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G웹진의 김기태 기자입니다. 지금 엄지척 씨가 이곳에 솔로 클리어를 도전한다는 소식을 들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엄지척 씨가 목숨을 잃을 거라는 분석이 지배적인데요. 미래에 한국을 빛낼 큰 재목인 엄지척 씨의 진입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와아, 이거 저도의 돌려 까기네.
어떻게 보면 올려치기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건 들어가면 뒈질 거라는 말을 한 거다.
‘그리고 매너가 아니지.’
운동선수로 치면 경기 직전에 ‘너 메달 못 딸 거라고 전문가들이 다 입을 모아 말하는데 몸이나 간수하는 게 낫지 않아?’로 번역된다.
특히나 헌터 쪽은 까딱 실수하면 죽을 수도 있어서 질문을 조심해서 하셔야 하는데 말이지.
‘이래서 기자들에게 따봉이 안 들어온 거구나?’
하긴 이 통제 구역을 뚫고 들어오시려면 어디선가 한 가닥 지원은 받아야 들어오실 수 있지.
여기 기자 프레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아, 박민재 기자님과 거의 동일한 질문을 해주셨군요. 하하하. 제가 거기에 드릴 답변은 이것뿐입니다.”
깊게 숨을 골랐다.
이건 진짜 심호흡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앞의 무수히 노력한 미소 짓기보다도 더 많이, 더 오랫동안 거울을 보고 연습했던 그 표정을 짓기 위함이다.
웃기지?
그래. 웃길 수도 있어.
하지만 내가 아무리 소리 지르고 운다고 한들 진심은 전해지지 않잖아.
그건 어린애도 다 아는 사실이니까.
“제가 이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오는 모습을 부디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조금만 더 믿어 주세요. 그저 그것뿐입니다.”
속눈썹을 한번 내리깐 후, 그다음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근육을 풀어 일부러 진지한 표정으로.
그리고 부끄러운지 한번 웃어 줘야지.
좋아.
그다음 뒤돌아 걷는 거야.
-1따봉을 받으셨습니다.
-1따봉을 받으셨습니다.
-1따봉을 받으셨습니다.
-1따봉을 받으셨습니다.
…….
그래.
진심은 말로는 전해지지 않지만, 그래도 노력은 개미 눈곱만큼이라도 전해지는 법이니까.
등 뒤로 카메라 플래시가 따끔거린다. 나는 일부러 무겁게 걸어 던전 입구까지 도착한다.
일렁거리는 차원의 틈새가 천사의 고리와 같아 사람을 홀리는군.
던전 게이트라고 부르는 그것은 언제나 헌터들을 기다리고 있지.
삶과 죽음, 꿈과 절망.
이 조그마한 고리 너머로 얼마나 많은 인생들이 갈리던가.
뒤를 한 번 돌아본다.
머리카락이 마침 타이밍 좋게 바람에 한 번 흩어진다.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하나 더 울렸다.
띠링-
-적대적인 기자들이 당신에게 결국 감탄합니다!
-121따봉을 받으셨습니다.
척량이 말했다.
[주군, 스킬을 통해 생방송을 활성화하겠습니다.]
-전방위 영상 촬영 스킬이 방송과 연결됩니다.
-방송 송출이 시작됩니다.
좋아. 티 안 내고 들어간다.
표정을 유지하고, 감정도 유지하고.
헌터 엄지척, 라이브 시작-
* * *
좀 부끄럽긴 하네.
[그래도 따봉을 얻으려면 뭐라도 하기로 했지 않습니까.]
그렇지. 무관심보다는 호불호가 낫지.
방금의 행동으로 아군과 적이 같이 생겼으리라. 그래도 괜찮아.
관심을 받는 게 우리 직업이고, 팬은 감싸 안고, 안티는… 글쎄다. 무너지지 않고 돌파하는 게 관건 아닐까?
갓튜버 하는 헌터는 아무리 얼굴로 끼를 떨고 분위기를 잡아도, 결국 실력이 모든 걸 판별하지 않던가.
[정확히는 살아 있는가죠.]
그래. 던전에 들어가고 목숨이 붙어 있는가가 중요하지.
그런 의미에서 생방송이 이번에는 안 끊기는지가 궁금하네.
앞에 들어갔던 헌터 팀들은 라이브는 안 하는 애들이라 알 수 없었는데 말이야.
좀 배타적인 헌터 소속사들은 던전 정보 자체를 안 풀려고 해.
그래서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게 어떤 던전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야.
들어가서 죽으면 죽었지 정보는 안 풀어주는 거지.
