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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103화 (103/305)
  • 제103화

    이건 타이틀이라서 마력을 먹는 것도 아니고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지켜주고.

    거기다가 내 양심리스 1레벨 특전 [초보자 스킬 : 견고한 마음]까지 합쳐지면 어지간한 던전에서 나를 세뇌하거나 공포 상태로 만드는 건 저얼대로 불가능하겠지요.

    ‘3성급 던전. 그 위쪽부터 정신계 공격을 하는 몬스터들이 많이 나오던가? 그쪽 던전에서 이런 시신 수습할 일이 많았는데 말이야.’

    [네, 주군. 그래서 3성급 이상부터는 정신 공격 방어 아이템을 주렁주렁 달고 다닙니다.]

    일단 아까 얻은 다른 칭호도 확인해 봐야 하긴 하는데…….

    그건 나중에.

    지금은 방송을 마저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저 칭호를 벌써 얻었네.

    -님들 알고 있음? 레벨 56이 될 때까지 저 칭호 못 얻는 사람들이 수두룩함요.

    ↳2222

    ↳3333

    -아니, 근데. 정지한 대체 뭐냐? 저런 퍼포먼스를 보여 준 엄지척과 똑같이 1위 했다고?

    ↳나 정지한이 있던 성벽 방향에서 방송하는 헌터 영상 봤는데 완전 지림.

    ↳이거 맞다. 코스믹 호러가 따로 없음.

    -엄지야! 해냈구나! 이모는 울어요!

    -최강엄지 차냥해乃乃乃乃乃乃乃 외쳐!! 최강엄지!!!!!!!!!!!!!!!!!乃乃乃乃乃乃乃乃乃乃乃乃乃

    -궁극의 디펜스는 점령이시다……. 게이트까지 달려가서 쥐어 팬 거 보소.

    쭉 이어지는 리플들 사이로 정지한에 대한 정보가 인상이 깊군.

    아니, 대체 뭘 하셨기에 코스믹 호러 소리가 나오는 거야?

    나중에 영상이나 찾아서 한번 봐 줘야겠어. 이거.

    “휘우~ 역시 근원을 제거하면 방어도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 던전도 무사히 끝났는데요. 그러면 저는 재정비를 위해 방송을 끄도록 하겠습니다.”

    -더 보여줘!!!!!

    -안 돼!!! 10분만 더 하자!!! 5분만!!!!!

    “그러면 다음에 또! 척량!”

    컁! 컁!

    척량이 귀엽게 짖으며 여우 앞발로 쿵푸 자세를 취한다.

    나는 그 척량의 옆에서 함께 다리 하나를 들고 쿵푸 자세를.

    그때 정지벽이 기다렸다는 듯 내 옆에서 똑같은 자세를 취해 주었다.

    그리고 별하나가 훌쩍 정지벽의 어깨에 점프해서 올라탔다.

    애드립치고는 그림 엄청 좋은데?

    -오, 사단 쿵푸!

    -다들 클로징 미리 연습한 거야?

    “그러면 다음에 봐요~!”

    아쉬움으로 시청자들이 절규를 하는군.

    좋아. 역시 방송은 짧고 굵을수록 좋은 거지.

    괜히 또 설명을 한다고 시간만 보내면 그건 또 그거대로 구독자만 내려가.

    방송을 종료하는 것과 동시에 모두에게 메시지가 울렸다.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

    밖으로 나가는 포털이 열렸다.

    * * *

    “와, 라이브 엄청 성공했네요!”

    “다들 무슨 생각으로 클로징하신 거예요? 촬영하다 놀랐습니다.”

    “싫어요?”

    “아뇨아뇨. 고맙죠. 그런데 놀라서요.”

    내 말에 정지벽과 별하나는 서로를 바라보더니 푼수처럼 웃었다.

    “재미있어 보여서 따라 해 봤습니다. 제가 따라 하니까 별하나 씨까지 끼어들 줄은 몰랐지만요.”

    그렇게 말하며 정지벽이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쭉 켠다.

    워낙 거구의 몸에 조각 같은 근육까지 자르르 울리니 마치 대호(大虎)가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에 정지한과 동생, 그리고 성광이 포털에서 나왔다.

    어라? 성광의 표정이 밝네?

    “형제님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랭킹 안에 잘 드셨군요?”

    “당연하죠. 우리가 어떤 팀인데요. 그나저나 엄지척 형제님의 플레이를 틈틈이 봤는데 엄청나더라고요. 포털에 가서 패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광신도, 성광이 당신의 실력과 발상에 놀랍니다.

