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98화 (98/305)

제98화

“오랜만입니다. 모두 잘 쉬신 모양이군요. 마력 수치도 제대로 다 차 있고, 건강상의 문제도 없어 보입니다만.”

“그걸 어떻게 아는 거죠?”

별하나가 속삭이자, 정지벽이 함께 조용히 속삭였다.

“글쎄요. 아마 방에 들어올 때 마력을 자동 측정하는 장치가 있는 걸걸요.”

그래도 그걸 측정해서 1초도 안 늦게 들어와서 문을 연다?

뭐 하는 양반이시지?

다른 팀원 모두 같은 생각인지 살짝 핼쑥해졌다.

정지한은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서 시간을 보더니 다시 탁, 덮는다.

스마트 워치가 버젓이 있는 이 시대에 회중시계라니, 하다못해 휴대폰으로라도 보지 않던가.

거기다 딱 봐도 아티팩트 같은걸. 저거.

“일단 보상 이야기부터 하죠. 일전의 신전 던전의 대가로, 꽤 많은 보상이 들어왔습니다. 우선 ㈜정진과 여러분들은 10년간 면세 특권을 갖게 됩니다. 이를 이용해 사업을 해 보시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겁니다. 헌터 특별법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업체도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죠.”

미친 세상이다.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소시민의 자아와, ‘내 목숨값 생각하면 이 정도는 쌉가능이지.’ 하는 오만방자한 헌터의 자아가 멱살잡이를 시작하는군.

“어, 대신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끌려가겠군요.”

“정권마다 다르겠지만 면세 특권을 받은 만큼 토하게 일을 시키겠죠. 하하하, 엄지척 씨께는 좋은 소식이겠군요.”

[주군, 저놈의 충성심이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정지한은 사장이야. 나한테 왜 충성을 바쳐? 돈은 내가 받고 있는데?

아무튼 올라가려면 어려운 던전일수록 좋으니까 희소식이 맞긴 하지.

“그리고 엄지척 씨의 경우에는 다들 갓튜브로 보셨겠지만 여의도 식물 던전을 처리하여, 별도의 추가적인 대가를 받았습니다. 바로 상급의 단약(丹藥)이죠. 이건 우리 팀의 전력에 직결되는 문제라 여기서 언급하는 겁니다.”

[다, 단약? 진짜로?!]

척량이 놀라서 뻐끔거렸다.

내 심장도 터질 것 같다.

방금 전까지 10년 면세에 사업체 면세라는 말에 죽창을 들던 소시민의 자아가 슬그머니 무기를 내려놨어.

별하나도 어이가 없는지 되물었다.

“단약이요? 그걸 내줬다고요? 그 정부가?”

그녀의 입이 별 모양으로 뻐끔거리는군.

어떻게 하면 저게 되는 거지? 신기해. 정지벽도 그런 별하나와 함께 경악을 터뜨리며 부러워하는데 오직 성광만이.

“물건이란 결국 인연이 닿아야 오는 것이지요. 이것은 모두 형제님의 공덕이 돌아온 것입니다.”

성광이 이놈은 어디 밀고 노승처럼 말하고 있다.

이놈 대체 어느 종교의 뭐 하는 광신도인지 심히 의심스러워.

척량이 말했다.

[단약(丹藥). 헌터가 아니더라도 효과가 좋아서 모두가 원하는 약이죠. 그만큼 값비싸고, 헌터들보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들이 먼저 차지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들었습니다.]

그래. 개중에는 단약을 먹다가 무슨 각성석처럼 각성하는 예도 있었고, 하급 단약이 수억부터 시작하니까 장난 아니지.

과거 출처 모를 단약이라고 하면 식품 위생법을 먼저 걱정했었는데, 세상이 바뀌었다.

[특히 단약은 무공 사용자의 내공을 영구적으로 증가시켜 줍니다. 그렇기에 중국에서는 무공 사용자를 위해 아예 단약을 공급하기도 했죠.]

무공 붐이었을 때 그랬지.

지금은 걔네들도 결국 스킬 메타로 갔다만, 그땐 그랬지.

정지벽이 새 육포 봉지를 뜯으며 말했다.

“정부에서 엄지척 씨를 굉장히 높게 평가한 것 같네요. 하긴, 레벨이 느리게 오르는데 이미 그 실력은 압도적이니 당연히 모셔야지요.”

“몸값 엄청 오르는 거 아니에요?”

별하나는 불안해진 모양이군.

