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정진.
정지한이 대표이사로 있는 정하 그룹의 자회사.
팀은 우리 팀뿐이지만, 요새 아주 그냥 잘나가다 못해 기세가 우주로 로켓 발사를 하고 있다.
대기권은 돌파한 지 오래고 이제 우주권을 향해 날아가고 있달까.
이유?
여러 팀 잡아먹은 40레벨 제한 던전 클리어.
거기에 이건 깨라고 만든 거냐? 싶은 20레벨 제한 던전 클리어도 해냈지 않나.
그리고 내 입으로 이런 소리 하기 좀 그렇지만 내가 좀 많이 떴지.
욕과 칭찬을 동시에 받다 보니 주목 자체도 많이 받았고, 또 서포터즈도 날이 갈수록 커져 가고 있고.
거기에 이번에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저레벨 던전까지 진입이 가능하다는 사실까지 밝혀졌고.
내가 기업 데스크 문화 쪽은 잘 모르지만, 이 정도면 본체인 정하 그룹도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짐작은 되네.
특히 여의도 건이 그랬지.
국회의사당이 있는 대한민국 입법 허브 공간이자 각종 증권 회사, 은행 본사, 방송국이 모여 있다 보니 매번 땅값이 수직 상승하는 곳.
어떤 의미로 상징성도 높은 것이, 영화에서 한국이 망했다 하면 맨날 여의도부터 폭파시키더라.
특히 그놈의 뜬빛둥둥섬에 히어로 연구소가 있든가, 아님 뭐 종말 비슷한 게 와서 물에 잠기든가 하는 게 요즘 트렌드다.
결계석까지 뚫고 등장한 20레벨 제한 던전을 클리어한 대가는 아주 달달한 게 개꿀이었다.
그 외에 나한테 돌아올 대가도 상상 이상이긴 하겠지.
그것들도 기대가 되지만 대우 자체만 봐도 이미 일류 헌터급으로 받고 있다.
특히 지금 내가 있는 이 장소에서 연금술을 하고 있는 게 바로 그 ‘대우받는 중’의 증거니까.
정하 그룹 자회사인 정비가의 회사.
㈜정비 중공업.
정비(整備).
기계 정비 할 때의 그 정비를 그대로 가져다 쓴 이 업체는 기업 명칭과 다르게 제작, 발명, 생산이 전문이지.
각종 헌터 장비들을 생산하는 것은 물론 군납도 하는 중공업 회사!
대한민국 응용과학의 심장이라고도 부르고, 또 음모론자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정비(整備) 사옥 지하에는 외계인이 감금되어 있다. 정비가가 필요할 때마다 고문해서 정보를 토해내게 하고 있다.
그러했다.
이 회사에서 내는 신형 기술들은 타 회사에서도 좀처럼 따라 하기 어려운 것들인 데다가 그 특허가 벌어들이는 수익도 어마어마해서 어찌 보면 모회사 정하 그룹은 정비(整備) 그룹의 딸랑이로 보일 지경.
그리고 이 외계인 붙잡아다 고문한다는 괴소문의 회사는 심지어 화학도 하신다.
헌터를 위한 아이템 중 포션들도 생산하는 것.
그런 정비 중공업의 연금술사들을 위한 룸에서 연금술 포션을 제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바로 ‘대우받음’의 증거!
정하 그룹 정만득 회장도 꼬우면 퇴실시키거든.
[정비가의 특제 가열 비커]
연금술 성공률 30% 상승.
정비가의 특제 연금술 설비 장치 세트 사용 시 추가 성공률 15% 상승.
[정비가의 특제 원심분리기]
연금술 성공률 35% 상승.
정비가의 특제 연금술 설비 장치 세트 사용 시 추가 성공률 15% 상승.
[정비가의 특제 냉각기]
연금술 성공률 25% 상승.
정비가의 특제 연금술 설비 장치 세트 사용 시 추가 성공률 15% 상승.
[정비가의…….]
무슨 주먹만 한 실험 도구 하나하나가 아티팩트다.
그야말로 연금술사들의 낙원이 아마 여기겠지.
웃긴 게 이게 던전에서 나온 물건도 아니고, 정비가라는 사람 개인이 혼자서 만들었다는 게 놀랄 노 자다.