    -2따봉을 받았습니다.

    진짜로 꽤 감탄하신 모양인걸? 2따봉이 달달하구만.

    전기톱, 짐을 실어 담는 트랙터, 각종 공구를 든 사람들까지.

    모두가 우리에게 축하 인사를 한다.

    “영상 잘 봤네, 엄 씨!”

    “오! 김 씨 아저씨?”

    “밖에서 대기하던 우리들도 놀랐다고!”

    이거 참 고마운걸?

    김 씨 아저씨가 내 어깨를 툭툭 친다.

    “엄 씨 덕에 헌터 보조원 인식도 좋아지고, 다른 헌터들도 확실히 덜 무시하더라고.”

    아아, 버섯 숲 던전 때 보조원분들도 영상에 찍혔었지.

    그때 죽을 둥 살 둥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우리와 함께 이분들이 활약하는 모습도 제대로 담겼었다.

    그게 또 사이버 렉카부터 해서 여기저기 퍼 날라지면서 헌터 보조원에 대한 기사가 몇 개 더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지.

    “오늘 영상도 멋졌어.”

    “하모, 엄 씨가 누군데. 최고지!”

    -헌터 보조원들이 당신의 라이브를 크게 응원합니다.

    -52따봉을 받았습니다.

    저쪽에서 보조원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차차, 이러다 전리품 뺏기겠네. 빨리 가야겠어.”

    “다른 보조원들보다 먼저 챙겨야지. 이거 늦으면 전리품 줄어.”

    타워 디펜스 던전은 그게 문제다.

    워낙 많은 헌터들이 뒤섞이다 보니 누가 잡은 몬스터인지 정확하게 규명이 어렵다는 것.

    그것을 하는 게 헤드 스태프들인데 또 사람 일이라는 게 정한 대로 움직이지는 않지.

    네 거, 내 거가 애매한 전리품들은 먼저 챙기는 쪽이 유리하다.

    “우리 갈 테니까 푹 쉬고 있어. 염라두네 보조원들한테는 안 질 거니께.”

    그리 말하더니 뜨끈한 아메리카노를 건네준다.

    “어, 저 괜찮은데…….”

    “내가 산 거 아니야. 서포터즈에서 나눠준 거야. 엄 씨네 커피 트럭 왔다 갔거든.”

    아. 촬영하는 동안 검지에서 커피 트럭을 쐈던 모양이다.

    덕분에 보조원 아저씨들도 추운 데서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면서 영상 보며 기다렸던 거겠지.

    “고맙습니다!”

    “우리가 고맙지. 엄 씨가 많이 잡아서 우리도 보너스 나올 거 같아.”

    그리 말하며 보조원들이 모두 게이트로 향한다.

    내게 엄지를 들어서 응원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와, 기분 이상하네.’

    [이것이 인망, 인망입니다. 주군! 천하, 천하를 가지소서!]

    역시 이놈은 제갈량이 아니다. [황천의 뒤틀린 제갈 8호]지.

    나의 제갈공명이 이럴 리가 없어.

    그렇게 척량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헌터들을 위한 의자로 향했다.

    전투 한 번 하고 나니까 힘이 쭉 빠지는군.

    멍하니 그렇게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니 옛날 보조원 생각도 나고 기분이 싱숭생숭해.

    ‘에이, 일 생각이나 해야겠다.’

    [희망의 성채]는 참 특이한 던전이지.

    애초에 진입하는 게이트가 여러 개라 각기 다른 게이트로 던전에 들어갈 수 있고 말이지.

    다만 행정상 편의를 위해 하나의 입구를 하나의 회사만 쓸 수 있도록 규칙은 정해 놨다.

    실제로 지금 내가 쓰는 게이트는 ㈜정진에서 쓰는 게이트.

    뭐, 다음 타임 때는 다른 회사가 이쪽 입구를 쓰겠지만.

    그나저나.

    무척이는 아까부터 한 마디도 없네?

    밝은 표정의 성광과는 달리 무척이 이놈은 시종일관 한 마디도 하지 않는군그래.

    대체 내가 싸우는 동안 다른 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정지한이 다가와 우리에게 가볍게 인사한다.

    “대표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어요~”

    사무적인 인사를 밝은 목소리로 나누고는 다들 의자에 앉아서 미리 세팅된 음료수를 홀짝인다.

    “오늘은 모두 피곤하실 테니, 뒷정리는 삼 일 후에 하겠습니다. 삼 일 후 오후 1시 미팅 룸에서 모이죠. 그러면,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그리 말하고 정지한은 정중히 인사하고는 뒤돌아서서 스태프들과 보조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저 인간은 안 쉬네. 지치지도 않나?

