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93화 (93/305)

제93화

“형, 뭘 그리 빤히 봐?”

녀석은 청바지에 그냥 흰 티를 입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서 컵에도 덜지 않고 벌컥벌컥 마신다.

이 녀석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엄씨 가문 남자들은 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마실 것부터 찾는 게 습관이지.

돌아가신 아빠도 집에 오면 보리차부터 찾으셨으니까.

“너 이리 좀 와서 앉아 봐라.”

“뭔데 그래?”

녀석은 범이 걷는 자세로 어슬렁거리며 내가 앉은 소파 쪽에 와서 앉는다.

“요새 뭐 하고 다니는 거야?”

“응? 친구도 좀 만나고, 정지벽 씨하고 같이 헬스도 하고 있어. 마력은 회복이 더디더라도. 근육은 만들어 두는 게 좋잖아.”

그거야 그렇긴 하지.

거기다 정지벽은 정하 그룹을 등에 업은 데다가 귀족이라고 불리는 탱커 클래스니 인맥을 쌓을수록 무조건 좋지.

그런데… 음, 역시 말해 두는 게 좋겠네.

“내가 어… 무공 익힌 건 알지?”

“알지. 왜?”

“무공의 경지가 높아지면 기감이라는 게 생기거든. 그리고 이게 있으면 타인이 얼마나 강한지 대충 감지가 돼.”

그 말에 무척이의 웃는 얼굴에 살짝 금이 갔다.

내 무위가 초절정이 아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미세한 순간.

“에이… 우리가 그 신전 던전을 클리어한 게 벌써 얼마 전인데. 마력이 회복되면서 그런 거겠지.”

“회복된 거 이상으로 강해진 거 같은데?”

“근육이 붙어서 그런 걸지도? 정지벽 씨 말로는 근육이 붙을수록 스킬 발현이 쉬워지고 근력과 지구력이 증가한다고 했으니까.”

녀석은 그리 말하면서 팔에 힘을 준다.

190이 넘는 거구가 극한의 단련으로 제련한 근육이란 흡사 흉기와 같은 것.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에게 위압감을 주기 마련이었고.

하지만 나는 이런 거에 넘어가지는 않지.

평소, 치고 박고 욕을 하고 살아도 동생 놈이 사고 치고 숨겼을 때 드는 그런 감이 있다.

개로 치면 집에 오자마자 우리 집 초코가 구석에서 자꾸 나랑 시선을 마주치질 않아.

그때 주인은 뭔가 존나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느끼는 거지.

대충 그 비슷한 감각이라고 할까?

[주군, 여기서는 아무리 캐물어 봐도 답을 하지 않을 듯합니다. 우선은 다른 용무를 해결하는 게 어떨까요?]

아니나 다를까, 몇 번 계속 물어봐도 무척이 이놈은 웃는 표정으로 계속 모르쇠를 해댄다.

어릴 때는 유도심문에도 잘 넘어가던 놈이었는데 이제는 머리가 자랐단 말이야.

어쩔 수 없나.

내가 성장했듯, 얘도 어른이 되었다는 걸 인정해야지.

“너 이상한 짓거리 하고 다니면 혼날 줄 알아.”

“아니, 형. 내가 애도 아니고.”

“믿는다. 알았지? 이제 가족은 우리 둘뿐이니까.”

그 말에 녀석은 해맑게 웃는다.

“믿으세요, 형님.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몰라?”

“후… 알았다. 알았어.”

제발 알아들어라. 위험한 짓 하지 말고.

“그럼 이야기 끝난 거지? 형? 나 좀 씻으려고 하는데.”

“잠깐, 할 이야기가 더 있어.”

“오우~ 뭔데?”

녀석이 다시 일어나려다 앉는다.

이놈이 수상쩍은 어떤 것을 숨기고 있다는 것은 자알 알겠고.

그걸 추궁해 봐야 안 처듣는 나이니 별수 없다고는 해도 척량이 말대로 더 중요한 ‘본론’이 있지 않나.

“이번에 알게 된 정보야. 너도 알아야 하니까.”

“중요한 일이야?”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자.

“중요한 일인가 보네.”

답하며 입가에서 미소를 거둔다.

우선은 녀석에게 알아낸 사실들을 주르륵 이야기를 했다.

녀석은 들고 있던 우유팩을 한 입도 못 대고 끝까지 내 말을 듣고, 또 듣기를 반복한다.

