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88화 (88/305)

제88화

사람이 고양이를 잊지 않듯, 고양이도 사람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작게 묵념을 했다.

이것은 헌터 보조원일 때부터 있던 습관.

-1,100따봉을 받았습니다.

-1,100따봉을 받았습니다.

-1,100따봉을 받았습니다.

-1,100따봉을 받았습니다.

저레벨로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아마 큰 수호성은 아니겠지.

그러니, 작은 성좌들은 자신의 몇 없는 권속을 애도했다.

자, 그럼 이제.

라이브를 틀까?

소매로 얼굴을 슥슥 닦고는 혼자 웃는 연습을 했다.

척량, 라이브 온.

[넵!]

“많이 기다리셨죠? 준비가 잘 끝났습니다!”

-뭐야, 바로 갈 것처럼 굴더니 뜸 들이고.

-마력은 채우고 가야지. 엄지도 스킬은 써야 할 거 아니냐.

-엄지 꽃단장했네?

“하하하,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어쩔 수 없단 말이죠. 몬스터 체액이 너무 튀어서요. 재미있자고 보는 건데 화면에 못 볼 꼴을 보일 수는 없으니까요.”

-엄지 프로 의식 멋져乃

자, 그러면 가 보자.

우선 탐색부터!

나는 곧바로 나무를 타고 뛰어올랐다.

그러자 곧바로 새로운 몬스터들이 나를 포착하고는 습격하기 시작했다.

키아아아--!

나무껍질로 이루어진 사람 형태의 몬스터.

헌터 필기시험, 몬스터 정보학 기출 문제로 매번 나오는 놈이다.

드라우드.

나무에 정령이 깃들어 탄생했다는데, 착한 정령은 아닌 거 같고.

이놈은 그냥 사람 보자마자 육탄전부터 갈겨대는 예의 밥 말아먹은 놈이다.

놈이 나뭇가지에 있다가 뛰어오르는 나를 향해 냅다 덤벼든다.

당연하지만 곧바로 쌍검을 거칠게 휘둘러 그 팔을 서걱 조각낸다.

캭?!

어서 와, 이런 거 처음이지?

응, 많이 보게 될 거야~

당황한 놈의 머리통에 왼손 칼날을 박아 주시고! 그 사이로 몸을 회전시켜 나뭇가지에 발을 걸쳤다.

그러고는 오른손의 칼을 휘둘러 깔끔하게 머리통을 몸에서 분리했다.

끼아아악!

흡사 통조림을 까듯 유연한 움직임에 놈이 비명을 지른다.

머리통…의 눈으로 짐작되는? 구멍 속의 빛이 점차 꺼져가는 걸 보니. 흠, 죽은 거 맞군.

“지금 잡은 녀석은 드라우드라는 몬스터로, 훌륭한 식이섬유 공급원이죠.”

[드라우드에 대한 간략한 자막 띄웠습니다. 주군!]

오케이~

“이놈의 특징이 잘 보이실 텐데. 이놈 하나가 발견되면 보통 여러 놈이 우글우글 거기 있다는 게 특징이거든요?”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주절주절 떠들었다.

챗방 분위기는 음~ 좋고요.

아니나 다를까, 내 말대로 사방에서 나뭇가지를 타고 원숭이처럼 움직이는 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라우드 무리다.

좋아. 좋아.

관객과 무대, 그리고 음향 효과까지 삼신기가 모두 모였네.

드디어 새로운 스킬을 보여 줄 때가 되었나?

“자, 그러면 여러분. 얼음 땡 놀이 좋아하시나요? 저는 좋아하는데 말이죠.”

그렇게 내 양발이 나뭇가지 위에서 떨어지는 순간, 스킬을 발동시켰다.

“염혼염동!”

일부러 소리를 내서 스킬을 발동시키자 염동력에서 한 번 더 진화된 힘이 몸을 감싼다.

나뭇가지에서 발을 떼고 그대로 허공에 정지한다.

“얼음~”

-와아, 허공에서 멈췄어?

-부유 마법인가? 아니면 반중력 계열?

-그렇다면 둥실둥실 떠야 하지 않나요. 이거 그냥 멈춘 것 같은데?

-근데 고작 그 정도 능력이야? 허공에 고정되어 있는 거?

“하하하, 드라우드 상대로 얼음땡 하자고 이 짓을 하기에는 위험하죠? 아차차차.”

척량, 두 번 공격 패시브 모두 다 켜줘.

척량이 알려줬는데 패시브 스킬은 온오프 기능이 있지.

사실 이런 기능 있는지 누가 찾아보겠나.

