다는 뜻, 신 척량 받들겠습니다.]

    …한 회사겠지. 인마.

    누가 들으면 살인하는 줄 알겠어.

    정지한이 무슨 속셈으로 임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이러나저러나 내게 필요한 건 단 하나지.

    [역시 따봉입니다.]

    그래. 던전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강해지기 위해서라도, 내가 사표를 쓰고 창업을 하러 나가더라도 어쨌든 따봉이 필요해.

    [창업하면 고생이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래. 헌터 보조원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때려치우고 나간 선배들이 좀 되는데, 다 망해서 돌아오셨거든.

    그중에는 빚을 엄청나게 지고 오신 분도 계셔.

    보증까지 서 준 친구랑 두 분이서 왔지.

    [지옥이군요.]

    응. 그래서 말이다. 척량아.

    이 어른은 창업이 무서워요.

    회사가 개 같고, 엿 같은 거 다들 알지. 그럼에도 하루를 아메리카노 석 잔으로 버티는 이유가 뭐겠어.

    그러니 나는 이대로 계속 꿀을 빨고 싶어.

    [던전은 어려울수록 좋고 말입니까?]

    그래. 어려워야 천만 따봉을 벌지.

    쉬운 던전만 간다면 이 세계가 멸망할 때까지 천만 따봉 못 벌어 먹어.

    그런 의미에서 정지한은 괜찮은 상사야.

    평범한 일을 물어오는 일이 거의 없거든.

    [주군께서는 언젠가 유니크를 넘어 레전드 스킬들도 얻으셔야 하니까요. 거기서부터는 거의 백만 따봉이 넘더군요.]

    레전드 스킬?

    이야, 꿈만 같다.

    그래도 희망의 성채에서 따봉도 벌고, 강해질 수 있는 길도 보여서 다행이야.

    찰나의 깨달음이 무학이 되어 남았다.

    정지한의 스킬이란 것은 아마 내가 추구하는 것과 180도 정반대 방향일 터.

    언제나 시간을 초 단위로 아껴서 사용하는 그가 효율성도 떨어지는 무공 스킬을 익힐 것 같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그건 그놈 길이겠지.

    나는 내 길을 가는 거고.

    자, 그러면 확인해 볼까?

    [타이틀 말씀이시군요.]

    맞아. 이 기회에 옛날에 얻은 것도 같이 확인해 보려고.

    지금까지 얻은 타이틀까지 전부 간단하게 정리해서 보여 줄 수 있겠어, 척량?

    [리자드맨 도전자] - 리자드맨 종족에게 미약한 공포 효과.

    [백신百神이 주시하는 자] - 따봉 획득 10% 상승.

    [트윈 헤드 놀을 홀로 잡은 자] - 공격 대미지 10% 상승.

    [특수 던전 최초 무희생 정복자] - 던전 보상 강화.

    [철벽의 수호신] - 내구력 5% 상승.

    [학살의 대가] - 광역 대미지 25% 상승. 광역 공격 시 마나 소모량 25% 감소.

    [머리통 따개] - 머리 부위 공격 시 100% 크리티컬 대미지.

    [살육의 위압감] - 몬스터 어그로 10%.

    [개미 절멸자] - 개미 형태의 몬스터 상대 시 공격력 20% 상승.

    [희망의 수호자] - 부정한 정신적 영향에 강하게 저항.

    “다른 것들은 전부 퍼센트인데 희망의 수호자만 퍼센트가 아니네.”

    [그만큼 특별하다는 것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것에는 정밀한 계산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리자드맨 도전자도 그렇지 않습니까?]

    “아. 그러네.”

    마음을 숫자로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일까.

    정신계 관련은 대부분 저렇게 퍼센트가 아니고 두루뭉술한 모양.

    그렇지 않아도 양심리스 초보자 패키지를 아직도 써먹고 있으니 여기에 타이틀 효과까지 더해지면 내 정신은 더욱 안전해지겠는걸?

    플라시보라도 좋으니까 부디 효과가 짱짱했으면 좋겠네.

    “자, 그러면…….”

    [담당자에게 연락하셔야겠군요.]

    “그래야지.”

    척량의 동의 아래. 전화기를 들어 정진의 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부터 당장.

    희망의 성채에 혼자 간다.

    * * *

    -뭐야? 뭐야? 뭐임?

    -몬가… 몬가가 벌어지고 있어…….

    -엄지야. 이거 뭐야? 왜 또 거기 있어? 어?

    그래. 미친 것 같겠지.

    보통이라면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신조를 떠올리며 최고급 구스 이불 속에서 꾸물거리고 있어야 할 헌터 놈이 또 방송을 틀고 있으니까 말이지.

    “안녕하십니까아~ 엄지검지 엄치척입니다~ 많이들 놀라셨죠? 분명 어제 클리어했던 그 장소! 여기에 또 와 있으니 궁금하시겠죠? 궁금하다고 해 주세요. 저 심심하니까.”

    -엄지야, 너 마력 회복 괜찮음?

    -다른 헌터들 보면 최소 일주일은 정양해야 하지 않냐?

    -설마 마력도 없이 온 거 아니지?

    -乃乃乃엄지 무리하지 말자!! 乃乃乃

    역시나 질문이 쏟아지는군.

    “이건 제 독특한 스킬 트리에 이유가 있지요. 자세히 밝힐 수는 없으나! 제 마력 회복 속도는 보통 헌터들보다 좀 뛰어납니다.”

    -조금 뛰어난 정도가 아닌데요?

    -엄지 잘하면 ‘그 헌터’랑 비슷한 스킬 가지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

    ‘그 헌터’가 누군지 한 번에 알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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