[공익을 위해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군요.]
그렇지. 하지만 글쎄.
던전 공략을 완전히 포기한 게 아닌 한에는 앞선 헌터가 죽었다고 한들 헌터 소속사는 정보 우위에 있으니까 말이지.
그걸 이용해 다음 헌터를 보내서 끝내 클리어시키고 싶지 않을까?
[개인의 이득이군요.]
그래. 그게 바로 우리 민간 에너지 회사와 민간 군수업체의 맨얼굴이지.
대부분의 국회의원은 말단 비서 시절부터 이러한 회사에서 롤렉S 하나 받고 시작하잖아?
그러니 바뀌지 않지.
차원의 경계를 넘어, 기묘한 어둠을 지나.
마침내 터널의 끝처럼 던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오, 역시 정체된 공기 냄새가 나는군.’
언제나 똑같지.
차원의 파편이기 때문일까.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수십 개가 넘는 덩굴 채찍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 게 아닌가?
휘리릭!
와우, 신고식 죽이는군.
“후욱.”
정체된 공기를 깊게 삼키고 진기를 두 다리로 보내며 곧바로 뛰어오른다.
[도망치는 그림자].
전설적인 신투가 사용했다고 하던가.
여기에 [풍운보법]까지 더해지니 단순한 회피기가 더욱 화려하게 피어난다.
짜악! 짜작!
수십 개의 채찍들이 내가 서 있던 수풀의 바닥을 후려갈긴다.
발 아래로 물컹한 게 느껴졌다. 시체다.
숫자는 여섯.
들어간 팀이 둘이라고 했으니, 아직 네 명은 살아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군.
시체 위로 싹이 자라나고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무슨 초등학교 환경 캠페인 포스터 같네.
이 꽃들이 곧 다시 몬스터를 뱉을 거고, 그렇게 생긴 몬스터가 또 다른 ‘거름’을 찾아내겠지.
유기농 거름.
참 예쁜 발음이야. 콩나물 친구?
챙!
두 자루의 모노 블레이드를 허리춤에서 곧바로 뽑아 든다.
혼원검기가 흡사 물처럼 검날을 타고 흐르며 그대로 달려드는 덩굴 채찍을 베어낸다.
스각, 서걱!
덩굴 채찍은 일격에 조각나서 흩어지고, 나는 다시 땅에 떨어져 내렸다.
풍운보법으로 부드럽게 내려서는 나, 제법 그림 괜찮은 듯.
일단 주변을 돌아볼까?
울창한 숲, 나무는 거의 오십 미터 이상 솟구쳐 있고, 처음 보는 식물들이 가득하게 보이는군.
이렇게 숲이 무성한데 신기하게도 새소리도, 곤충 소리도 무엇 하나 들리지 않는단 말이지.
거기다가 하늘에는 태양이 보이고.
“개방형 던전인가.”
방송을 생각해 일부러 혼잣말을 해본다.
겉으로 보면 엘프가 뛰어놀고 유니콘이 살고 있을 판타지풍 숲이긴 하지만 말이지, 일단 얘들은 엘프와 유니콘보다는 ‘엘프 모양 거름’과 ‘유니콘 모양 거름’을 더 갖고 싶어 하는 거 같단 말이야.
[정지한이 왜 화염 속성을 가지고 가라고 했는지 알 것 같군요.]
그러게. 식물계 몬스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나 봐?
[블레이즈 워크와 검은 불꽃의 보호가 있으시지만요.]
다행히 내가 화염계 스킬이 둘이나 있지.
거기다가 급하면 따봉 상점을 열어서 사면 돼.
[이런 개방형 숲 던전은 엔트, 드라우드, 맨이터 같은 식물계 몬스터들이 대표적입니다. 강하고 끈질기지요.]
하지만 불에 약하지.
[네. 식물계 대다수가 불에 잘 타니까요. 거기에 흑염의까지 가지고 계시지요.]
연금술로 강화한 가죽 재킷 말이지.
통상적으로 생각하면 [블레이즈 워크]를 이용해 바이크 타고 주변을 불바다로 만든 다음에 생지랄을 해 보면 된다.
띠링-
[변이된 세계수의 조각이 자라난 작은 정원]
난이도 : 던전 1성 - 최상급
변이된 세계수의 조각이 자라나서 작은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정원의 주인을 물리치거나, 정원의 주민들을 처리하고 던전을 빠져나가세요!
보상 : 유니크 스킬 교환권
[주군, 1성 최상급에 정예 던전이면 사실상 2성 중급 이상 아닙니까?]