마력도 안 먹는 패시브 스킬인데 상시 켜는 게 무조건 이득이지, 그걸 누가 꺼놔?

그게 나다! 방송은 극적인 게 좋잖아!

[‘두 번 타격하는 장화’, ‘두 번 공격’, ‘환영검’, ‘두 번째 기회’, ‘검의 잔영’ 스킬 모두 개방합니다. 모두 합치면 100% 타격이군요!]

그래. 따봉을 박박 긁어서 더블 어택에 몰아넣었지.

아이템과 스킬 모두 합산해 100%를 맞춘 미친 짓을 모두 보시라!

나는 무릎을 살짝 구부렸다가 그 상태로 허공을 밟고 하늘로 로켓처럼 뛰어올랐다.

펑!

발밑의 드라우드 녀석들도 기다렸다는 듯 모두 뛰어오르며 쫓아오는 게 아닌가.

자, 여기서! 쇼 타임 가 보실까?

쾅!

몸을 뒤집어 180도로 회전한다. 하늘로 올라가던 자세도 잠깐, 머리는 지면을 향하고 그대로 추락하듯 땅으로 돌진!

이미 뛰어오른 드라우드들과 떨어져 내리는 나.

놈들도 아차 싶었겠지만 이미 도약해 버린 터라 답이 없다.

놈들과 내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져만 가고, 그에 따라 나는 검기에 힘을 실었다.

그렇게 늘어난 검날의 길이는 순식간에 2미터에 다다랐고.

스킬, 혼원건곤검기.

무명 검식 백야, 암야.

발동!

초절정 고수의 쌍검이 섬광을 일으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와! 저게 어떻게 가능함?

-검날이 두 개로 늘어나네?

-요새는 검기도 원쁠원이야?

두 개의 쌍검 사이로 하나의 검날이 잔상을 그리듯 생성된다.

“구구단 해볼까요? 2 곱하기 2는?”

-4!!

-4444444444444444!!

-死死死死死死死死死死死死死死死!!

도합 네 개의 검기가 사방을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흡사 믹서기 칼날처럼 회전하는 검기가 드라우드를 조각내고, 나는 염혼염동까지 추가로 발동!

그대로 시원하게 드라우드 무리를 박살 내면서 낙하!

콰과과과광!

난폭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착지하시고.

“어라, 더는 드라우드들이 없네요?”

주변에 살아 있는 드라우드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얼마나 처리해댄 거지?

[한 번에 87마리를 제거하셨습니다.]

많네. 많아~

그러면 여기서는 상큼하게 멘트 한번 쳐야겠지?

“자, 이걸로 드라우드. 좋은 식이섬유 공급원이죠.”

엄지 척 들어주었다.

-ㅋㅋㅋㅋㅋㅋ 엄지야. 언제 적 개그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근 아재 같은 거 보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ㄴㄴㄴㄴ 대놓고 아재임.

분위기 나쁘지 않구만.

“그러면 다시 정찰 갑니다!”

들리나요? 따봉 다시 폭발하는 소리~

[주군! 대박입니다. 대박!!]

* * *

도심지가 내려다보이는 전면 유리창, 그 호화로운 방 안.

어지간한 재벌도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안 팔아서 손에 넣기 어려운 초고층 빌딩 펜트하우스에서 정수기는 소파에 눕듯 앉은 채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엄지척이 무서운 기세로 적들을 하나하나 도륙하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흥미가 가득 담겨 있었으나, 입가는 심술로 비틀려 있다.

“실패할 만하네. 저번에 보낸 녀석 정도로는 확실히 무리였어.”

그리고 그런 정수기 옆에는 검은 정장 슈트를 입은 사내.

김영인이 서 있었다.

“저거, 레벨은 확실히 20 미만이겠지. 시스템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실력은 절대 그 급은 아니잖아? 어느 정도라고 생각해?”

그 말에 김영인은 목울대로 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 여기서 잘못 답변한다면 정수기는 제멋대로 굴 것이고, 최악의 경우 시체를 치워야 하는 수가 있음을 안다.

세간에서는 정수기를 소탈하고 청량한 청년 헌터로 생각하고 있으나 진실은 정반대니까.

“적어도 레벨 80대의 상위 랭커로 추측됩니다.”

“그렇지? 검기를 저렇게 자유자재로 쓰는 무공 사용자는 흔치 않으니까 말이야. 대체 얼마나 연습한 걸까. 저거.”

“적어도 국내에 같은 수준은 없습니다. 전사계 능력인 오러 블레이드라면 흔합니다만.”

“그쪽은 무공이 아니고, 오러(Aura)이니 아예 계열이 다르지.”

