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화
자, 남은 건 라이브 타임인가.
방송을 켜자마자 라이브 공지를 보고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입장하기 시작했다.
-1빠!
-엄지, 오늘은 어디야? 오올! 희망의 성채?
-디펜스 하러 온 듯? 슬슬 엄지도 그거 뛸 때가 되었지.
-엄깅이 이참에 타이틀 따버리자!
-여기 엄청 박 터지는 곳인데 타이틀 딸 수 있으려나?
↳타이틀 못 따도 되니까 그냥 무사히만 돌아오면 좋겠다.
↳2222
↳3333
채팅 창이 한꺼번에 올라가느라 정신이 없다.
“안녕하세요. 엄지검지! 엄지척입니다. 오늘은 희망의 성채에 와 있는데요, 이미 많이들 아실 거예요. 갓튜브에도 영상이 많은 만큼 유명한 곳이니까요.”
-유명 갓튜버들은 무조건 건너가는 곳임. ㅇㅇ
-희망의 성채는 이미 다들 많이 공략해서 엄지만의 영상이 나올까 모르겠네.
-까딱 잘못하면 그저 그런 경기 중의 하나가 되지 않나?
-엄지야. 그냥 살아서만 돌아오자. 괜히 부담 갖지 마!!
옛날 노래에 따뜻한 봄바람은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하지 않았던가.
현대에 와서는 좀 달라졌다.
드론이 사람 인건비보다 싸면 미싱은 드론이 돌리고 있고, 사람은 대신 이렇게 갓튜브를 돌리지.
사람 목숨이 생으로 걸려 있어도 엔터테인먼트는 돌아가고 있는 세상이다.
헌터의 죽음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의 떡밥으로써 소비가 되고, 그 슬픔조차도 콘텐츠가 되고 있지.
그러다 보니 자신이 응원하는 헌터가 괜히 영상 욕심내다가 사망할까 봐 걱정하는 팬들도 있는 거고.
“하하하, 오늘 우리는 특별히 3인 1팀으로 진행하게 될 겁니다. 오늘 저와 함께하실 두 분을 소개합니다! 우선 강철 탱커! 어떤 공격도 그녀의 벽을 뚫지 못하리. 정지벽!”
그러자 정지벽이 기다렸다는 듯 엄격, 근엄, 진지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성벽에 발 하나를 척 얹는 게 아닌가.
아니, 언제 저렇게 간지 작살 포즈와 표정을 연습하신 거야?
이건 샤워하고 나와서 거울 한두 번 보고 연습해서 되는 게 아니다. 각 잡고 매일 연습을 해 봐야 나오는 표정.
‘정지벽 씨, 분량 욕심 많으셨구나.’
-정지벽 언니!! 벌써 성채를 찢으셨다!
-와……. 쇠질을 얼마나 하면 저런 근육을 만들 수 있는 겁니까?
↳하체 중심으로 단련을 하고 상체를 틈틈이 조지면 됩니다.
↳아니. 교과서를 중심으로 국영수 위주로 단련하라고 하시지, 왜?
-정지벽 : 정하 그룹의 라이징 스타. 탱커지만 근거리 딜러로서도 뛰어난 면모를 지닌 전사 캐릭터. 좋아하는 것 고기 전반. 헌터 전문 잡지 중 하나인 [올해의 근육]에서 2년 연속 인기투표 1위 달성. 미래가 기대되는 슈퍼루키 TOP 100의 46위.
그렇군. 이건 나도 모르는 정보였어.
[올해의 근육] 인기투표라니.
이미 헬스 마니아들에게 유명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다들 광배근을 어떻게 만드는가,
저 떡 벌어지는 어깨 삼각근은 어떤 운동으로 깎아야 효율적인가 난리다.
애초에 정지벽은 외국 혼혈의 피가 들어갔기에 근수저가 되는 거다, 우리 같은 동양인은 무리다, 아니다. 저기에서 운동을 안 했으면 근돼 루트로 직행이었다… 하며 옥신각신 싸움이 일어났다.
헬스는 심오하군.
“자, 그러면 어떤 지도든 밝히리라! 뛰어난 추적자이자 딜러이신 별하나!”
별하나는 이번에는 양손을 명치께에 모으고 무슨 고향 잃은 엘프 같은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먼 하늘을 바라보는 아련함.
자연스럽게 들고 있는 활.