하긴, 이 사람들은 내가 왜 갓튜버에서 관심 종자질을 하고 있는지 모르니까 더 불안해지는 걸 수도.

하지만 정작 나는 태연한 게 역시 그거 때문이겠지?

‘이미 환상의 조각이 있으니까.’

[환상의 조각]

등급 : A

분류 : 장신구 (아티팩트)

먼 옛날. 환상을 조각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어떤 초월자가 생각했다.

그는 그렇게 했다.

장착 시 마력 등급 한 단계 상향. *이 아이템으로 마력은 A를 초과할 수 없음.

장착 시 스킬 [환상 구현] 획득.

환상 구현 : 마력의 소모 없이 원하는 환상을 제한 없이 만들어 낼 수 있다. 환상은 시각에만 영향을 끼치며, 시전자의 의지가 끊어지면 소멸한다.

이미 이걸로 지난번 던전에서 개깡패 짓을 했기 때문에 별 욕심이 안 생긴단 말이지.

차라리 무척이나 줘서 수명 연장의 꿈이나 이루는 게 낫지 않을까?

“형제님께서 강해지는 것은 우리 모두의 흥복이지요. 축하드립니다, 형제님.”

성광은 고요히 성표를 손으로 그리고(하는 짓마다 종교가 수상하다), 정지벽 씨는 엄지를 하나 올렸다.

-헌터, 별하나가 당신의 행운에 감탄합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광신도, 성광이 당신의 행운을 축복합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헌터, 정지벽이 당신의 행운을 축하합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들. 너무 착해!

“아이고… 모두 고맙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정지한이 왜 이 사람들을 좋아하는지 알겠다.

일단 질투가 없어.

사회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누군가를 순수하게 축하해 주는 집단을 만나는 건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행운.

사촌이 논 사는 걸 SNS로 공표하는 이 시대에 이런 팀 만나는 건 거진 로또 당첨 확률이랑 비슷할 테니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니까요. 엄지척 씨는 이걸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물건은 미팅 끝난 후 드릴 테니 가지고 가시고. 우선은 다음 사냥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죠.”

그의 등 뒤에 있는 칠판이 좌우로 갈라지며 거대한 스크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전처럼 레벨 제한 던전이 국내에 다시 생긴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일정대로 움직이면 됩니다.”

그런가. 한마디로 지난번 같은 나쁜 서프라이즈는 없다는 뜻이겠군.

“그건 알겠는데 그래서 우리가 가야 하는 던전은 어디죠?”

화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희망의 성채(디펜스 던전)]

스크린에는 높고 거대한 성이 나타났는데, 어……. 디펜스 던전이 벌써?

“형, 저거 ‘조건’이 설정된 던전 맞지?”

“그래. 옛날에 몇 번 전리품 수거하러 들어갔었어.”

심지어 거기 지리를 내가 다 꿰고 있으니 상당히 유리하다 할 수 있겠지.

“다들 디펜스 던전에 대해서는 대충이나마 아실 겁니다. 헌터 자격증 시험 때 나오니까요.”

당연하지. 그냥 시험에만 나오는 수준이 아니라, 인기 자체도 엄청나지 않던가.

[갓튜브 헌터 관련 콘텐츠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하죠.]

내가 구입한 [전방위 영상 촬영] 스킬은 다른 헌터들도 헌터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데, 이걸 이용해서 웅장한 디펜스전을 연출할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반지의 제왕 같은 거대한 대서사시의 연출까지 가능한 던전이랄까?

“영상에 보이는 것처럼 요새를 지키는 게 각성자들의 역할이고, 그 숫자는 백여 명. 레벨 제한이 있는 던전은 아니지만. 고레벨이 난입하면 보상 자체를 주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레벨 제한이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지. 목숨 걸고 노동을 했는데 보상이 없으면 다들 안 가려고 하지 않나.

던전 브레이크를 막기 위해 강제 징발을 해야 하는 상황이면 어쩔 수 없겠지만, 디펜스 던전은 인기가 많아서 그럴 일이 별로 없긴 하지.

[검색해 보니 레벨 56부터 보상을 못 받는다고 합니다. 경험치도 오르지 않고. 그 때문에 주로 레벨 45~55 사이로 많이 들어온다고 하네요.]

한 번에 무려 백 명의 헌터가 들어가는 곳.

성벽 위에서 몬스터들을 섬멸하며 수성전을 하는 던전!

그 웅장함에 모두가 매료되곤 했지.