    나와는 달리 레벨이 있는 것 같던데.

    “형, 가자.”

    무척이는 커다란 체구로 내 어깨에 이마를 툭 기댄다.

    “어? 그래.”

    죽은 사람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야.

    일단 재촉하는 기색이니 빨리 일어나야겠어.

    그렇게 모두와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그런 걸까.

    * * *

    장비는 보통 몬스터의 체액이나 육편 따위가 제법 묻게 되지.

    보통 던전 입구에서 대충 닦고 오지만, 제대로 세척하려면 집에 있는 장비 전용 보관함에 넣는 게 최고.

    때문에.

    ‘전투가 끝난 후’에 탑승하여 이동하기 위한 특수 차량이 존재하는 이유가 이겁니다.

    독액 같은 건 대충 털긴 하는데, 그래도 최고급 송아지 카시트에 오크 피를 묻히는 건 좀 그렇잖아?

    그래서 이런 특수 차량이 있는 거지.

    침대와 샤워 룸이 들어 있는 거대한 리무진 버스.

    여기서 우리는 대충 씻고 방어구도 기계 세척에 넣어놓고 멍 때리고 있다.

    “봐 봐, 형. 내가 촬영한 거야.”

    녀석이 내 앞에 영상을 하나 띄웠다.

    무척이가 구매한 공용 스킬 중 하나인 [쾌적한 시청자 생활]이라는 스킬.

    [쾌적한 시청자 생활]은 내가 가진 [전방위 영상 촬영 스킬]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갓튜브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다른 종류의 채널을 볼 수 있고, 원한다면 혼자만 보는 게 아니라 영상을 띄워 다른 이에게도 보여 줄 수 있지.

    “뭘 보라는 건지.”

    -오, 시청자 여러분. 보이십니까? 희망의 성채에 내가 왔다! 앗, 엄지척도 방송하고 있다고요? 에이~ 거기는 보지 마아~ 여기 봐 줘~ 거 괜히 얼굴 때문에 누르러 갔다가 내 방송 놓치면 섭하지~

    방송 BJ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나를 의식하고 있군.

    멘트에 조급함까지 느껴지는 데다가 한 명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 열심히 입을 털었다.

    -엄지척 보여 달라고요? 진짜 너무하시네! 차라리 엄지척 상사인 정지한! 정지한 보이십니까?

    [주군……. 이 BJ 콘텐츠가 진짜 없나 봅니다. 이 사람 미래가 걱정되네요.]

    희망의 성채는 나올 거 다 나와서 특히 그래.

    뭔가 새로운 거 짜내기가 쉽지 않거든.

    그래도 타워 디펜스다 보니 중간 이상은 시청자가 보장되는데, 음…….

    아무래도 나랑 방송이 겹쳤던 게 문제네.

    -자… 정지한이 보이고요. 줌업으로 당깁니다!

    성벽 위에 점으로 보이는 게 정지한인가.

    과연 줌을 당기니 정지한이 꽤 선명하고 크게 보이는군.

    성벽 밖의 광야.

    정지한은 그 광야를 걷고 있었고, 그 뒤로 성광과 무척이가 전열을 가다듬으며 걸어갔다.

    성광은 각종 버프를 정지한에게 걸었고, 무척이도 [기록사]라는 직업 능력으로 보조 마법을 여럿 거는 게 보인다.

    -아직 개미들이 나오기 전이라 서포터들이 보조 마법을 걸어 주는 중이군요. 오오, 말하는 지금 개미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거이거, 벌써부터 전열에서 벗어나 단독으로 나오다니, 자칫 위험할 수 있겠는데요?

    그의 말대로 미친 짓이었다.

    나도 성벽 위에서 개미를 어느 정도 정리한 후에 바로 포털을 향해 갔으니까.

    그러나 정지한은 처음부터 성벽 밖에서 스킬을 쓸 준비를 한다.

    이윽고 포털이 열리고 개미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개미들이 그를 포위하고, 후열에 있던 동생과 성광이 긴장하고.

    그리고 이어진 장면은 도무지 의미를 알기 어려웠다.

    정지한.

    그가 차가운 얼굴로 손을 뻗는 순간, 그의 등 뒤로 톱니바퀴의 환영이 살짝 스쳐 지나간다.

    배럴(Barrel).

    그와 동시에 그의 시야에 닿는 곳이 사라진다.

    마치 세상을 하나 통으로 잘라낸 것처럼 아예 사라진다.

    ‘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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