거기다가 저 헌터 위장복, 잘 보니 마력을 넣으면 희미하게 마력광(魔力光)이 빛나면서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옷이다.
‘그렇군. 별하나 씨는 장비도 준비하셨어.’
위장복이라 걱정했는데 마력을 넣으면 뭔가 다른 역할을 하는 건가?
[주군, 그… 컴퓨터 본체나 키보드나 마우스에 괜히 LED 박아서 빛나는 거 사서 쓰잖습니까?]
그렇지. 아무 성능도 없지.
그저 빛날 뿐이지.
밤에 피곤한 눈으로 보면 약간 망막이 얼얼해질 때가 있고.
[제 생각에 그런 걸 사서 입으신 것 같습니다.]
깨달았다.
정지벽과 별하나는 같이 연습했다.
그게 아니면 서로에게 웃음 한 번 안 흘리고 짠 듯이 이런 포즈를 취할 리가 없지.
……미치겠군.
내가 만약 여기서 못 참고… 웃으면…….
[이 상황에서 웃으면 평생의 수치로 남아 주군을 죽일지도 모릅니다.]
그래.
띠링-
-[초보자 스킬 : 견고한 마음]이 발동합니다.
스킬이 발동하는군.
시스템도 지금 이 상황이 전시라고 판단하는 거지?
전시가 맞아. 웃으면 죽는 거야.
근데 시청자들이 웃으면 어떡하지?
이건 좀 걱정이 되네.
-별하나! 그녀는 여신인가? 별하나! 그녀는 여신인가? 별하나! 그녀는 여신인가? 별하나! 그녀는 여신인가? 별하나! 그녀는 여신인가? 별하나! 그녀는 여신인가? 별하나! 그녀는 여신인가? 별하나! 그녀는 여신인가?
-별하나 : 정하 그룹 산하 기업인 ㈜정진에 소속된 딜포터. 양측 모두 출중한 능력을 지녔으며, 좋아하는 것은 [가치 있는 것]. 헌터 전문 서바이벌 잡지 중 하나인 [쉐프의 서바이벌]에서 인기투표 1위를 한 번 달성한 전적이 있음. 미래가 기대되는 슈퍼루키 TOP 100의 67위.
↳님은 대체 어디서 이런 정보를?
↳요즘 위키가 풍성함.
오호?
생각보다 다들 진지하게 봐주고 있잖아?
아아, 그렇구나. 나는 두 사람의 푼수때기 같은 모습을 늘 봐 왔으니까 웃음이 터지는 거고.
시청자들은 한정된 영상으로밖에 둘을 모르니까 감탄하는 거고.
-별하나… 어째서 이름도 별하나야…….
[잘됐습니다, 주군. 본디 ‘■■는 이름도 ■■네.’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것이 코어로 가는 직행열차라 하옵니다. 별하나는 만족할 겁니다.]
……그래. 다행이다.
그러면 미백 스킬 [백면공자]에 힘입어 활짝 웃어 보실까.
영업 미소 포메이션 α(알파)!
“자, 그러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던전 공략이 이루어질 텐데요. 잘 디펜스할 수 있을지. 오늘도 즐거운 시청을 부탁드립니다!”
나는 햇살이다. 태양이다.
나는 햇살과 한 몸이며 이를 반박하는 자는 우리를 공격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주군, 좋은 자세입니다! 무념무상 속에서 좋은 그림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 다행이다.
나는야. 엄햇살. 엄카리스웨트. 엄청량.
그렇게 별하나와 정지벽에게 다가갔다.
둘 다 엄격, 근엄, 진지한 포징을 하고 있다가 내가 다가가자 어색하게 자세를 푼다.
정지벽이 입 모양으로 괜찮았냐고 묻기에 대답 대신 엄지를 척 들어 주었다.
그 말에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주먹을 탁 부딪치는 것이, 역시나 예상대로 같이 연습했군.
“사우나에서 특훈했어요.”
방송에 안 들릴 만큼 아주 작게 소곤거리며 별하나가 말했다.
음, 차라리 이런 모습이 방송에 나오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거 나름대로 귀엽지 않나? 본모습이기도 하고.
[멋지게 보이고 싶어 하시는 것 같으니 그런 셈 합시다, 주군.]
그래.
생각해 보면 그래. 정지한에 비해 굉장히 인간미 있지 않나.
일 분, 일 초라도 낭비하지 않고, 언제나 똑같은 옷으로.