[고레벨 헌터일수록 갓튜버는 때려치우기 때문에 상위 레벨 던전일수록 영상이 점차 진귀해지는 법. 그런 의미에서 저 희망의 성채는 인기 갓튜버가 되기 위한 왕도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이미 다양한 플레이들이 나왔기 때문에 튀기 어렵겠네.

[그렇습니다. 어어, 하고 따라가다가는 엄지척만의 ‘희망의 성채’가 아닌, 누구나 보여 주는 그저 그런 디펜스전이 될 수 있습니다.]

와……. 연출 참 골치 아프다.

[일단 정지한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듣고 주군의 스타일대로 바꿔 보죠.]

그래.

정지한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두 개의 팀으로 나뉠 겁니다.”

“네? 팀을 둘로 나눠서 동시 공략을 한다고요? 그래도 돼요?”

“예. 희망의 성채는 팀전입니다. 총 4개의 팀이 동서남북 방진을 짜고, 각 팀마다 개인전 랭킹이 결정되죠. 때문에 우리 여섯이 한 팀으로 참가하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우리가 두 팀으로 나뉘면 상위 랭크를 다 얻을 수 있으니까요.”

[한마디로 타워 디펜스라는 단체전 안에서 개인전 랭킹도 신경 쓰겠다는 거군요.]

응, 각 팀의 1~3위들은 특별한 보상을 주거든.

그래서 방심하고 협동이 무너지면서 전멸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존재한다.

[목숨이 걸렸는데 방심을 한다고요?]

그래. 그러더라.

안 믿기지?

나도 안 믿겨.

겨울 산에 꽁초를 갈기듯 인간은 너무나도 쉽게 이기적이 되지.

그래서 오히려 평균 능력이 살짝 낮은 팀이 사상자가 적다는 기사가 있더라고.

그쪽은 보상이 문제가 아니라 클리어가 문제니까.

뭐, 살짝 능력이 낮다고는 해도 이미 모두 공략을 숙지하고 장비를 챙겨 오는 거라 괜찮지만 말이야.

별하나가 말했다.

“셋으로 가른 것은 트롤을 방지하기 위함인가요?”

“네. 그런 일은 사실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트롤 짓을 하든가, 아니면 타고나기를 사회성이 없는 분이 껴서 사고를 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고의로 사고 치는 놈을 트롤, 모르고 사고 치는 놈을 ‘관심병사’라고도 부른다.

의외로 트롤은 거의 없고 관심병사가 대부분이다.

놀랍게도.

대부분 헌터들의 첫 집단 공동 활동이 이 타워 디펜스니까.

갓 각성한 새내기들이 길드의 지원을 받아 쑥쑥 커서 타워 디펜스를 시작하는데 여기 오기 전에 미리 좀 단체 생활의 배려란 걸 깨닫고 들어오면 매우 좋다.

하지만 길드에서 귀여운 내 새끼… 하며 안고 키우는 애들이 있지.

[중학생 각성자들 말인가요?]

초등학생 때 각성한 경우도 있어.

걔들은 학교도 면제니까 집단생활을 배울 일이 없는 거지.

[키즈 모델로 뛰는 경우는 알고 있습니다, 주군.]

그래. 사람들은 어린 것을 좋아해.

사람도 동물도 다 어릴수록 좋아하지.

그렇게 키즈 모델이 되기도 하고, 우상이 되며, 스태프들을 마음에 안 든다고 괴롭히거나 때리거나 하는 경우도 있고.

[아, 지난번에 기사에서 엄마 등에 ‘똥구멍’이라고 써서 붙인 어린이 헌터 이야기는 봤습니다.]

그래. 이상한 소리지만 걔는 그래도 부모를 때리진 않았잖냐.

놀랍게도 부모한테 스킬을 써서 죽일 뻔한 경우도 있단다.

그러니 각성은 최소한 초등학교는 졸업하고 나서 되는 게 좋지.

사실 중학생도 빠른 편이라고는 생각해.

[그런 애들이 자라서 이 타워 디펜스를 하러 오는 거군요.]

그렇지. 아마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을걸?

정지한도 나보다는 연하니까.

[최악의 상황이면 셋이서 어떻게든 할 준비를 해야 할 수도 있겠네요, 주군.]

제정신 박힌 길드면 애들한테 시청각 교육이라도 할 거야.

헌터 일이 아이 정서적으로 매우 좋지 않은 직업이지만, 이런 세상이니 교육이라도 잘하길 바라야겠지?

제발. 제발 제대로 된 팀이 매칭되기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