이런 걸 전화 한 통에 빌리고, 재료까지 제공받다니.
크… 나 새끼. 엄청나게 출세했군. 매우 칭찬해.
[주군. 셀카 찍어서 전송하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응! 그래.
정비가 누님께서 왜인지 흰 가운을 입고 안경을 쓴 다음 삼각플라스크를 흔들면서 셀카를 찍어 달라고 하셨으니까.
당연히 서비스해드려야지.
안경은 검은 뿔테안경이어야 하고, 머리는 부스스하게 너드처럼 보여야 한다고 지정하셨다.
고작 대여료가 이 정도라니. 크윽.
[이 모든 것은 주군께서 그동안 열심히 갓튜버로서 활동을 하여 호감을 쌓았기 때문이지요. 어찌 보면 팬이 점심 도시락 조공해 주는 것과 비슷한 일. 결코 사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고맙습니다. 정비가 회장님.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찰칵, 찰칵-
사진은 이 정도면 되나? 보정을 해서 보내야 하나?
[제 생각에는 안 해서 보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미 지금 조명도 괜찮게 뽑혀서 최대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상태로 찍은 듯한 자연스러움이 중요합니다, 주군.]
요즘 트렌드는 이런 거니?
[트렌드라고 할 건 없지만 취향이 그러십니다.]
좋아. 전송.
“…….”
그렇게 보내고 답변을 기다리길 1분 후.
이윽고 정비가의 너스타에 새 사진이 갱신이 되었다.
거기에는 내가 보낸 사진과 짧은 동영상이 모두 들어 있었고, 정비가는 아래에 이렇게 썼다.
‘연금술 도구가 필요하다기에 빌려줌. 나는 식사 중.’
그리 말하며 제주도 어딘가의 식당에서 찍은 바다 영상과 딱 봐도 다이아가 엄청 박혀 있는 시계 사진을 함께 업로드했다.
[쿨하군요.]
응. 진짜 쿨해. 얼마나 쿨한지 얼어 죽을 정도야.
그리고 그렇게 올리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놀랍게도.
-와우~ 이사님 진짜 너무 빛나요~ 저런 걸 통으로 빌려주시네…….
-이게 진짜 후원이다……. 크으… 제주도 좋겠어요. 나도 가고 싶다.
-존경하옵는 정비가 이사님, 저는 언제나 이사님을 롤 모델로 삼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완전 모델이세요~
가장 먼저 달리는 건 정비가의 회사 사원들이었다.
[팬들이 댓글 다는 속도가 회사 직원보다 늦는군요. 주군!]
일하다 말고 이사 SNS도 체크해야 하다니.
이 무슨…….
-오늘 이사님 너~무 멋지십니당~~
-비주얼~~짱짱!
……그만 봐야겠다.
그래.
군수업체의 총아 정비가에 비하면 나는 한낱 요즘 쪼오끔 라이징한 풋내기일 뿐이지.
왠지 마음이 아파졌어. 대기업 대표이사가 SNS를 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정비 중공업에는 노조가 없나요?]
응, ㈜정비는 노조 없어.
예전에 해외에서 한번 만들어질 뻔했다가 그 공장 날려버리고 드론으로 무인 공장 열어 버린 역사가 있거든.
그러니까, 인간이 없으니까 노조도 없는 거지.
[악마군요.]
그래.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의 핫칠리 데몬.
당시 해외 시사지에서 정비가 머리에 악마 뿔을 그려 넣었는데, 내부에서 무슨 수류탄이 터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정비 그룹의 나팔수가 되었다.
[그,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연봉 평균이 가장 높은 곳이 ㈜정비니까요.]
그렇지.
이 미친 세상에서 인권과 월급을 딱딱 등가교환하고 있는 악의 전초기지라고 할 수 있어.
애초에 그녀의 드론은 인류의 식량을 생산하고 있지만 동시에 사람을 죽이는 군수 무기로도 쓰이니까.
자본주의와 군수업의 총수께서 선하다면 그거야말로 판타지 아닌가.
[현실이 쓰군요.]
연금술이나 마저 하자…… 척량아.
[……네, 주군.]
* * *
세상에는 공짜가 없지.