음. 왜 다들 못 깼는지 알겠는걸. 이거.
고작해야 십몇 레벨짜리가 무슨 용빼는 제주가 있어 최상급 던전을 깨?
자, 그러면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바로 이거인가.
방송.
시작해 볼까?
나는 카메라를 의식해서 웃는다. 이번에는 활기찬 미소가 좋겠군.
“안녕하세요. 엄지척입니다! 엄지검지!”
-엄지야아아!
-시작부터 액션 화끈하네!
-내 두 눈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방금 공중 회전 베기 실화?
-거기를 또 왜 기어들어 가냐!
-뭐야? 엄지 또 혼자 던전 들어갔어? 저기 어디?
↳엄지가 여의도에 생긴 특수 던전에 혼자 들어간 거임.
↳미쳤네;;;
-그래도 저기 레벨 20 미만 제한이라며? 그 정도면 엄지가 혼자 쓸어버릴 수 있지 않겠어?
↳ㅋㅋㅋㅋㅋㅋㅋ 솔플 클리어 각 아니냐? 완전 가능할 듯?
-에이.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어떻게 가능하겠냐? 대충 사람이나 구조해서 빠져나오겠지.
-클리어되어야 열리는 던전 같은데? 자력으로는 못 나갈 거 같음.
-근데 방금 퀘스트 창 봤음? 변이된 세계수가 뭐임?
음, 화면에 시체가 안 잡히게 적당히 조정을 하고.
아무리 갓튜브 AI가 뛰어나다고는 해도 화면에 블러가 많은 것도 보기 안 좋으니까.
그나저나 잠깐 스쳐 지나가는 라이브 채팅에 대댓글을 달 정도면 진짜 타자가 빠른 모양이야?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거겠지요. 언론에는 비평을 빙자한 비난이 많습니다.]
인신공양할 거 대신 목숨 걸고 가 준다는데도 그래?
[차라리 브레이크를 유도해서 ‘관리’하면 되는 것을 시청률 벌이 하려고 목숨을 거는 청년으로 비치고 있군요.]
음. 공양도 안 하겠다?
할 텐데?
나중에 도저히 안 깨지면 ‘관리’야 하겠지만. 그래도 한두 번 정도는 시도할 게 뻔할 뻔 자인데 이제 와서?
[그렇습니다.]
기자 놈들 나한테 따봉 좀 줘 놓고서 기사는 왜 그따위로 썼나 몰라.
[기자가 마음대로 기사를 쓰지 못하게 된 지도 좀 됐으니까요. 독립 신문사의 기자분들은 의문사 많이 하고요.]
이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지.
인간이, 한 사람의 인간이 소형 권총 이상의 힘을 갖게 되었을 때.
그 힘을 과연 정의롭게만 쓸까?
애초에 정의란 무엇이기에.
그래도 의외로 사람들 반응은 괜찮네?
[네. 왜인지 다들 단련이 되어 있습니다. 코어화 현상이라고도 하는군요.]
-검지 애들 한 처먹은 애들이라 상종을 하지 말아야 함. ㅇㅇ
↳응~ 乃최강엄지乃 ^^
한은 또 무슨 뜻이지?
[잘…… 모르겠습니다. 주군.]
-검지 되면 없던 정병도 생기는 거 실화냐ㅋㅋㅋㅋㅋ 숨만 쉬어도 한 처먹는 애들ㅋㅋㅋㅋㅋㅋㅋ
↳응~ 乃최강엄지乃 ^^
[문맥으로 봐서는 팬덤 견제성 발언 같습니다.]
나도 그래 보여.
만약 내가 SNS나 익명 사이트 문화와 친하면 더 잘 알게 되기야 하겠는데, 그건 무척이가 뜯어말리긴 했지.
헌터는 기본적으로 던전에 들어가서 사냥을 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보니 멘탈 관리가 중요하다고.
그리고 정해진 시간 안에 리소스를 확보하려면 다른 건 하지 말라고 특히나 경고했었으니까.
어쨌거나…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에 대한 무언가가 있었던 모양이군.
거기다 내가 유행어 쪽은 여엉 파악이 느린 게 문제네.
으음, 그래도 라이브 접속자 수가 쑥쑥 크고 있으니 좋은 일이겠지?
일단 뭐, 나는 내 일을 해야겠군.
-팬덤 유난몰이 괜히 넘어가지 말고 할 거 해요. 어그로는 그냥 신고하고 乃병먹금乃
누군가가 정리에 나섰다.
후읍, 그러면 나도 기합 넣으시고. 숨 크게, 목소리도 밝게!