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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87화 (87/305)
  • 제87화

    “속보를 접하신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여기는 여의도에서 발생한 레벨 제한 던전 안입니다! 지금 주변 보면 아시겠지만 숲이 울창하고요. 개방형 던전이네요. 방금 전에 공격해 온 것들이 덩굴 같은 거였는데. 아마도 식물형 몬스터 같아 보이는군요.”

    이야기 몇 마디 나누는 사이.

    내가 잘라낸 덩굴 채찍 주인들이 땅에 솟아올라 그 모습을 드러냈다.

    네펜티스!

    커다란 꽃 하나에 뿌리를 촉수처럼 써서 지상을 걸어 다니는 게 가능한 놈들.

    설상가상으로 저 꽃에는 이빨도 달렸는데 사람 상체 정도는 한입에 ‘씹어’ 먹는다.

    시체 치울 때 많이 정신 나갔지. 나도.

    상반신이 없거나, 하반신이 없거나.

    “오우, 이미 적이 나타났네요. 그러면 여러분, 일단 잡아 볼까요?”

    일부러 과장되게 경례를 날리고는 채팅을 슬쩍 구석으로 치우고 몬스터들에 집중한다.

    한 놈이 튀어나오자마자 지면 여기저기에서 동시에 솟아나는 걸 보라.

    그 수가 백 마리가 넘어간다.

    -블레이즈 워크 바비큐 가나요--?!

    바이크로 달리며 바닥을 불 질러 버리면 화려하긴 하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보스 방 앞까지는 화염 스킬을 쓰지 않을 겁니다.”

    -뭐?! 엄지 미쳤어?

    -화염 스킬을 왜 안 써?!

    “어허, 풀이 불에 약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후후후, 하지만 이 최강 엄지가 화염 스킬 없이도 썰어버리는 걸 보여 드리지요.”

    이렇게 말하며 일부러 건들거려 본다.

    -상성을 무시하고 팬다고? 그게 가능해?

    -엄지야. 지금이라도 취소해라.

    -[방송족같이하네] 님이 1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방송족같이하네] : 화염 스킬 안 쓰고 보스 방까지 도착하면 1,000만 원 + 클리어까지 하면 3,000만 원 준다

    와아, 오셨군요. 또 나 죽이려고 오셨나.

    “우와, 4,000만 원 후원이 터졌습니다!”

    일부러 해맑게 멘트를 날리며 모르는 척 의뭉을 떨었다.

    -엄깅아!! 저거 받지 마!!

    -딱 봐도 먹으면 안 되는 거. 지지야!! 지지!!

    -여까지 와서 쫄면 뒈지는 거라 엄지는 저거 받아야 함.

    -가뜩이나 언론에서 개 씹히고 있는데 지가 말해 놓고 저거 안 받으면 스킬 쓴다는 뜻이지.

    웃자. 모르는 척 환하게 웃자.

    [주군, 보조할까요?]

    아니, 이번에는 나 혼자 해 볼게. 수련의 결과를 체화해야 하잖아?

    거기다가 화염 스킬로 이걸 깨 버리면 어차피 80레벨짜리 몬스터도 잡은 엄지척이니 양민 학살도 기본이라며 따봉 안 준다.

    사실, 그런 콘텐츠는 이미 많잖아?

    그게 화염 마법사들이 인기 있는 이유고.

    내가 이제 와서 화염 스킬을 쓴들 그들보다 화려하진 못하니까. 그냥 양민 학살 콘텐츠가 되고 끝이지.

    그러니까. 야악간 긴장감이 필요하단 말씀.

    [알겠습니다. 주군.]

    척량은 거대화하는 대신 내 목에 감겨서 뀨우~ 귀여운 울음소리를 낸다.

    “척량. 너도 오늘은 어깨에서 쉬고 있어. 주인공은 나니까!”

    꾸우?

    그러며 아방한 척 고개를 45도로 꺾는 게 아닌가.

    크윽, 귀엽구나.

    귀여워서 주둥이 빨고 싶어!!

    나는 네펜티스가 오는데도 가만히 서서 호흡만 가다듬었다.

    혼원건곤신공의 구결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기운을 끌어내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해낸다.

    화악-

    블레이드를 타고 검기가 더욱 밝고 선명하게 물든다.

    동시에 내 전신에서 뻗어나간 기가 주변을 타고 번지기 시작하고.

    그 기가 닿은 부분이 마치 박쥐의 레이더처럼 확실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게 심기체가 일체화된다는 뜻이구나.

    이렇게 일체화되면 기를 통해서 닿지 않아도 수많은 것들을 감지할 수 있게 되고.

    내 안의 세계는 문을 열어 더욱 넓어지고, 또 넓어진다.

    그것이 기감(氣感).