음, 나한테 실험실을 빌려주신 메카닉 마왕 정비가 님을 향해 다시 절을 하고, 반드시 내가 몸매를 잘 유지해서 부디 좀 더 오래 덕질해 주시기를 신께 기도했다.
정비가 마왕님.
부디 제 차는 언제나 주차 자리가 있게 해 주시고.
저 죽기 전까지 AI 반란을 안 겪게 해 주시고.
제가 부디 천만 따봉을 이루어 인류를 구원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우리 정진 그룹도 이제 좀 커지는데 좀 살펴주시고.
[애사심이 커지셨군요. 주군. 혹시 지분을 나누어 준다는 것 때문인가요?]
…그렇지. 애사심은 지분에서 오니까.
심지어 반을 떼어 준다고 하는데 아무리 날 붙잡고 싶어도 그 정도씩이나? 싶을 정도.
동생이 정지한이 보낸 각종 서류와 계약서들을 검토 중이다.
[계약하게 되면 정진은 두 분의 것이군요.]
그런 셈이야.
예전에 몬스터 웨이브 사태 때 각종 종교에서 우리 같은 애들한테 초코파이를 나눠 줬단 말이지.
그래서 그거 얻어먹으려고 여기저기 다녔었거든.
생각해 보면 내 피와 살에는 여러 종교의 초코파이들이 들어 있지 않나.
각종 신들의 가호가 있어서 이렇게 럭이 터지나 보다.
[노력의 성과라고 해도 안 믿으시겠죠? 주군.]
노오력은 무슨. 다른 헌터들은 노력 안 하나?
[그러면 선행의 성과라고 할까요? 그때 버스에서 혼자 살려고 게이트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면 달라졌을 테니까요.]
으음, 그렇긴 하지. 생각해 보면 모든 시작은 거기서부터였으니까.
어찌 되었건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해져 있으니까 뭐든 열심히 하는 수밖에.
[포션이 완성되었군요. 확인해 주십시오, 주군.]
앗차차, 말 잘했다. 척량아.
눈앞에 둥실 떠 있는 물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길쭉한 일자형 유리 포션병에 연녹색의 액체가 담겨 있었다.
무슨 에메랄드를 녹인 것처럼 반짝반짝하다.
어릴 때 먹던 청포도 소다 색 같기도 하네.
맛있어 보이는 색이야.
그 액체를 향해 [통찰의 눈]을 발동시키자 곧바로 정보가 나타났다.
[엄지척이 제작한 특별한 힘이 깃든 엘프의 성장 촉진제]
등급 : 유니크
엄지척이 고등한 연금술과 신이한 설비를 이용해 제작한 엘프들의 신비의 비약.
수목을 더 빠르고 건강하게 자라게 한다.
연금술이 대성공하여 비약의 효능이 크게 강화되어 있다.
대…… 대성공?!
제작계 스킬 중에 이렇게 로또 맞듯이 대성공 물품이 만들어지곤 하는데, 효과가 거진 두 배에서 세 배까지도 강화되지 않던가?
…이야. 로또 맞았네.
[훌륭하군요. 이거라면 그 [세계수의 아주 작은 가지]를 성장시킬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면 더할 나위 없지.
그나저나 재료는?
[아직 넉넉합니다.]
하…. 감동이다.
이 연구실은 그래, 그야말로 인위적으로 대성공이 뜰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연구실이야.
내가 더블 어택 확률을 인위적으로 100% 띄운 것과 똑같지.
그걸 정비가는 자신의 힘으로 조성한 거지.
과연 세계에서 셋밖에 없는 메카닉 마스터의 연구실인가.
좋아. 그러면 계속 만든다!
기왕 빌린 김에 뽕을 뽑는 거야!
[예. 주군!]
크으, 연금술 하는 맛이 나는구만.
* * *
“동생이 가고 형이 왔네?”
정비가.
그녀는 키득거리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있는 곳은 사실 제주도가 아니다.
그저 그녀가 만든 AI가 알리바이를 조작해 사진을 올렸을 뿐.
엄지척에게 빌려준 연구실은 그녀의 수많은 ‘공식적인’ 연구실 중의 하나.
사실 정비가 입장에서는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곳인데도 엄지척은 감동을 하며 만들어대고 있다.
“햄스터 같단 말이야. 해바라기씨 하나에 감동하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