머리 좋은 놈이니 형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겠지?

이윽고 놈은 입가를 비틀어 억지로 웃는다.

“하…. 세계 멸망…이라고?”

“튜토리얼 종료. 일단 지구가 박살 나는 건 아니고 지성체인 인간만 박살 나는 거지.”

동생은 탁자 위 북극곰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그게 멸망이지. 무슨. 우리 다 죽고 나면 지구가 어쩌든 말든.”

[인간은 늘 오만하지요. 주군.]

하하하, 척량아. 너도 제갈공명에게서 나온 사돈의 팔촌 같은 자식이잖냐.

어째 인간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구나.

[저는 시스템에서 비롯된 정령입니다. 비록 인간이 사용하기 좋게 자아가 맞춰진다고 하더라도 정체성이 변하진 않을 겁니다.]

냉정하군.

뭐, 어쩔 수 없나.

“음… 혹시 못 믿기거나 단순한 음모론처럼 느껴진다면…….”

“믿어.”

지척이는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형이 레벨 업을 못해서 갓튜브에 따봉 팔이 하면서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은 이미 사실이잖아. 그러니 지구가 멸망한다는 것도 믿어.”

어째 어감이 좀 그렇다?

녀석은 우유를 낮은 탁자에 내려놓고는 주먹으로 턱을 괴며 생각에 잠긴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같다.

그렇게 한참 생각에 잠기다가 이렇게 묻는다.

“그래서 기간은 얼마나 남았는데?”

“몰라.”

“뭐?”

왜, 뭐. 어쩌라고. 나도 모르는데!

“알려면 따봉을 더 벌든가, 아니면 뭔가 조건을 충족해서 척량이 알려주든가 해야 할걸?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레벨 제한 던전이 결계석을 뚫고 생기기 시작했으니 이 현상만 몇 번 더 생기면 대한민국은 훅 간다는 거.”

“세계도 훅 갈 거고?”

“나 같은 능력자가 없다면 그렇겠지. 뭐, 다른 나라에도 레벨이 안 오르거나 더디게 오르는 대신에 어떤 메리트가 있는 직업이 있을 수도 있고.”

일단은 우리나라 정도가 내가 커버할 수 있는 한계려나.

“인구수가 많은 나라가 무조건 유리하겠네.”

“그렇겠지. 인구수가 많다는 건 각성자도 많다는 거니까~”

“거기다가 재생성형 던전도 문제지. 이번에 내가 들어간 짭계수 던전이 단발성이기에 망정이지 그게 또 생성된다고 생각해 봐라. 아오.”

내 말에 동생이 큭큭 웃었다.

“우리가 클리어한 [죽음을 거부한 자의 신전] 역시 재생성형 던전이라고 하더라고. 다행히 생성 주기가 길어서 그럭저럭 할 만은 한데 우리 팀도 두 번만 더 들어가면 레벨 제한 때문에 더는 못 들어갈 거고. 형.”

“그래도 정보를 꽤 자세히 풀었으니까 어떻게든 될지도 모르겠다.”

내 말에 동생이 우유를 한 모금 마신다.

“그래. 그럴지도. 하지만 모든 던전이 그렇게 될 수는 없을 거야.”

침묵이 한참 지나간다. 결국 대답은 하나.

동생은 결국 내게 묻는다.

“결국 던전이 터지고,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은 점점 더 준다는 말이지? 형.”

“그래.”

세계 멸망이 정확하게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는 모르겠다.

막판에 ‘튜토리얼이 끝났습니다!’ 하고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불덩이가 떨어질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어찌 됐든 점점 더 세상이 지랄 같아질 거라는 건 확실하려나.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안 믿을 거 같더라고. 음모론에 취한 정신병자 취급이나 안 하면 다행일걸?”

그 말에 무척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이미 종말론은 너무 많아. 헌터들 중에서 예언 능력을 가진 헌터들도 언젠가 인류가 멸망할 거라는 소리를 하지.”

“그래.”

그런 시대다. 그런 세계고.

“그리고 그걸 외칠수록 형의 구독자 수는 줄 거야. 음모론 쪽 사람들은 붙겠지만, 글쎄. 적어도 순수하게 엔터테인먼트를 원하는 절대 다수의 층은 구독 취소를 하겠지.”

그것도 문제긴 하다.

나는 무슨 짓을 해서도 주목을 받아야 한다.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는 쇼맨십 가득한 루키가 종말론을 예언하는 각성자보다 인기가 많은 건 당연했고.