    기감과 검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된다면 그걸 두고 우리는 ‘초절정의 경지’라 부르게 되지.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소수의 무공 사용자들의 이야기.

    어찌 보면 고인물이라 폄하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기도 하지.

    전설은 죽었는가?

    아니다.

    펑!

    바람이 되어 네펜티스들을 향해 몸을 쏘았다.

    네펜티스들은 그야말로 숙련된 도살자들.

    고속으로 얼굴, 어깨, 머리 위, 복부, 옆구리, 허벅지를 향해 넝쿨 채찍을 쏘아낸다.

    이렇게 많은 급소를 한 번에 피하는 것은 보통은 불가능하지.

    방어 스킬을 사용하거나, 보호막 스킬을 써야 할 거야.

    [도망치는 그림자].

    [풍운보법].

    몸이 잔상을 그리며 움직인다.

    굳이 혼원건곤신공에 속한 혼원건곤보법을 쓰지 않고, 풍운보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속도 면에서 이쪽이 더 빠르기 때문.

    하지만 단순히 스킬을 쓰는 게 아니지. 이제는 심기체의 합일로 기감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으니까.

    덩굴 채찍을 피하는 데에 큰 움직임은 필요 없다.

    고개를 조금 꺾는 것만으로도 뺨을 스치고 덩굴 채찍이 빗나가니까.

    그 상태로 허리를 살짝 비틀어 뛰어오르자 내 심장에 바람구멍을 내려던 넝쿨 채찍들이 완전히 헛방을 날리게 되었다.

    [방금 따봉이 엄청나게 들어왔습니다! 주군!]

    좋아.

    여기서 두 손에 힘을 빼고, 검 손잡이를 느슨하게 잡아야지.

    호흡은 바람과 하나가 된 것처럼 검을 내리긋는다.

    그것을 우리는 속검이라고 부르지.

    슈칵! 슈칵! 서걱!

    한 호흡 만에 검기가 1.5미터까지 늘어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검기가 궤적을 그리며 모든 것을 매끄럽게 조각낸다.

    다섯 마리의 네펜티스를 한 번에 쓸어버린다.

    좋았어. 이 정도면 나 초절정의 경지는 맞는 것 같은데?

    다만.

    “음~ 검기까지는 필요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벌써부터 불타기에는 좀 아까운 상대려나?”

    일부러 여유 있게 눈웃음을 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엄지 끼 부리는 거 보소…….

    -엄지야. 조심해.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

    어디 보자. 내공 소모를 계속해서 체크해 나가야겠구만.

    아직 적이 얼마나 더 있을지 우리는 모르니까 말이지.

    슥-

    그러면, 검기를 거두고 몸 안의 진기는 계속해서 활성화해 보자고.

    “자, 그러면 여러분. 본격적으로 가겠습니다.”

    [풍운보법].

    미끄러지듯 달려 나가며 가볍게 음속을 돌파한다.

    풍운(風雲)이라는 말 그대로 이렇게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는데 주변은 기이하게 미동도 없다.

    물리역학을 완전히 무시한 기동성에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 익숙했다.

    그게 시스템이 인간에게 부여한 힘이고.

    인간은 이것으로 하늘을 넘어야 하니까.

    모노 블레이들을 교차하며 내리긋고, 다시 횡으로 갈라낸다.

    네펜티스들의 공격은 전후좌우, 사방에서 폭풍처럼 몰아치지만, 괜찮아.

    이걸 위해 수련해 온 거니까.

    그동안 먹방밖에 못 찍었던 세월들이 생각나면서 조금 웃음이 나왔다.

    -솔플 하는 거 보고 깨달았는데… 엄지 좀 많이 는 거 같지 않냐?

    고맙습니다.

    알아봐 주시네.

    특별한 속성 공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작 사람 두개골 박살 내는 수준의 물리적인 공격이라면 충분히 여유가 있지.

    무아지경 속에서 베고, 또 베고, 다시 베어내며 조각을 그려낸다.

    네펜티스의 체액이 튄다.

    -흑염의 스킬 [검은 불꽃의 보호]가 독에 저항합니다.

    다행히 이 정도 독은 흑염의로도 충분히 막아지는 모양이군.

    연금술에 1따봉 드립니다.

    “후우, 이 정도면 애피타이저는 되려나요?”

    얼마나 지났을까.

    스타트 지점에 있던 몬스터들은 전부 샐러드처럼 박살이 나게 되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신들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1,100따봉을 받았습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1,100따봉을 받았습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1,100따봉을 받았습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음, 시스템 필터를 끄자마자 따봉 소리가 요란하군.

    신들까지 붙은 모양이니 기쁜걸?

    -미쳤어, 미쳤어!

    -뭐임? 내가 본 거 실화임? 이거 진짜냐고!!!