오러와 무공. 두 능력 모두 육체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 원리는 전혀 다르며 지향점 역시 판이하게 다른 길로 갈라진다.

“왜 굳이 무공일까. 오러 쪽이 훨씬 간편하다는 걸 모를 놈이 아닌데.”

“…….”

그 질문만큼은 보좌관 김영인도 답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었으니.

“직접 만나 봐야겠어.”

“약속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뭐…… 일단 회유를 해 보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부한다면…….”

정수기의 손 위로 얼음 조각이 만들어진다.

엄지척 채널의 상징을 너무나도 쉽게 만들어내더니 그는, 악력만으로 조각을 부쉈다.

파각-

“어쩔 수 없지. 부숴야지.”

정수기는 웃었다.

살의를 담은, 결코 CF 같은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웃음이었다.

오싹-

보좌관들은 모두 소름이 돋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제정신이면 들어오겠지? 설마하니 정지한 쪽에 붙어 있지는…… 않을 거야?’

어째서 미국 쪽 거대 길드에 안 갔는지는 모른다. 허나, 헌터가 한국을 못 뜨는 개인적 이유야 늘 있어 왔지 않던가.

거기다 이쪽은 정하 그룹의 적자이며, 가장 유력한 후계자.

정지한은 최근 들어서 뜬금없이 철든 망나니 놈이다.

그런 망나니와의 의리를 지키겠다고 붙어 있다?

그런 미친놈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나.

* * *

네펜티스 무리를 박살 내고. 드라우드 무리도 격퇴하고.

그 이후 나무 위에 올라가 주변을 휘휘 둘러보니, 가장 눈에 띄는 나무가 있는 게 아닌가.

저 혼자 마천루처럼 우뚝 서 있는데, 다른 나무들이 대략 50미터 정도라면, 그 녀석 혼자만 150미터는 되어 보이는군.

세 배 더 크다, 뭐 그런 건가.

높이만큼이나 굵기도 오지게 굵어서 누가 보면 엘프 영화에 나오는 세계수 같아 보일 지경이네.

하지만 진짜 세계수는 아니겠지.

세계수는 성스러운 엘프의 숲에 있을 거고, 여기는 인간이고 짐승이고 곤충이고 소중한 거름으로 만드는 지옥의 숲이니까.

짭계수. 너는 이제 짭계수다.

[주군, 나중에 네이밍 센스를 키우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묘하게 멘트가 올드하다는 반응인데요.]

왜? 반응은 좋잖아.

[네. 반응은 좋죠. 이상한데…….]

매력 B 때문 아닐까?

아재 개그도 미남이 하면 그것도 캐릭터가 되는 거지.

[다행입니다. 얼굴이라도 잘생겨서.]

말에 진심이 담겨 있군. 이놈.

어쨌거나, 저 혼자 세 배 큰 나무에서 보스 몬스터가 나오긴 할 거야, 아마.

[네. 지난번 버섯 던전 때도 그런 패턴이었죠.]

그러면 후딱 가보자고!

나는 달렸고, 그렇게 만난 몬스터들은 다음과 같다.

발터드.

거미 같은 생김새인데 다리가 4개. 크기는 한… 사람만 한 놈인데 이놈이 벼룩처럼 점프 공격을 하는 게 끔찍하다.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 드렸습니다. 고객님~

처리한 개체 수는 123마리.

척량이 세었으니 정확하겠지.

그다음 보게 된 건 포튼.

꽃봉오리 같은 입에서 독액을 쏴대는 원거리 딜러 몬스터.

염혼염동 앞에서 원거리 공격은 무의미하기에 그걸로 막아내서 접근해 삼등분으로 토막 쳐 줬다.

머리, 가슴, 배다. 이 꽃 새퀴야.

처치한 개체는 83.

순식간에 죄다 황천으로 보내줬다.

그다음 선제트.

사막도 아닌데 2미터쯤 되는 선인장 모습에, 뿌리를 드러내서 걸어오며 가시를 ‘푝푝!’ 소리 내면서 (심지어 입으로 소리 낸다) 쏴대는 놈.

역시 염혼염동으로 막아내고 깍둑썰기를 해줬다.

채팅 창에서는 선인장 김치를 담그라고 난리가 났는데, 과연 한국이다.

킹갓코리안에게 있어서 만물은 모두 김치로 통한다.

처리한 개체는 76.

그렇게 76포기의 김장을 한 셈이다.

척량이 검색해 봤는데 선제트의 과육은 실제로 미용과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더군.

나도 두 포기는 챙겨 가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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