만약 내가 그 플을 한 번이라도 타게 되면…….

-엄지얔ㅋㅋㅋㅋㅋㅋ 드디어 갈 때까지 갔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구독벌이하려고 두물 세물 간 음모론 들고 오는 거 보솤ㅋㅋㅋㅋㅋㅋㅋ

-헌터면 자기 관리나 해야짘ㅋㅋㅋㅋㅋ

-엄지척 헌터님께 실망했습니다. 구독 취소합니다.

음,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군.

“이미 종말에 대한 이야기는 나 말고도 많이들 해. 사이비 종교부터 멕시코 케찰코아틀 신앙까지 다 있잖냐. 어쩔 수 없지. 나는 할 수 있는 걸 하려고.”

“형은 어쩌고 싶은데?”

“음, 우선은 유명해져야지. 그리고 천만 따봉으로 던전 완전 소멸 정보를 사서, 이 세계의 비밀을 풀 거야.”

“아득하네.”

그리 말하더니 작게 웃는 게 아닌가.

“형이 진지하게 말하는데 웃는 거 보게?”

짜증이 나서 등을 때리니까 녀석이 에구구, 신음을 하며 답했다.

“아냐, 아냐. 그냥 그렇게 말하니까 무슨 영화 주인공 같아서. 세계를 구한다. 캬… 멋지네. 엄지 하나 드립니다.”

띠링-

-헌터 엄무척이 당신의 각오에 경의를 느낍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진담이었어? 이 녀석.

원래라면 따봉 준다는 사실을 의식해서 도리어 따봉이 잘 안 들어오는 놈이었는데 이번만큼은 이놈도 꽤 진지해진 모양이야.

“그래서 형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거야?”

“던진다기보다는 슈퍼갓튜버가 되기 위한 노력인 거지. 어차피 뭐라도 하지 않으면 너도 나도 위험하다고.”

“하지만 형이 아니면 구할 사람이 정말 없을까? 누군가는 형을 대신해도 좋지 않을까? 나는 그러다가 형만 죽을까 봐 걱정되는데.”

입은 웃고 있다. 하지만 눈은 진지하군.

하긴 나라도 내 동생이 그런 처지면 그 걱정부터 하겠지.

이제 나는 다른 헌터들이 가는 길을 따라갈 수 없으니까.

어느 정도의 연봉을 벌어서 평생 먹고살 돈을 저축하고 노후를 대비하고.

이제 그런 삶은 불가능할 거야.

제한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는 레이스를 해야 하니까.

나는 손을 뻗어 나보다 큰 동생의 머리를 쓸었다. 녀석에게서 분노가 느껴진다.

세상이 미운 거겠지. 시스템이 미운 거고. 이해해.

“뭐, 내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해 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음…… 아닐 수도 있는 거고. 나도 뭐 무리하겠다는 게 아니야. 내 목숨 귀한 줄 아는 사람이야. 그냥 조금 노력의 방향을 그쪽으로 잡겠다는 거지.”

그리고.

어쩌면.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미래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될지도 모르지.

넘치기 직전의 물컵 위로 떨어지는 한 방울일 수도 있고.

“일단은 내 시체를 다른 헌터 보조원이 치우는 일은 없을 거야.”

“약속할 수 있어?”

“그래.”

“…….”

무척이는 내 말에 잠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가족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건 알고 있다.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그래. 그렇지.

삶이라는 건 늘 그런 법이니까.

이 녀석은 태어나길 무능력자로 태어났다.

이렇게 각성하게 된 것도 나한테 휘말렸기 때문이고, 처음부터 헌터 세계에 반쯤 몸을 담았던 나에 비해 이 녀석은 생소한 것투성이일 거고.

“형. 나는 그냥 작년보다 올해가 좀 더 나은 하루였으면 좋겠는데. 아마… 내년에는 그러기 힘들겠지?”

“뭐, 노력해야지.”

“그래서 내가 뭘 해야 해~?”

형에게 더는 부담을 주지 않기로 결심한 걸까?

처진 눈으로 사람 좋게 웃는다.

“그건 같이 생각해 봐야지. 하지만, 네가 할 건 그거야.”

나는 ‘그’ 나뭇가지를 들어 보였다.

“마력 회복부터 하자.”

사냥 두 배 이벤트 시작합니다. 고갱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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