심지어 정장에 코트 입고 온 정지한을 생각하면 두 사람은 굉장히 사람다운 편이다.
나의 물주님께서는 출근길인지 사냥하러 온 건지 구분이 안 가는 옷차림을 하고 계신다.
“저기 정지벽이다. 정하 그룹 오너 혈족이라고 하던데……?”
“저 새끼는 엄지척 아니야? 따봉충 새끼가 여기는 왜 왔대?”
“쯧, 저것들 때문에 업적작에 지장 생길 거 같은데…….”
응원하는 팬들과는 반대로 다른 헌터들의 반응은 냉랭하군.
응~ 나는 햇살이야~ 난 일단 웃을 거야~
[여기서 기죽거나 상처받는 기색을 보이면 팬들은 또 불안해집니다, 주군!]
그렇구나. 아무래도 나를 따라온 분들이니까 내가 힘들어하면 같이 힘들어하겠군.
헌터로서 목숨 걸고 몬스터와 전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렇게 선배 헌터들에게 욕먹어 가면서 상처받는 건 또 속상하겠지.
[네. 그런 셈이죠.]
그러면 웃자.
어쨌거나 지금 보여 주고 싶은 모습은 미운 오리 새끼 엄지척이 아니라, 밝고 강한 엄지척이잖아?
괜찮아. 본좌는 전지전능한 햇살이며 지옥에서 온 캔디니까.
사람 대신 몬스터 대가리 몇 번 깨주면 들어가겠지.
[햇살의 정의가 이상…해지고 있지만 화면은 잘 받고 있습니다. 주군! 청량하다는 댓글도 달리고 있어요!]
잘 알아보셨군요.
제가 이 시대의 엄청량입니다.
그나저나 무공 사용자로서 기감을 갖게 돼서 그런지 이런 뒷담화도 이제는 잘 들리는군.
[표면적으로는 함께하는 팀 디펜스이나 개인 랭킹 역시 매기는 개인전이니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 우리도 1, 2, 3위를 전부 우리가 깔아 버리려고 둘둘로 갈랐잖아?
곱게 안 보이겠지.
“엄지척 요즘 갓튜브에서 돈 좀 만졌겠어? 장비 봐라~”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여러분.
제 장비는 최대한 싼 거 사서 연금술로 벼려낸 겁니다.
이 브로치도 드롭 템이다, 이놈들아.
꼬우면 너희들도 행운 +5에 [특수 던전 최초 무희생 정복자] 타이틀 얻어 보든가.
[두 아이템이 상승효과를 주어서 던전 특수 아이템을 먹기 쉬워졌지요. 초보자 패키지 자체에도 드롭률 상승이 붙어있고요. 덕분에 세계수의 아주 작은 가지도 그렇게 얻을 수 있었죠.]
그렇지.
아이템 획득률 상승을 겹치고, 겹치고, 겹쳤다.
하지만 아마 이 사람들 눈에는 내가 운 좋게 버스에서 각성하고, 사람들을 구하다가 정하 그룹 눈에 띄어 들어가게 된 걸로 보이겠지.
하지만 대놓고 시비를 걸지 않은 것은 저 사람들도 가장 중요한 것은 퀘스트 클리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터.
“별하나 씨, 정지벽 씨. 준비는 되셨죠?”
“물론입니다.”
“당연하죠!”
두 사람의 대답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희망의 성채에 적이 나타납니다.]
[희망의 성채를 지키기 위해서는 한 시간 동안 방어에 성공해야 합니다.]
1시간이라. 지금의 내 마력&내공 랭크면 검기를 1시간 내내 써도 남을 정도는 된다.
문제는 역시 적이 얼마나 강하냐는 거겠지만.
브리핑에서 공부한 것만으로는 체감이 잘 안 된단 말이지.
레벨 50대의 딜러가 일격에 한 마리를 처치할 수 있다는 게 대체 어떤 수준이야?
두두두두두두-!
생각에 잠긴 사이.
희망의 성채 멀리 떨어진 곳에서 포털이 열리는 게 보인다.
허허벌판에 세워진 희망의 성채.
그리고 먼 곳에서 거대한 포털이 아침 해처럼 떠오르고.
각각의 성벽에서 화살과 마법이 통하지 않는 먼 거리에 생긴 포털은 인간의 공포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브리핑 때 보았던 몬스터들이 무시무시한 숫자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