    -레벨 20 미만 레알? 레벨 20 미만 레알? 레벨 20 미만 레알? 레벨 20 미만 레알? 레벨 20 미만 레알? 레벨 20 미만 레알? 레벨 20 미만 레알? 레벨 20 미만 레알? 레벨 20 미만 레알?

    -엄지 믿고 천국 가즈아아아!

    -미친 혼자서 거의 백 마리를 쓸어버리네.

    채팅 창이 폭발하고, 따봉도 폭발하네.

    심지어는 신들까지 가세해서 따봉을 누르고 있었다. 확실히. 화끈하게 해 보니까 모두에게 인기 만점이네.

    [역시 아슬아슬하게 가는 전략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주군.]

    나 꽤 여유 있었다고? 척량.

    [화염 공격 스킬을 봉인하겠다고 선언한 순간부터 모두가 집중했으니까요. 겉으로는 상당히 위험해 보였을 겁니다.]

    그렇군. 그래서 이렇게 따봉을 먹는 건가.

    불타는 고리를 뛰어 넘는 사자처럼 보이겠군.

    [사자라기보다는… 초식 동물…….]

    아니지. 나는 사자지. 어딜 사슴, 토끼, 이런 거에 비교해! 크왕!

    “후우. 준비운동 끝났네요. 그러면 이제부터 특수 던전 탐험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새로운 스킬과 함께.”

    새 스킬이 등장한다는 말에 모두가 역시 소리를 지른다.

    그치, 아직 나는 내 모든 것을 다 보인 게 아니니까.

    전채 요리는 성공적이었으니, 이제는 본식을 요리해 볼까?

    * * *

    우선 시신을 수습해서 한쪽에 고이 모셔 두는 것부터 했다.

    방송에서 이런 부분이 인기가 없다는 건 알아. 그래서 잠깐 라이브를 재정비하겠다는 명목으로 채널을 껐다.

    잠깐 준비 시간이니 본 사냥은 후에 한다고만 이야기해 두고.

    그래도, 글쎄 뭐랄까.

    ‘내게는 너무 익숙한 일이지.’

    내 미래일 수도 있는 일이고.

    이 미친 세상에서 죽은 헌터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유가족들조차도 시신을 못 건져서 장례식을 유품으로 대신하는 일도 왕왕 있었고.

    여태까지 수습한 시신들 중에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자들도 많았다.

    주검을 모으고. 장례용 모포를 꺼내서 감고.

    [장례 모포를 이미 준비하셨군요.]

    공간 많이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감아 두기만 해도 부패되는 건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거든.

    시신 눈을 감겨 주고 다시 감는다.

    무슨 미련이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사람으로 산 자들이다. 그 죽음을 짐승처럼 보낼 수는 없으니까.

    한참 하고 나니 손이 핏물로 더러워졌다.

    생활 마법으로 몸을 정화한다.

    [냄새까지 완전히 지우진 못하네요.]

    음, 괜찮아. 방송에 냄새는 안 나오니까.

    그러면 된 거지.

    그때.

    띠링-

    -1,100따봉을 받았습니다.

    보고 있던 신이 있었구나.

    -[작은 신의 고양이]가 당신에게 2,200따봉을 보냅니다.

    다른 신이 보낸 따봉이 다시 도착했다. 그나저나 필터에 안 걸렸네? 그동안은 어떤 신이 내게 보냈는지 몰랐는데.

    [작은 신의 고양이라면……. 아마 성좌가 된 지 얼마 안 된 존재일 겁니다. 차원 시스템 등록 처리가 늦어졌군요.]

    이런 빈틈도 있고 말이지.

    -2,200따봉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필터가 되었습니다. 시스템이 뒤늦게 성좌로 등록한 모양입니다.]

    이런 일도 있구나.

    [네. 세상에는 제우스나 아브라함계의 천사들처럼 거대한 성좌가 있는가 하면, 필멸자에서 막 불멸자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죽음 계열의 이명이 아닌 걸 보니 이 헌터의 수호성좌일 수도 있겠군요.]

    문득 그 헌터의 유품을 꺼냈다. 지갑이다.

    지갑 안에는 가족사진 대신 노란 줄무늬 고양이 사진이 들어 있었고.

    얼마나 만져 댔는지 사진 모서리가 누렇게 닳아 있었다.

    ‘애기.’

    고양이 이름일까? 아니면 애칭일까?

    [고양이도 성좌가 될 수 있어?]

    [가능합니다만, 그러려면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쌓아야겠죠.]

    그렇구나.

    본인 고양이는 아니더라도, 어쩌면 무지개다리를 건너면서 성좌에게 말해 준 걸 수도 있겠네.

    이 녀석 진국이니까 각성시켜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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